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계를 쌓는 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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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흐르는 비밀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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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음악만을 듣는 경험은 과연 가능할까. 음악 전문 출판사 ‘프란츠’의 김동연 대표는 오롯이 음악을 듣는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다른 이에게 현관문을 살짝 열어주기로 했다. 서울 도심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 위치한 그 방을 찾아가려면 여러 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산책로를 따라 들어간 뒤, 비밀번호를 누르자 로비로 향하는 유리문이 열렸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층으로 올랐다. 옅은 색의 원목 바닥과 흰 벽면이 정갈한 넓은 아파트에는 팔순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섬세하게 연주하는 바흐의 피아노곡이 흐르고 있었다. 벌써 36번째로 모이고 있는 ‘살롱 골드베르크'의 공간이다.

김동연

집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 ‘프란츠’의 업무와 음감회 ‘살롱 골드베르크'를 기획하고 주최하고 있다.

본업
음악 전문 출판사 대표
부캐
살롱 운영자
특징
엔틱한 물건을 좋아하지만 전자 기기만큼은 새 것 고수
이브 생 로랑 친필 엽서, 음감회를 위한 고성량 스피커, 피아노

집과 대표님이 많이 닮아 보여요.

그런가요? 이 곳에 15년을 살았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깨끗하고 정갈해서 살림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요?

이 공간을 기획하면서 세운 원칙 중 하나가 ‘손님에게 생활의 흔적을 보여드리지 말자’는 거였어요. 거실 어딘가에 있는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저의 생활 공간이 있어요. 그곳만은 절대 비공개입니다.(웃음)


그럼 이 집은 지금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음감회인 ‘살롱 골드베르크’와 음악 강연, 하우스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를 제외하곤 저의 생활 공간이자 사무실로 써요.


쉬이 찾아올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게 문턱을 높이는 역할을 해주기도 하겠네요.

맞아요. 들어오는 과정이 꽤 까다로운 편이에요. 위치와 오는 방법은 미리 음감회 참석을 신청하신 분에 한해서 취소 가능한 기한이 지난 후에 보내드리기 때문에, 이 모든 걸 무릅쓰고 찾아주시는 분만 오시죠. 그러니 찾아주는 것이 더 감사하고, 오시는 분 하나하나가 소중하죠. 사실 저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어갈 수 있는 1층 상가에 공간을 만드시는 분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쉬이 찾아올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게 문턱을 높이는 역할을 해주기도 하겠네요.

맞아요. 들어오는 과정이 꽤 까다로워요. 위치와 오는 방법은 미리 음감회 참석을 신청하신 분에 한해서 취소 가능한 기한이 지난 후에 보내드리기 때문에, 이 모든 걸 무릅쓰고 찾아주시는 분만 여기에 옵니다. 그러니 찾아주는 것이 감사하고, 오시는 분 하나하나가 소중하죠.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어설 수 있는 1층 상가에 공간을 만드시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 곳에서 일어나는 대표님의 루틴을 알려주세요.

눈을 떠 씻고,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출근을 해요. 오전 11시까지는 마쳐야 하는 출판사 업무를 합니다. 이후엔 프란츠가 만든 굿즈를 포장하고, 함께 넣어드리는 추천 음악을 골라요. 제가 직접 하나하나 적고, 택배를 챙기다 보면 오후가 돼죠. 점심을 먹은 후엔 미팅을 하거나 메일을 쓰고 기획을 합니다. 7시까지 업무를 보고 퇴근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잘 안돼요.(웃음) 그 이후까지 일을 하는 날이 많죠. 대신 여길 떠나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땐 퇴근이라고 생각하고 쉬려고 해요.

원래 바이올린 레슨을 했다고 하셨죠, 왜 출판사를 만들기로 했나요?

성인을 대상으로 레슨을 하다보니 학생들이 더 재미있게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클래식 교재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아서 예전 그대로예요. 그런 커리큘럼은 아무래도 배우는 과정이 조금 지난하죠. 바이올린을 배우는 동시에 학생들이 좋아하는 영화 음악, 가요, 팝송도 연주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게 세광출판사에서 제작한 <한 권으로 끝내는 취미 바이올린>이라는 책이에요. 이후에 여러 교본과 악보집을 펴내는 경험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래서 다양한 출판 제안을 해보기 시작했죠.


어떤 책들을 제안했는데요?

갖가지 악보집이었어요. 예를 들어 아무도 모르지만 아름다운 바로크 음악의 악보라던지…….(웃음) 거절당했죠. 제가 생각하기엔 많이 팔리지 않아도 가치가 있을 책 이지만 대형 출판사의 경우 시장성을 생각했을 때 가치가 높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고민 끝에 제가 직접 출판사를 차리게 되었어요.


음악 전문 출판사인데 <음악 혐오>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했지요?

음악이 가져오는 기쁨과 즐거움을 말하는 책은 많아도 그 이면의 역사에 대해 말한 책은 없었어요. 어떤 음악은 폭력이기도 했거든요. 나치의 선전에 이용된다던가. 음악을 사랑해서 음악 출판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음악을 혐오할 수 있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한 다음 본격적으로 사랑을 이야기해도 좋겠다 싶었어요.


그 이후에도 특별한 책들을 많이 출간했죠.

<스타인웨이 만들기>처럼 악기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만든 책들도 있고, 저희 출판사의 이름이기도 한 작곡가 슈베르트에 대해 다룬 평전 <프란츠 슈베르트>, 전설적인 음악가들의 생애를 역사, 당시의 사회상과 연결지어 설명한 <역사를 만든 음악가들>이란 책도 있어요.

공간에 이브 생 로랑에 관한 액자가 많은데요.

이브 생 로랑은 저에겐 뮤즈 같은 존재예요. 이 공간 한가운데에는 어렵게 구한 이브 생 로랑의 친필 편지를 놓았는데요, 그의 조수였던 엑토르라는 사람에게 86년에 쓴 편지입니다. 내용은 ‘당신 덕분에 내가 성공적으로 쇼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고맙다’는 내용이고요. 편지의 끄트머리에 써있는 ‘당신의 이브’라는 말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것이 영감이 된 경우가 또 있나요?

프란츠의 공간으로 쓰고 있는 이 곳은 곳곳에 저를 위한 영감 장치가 숨어있어요. 피에르 베르제가 쓰던 명함, 68년에 출간된 것이라 종이의 색이 노르스름하게 변한 에릭 사티의 악보, 저희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줄까지 그어서 공부를 하던 흔적이 남아있는 오래된 회화책, 1800년대에 만들어진 목재 보면대 같은 것들이요.


이 보면대가 1800년대에 만들어진 건가요?

너무 매력적이에요. 연주자 2명이 서로 마주 보며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요. 당시에 전기가 없었으니 어두운 곳에서도 악보를 잘 볼 수 있도록 작은 촛대가 붙어있지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차례 복원된 흔적이 있고, 저도 한국에 들여 오면서 손상된 다리를 전문가를 수소문해 한번 손을 봤어요.


이렇게 영감을 위한 아이템들은 주로 어디서 구매를 하나요?

저는 주로 이베이를 찾아요. 찾는다기 보다 뒤지죠.(웃음) 이베이에는 워낙 많은 물건이 있으니까 여러가지 물품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판매자의 숍을 기억해두죠. 주로 프랑스에 위치한 골동품 가게들이에요. 판매자를 검색해 그들이 판매하는 물건들을 자세히 봐요. 그런 디깅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웃음)


할아버지가 쓰시던 영어회화 책이 집에 있는 것도 재미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저희 할아버지의 큰형님이 국내 최초의 영화 감독으로 알려진 ‘김도산’이라는 분이더군요. 극단 ‘신극좌’를 창설하기도 하셨고요. 형제가 모두 그런 ‘끼’를 가지고 있었던 탓인지, 저희 할아버지도 독학으로 5개국 이상의 언어를 배우셨다고 해요. 손자들에게 당신이 쓰던 언어 교본을 보내주기도 하셨죠. 이런 물건 하나하나가 다 저를 말해주고, 이 공간을 찾는 손님께도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

출판사 운영 하나로도 이렇게나 바쁜 삶을 살텐데, 음감회까지 기획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공이 들잖아요. 이렇게나 공들여 만든 책을 독자들과의 소통 없이 세상에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 공간을 마련하기 전에도 막연히 독자 들과 음악을 듣는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게 ‘살롱 골드베르크’군요. 왜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이 붙었나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이 모임의 첫해에 들었던 작품이라 붙였던 이름인데, 그 후 감상곡이 바뀌어도 모임의 이름은 계속 똑같이 가져가고 있습니다.


살롱 골드베르크는 다른 음감회와 어떻게 다른가요?

살롱 골드베르크의 시작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12달 동안 매번 다른 연주자의 버전으로 듣는 거였어요. 음악은 매해 다르지만, 하나의 곡을 일 년에 12번 듣는 형식만은 유지하고 있습니 다. 음악을 들은 후에 각자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데요. 이때 음악적 형식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솔직한 느낌이나 떠오르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게 됩니다.


한 곡을 굳이 12번이나 듣는 이유는 뭔가요?

전혀 친하지 않은 곡과 친해지는 데 12번 정도의 물리적인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음악을 찾아 듣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그만큼 음악을 듣다가 멈추기도 쉬워졌죠. 한 곡을 듣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듣는 경험을 나누고 싶기도 했어요. 모임을 통해 약 30-40분쯤 되는 음악을 가만히, 끝까지 듣다보면 어느 순간 ‘귀가 트이는’ 놀라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같은 곡을 여러 번 반복해 익숙해지는 게 이 모임의 취지인 만큼 , 참석하시는 분들에게 그 다음 달 신청에 우선권을 드려요.


귀가 트이는 경험이 뭐예요?

같은 음악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템포나 음색, 느껴지는 정서도 제각각인데요. 올해 듣고 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일례로 들면, 지난 1월에 들었던 연주자는 슬프고 어두웠고 이번 달에 들은 연주는 광활한 자연을 연상케했죠. 처음에는 비슷하게 느껴지던 음반 사이에서 어느 순간 약간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순간을 귀가 트인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살롱 골드베르크를 꾸준히 찾는 이들과의 인연이 꽤 특별하겠어요.

저도 저이지만, 이 곳에서 만난 분들끼리도 인연이 깊어지는 게 신기해요. 1월에 오신 분들 사이에선 서먹함이 흐르는 게 당연하죠. 그 후로 2월, 3월… 만남이 반복되다 보면 인사를 나누거나 가벼운 근황 토크를 하기도 하고요. 사실 친한 친구도 한 해에 서너 번을 못 볼 때가 많잖아요,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만나 집중하는 시간을 나누고 감상을 공유하는 경험이 결속력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다 친해져 밖에서 따로 식사하시는 분들도 봤어요. (웃음)


대표님이 생각하기에, 오롯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공간보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들으려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먼저인 것 같아요. 저는 일을 할 때나, 누구랑 이야기를 하는 때에는 음악을 틀어놓지 않아요. 산책을 하거나 길을 걸을 때, 오롯이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때 듣습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음악이 주는 감동이 그대로 와닿거든요. 이어폰으로 듣는다고 그 감동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좋은 스피커가 음악의 감동을 배가시켜 주지는 않는 거군요.

더 좋은 출력을 내는 스피커가 다채로운 소리를 들려줄 수는 있겠지만, 내 마음까지 변하게 해주진 않으니까요. 다만 성능이 좋은 스피커나 헤드폰 등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는 좋은 동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예뻐서 샀건, 남이 좋다고 해서 샀건 간에 그걸 소비하면서 이미 ‘음악을 듣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는 거니까요.


대표님은 어떤 기기를 쓰세요?

전자기기는 빈티지보다는 새것을 사는 편이예요. 오디오나 헤드폰의 새 상자나 비닐을 뜯을 때, 설레요.(웃음) 오시는 분들과 함께 듣는 감상용 스피커로는 뱅앤올룹슨 베오랩18을 쓰고 있습니다. 공간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고 어느 위치에 앉아도 고루 잘 들린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 집에서 모임을 주최하는 동안 대표님 안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저 자신을 더 잘 알게된 것 같아요.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훨씬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만나는 걸 꽤 즐기는 사람이었더라고요.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 안에서,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대화를 하는 시간이 참 즐거워요.오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모임을 주최하는 저도 이곳에서 많은 걸 느끼고 취향을 새롭게 발견해나가고 있습니다.


대표님에게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가장 큰 편안함과 영감을 주는 공간이요. 사실 제 취향에 맞게 집을 탈바꿈시키기 전까지는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카페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작은 사무실을 얻어보기도 하고, 가끔은 호텔에서 자고 돌아오기도 했죠. 집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거란 기대감이 별로 없었죠. 그런데 나가있으면서 깨달았어요. 멋진 공간에 간다고해서 꼭 그 곳이 마음에 쏙 들지도, 꼭 영감을 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내가 거의 24시간 머무는 공간을 좀더 나답게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이제는 잘 나가지 않아요. (웃음)

Tips

김동연 대표 추천, ‘🎼음악 들을 결심’을 부추기는 아이템

1.
큰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음악을 듣고 싶을 때 : 뱅앤올룹슨 ‘베오랩 18’
2.
나만의 공간에서 사용하는 CD 플레이어 : 오라 노트 V2
3.
디자인 애호가를 위한 거실용 스피커 : 뱅앤올룹슨 베오사운드 레벨 GVA
4.
미니멀리스트를 위한 헤드폰 : 메제 리릭
5.
1인가구를 위한 가성비 스피커 : B&W The New Zeppelin
Editor
Park Min-jeong
|
Photographer
Jeong Taek
|
Date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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