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사람 위에 서지 않고 그저 편안한 존재

2024.08.28 10:28조회수 5873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writer. 박지우(@poly_nylon, @oddflat, @newformonly)
빈티지 가구 숍 ‘오드플랫’ 대표. 새로운 사물을 발굴하는 ‘뉴폼온리’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것들이라면 우선 흥미를 갖고 보지만, 특히 50~80년대의 오디오와 오래된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박지우





지금의 집은 지금 내가 참 좋아하는 모습이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으레 한 번씩 발휘하곤 하는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투박하고 낡은 가구들이 사람 위에 서서
내려다보지 않는 편안한 집이 되었다.
나는 가구를 모시지 않고, 가구도 나에게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쓰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인 듯하다.
시간이 흘러 가구에 상처가 조금씩 더해질수록
이들은 나에게 더 편안한 존재가 될 것이다.





가구, 사람 위에 서지 않고 그저 편안한 존재


어렸을 적 우리 집의 규율은 친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격한 편이었으나, 왜인지 옷을 입는 것에 대해서는 꽤 열려 있었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힙합에 빠져 청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며 두건을 쓰고 다녔는데, 어머니는 삐뚤어진 두건을 보기 좋게 만져주곤 했으니 말이다. 이즈음, 방이나 집을 꾸미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떤 디자이너의 가구를 좋아한다고 말할 만큼 리빙의 역사에 큰 관심을 두거나 조예가 깊은 편이 되지는 못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빈티지 가구샵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디자이너의 이름을 줄줄 외우는 데에는 흥미를 갖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유명 디자이너가 남긴 희귀한 작품들, 현재 트렌드의 정점에 있어 점점 시세가 오르거나 이미 높은 시세를 자랑하는 디자인들이 크게 끌리지 않는 건 당연했다. 다만 수집욕을 발휘하여 임스 체어를 산처럼 모은다던가, 작자 미상의 기이한 가구를 찾아 소개하는 것에 큰 재미를 갖게 되었다. 이런 재미를 느끼는 건 비단 비즈니스에서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거실 한편에 둘 책장을 고민하다 꽤 오래 빈 벽으로 두게 되었는데, 최근에 수놓듯 조각이 새겨진 1900년대의 이름 모를 책장을 두는 것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었다. 책장이 집에 들어온 날 서둘러 어지러이 흩어진 책을 모아 이쁘게 꽂고 참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박지우



가구 샵을 운영하기 전에는 오랜 시간 옷을 디자인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지금은 손을 놓은 지 꽤 되어서 감각이 둔해졌을지 모르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비례와 절개, 장식의 위치가 있었다. 이런 것들은 본능적인 것이어서 단번에 판단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 가구를 두는 것도 이처럼 본능적으로 와닿는 것들이다. 한눈에 마음이 가는 것들은 언제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어서 오랫동안 어느 샵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들이었지만, 다른 누군가가 아무리 같은 것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신비함을 갖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찾아 집에 두거나 샵 한쪽에 두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빈티지 가구 샵을 운영한다고 하면 보통은 컬렉터란 호칭을 곁들인 고귀한 디자인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다음 주에 있을 파티의 신선한 디제잉 셋을 준비하고자 동묘의 중고 LP샵을 찾아 숨은 앨범을 디깅하는 디제이와 닮았다. 가구를 알면 알수록 집에서 유명 디자이너의 대표 디자인들은 점점 사라지고, 묘한 자태의 알 수 없는 가구들이 많아진 것들은 이런 연유였다.



한 달 전, 참 오래 정을 붙였던 금호동을 떠나 이촌동으로 이사를 했다. 덕분에 이사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집 근처 국립 중앙 박물관에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한국의 것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니. 그동안 한국의 미에 대해 깊게 탐구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날 전통적인 한국의 서화, 도자기, 가구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매일 한국의 서화를 살펴보다가 결국에는 유산 민경갑의 1974년 작 작품을 경매로 구매하게 되었다. 철쭉이 범상치 않은 붓 터치로 멋지게 그려진 좌우로 길이가 꽤 긴 그림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970년대 미국의 워런 플래트너(Warren Platner)가 디자인한 이그제큐티브 사이드보드 위에 그림을 걸어 보았다.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의 미를 곁에 두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그림도 좋았지만 좀 진부하지 않은가 싶었던 사이드보드도 제 짝을 찾고 난 후 더 빛나 보였다.



지금의 집은 지금 내가 참 좋아하는 모습이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으레 한 번씩 발휘하곤 하는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투박하고 낡은 가구들이 사람 위에 서서 내려다보지 않는 편안한 집이 되었다. 나는 가구를 모시지 않고, 가구도 나에게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쓰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인 듯하다. 시간이 흘러 가구에 상처가 조금씩 더해질수록 이들은 나에게 더 편안한 존재가 될 것이다. 운명처럼 한국에서 찾은 미학은 앞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심미안에 유익한 실마리를 던져줄 것임도 분명하고.




©박지우



⊹⊹



어떤 관심사는 깊어질수록 고귀한 세계로만 이어지지 않고,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길을 안내해 주는 듯합니다.


박지우 대표님의 그 오래된 관심사는 바로 ’가구 수집’이었고요!
아름답기만 한 물건을 집에서 모시고 사는 게 아닌
’일ㅡ일상ㅡ가구’를 긴밀하게 엮어 삶을 돌보는 자세가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집은 세월이 가도 늙지 않는 장소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무엇을 수집해 보고 싶나요?
부피가 작은 것부터, 오래 마음에 품었던 것부터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것이 데려다 줄 기쁨은 결코 작지 않을 테니! 🪑❣️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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