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계를 쌓는 연결자
59

상상이 현실이 되는 집

  • social-builder
  • etc

‘커뮤니티’, ‘챌린지’, ‘루틴’ 같은 용어가 유행하기 이전부터 이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해온 공간이 있다. 아현동의 한적한 골목 어귀, 모과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운 소담한 한옥에 들어선 상상헌. 일상 예술가를 지향하는 안나는 상상헌을 찾아온 이들과 함께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모임을 느슨하면서 또 단단하게 이어가는 중이다.

안나/ 윤정아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일상 예술가

주요 장비
캔들, 접이식 테이블, 일상 예술 노트
집스터 일과
하루 한 끼는 채소 식단으로 하고, 1년에 100권 독서하기
특징
클래스를 운영하면서 틈틈이 아프리카 춤과 피아노를 배우는 중


한옥과 양옥이 나란히 붙어 있는 집 구조가 신기하네요. 

주인 할머니가 사는 양옥과 상상헌으로 쓰는 한옥이 한 담장 안에 있어요. 한옥은 1945년에 지었다고 해요. 마당의 모과나무는 할머니가 처음 집 지을 때부터 있었다는데,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가 열리죠. 사람들이 상상헌을 찾아올 때 나무가 보이는 집이라고 설명해줘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동네 골목 분위기가 유독 차분해요.

여기 아현동 주민 상당수가 40~50년 사신 분들이래요. 제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동네를 변하게 해선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상상헌을 간판도 내걸지 않고 조용히 운영하고 있죠. 동네 분들은 아직도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몰라요.   




실제로 상상헌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곳 같아요.

상상헌의 뿌리는 제가 블로그로 연재한 ‘안나의 캔들 나이트’예요. 초를 켜놓고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내 글을 썼는데 반응이 좋아서 사람들을 모아 같은 이름의 모임을 시작했죠. 제 공간이 따로 없으니 작은 아틀리에나 카페를 빌려 모임을 했고요. 언젠가 나이 들면 이런 한옥에서 사람들의 꿈과 조화로운 삶을 응원하고 나누는 모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각보다 그런 기회가 빨리 찾아온 거죠. 캔들 나이트를 진행할 때 사람들에게 바라는 삶을 적어보라고 해요. 마음에 벽을 세우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상상해보는 거죠. 상상헌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나온 거예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집’으로요.


상상헌의 롤모델이 있었나요?

영감을 많이 받은 게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었어요. 겉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흉물스럽고 고철 덩어리인데 주인공 소피가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살아나고 공간도 한층 아늑하게 뒤바뀌죠. 여기가 오래된 한옥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여러 세계가 공존하길 바랐어요. 잠시 시공간을 잊게 만드는 집이 되었으면 했죠. 




상상헌에서는 어떤 모임을 하나요?

상상헌의 모임은 조화로운 삶을 목표로 해요. 몸과 마음, 일상과 꿈, 일상과 예술이 조화로운 삶을 이루도록 가지를 뻗어나가죠. 하루 한 끼를 채소 중심의 식단으로 하는 ‘물과 채소 한 접시’ 운동과 좋은 습관을 익히는 ‘체인지 클래스’, 영어 원서를 필사하는 ‘영어 원서 북클럽’,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패터슨 시클럽’ 같은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생겨났고요. 또 안나책방도 운영하는데 제가 상시로 머물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좋아하는 책을 모아 발송하는 ‘달팽이 책소포’ 프로그램을 비정기적으로 운영해요. 책을 읽으며 듣기 좋은 음악도 엽서에 적어 보내죠.


‘챌린지’, ‘루틴’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상상헌에서는 이미 그런 활동을 하고 있었군요.

상상헌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은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 맴돌던 것이었어요. 다만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보였죠. 예전엔 온라인으로 어떤 모임을 한다는 게 생소한 일이었잖아요. 그런데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물과 채소 한 접시’, ‘영어 원서 북클럽’ 같은 클래스를 온라인으로 이어갈 수 있었어요.


언뜻 사람들이 느슨하게 모이는 대안 공동체 같기도 해요.

‘캔들 나이트’에 원래 ‘10년의 응원’이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10년을 넘겼어요. 그사이 차츰 시간과 인연도 쌓여갔죠. ‘캔들 나이트’ 모임에 참여한 분 중에는 유명한 작가가 된 분도 있고, 클래스를 하면서 다양한 분들을 알게 되고, 또 상상헌 공간을 공유하며 모르던 분야의 분들도 만났죠. 상상헌에서 이렇게 맥이 끊기지 않고 계속 무언가 인연을 이어가는 상황이 신기하기도 해요.



 

상상헌을 처음 찾는 사람에게는 문턱이 좀 높아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 온 사람이 잠시 쉬었다 갈 만한 프로그램을 고민해보고 있어요. 아침 일찍 다 같이 안산을 산책하고 빵과 수프를 나눠 먹는 모임을 열면 짧게나마 여행 기분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요.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툇마루에 앉아 마당에서 기른 채소를 나눠 먹기도 해요. 사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툇마루에 둘러앉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생소한 경험이죠. 


상상헌의 가구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여요. 

여기 있는 가구 대부분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거예요. 난로랑 에어컨도 재활용 센터에서 가져온 거고 소파는 동네 카페 사장님이 기증한 거죠. 책도 제가 신간으로 구매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이 보내준 거고요.


상상헌을 만들기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노르웨이에 본사가 있는 무역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일했죠. 한 달 반 동안 노르웨이에 파견 근무를 나갔는데 호텔이 아닌 소도시 현지인의 집에서 지내다 와서 좋았어요. 그때의 경험이 정말 많은 영감을 주었죠. 상상헌에서 1년에 한 번씩 모여 식사하는 ‘캄파뉴의 식탁’도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거예요. 형광등이 아닌 간접조명이나 캔들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 노르웨이에서 시간의 혁명을 몸소 경험했어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시간을 굉장히 유연하게 쓰거든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까지만 딱 집중해서 근무한다든지, 휴가를 5주 동안 길게 다녀온다든지. 파트타임으로 피트니스 트레이너를 한 적이 있는데,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온전히 제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걸 체득했죠.




하루의 루틴은 어떻게 되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가볍게 운동을 해요. 그런 다음 피아노 레슨 숙제를 하죠. 영어 원서를 읽고 클래스 참가자들에게 피드백을 보내고, 피아노를 배우거나 아프리카 춤인 만딩고 댄스를 배우는 날도 있죠. 그러곤 북클럽 프로그램의 책을 읽고 요가 수업을 듣고, 체인지 클래스도 해야 하죠. 그리고 제가 커피를 좋아해서 중간에 커피 내리는 시간도 잊지 않아요. 


패터슨 시클럽은 이름부터 좀 특이해요.

영화 <패터슨> 보셨나요? 제가 그 영화를 좋아하는데, 평범한 버스 운전사가 시를 쓰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어요.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시리얼을 먹으면서 성냥갑을 물끄러미 봐요. 그러다 시 한 줄이 떠올라서 버스 운전대를 잡기 전에 노트에 써놓고, 점심 먹으면서 또 쓰고. 그렇게 성냥갑에서 시작한 시가 사랑의 시로 완성돼요. 일상과 시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이 영화 이름을 딴 패터슨 시클럽은 초를 켜놓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를 읽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에요. 서로의 일상 예술 노트를 들여다보기도 하고요.


일상 예술 노트가 뭐죠?

모임에서 시를 해석하거나 분석하는 건 아니에요. 읽고 느끼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서 일상 예술 노트를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마음에 드는 제목이든 단어든 일단 적어보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수집하는 식으로요. 누군가 준 선물 포장지를 붙여보기도 하고, 인상적으로 본 영화 티켓이나 엽서가 생기면 오려 붙이죠. 저는 향을 좋아해서 커피 드립백이나 시향지도 그냥 버리지 않고 노트에 모아둬요.


호기심이 생기면 보통 주저하지 않고 해보는 스타일인가 봐요.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 그때 왜 안 했을까 후회하지 않으려고, 다리가 성하고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면 해보려고 해요. 그렇다고 제가 내린 결정이 즉흥적인 건 절대 아니에요. 어떤 결정을 할 때 충분히 고민하는데, 어떨 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하죠. 에단 호크가 연출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어요. 세이모어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꿋꿋하게 피아노 레슨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상헌에 있을 때면 그 피아니스트의 스튜디오를 떠올려봐요.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결국엔 사랑하게 되죠.




상상헌에서 해보고 싶은 또 다른 일이 있나요?

원래 거주하는 집은 상상헌 근처에 따로 있었어요. 그러다 최근 상상헌에서 아예 거주하기로 결정했죠. 제가 살림이 많은 편도 아니라 한쪽에 매트리스와 옷가지 정도만 두면 되거든요. 그 전에도 주로 상상헌에서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이제 집이기도 하니 뭔가 새로운 장이 열릴 것 같아요. 


상상헌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아현동은 머지않아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예요. 엔딩이 정해져 있는 곳이죠. 상상헌에 들어오면서 다짐을 하나 했는데, 아름답게 마무리해보자는 거예요. 이곳과 인연을 다할 때까지 그런 마음으로 보내고 싶어요. 어떤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나오기도 하고, 이렇게 인터뷰하며 사진을 남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상상헌을 찾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겠죠.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사람의 삶과도 닮은 것 같아요.

Tips

안나의 일상 예술 노트 만들기

1. 집에서 쓰지 않는 노트 활용하기. 지난날에 관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기에 가급적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 


2. 미술관 관람이나 공연 티켓, 팸플릿을 오려 붙이고 간단하게 글과 그림 남기기. 오래도록 작품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3. 향 모으기. 좋아하는 커피 드립백이나 시향지를 붙여두면 좋아하는 향이 오래도록 노트에 밴다.


4. 시 제목을 붙여 짧은 에세이 쓰기. 일기처럼 하루의 반성이 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바람이 담기기도 한다. 단, 부정적인 이야기는 되도록 쓰지 않는다. 


5. 좋은 음악을 만나면 노트에 제목 적어두기.

Editor
Ko Hyun
|
Photographer
Hoon Shin
|
Date
2023-06-02
52
35

로그인하여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로그인
커뮤니티
마이.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