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집 한 가운데에 콘트라베이스가 중심을 잡고 있으니 위압감이 엄청난데요.
1991년에 제작된 악기예요. 중후하고 묵직한 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죠.
들고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경차에 넣어 다닌 답니다. 조수석을 뒤로 젖히고 대각선으로 넣으면 다 들어가더라고요(웃음).
콘트라베이스 연주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학교 1학년 때,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들어갔어요. 동아리 선배가 성인 남성 만한 악기를 가리키며 포지션이 콘트라베이스 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예요. 처음에 악기가 침낭에 덮여 있길래 사람인 줄 알았어요. 선배가 콘트라베이스를 맡으면 (1학년생은 바로 무대에 설 수가 없는데) 바로 무대에 세워준다고 해서 덜컥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워낙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국내에 몇 없으니 아마추어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기회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음악 전공도 아닌 대학생이 콩쿨도 나가고, 레슨 선생님 따라서 연주 아르바이트도 하고. 돈을 받고 연주할 수준에 이르렀어요. 그러니 또 새로운 세상이 열리더라고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요즘 오케스트라 참여는 안하나요?
현재 코레일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이긴 해요. 코레일에서 전 국민 대상으로 오디션을 열어 단원을 구성한 오케스트라예요. 그렇게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코레일의 후원을 받아 매해 롯데 콘서트홀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요. 코로나 때 잠정 휴단을 하면서 아직까지 쉬고 있어요. 많이 아쉽죠.
콘트라베이스 옆에는 베이스 기타가 보이네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기법을 터득하니 웬만한 현악기 연주는 가능하더라고요. 밴드 베이스 기타로 넘어갔어요. 사내에서 밴드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어요.
연주할 때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오케스트라는 50~60명의 사람들이 모여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 안에서는 모두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죠. 사람들의 속도와 리듬에 맞춰 음을 만들어 가는 건 수련(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순간은 결국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때인 것 같아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독립 계획은 없나요?
대학 때 기숙사에 잠깐 있던 적이 있긴 해요. 또 일본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도 참여한 기간 말고는 쭉 가족이 함께 살았죠. 심지어 동생은 독립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요(웃음). 저희 가족의 경우, 함께 살아서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같이 보내는 시간에 대한 행복감이 훨씬 커요. 저희 가족은 모두 취미가 많거든요. 그렇다 보니 개인 공간에 대한 불만이나 불편은 있을 수도 있지만, 공간을 나누면 취미나 관심사도 나누게 되잖아요. 또 타인의 취향과 관심을 알게 되면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요. 그래서 싸울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가족이 주는 안정감 덕분에 마음껏 취미 생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쁜 일상에서 월세다, 전세다, 공과금이다, 관리비다, 현실적인 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관리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부모님께 늘 감사하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 같은데, 답답하진 않아요?
일주일에 한두 번을 제외하고 거의 재택하고 있어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계속 집에 있는 거예요. 재택을 막 시작했을 때는 책상에서 모든 행위를 다 해결했어요. 일이 바쁠 때는 책상에서 밥도 먹고 취미 활동도 하고. 분리가 안되니, 번 아웃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창고로 쓰던 제 방 베란다를 싹 치우고 취미 활동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신기하게도 문 하나를 사이에 두니 리프레시가 되더라고요.
올해 초에는 대학원도 졸업했다고요. 번역서를 두 권이나 출판했고요. 어떻게 시간을 나눠 쓰는지 궁금해요.
저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다행히도 그 당시 재택 근무 규정이 생기면서 회사 출퇴근하는 번거로움이 줄어 무사히 벌여 놓은 일을 잘 마무리한 것 같아요.
만년필 수집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당시 회사 팀장님이 축하 선물로 만년필을 줬어요. 선물을 받았으니 매일 써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에 늘 항상 지니고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볼펜으로 못 돌아가겠더라고요. 손이 만년필에 지배를 당했다고 해야 하나. 그때부터 만년필에 대한 호기심이 시작되고 하나둘씩 모으게 된 게 어느새 만년필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네요.
하나에 호기심을 갖게 되면 연쇄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이 있잖아요.
만년필 잉크부터 시작해서 다른 질감을 가진 종이까지. 스케일이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만년필을 잘 관리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스스로 기념할 일이 있으면 만년필을 사곤 해요. 그래서 그때 그때 손이 자주 가는 제품이 다른데요. 얼마 전 두번째 번역서를 마감하고 제 자신에게 고생했다는 의미로 만년필 정점에 있는 몽블랑 제품을 선물했어요. 그래서 요즘엔 몽블랑 만년필을 제외하고는 잘 쓰지 않는 편이죠. 사용하지 않는 만년필은 잉크통을 세척한 다음 말려서 만년필 파우치에 보관하곤 해요. 잉크를 세척하지 않으면 안에서 굳어버려 못쓰게 될 수도 있거든요.
취미로 시작해도 욕심이 생기잖아요. 절대적 시간 부족 탓에 실력이 늘진 않고. 어떻게 지속 가능한 흥미를 이끌어 나가는지 궁금해요.
저도 이걸 쭉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어요. 가장 오랜 취미인 콘트라베이스를 켜는 일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해 13년 동안 해왔고, 만년필 수집도 9년이 다 되어 가고요. 결국 사람이 중요하더라고요. 처음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했을 때 만났던 선생님은 동호인을 가르쳐본 적 없는 진짜 오케스트라 단원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입시생 수준의 스케줄로 레슨을 받게 됐죠. 진도가 빠른 만큼 재미도 바로 느끼더라고요. 선생님 소개로 만난 사람들과 함께 합주를 하면서 또다른 재미를 느끼게 됐고요. 지루할 틈 없이 연주를 이어갔던 게 지속적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아요.
타자기는 어떻게 들이게 되었나요?
제주도에 필기라는 곳이 문구 편집숍이 있어요. 타자기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인데, 그곳에서 타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죠. 한글 타자기부터 시작해서 영문, 자음을 입력하는 방식이 다른 2벌식과 4벌식 타자기까지 벌써 네 대를 갖게 됐네요.
여러 분야에 호기심이 진짜 많은 것 같아요.
아날로그적인 물건에 꽂힌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 모두 디지털 기반이다 보니, 노트북을 덮으면 실체가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타자기에 굉장히 매력을 느낀 이유도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한 대로 종이에 글자가 찍혀 나오는 그 순간, 실체 있는 성취감이 느껴졌어요. 만년필을 쓰는 것도 의식의 흐름대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쓰는 순간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매일 기록을 한다고 들었어요. 주로 무엇을 쓰는 편인가요?
거의 모든 글감은 저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기록은 제 경험과 감정을 깊숙하게 들여다 보면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일기를 쓰다 보면 생각이 많이 정리가 돼요. 무엇보다 저는 과거의 저를 들추는 걸 좋아해요. 옛날에 써둔 일기를 보면서 과거에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명언도 적었네, 혼자 감탄하고 부끄러워해요. 가끔은 과거의 저에게 코멘트도 달아줘요.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 지금은 괜찮아. 잘 해냈어’라고요.
기록물이나 기록하는 장면을 SNS에 공유하는 이유가 있다면서요?
물론 제 생각에 대한 공감을 얻기 위해서죠. 그런데 요즘에는 이게 문제는 아닌가 돌아보고 있어요. 너무 자신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바깥으로도 시선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SNS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저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시간도 갖고 있어요.
기록하는 삶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면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던 것 같아요. IT 기업에서는 회고라는 개념이 굉장히 흔해요. 저희는 월마다, 분기마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회고의 시간을 가져요. 잘한 점, 개선할 점, 이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등등을 나누는 문화가 있죠. 어느날 문득 스스로 회고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쌓이고 쌓인 기록물이 결국 자신을 돌아볼 수 매개체가 되더라고요. 현재 닥친 어렵고 힘든 일도 예전의 내가 어떻게 잘 해쳐 나갔는지 볼 수 있는 기록물이 있다면,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떠올리는 것보다 엄청난 치유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