[Preview]
외향인으로 느껴지지만 알고 보면 찐 내향인이자 집순이 작가님이 전하는 집놀이 팁!
여행에서 찍은 사진 보며 추억팔이하기, 나만의 캠핑 공간 만들어 분위기 내기, 집안일을 할 때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파워 긍정맨 마인드로, 똑같은 집에서의 일상도 놀이처럼 즐기는 법
마스터 소개– 미깡
웹기획자 출신의 웹툰 작가,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원작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의 작가이자, 만화 <거짓말들>, <하면 좋습니까?>와 에세이 <해장 음식: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을 썼다. <술도녀> 속 꾸미, 정뚱, 리우와 동갑인 99학번으로,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것을 통해 세상과 공감하고 나아가 평범하지만 때론 특별한 일상 속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외향인일 것 같다면 오산! 알고 보면 찐 내향인 집순이
<술꾼도시처녀들>이라는, 하루가 멀다 하고 모여서 콸콸콸 술 마시는 친구들 이야기를 그렸고 나 자신도 술꾼이라 말하고 다니니, 모두 나를 ‘슈퍼 인싸’, ‘외향인’으로 짐작한다. 웹툰을 한창 연재할 때는 ‘작가님 마감하셨으니 지금쯤 신나게 마시고 있겠죠?’ ‘작가님은 사람들도 엄청 많이 만나고 매일 파티하실 듯?’ 같은 댓글이 상당히 많았는데, 나는 그 댓글들을 언제나, 예외 없이 집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읽었다. 인싸? 파티? 나랑은 먼 얘기다. 친구들과 마시는 술도 물론 좋아하지만 인원이 너무 많으면 금방 지쳐버리고, 나이가 들수록 집에서 혼자 또는 둘이 마시는 게 제일 마음 편하고 좋다. 사람 많은 자리에 가기로 정해지면 며칠 전부터 살살 신경이 쓰이고 긴장이 되기까지 한다. 요즘 유행하는 MBTI란 걸 해보진 않았지만 (다들 하니까 나만은 어쩐지 끝까지 안 해보고 싶어서 버티는 중인데, 하도 들어서 대충 뭐가 뭔지 알게 됐다) 해보나 마나 맨 앞자리는 I일 것이 틀림없다.
앞자리가 E인 외향인들이 종종 묻는다. “집에 있으면 도대체 뭐 하는데? 안 심심해?” 그런 말을 들으면 입이 쩍 벌어진다. 왜 심심해? 뭐가 심심해? 집에서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하다못해 만화책, 소설책만 읽어도 야속할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흐르는데? 며칠씩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 책만 읽어도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근데 책만 보기로 한 날이라도 때 되면 밥 먹어야지, 커피 마셔야지, 밤에는 술상도 오붓하게 차려야지,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바빠?
이렇게 말해도 도무지 집에서 뭘 하고 놀지 모르겠고, 생각만 해도 몸이 근질거리고 지루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슈퍼 아싸 내향인이자 집순이’가 알고 있는 집놀이 팁을 몇 가지 공유하려고 한다. 한 번 직접 실험해 보시는 건 어떨지?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 집에 있게 된 당신. 실은 당장이라도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당신. 그래서 지금 약간 똥 마려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당신에게 권한다. 집에서라도 여행 기분 내보기! 어떻게?
예전에 다녀왔던, 좋았던 여행 사진을 인화해서 벽에 붙이는 방법이 단순한데 효과가 좋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사진들은 거의 디지털로 존재한다. 사진 ‘파일’들은 각자의 전화기나 PC나 클라우드 어딘가에는 분명 있지만, 그리고 그게 그 옛날 장롱 속의 앨범보다 접근성이 뛰어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재작년 여름휴가 때의 사진을 몇 번이나 찾아서 다시 봤던가? 3년 전 여행은? 사진을 보고서야 ‘맞다. 여기도 갔었지’ 하지는 않는지? 반면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으로 만들어 손 닿는 곳에 두거나, 벽 또는 냉장고에 붙여 두면 자주 보게 되고 그때의 기억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또 똑같은 사진을 봐도 느낌이 다르다. 딱히 지울 필요가 없어서 비슷비슷하게 너무 많은 사진을 손가락으로 밀면서 죽죽 보는 것보다, 고민 끝에 좋은 사진만 선별해서 모아놓은 사진을 볼 때 더 애틋하고 흐뭇하다.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을 잘 보이게 진열하는 것도 좋다. 여행지의 풍경이 담긴 엽서나 냉장고 마그넷 같은 것 말이다. 우리집 냉장고에는 베트남에서 사온 쌀국수 마그넷, 통영에서 산 케이블카 마그넷, 제주도의 귤 마그넷, 전시회나 공연장에서 산 다양한 굿즈와 티켓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식탁에 앉아 있다가 문득 그것들을 보면 여행에서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배실배실 웃음이 새어나온다. 단 돈 몇 천 원으로 여행 기분을 수시로 소환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나? 여행의 추억을 돌아보고 가까이 두는 시간, 꼭 가져보길 권하는 바이다.
저는 이번에 처음 들어봤습니다! (음?) 그런 용어는 몰랐지만 몇 년 전부터 집에서 하고는 있었구요! (거실에 텐트 치고 놀던 이야기를 쓰려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니 홈 캠핑이라는 말이 이미 많이 쓰이고 있었다. 역시 좋은 건 남들도 다 알아!) 나이, 성별, 기혼, 비혼을 불문하고 캠핑의 인기는 수년 째 크게 치솟는 중이다. 백패킹, 바이크 캠핑, 글램핑, 오토캠핑 등 종류도 다양하며 관련 산업의 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야외 캠핑은 외부 영향을 꽤 많이 받는다. 너무 덥거나 추워도,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곤란하고,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준비물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으면 훌쩍 떠날 수 없다. (짐 없이 간편하게 떠날 수 있는 글램핑은 비용이 많이 든다.) 또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 이상은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떠나고 싶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떠날 수 없을 때, 나는 주섬주섬 거실에 텐트를 친다. 텐트 안에 담요 밀어 넣고 캠핑 의자와 접이식 테이블 하나씩 펼치면 끝! 텐트와 의자를 번갈아 오가며 뒹굴거리고, 책 읽고, 와인도 홀짝거려본다. 좀 더 낭만적인 기분을 내고 싶을 땐 우디향이 나는 초를 피우고 캠핑 랜턴을 켠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에 ‘모닥불 ASMR’ 동영상까지 틀어놓으면 금상첨화! 요즘은 2D 화면의 불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홈캠핑족에게 실내용 에탄올 난로가 인기라고 한다. 역시 캠핑의 화룡점정은 ‘불멍’이니 그런 수고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나는 마시멜로를 나무젓가락에 끼워서 가스레인지에 구워 먹은 적이 있었는데, 캠핑 분위기를 더 실감 나게 내려면 스토브나 미니 화로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주방에서 꺼내온 식기보다는 역시 캠핑용 스탠 식기가 근사할 것 같고... 텐트도 가랜드로 좀 더 꾸며볼까? (괜히 검색했다가 바람만 잔뜩 들어버린 나...)
옷장을 열면 나만의 패션쇼가, 청소할 때는 <얼룩과의 전쟁> 영화 한 편 뚝딱!
그런데 막상 집에 있으면 마음 편히 못 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소파에 누워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치워야 할 것들이 사정없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선반에 뽀얗게 쌓인 먼지도 떨어야 되고, 구석에 처박아둔 선풍기도 분해해서 닦아 넣어야 하고, 계절이 바뀌었으니 옷 정리도 해야 하고... 한가롭게 캠핑 놀이 같은 걸 할 때가 아닌 상황, 분명 있다.
어쩔 수 없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면, 기왕이면 재미있게 하자는 주의다. 그게 온종일 일만 하다 저녁을 맞이했을 때 찾아올 수 있는 우울감에 미리 대비하는 방법이다.
먼저 옷 정리. 옷장을 열면 고만고만한 옷들을 뒤적거리면서 ‘올해도 안 입었는데 내년이라고 입을까? 그래도 버리긴 아까워.’ ‘옷이 좀 작아졌는데 살 빼면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망설이며 들었다 놨다 하기 마련이다. 이러면 흥도 나지 않고 정리도 별로 안 된다. 과감하게 모든 옷을 꺼내 바닥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전신거울 앞에서 훌렁 맨몸이 된 뒤, 하나씩 전부 입어보는 것이다. 어떻게? 패션쇼 하듯이! 유튜브에 ‘독기 플리’를 검색하면 자신감이 생기는, 파워풀한 음악 리스트가 여럿 준비되어 있다. 힘이 나고 신이 나는 음악을 크게 틀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며 턱을 한껏 치켜든 채 착장을 해보는 거다. 이 옷 저 옷 매칭해서도 입어보고, 거울 보며 춤도 좀 춰보고, 옷이 안 맞는다? 휙 던져버려! 발로 뻥 차버려! 살찐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옷이 내 매력을 담아주지 못하는 거라고! 계절마다 한 번씩은 해야 하는 옷 정리. 한숨 푹푹 쉬면서 찔끔찔끔 하지 말고 아예 다 뒤집어서 신나게 해보자. 즐겨보자.
청소도 마찬가지다. 힘들고 지루한 청소도 하루 날 잡아서 재미있게, 후련하게 해보면 어떨까? 털고 쓸고 닦는 전체 공정을 완벽하게 수행해도 좋고 ‘오늘은 얼룩과의 전쟁’ 식으로 한 지점만 공략하는 방법도 좋다. ‘얼룩과의 전쟁’은 말 그대로 온 집안의 얼룩, 특히 주방에 많은 얼룩과 기름때를 지우는 일이다. 소리만 들어도 괜찮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크게 틀어놓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무념의 상태로 하나하나 지워간다. 옛말에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는데, 뜬금없고 희한하게도 이 말은 얼룩에도 찰떡같이 적용된다. 어떤 곳에 얼룩이 생기면 그 상태로 점점 눈에 익숙해진다. 얼룩을 지우고 나서야 그 부분이 갑자기 확 깨끗해지고 환해진다. 바로 이 재미에 청소하는 거다. ‘아유 여기 왜 이렇게 더러워!’ 일일이 분노하지 말고 무념으로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지우다 보면 어느 순간 환해진 나의 집 발견! 이날만큼은 보상으로 치맥 야식의 호사를 누려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정리하면, 똑같은 일상을 보내더라도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느낌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똑같은 집안일을 해도 즐거운 놀이라고 마음 먹으면 그래도 좀 수월해진다. 책 읽고 와인 마시는 평범한 일도 캠핑 나온 것처럼 꾸며놓고 하면 더 특별하고 즐거워진다. 기왕 하는 거, 조금만 새로운 시도를 더해 보면 들인 노력보다 몇 배나 큰 즐거움으로 돌아오니까 결코 손해 보는 셈이 아니다. 일종의 정신승리일 뿐인 거 아니냐고? 맞다. 그게 뭐 어때서? 승리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아까 유튜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나는 누가 만들어놓은 플레이리스트나 셔플 재생을 지양하고, 내가 직접 테마를 만들어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오늘 불쑥 이소라 노래가 듣고 싶어지면 그 자리에서 ‘이소라 데이’를 선포하고 그의 데뷔곡부터 신곡까지 다 들어보는 식이다. 시간여행 테마는 어떨까? ‘2012년에 무슨 노래를 듣고 살았지?’ 1월부터 12월까지 히트곡들을 죽 찾아 들으면 된다. 그 해의 몇몇 사건들, 몇몇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를 것이다. 갑자기 세상 뜬금없이 ‘덴마크 음악은 어떤 걸까?’ 검색해보며 낯선 이국의 정취를 느껴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음악도 찾아 듣고, 종으로 횡으로 테마를 정해 여행을 떠나다 보면 온종일 음악과 함께 지루할 틈이 없다.
후훗! 제 대답은 말 안 해도 아시겠지요?

다음 이야기 >>4화 오늘도 수고한 당신께 - 집에서 잘 쉬는 기술
외향인으로 느껴지지만 알고 보면 찐 내향인이자 집순이 작가님이 전하는 집놀이 팁!
여행에서 찍은 사진 보며 추억팔이하기, 나만의 캠핑 공간 만들어 분위기 내기, 집안일을 할 때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파워 긍정맨 마인드로, 똑같은 집에서의 일상도 놀이처럼 즐기는 법
마스터 소개– 미깡
웹기획자 출신의 웹툰 작가,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원작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의 작가이자, 만화 <거짓말들>, <하면 좋습니까?>와 에세이 <해장 음식: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을 썼다. <술도녀> 속 꾸미, 정뚱, 리우와 동갑인 99학번으로,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것을 통해 세상과 공감하고 나아가 평범하지만 때론 특별한 일상 속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외향인일 것 같다면 오산! 알고 보면 찐 내향인 집순이
<술꾼도시처녀들>이라는, 하루가 멀다 하고 모여서 콸콸콸 술 마시는 친구들 이야기를 그렸고 나 자신도 술꾼이라 말하고 다니니, 모두 나를 ‘슈퍼 인싸’, ‘외향인’으로 짐작한다. 웹툰을 한창 연재할 때는 ‘작가님 마감하셨으니 지금쯤 신나게 마시고 있겠죠?’ ‘작가님은 사람들도 엄청 많이 만나고 매일 파티하실 듯?’ 같은 댓글이 상당히 많았는데, 나는 그 댓글들을 언제나, 예외 없이 집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읽었다. 인싸? 파티? 나랑은 먼 얘기다. 친구들과 마시는 술도 물론 좋아하지만 인원이 너무 많으면 금방 지쳐버리고, 나이가 들수록 집에서 혼자 또는 둘이 마시는 게 제일 마음 편하고 좋다. 사람 많은 자리에 가기로 정해지면 며칠 전부터 살살 신경이 쓰이고 긴장이 되기까지 한다. 요즘 유행하는 MBTI란 걸 해보진 않았지만 (다들 하니까 나만은 어쩐지 끝까지 안 해보고 싶어서 버티는 중인데, 하도 들어서 대충 뭐가 뭔지 알게 됐다) 해보나 마나 맨 앞자리는 I일 것이 틀림없다.
집순이는 심심할 틈이 없다
앞자리가 E인 외향인들이 종종 묻는다. “집에 있으면 도대체 뭐 하는데? 안 심심해?” 그런 말을 들으면 입이 쩍 벌어진다. 왜 심심해? 뭐가 심심해? 집에서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하다못해 만화책, 소설책만 읽어도 야속할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흐르는데? 며칠씩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 책만 읽어도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근데 책만 보기로 한 날이라도 때 되면 밥 먹어야지, 커피 마셔야지, 밤에는 술상도 오붓하게 차려야지,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바빠?
이렇게 말해도 도무지 집에서 뭘 하고 놀지 모르겠고, 생각만 해도 몸이 근질거리고 지루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슈퍼 아싸 내향인이자 집순이’가 알고 있는 집놀이 팁을 몇 가지 공유하려고 한다. 한 번 직접 실험해 보시는 건 어떨지?

집에서 여행 사진 보며 추억팔이하는 것만으로도 여행 기분 뿜뿜~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 집에 있게 된 당신. 실은 당장이라도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당신. 그래서 지금 약간 똥 마려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당신에게 권한다. 집에서라도 여행 기분 내보기! 어떻게?
예전에 다녀왔던, 좋았던 여행 사진을 인화해서 벽에 붙이는 방법이 단순한데 효과가 좋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사진들은 거의 디지털로 존재한다. 사진 ‘파일’들은 각자의 전화기나 PC나 클라우드 어딘가에는 분명 있지만, 그리고 그게 그 옛날 장롱 속의 앨범보다 접근성이 뛰어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재작년 여름휴가 때의 사진을 몇 번이나 찾아서 다시 봤던가? 3년 전 여행은? 사진을 보고서야 ‘맞다. 여기도 갔었지’ 하지는 않는지? 반면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으로 만들어 손 닿는 곳에 두거나, 벽 또는 냉장고에 붙여 두면 자주 보게 되고 그때의 기억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또 똑같은 사진을 봐도 느낌이 다르다. 딱히 지울 필요가 없어서 비슷비슷하게 너무 많은 사진을 손가락으로 밀면서 죽죽 보는 것보다, 고민 끝에 좋은 사진만 선별해서 모아놓은 사진을 볼 때 더 애틋하고 흐뭇하다.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을 잘 보이게 진열하는 것도 좋다. 여행지의 풍경이 담긴 엽서나 냉장고 마그넷 같은 것 말이다. 우리집 냉장고에는 베트남에서 사온 쌀국수 마그넷, 통영에서 산 케이블카 마그넷, 제주도의 귤 마그넷, 전시회나 공연장에서 산 다양한 굿즈와 티켓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식탁에 앉아 있다가 문득 그것들을 보면 여행에서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배실배실 웃음이 새어나온다. 단 돈 몇 천 원으로 여행 기분을 수시로 소환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나? 여행의 추억을 돌아보고 가까이 두는 시간, 꼭 가져보길 권하는 바이다.
들어보셨나요, ‘홈 캠핑’? 알고 보니 나는 프로 홈캠핑러라는 사실
저는 이번에 처음 들어봤습니다! (음?) 그런 용어는 몰랐지만 몇 년 전부터 집에서 하고는 있었구요! (거실에 텐트 치고 놀던 이야기를 쓰려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니 홈 캠핑이라는 말이 이미 많이 쓰이고 있었다. 역시 좋은 건 남들도 다 알아!) 나이, 성별, 기혼, 비혼을 불문하고 캠핑의 인기는 수년 째 크게 치솟는 중이다. 백패킹, 바이크 캠핑, 글램핑, 오토캠핑 등 종류도 다양하며 관련 산업의 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야외 캠핑은 외부 영향을 꽤 많이 받는다. 너무 덥거나 추워도,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곤란하고,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준비물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으면 훌쩍 떠날 수 없다. (짐 없이 간편하게 떠날 수 있는 글램핑은 비용이 많이 든다.) 또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 이상은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떠나고 싶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떠날 수 없을 때, 나는 주섬주섬 거실에 텐트를 친다. 텐트 안에 담요 밀어 넣고 캠핑 의자와 접이식 테이블 하나씩 펼치면 끝! 텐트와 의자를 번갈아 오가며 뒹굴거리고, 책 읽고, 와인도 홀짝거려본다. 좀 더 낭만적인 기분을 내고 싶을 땐 우디향이 나는 초를 피우고 캠핑 랜턴을 켠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에 ‘모닥불 ASMR’ 동영상까지 틀어놓으면 금상첨화! 요즘은 2D 화면의 불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홈캠핑족에게 실내용 에탄올 난로가 인기라고 한다. 역시 캠핑의 화룡점정은 ‘불멍’이니 그런 수고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나는 마시멜로를 나무젓가락에 끼워서 가스레인지에 구워 먹은 적이 있었는데, 캠핑 분위기를 더 실감 나게 내려면 스토브나 미니 화로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주방에서 꺼내온 식기보다는 역시 캠핑용 스탠 식기가 근사할 것 같고... 텐트도 가랜드로 좀 더 꾸며볼까? (괜히 검색했다가 바람만 잔뜩 들어버린 나...)

옷장을 열면 나만의 패션쇼가, 청소할 때는 <얼룩과의 전쟁> 영화 한 편 뚝딱!
집안일, 기왕 한다면 놀이처럼
그런데 막상 집에 있으면 마음 편히 못 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소파에 누워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치워야 할 것들이 사정없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선반에 뽀얗게 쌓인 먼지도 떨어야 되고, 구석에 처박아둔 선풍기도 분해해서 닦아 넣어야 하고, 계절이 바뀌었으니 옷 정리도 해야 하고... 한가롭게 캠핑 놀이 같은 걸 할 때가 아닌 상황, 분명 있다.
어쩔 수 없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면, 기왕이면 재미있게 하자는 주의다. 그게 온종일 일만 하다 저녁을 맞이했을 때 찾아올 수 있는 우울감에 미리 대비하는 방법이다.
먼저 옷 정리. 옷장을 열면 고만고만한 옷들을 뒤적거리면서 ‘올해도 안 입었는데 내년이라고 입을까? 그래도 버리긴 아까워.’ ‘옷이 좀 작아졌는데 살 빼면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망설이며 들었다 놨다 하기 마련이다. 이러면 흥도 나지 않고 정리도 별로 안 된다. 과감하게 모든 옷을 꺼내 바닥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전신거울 앞에서 훌렁 맨몸이 된 뒤, 하나씩 전부 입어보는 것이다. 어떻게? 패션쇼 하듯이! 유튜브에 ‘독기 플리’를 검색하면 자신감이 생기는, 파워풀한 음악 리스트가 여럿 준비되어 있다. 힘이 나고 신이 나는 음악을 크게 틀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며 턱을 한껏 치켜든 채 착장을 해보는 거다. 이 옷 저 옷 매칭해서도 입어보고, 거울 보며 춤도 좀 춰보고, 옷이 안 맞는다? 휙 던져버려! 발로 뻥 차버려! 살찐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옷이 내 매력을 담아주지 못하는 거라고! 계절마다 한 번씩은 해야 하는 옷 정리. 한숨 푹푹 쉬면서 찔끔찔끔 하지 말고 아예 다 뒤집어서 신나게 해보자. 즐겨보자.
청소도 마찬가지다. 힘들고 지루한 청소도 하루 날 잡아서 재미있게, 후련하게 해보면 어떨까? 털고 쓸고 닦는 전체 공정을 완벽하게 수행해도 좋고 ‘오늘은 얼룩과의 전쟁’ 식으로 한 지점만 공략하는 방법도 좋다. ‘얼룩과의 전쟁’은 말 그대로 온 집안의 얼룩, 특히 주방에 많은 얼룩과 기름때를 지우는 일이다. 소리만 들어도 괜찮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크게 틀어놓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무념의 상태로 하나하나 지워간다. 옛말에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는데, 뜬금없고 희한하게도 이 말은 얼룩에도 찰떡같이 적용된다. 어떤 곳에 얼룩이 생기면 그 상태로 점점 눈에 익숙해진다. 얼룩을 지우고 나서야 그 부분이 갑자기 확 깨끗해지고 환해진다. 바로 이 재미에 청소하는 거다. ‘아유 여기 왜 이렇게 더러워!’ 일일이 분노하지 말고 무념으로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지우다 보면 어느 순간 환해진 나의 집 발견! 이날만큼은 보상으로 치맥 야식의 호사를 누려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집에서 있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일상 속 작은 시도와 노력으로 재미와 기쁨을
정리하면, 똑같은 일상을 보내더라도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느낌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똑같은 집안일을 해도 즐거운 놀이라고 마음 먹으면 그래도 좀 수월해진다. 책 읽고 와인 마시는 평범한 일도 캠핑 나온 것처럼 꾸며놓고 하면 더 특별하고 즐거워진다. 기왕 하는 거, 조금만 새로운 시도를 더해 보면 들인 노력보다 몇 배나 큰 즐거움으로 돌아오니까 결코 손해 보는 셈이 아니다. 일종의 정신승리일 뿐인 거 아니냐고? 맞다. 그게 뭐 어때서? 승리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아까 유튜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나는 누가 만들어놓은 플레이리스트나 셔플 재생을 지양하고, 내가 직접 테마를 만들어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오늘 불쑥 이소라 노래가 듣고 싶어지면 그 자리에서 ‘이소라 데이’를 선포하고 그의 데뷔곡부터 신곡까지 다 들어보는 식이다. 시간여행 테마는 어떨까? ‘2012년에 무슨 노래를 듣고 살았지?’ 1월부터 12월까지 히트곡들을 죽 찾아 들으면 된다. 그 해의 몇몇 사건들, 몇몇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를 것이다. 갑자기 세상 뜬금없이 ‘덴마크 음악은 어떤 걸까?’ 검색해보며 낯선 이국의 정취를 느껴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음악도 찾아 듣고, 종으로 횡으로 테마를 정해 여행을 떠나다 보면 온종일 음악과 함께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러니까 E들이여, 다시 한 번 물어보시라. 집에서 혼자 놀면 재미없지 않냐고?
후훗! 제 대답은 말 안 해도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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