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문 앞에 서자마자 웃음이 빵 터졌어요. ‘입춘대길 건양다경’, 직접 쓰신 건가요?
안녕하세요 북촌 한옥마을에서 한옥을 고치며 살고 있는 로망 실현가 정덕만, 김태경 부부입니다. 대문에 써 붙인 ‘입춘대길 건양다경’은 직접 쓴 거예요. 서예가처럼 잘 쓰지 못하니 캘리그래피처럼 저만의 개성을 담아 써봤어요. 최근엔 관광객들이 저희 집 대문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길래 좀 더 잘 써서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북촌 한옥마을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셨다고요. 원래 어떤 공간에 거주하셨나요?
원래는 신도시에 살았어요. 북촌 한옥마을과 극단적으로 다른 환경이었죠.
한옥으로 이사하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요?
코로나로 아파트 커뮤니티센터가 폐쇄되면서 아파트의 장점이 없고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마당 있는 집을 찾다가 한옥마을까지 생각하게 되었고, 가용할 수 있는 예산에 딱 맞는 집을 발견해 바로 이사를 결정했어요.

이 공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발품을 많이 파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부동산 들어가서 매물 있는지 물어보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인터넷으로 먼저 확인 후 다녀보게 되었어요. 너무 작거나 화장실이 바깥에 있거나, 옆에 빌라가 있어서 마당이 들여다 보인다거나 하는 집을 제외하고 나니 찾아가서 볼 집이 추려지더라고요. 저희 집은 당시 세입자가 살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 기간이라 집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사진상으로만 확인하고 집을 계약했어요.
사진만 보고 한옥을 매입하셨다고요?
네(웃음), 먼저 위치가 아주 좋았고요. 보통 한옥의 대지면적이 20~30평이 대부분인데, 이 집은 45평이라 맘에 들었어요. 남편은 서까래가 멀쩡히 살아있는 것만 보고 뜻을 같이했고요.
처음 이곳을 마주했을 때의 상태가 궁금해요. 손볼 곳이 많았나요?
2008년에 리모델링을 했던 집이라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집 치고는 새 집인 편이지만, 한옥은 계속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는 집이라 방치되어 있던 티가 많이 났어요. 건물 외부 기둥과 처마 샌딩 작업을 끝내니 앞집 할머니가 속이 다 시원하다며 기뻐해 주셔서 뿌듯했네요.

할머니께서요?
얼마 전엔 집 앞 국화 화분이 깨졌는데, 앞집 할머니께서 예쁜 화분이 깨졌다며 굉장히 속상해하셨어요(웃음). 북촌 한옥마을은 관광객은 많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람은 적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 하잖아요. 게다가 주택에서도 범위가 더 좁혀진 한옥이다 보니, 아름답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주민들끼리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교류하고, 맛집이 있으면 공유하기도 해요.
동네 같은 분위기네요. 이사하신 후 많은 곳을 손보셨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곳을 수리하셨나요?
화장실의 모서리가 크랙이 가서 응급 방수 처리하고, 초인종과 인터폰을 직접 교체했어요. 정화조의 환풍기를 교체, 벽에 있는 매립형 콘센트들을 전부 바꿨죠. 트럭이 치고 가서 떨어진 처마도 손보고, 창문을 분리해 유리를 닦다가 유리가 깨져 그 김에 조금 더 두꺼운 유리로 교체해서 실리콘 작업도 했어요. 유리를 한 겹 더 추가하니 단열 기능까지 더했어요. 외부 화단도 시멘트가 깨져 있던 부분을 손보아서 깔끔하게 만들었고요. 대문부터 시작해서 모든 목재를 샌딩 했는데 점점 경험이 쌓이니 처음에 시작했던 대문이 제일 엉성해 보여서 다시 하고 싶어요(웃음)
와, 정말 많은 곳을 손보셨네요. 남편분께서 일반인이 하기 힘든 부분까지 척척 담당하시는 것 같아요. 셀프 수리와 관련된 정보는 어디에서 얻으세요?
대학교 방학 때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두 달간 알바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해봐서 두려움이 없는 것도 있고, 요즘은 유튜브로 많이 배워요. ‘전문가를 모시면 천만 원이지만 내가 직접 하면 백만 원’이라고 외치며 직접 하고 있습니다.
셀프 수리를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도 하잖아요. 한옥은 특히 더 까다로울 것 같아요.
구글 네스트가 예쁘다고 무작정 직구해서 설치했는데 미국과 우리나라 전압이 달라서 고생했어요. 이리저리 배선을 살펴보다 기존 전자개폐기용 선을 발견해서 전원공급에 성공했고요.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이 관광지다 보니까 집을 고치고 있으면,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해요. 마당쇠 옷을 사야 하나 고민될 정도랍니다(웃음)
오늘은 어떤 부분을 수리하실 예정인가요?
샌딩을 마쳐 놓은 처마 부분에 우드 스테인을 바르려고요. 자세히 보면 스테인을 바른 나무와 바르지 않은 나무의 색감이나 광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어요.

역할이 나눠져 있을 것 같은데, 수리 부분 중 아내분께서 맡으신 역할은 무엇인가요?
백조의 바쁜 발을 남편이 맡고 있다면 수면으로 보이는 우아한 부분을 제가 맡고 있어요. 한옥에는 당호가 있는데 제가 ‘호일당’이라고 이름 붙였답니다. 일일시호일,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뜻에서 호일당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조만간 제가 글씨를 쓰고 남편이 문패로 만들어 달 예정이에요.
아내 분께서는 집의 감성적인 것을 담당하시는 것 같아요(웃음). 부엌에 진열된 로열 코펜하겐, 에르메스 등의 그릇 컬렉션은 분명 아내분의 것 같아요. 한옥과도 잘 어울리네요.
어렸을 때 집에 있던 행남자기부터 예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내 살림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내 눈에 예뻐 보이는 것 들로만 그릇을 채우다 보니 로열 코펜하겐과 에르메스 등 몇 가지로 추려지더라고요. 빈티지 찻잔도 좋아하지만 내가 실수로 깨뜨리면 그 물건의 역사가 끝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중하게 다루려고 노력해요.
가장 아끼는 컬렉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로열 코펜하겐 퍼플 커피잔과 더블 레이스 접시는 로열 코펜하겐의 덴마크 페인터 초청행사 때 남편이 정말 큰맘 먹고 사준 것 이예요. 페인터분이 자기 친구가 그렸다고 얘기해서 왠지 더 반가웠어요. 사람이 직접 그리기 때문에 무늬와 그림이 약간씩 모두 다른 것이 로열 코펜하겐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사한 뒤 손이 더 많이 가거나 이곳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그릇이 있다면요?
로열 코펜하겐 블루 플루티드가 흰 바탕에 푸른 그림이라 우리 전통 가옥에 잘 어울리는 느낌인데 이사 후에는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구스타브스 베리의 베르사와 에르메스의 워크 인 더 가든이 한옥에 너무 잘 어울리는 느낌이에요.
한옥으로 이사한 뒤 두 분의 삶도 많이 변하셨을 것 같아요.
물욕과 여행욕이 줄었어요. 한옥은 아무래도 물건이 없을 때 가장 예뻐 보여서 쇼핑 전에 한참 더 생각하게 되어요. 여행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음 여행을 정해두고 여행 가는 재미로 살았는데 지금은 집 고치는 것이 바쁘기도 하고 매일 바뀌는 마당 보는 재미에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사라졌네요.
한옥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 한옥의 유일한 단점은 벌레가 많이 보인다는 점이에요. 몇 년 만에 바선생을 맞닥뜨리고 ‘꺄악’ 소리를 지르며 재빨리 바퀴약을 주문했답니다. 다행히 주문한 약의 효과가 좋은지 또 만난 적은 없어요. 정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네요. 아파트에서는 방역을 해주는 분이 따로 있었는데 단독은 저희가 직접 해야 하니 온갖 종류의 살충제를 구비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걸 상쇄할 만큼 장점이 많아요. 일단 층간 소음이 없고 마당에 새가 찾아오는 것도 재밌어요. 마당에서 바싹 마른 리넨 이불커버를 덮을 때라던가 툇마루에 앉아서 밤하늘 보며 맥주 한 잔 기울일 때, 대청마루에 드러누워서 책을 읽거나 할 때 ‘이사 정말 잘 왔다’라고 생각한답니다.

마당에 새가 오나요? 정말 낭만적이에요.
마당에 앵두, 매화나무가 있어 열매가 떨어지거든요. 주우려고 보니 참새가 날아와 요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 줍지 않고 남겨두고 있어요. 저희 반려견이 털이 많이 빠지는데, 털을 모아 새장에 넣어 놨어요. 새들이 그 털을 둥지 만드는데 쓰려고 가져가요. 마루에 앉아 새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디즈니 프린세스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반려견 이름은 무엇인가요?
이름은 루이예요. 이렇게 말하면 루이비통이나 루이14세를 생각하는데 중국어로 瑞,RUI랍니다. 상서로울 ‘서’인데 중국에서는 중성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쓰이는 이름이에요. 제가 중국 상하이에서 10년 거주한 것도 있고, 루이도 중국 유학생이 키우는 개가 새끼를 낳아 데려온 거라 중국어로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루이도 이곳으로 이사한 뒤 생활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보시기에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나요?
관광객이 많은 동네라 그런지 루이를 예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낯선 사람을 좋아하는 루이도 늘 예쁨 받으며 행복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산책을 다닐 때 오르락내리락 길이 많아서 산책길을 좀 힘들어하곤 해요. 이사 초기에는 우리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올라오고 싶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곤 했답니다.
앞으로도 셀프 수리는 계속 이어질 것 같아요. 또 어떤 곳을 수리하실 계획이세요?
전실 바닥을 셀프로 수리할 예정인데 전실 쪽 배수관을 외부 배수로에 연결하면서 외부 화단도 함께 작업할 예정이에요. 전실이 끝나면 마당 배수관도 수리해서 장마철에도 대비할 계획입니다.
아내분의 계획도 궁금해요(웃음).
마당에 조경을 해보려고요. 아파트에서는 몬스테라 같은 관엽식물을 주로 키웠는데, 한옥에 두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요. 얼마 전 양재 꽃 시장에 가서 수국과 난 화분을 사 오긴 했는데, 집 수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꾸며보고 싶어요. 아! 물론 전문 조경가를 모셔서 할 거예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