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조기가 거실에 있네요.
집 배치를 새로 바꾸면서 옮겼어요. 집에서 여러 행사를 하다 보니 생활과 작업을 분리하고 싶더라고요. 이 방은 위빙 이외의 작업을 하는 작업실로 쓰고, 클래스나 팝업 행사도 해요.
집에서 팝업 행사를 했어요?
네, 얼마전에 우고라는 반려동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팝업을 했어요. 이 인센스 스틱이 우고 제품인데요. 반려동물이 있는 공간에서도 피울 수 있는 거예요.
코스터가 특이하네요.
이건 재봉틀로 바느질한 거예요. 실을 켜켜이 쌓아서 고정해요. 대학에서 텍스타일 디자인 전공할 때 배운 기법 중 하나예요.
어릴 때부터 텍스타일 쪽에 관심이 있었나요?
사실 전공 선택할 때는 잘 몰랐어요. 졸업하고 패션 쪽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트렌드에 민감한 업계이다 보니 빨리빨리 만들고, 소비하는 게 제 성향과 잘 안 맞더라고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었죠.
그래서 독립해 스튜디오를 차린 거군요.
수작업을 기반으로 천천히 만든 건, 보면 느껴지잖아요. 공장에서 만든 것과 다르죠. 위빙 클래스를 하면 수강생 분들이 ‘이거 평생 못 버릴 것 같다’고 하세요. 처음 스튜디오 시작했을 때는 일반 텍스타일 브랜드처럼 작업했어요. 팬데믹이 시작되며 재취업했다가 지속 가능한 섬유 작업을 처음 시도해보게 됐거죠. 반응이 좋아서, 퇴사 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다시 스튜디오를 시작했죠.
지속 가능성을 지향한 지 의외로 얼마 안 되었네요.
1년 반에서 2년 정도죠. 처음에는 자연 소재를 쓰는 게 친환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기존에 있던 재료를 재활용하는 게 더 진정성 있다는 생각을 해요.
재료는 어떻게 구하나요?
학교 다닐 때부터 모아둔 자투리 실을 이사 다닐 때마다 가지고 다녔어요. 왠지 못 버리겠더라고요. 그런 재료를 꺼내 재활용했어요. 저는 학교 다닐 때에도, 쓰레기통 뒤져서 친구들이 버린 재료로 작업하곤 했어요.
그때부터 현재의 작업을 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네요.
'환경 보호'라는 개념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최근에는 패션 브랜드들도 플라스틱에서 얻은 섬유로 제품을 만든다던지, 무언가 새로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있는 걸 재창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제도나 기업이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서 제가 작업하는 걸 보고 선후배나 친구들이 갖고 있던 재료를 많이 기부해줘요. 쓰려고 샀다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보관해둔 실 같은 것요.
재료에서 디자인을 시작하다 보면 제약도 생기지 않나요?
맞아요.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 똑같이 만들 수가 없어요. 재료의 물리적인 양이 한정돼 있다 보니, 있던 재료를 다 쓰면 더 이상 그 제품을 못 만들죠. 그런 점을 좋아하는 고객도 있어요.
디자인도 달라졌겠어요.
색감이 다양해졌어요. 예전 제품들은 흔히 자연 친화적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차분한 색감이었거든요.
개인적으론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들어요?
원래 알록달록한 걸 좋아해요. 위빙 하면 흔히 페미닌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떠올리잖아요? 제 작업은 색감 영향도 있지만 좀 더 캐주얼하고 성별과 관계없는 느낌이라 지금이 더 좋아요.
작업이 더 재미있어졌을 것 같기도 하고요. 특히 좋아하는 재료가 있어요?
좋아하는 재료라기보다는… 비닐봉지를 작업에 이용하는 방법을 거의 1년 동안 고민했어요. 작업을 할 때 신중한 편이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엄청 많이 돌려본 뒤에 본 작업을 하거든요. 비닐을 어느 정도 두께로 잘라야 하는지 등의 것들을 다 생각해요. 실제로 직조를 했더니 저렇게 하나하나 다 다른 우연의 무늬가 생기는 거예요. 1센티미터 정도 두께로 비닐을 잘라 실처럼 직조하는데, 원래 비닐에 있던 무늬가 랜덤으로 짜여 나오는 거죠. 비닐로 만들었다고 하면 놀라는 분도 있어요. 일반 실로 만들었을 때보다 빳빳해서 라탄 느낌도 나고요.
‘메브’라는 스튜디오 이름은 프랑스어에서 따왔죠? ‘바다와 숲’이라는 뜻이라고 들었어요.
글자 형태와 어감 때문에 정했다가 의미도 찾았어요. 영어로는 글자 모양이 동글동글한데 한글로는 완전한 직선이잖아요. 뭔가 중성적인 느낌이고요.
위빙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해요?
뜨개와 비교하면 제약이 많은 작업이에요. 수학적인 계산도 정확히 해야 하고, 작업 준비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요. 그래도 차곡차곡 실을 쌓는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걱정도 금세 잊어버려서 좋아요.
사용하는 직조기는 어떤 거예요?
서양식 베틀이에요. 크기도 다양하고, 자동차처럼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요. 스튜디오 시작하며 산 건데, 이제 많이 길들었어요. 모든 게 부드럽게 작동하죠. 실 길이를 계산한 다음, 한 올 한 올 여기에 끼워요. 패턴이 있는 경우에는 순서를 다 계산해서 끼우고요. 처음 끼울 때 잘못 끼우면 무늬가 안 나와요.
완전 계획형 성격이어야 할 수 있겠어요.
저, MBTI에서 ‘J’(판단형)가 98퍼센트 나와요.
지속 가능성을 평소 일상에서도 실천하는 편이에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친환경,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오래 사용해왔어요. 평소 먹는 식사는 페스코-베지테리언을 지향하고요. 그러다 보니 제 가치관을 작업에 담지 못하는 게 스스로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내가 왜 처음 브랜드를 시작하려고 했지?’ 하는 생각을 팬데믹 때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거창한 것보다도, 결국 사람은 자연의 일부잖아요.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다 보면 그게 작업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아요.
원래 가진 라이프스타일을 작업으로 확장한 거군요.
그래서 집 겸 작업실도 가능한 것 같아요. 브랜드 가치관과 평소 생활에서 제 가치관이 일치하니까요. 제가 무언가 만드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소비하지 않는 게 가장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버려지지 않고 오래 쓰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려고 해요.
그래도 집에서 일하다 보면 불편한 점은 없어요?
공간적으로는 일과 생활이 분리되는데 심리적으로는 쉽지 않아요. 요즘은 작업 끝내고 거의 매일 한강에 러닝 하러 가요. 러닝이 심리적인 온오프 스위치가 되는 거죠. 달리면 생각이 없어지잖아요. 돌아와서 씻고 밥 먹으면 숙면할 수 있고요.
보통 일과가 어떻게 돼요?
계절마다 다른데, 제가 일조량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해 뜰 때쯤이면 항상 일어나요. 요즘은 6시 반 정도. 대신, 해 지면 일을 안 하려고 해요. 밤에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해진다는 말들을 하잖아요. 전 반대로 해가 지면 바로 저전력 모드가 되거든요.
일어나면 바로 일을 시작하나요?
일어나면 밥 먹고, 쌀이 챙겨주고, 빨래 돌리고, 집안일 하다가 8시 반, 9시 정도에 일을 시작해요. 요즘은 해가 오후 7시 반까지 떠 있거든요. 7시까지 일하고요.
그러면 하루 여덟, 아홉 시간이 되네요. 직장인 같은 느낌이에요.
그렇죠. 평화로워 보이지만 치열하게 살고 있어요.
작업할 때 음악도 듣고요?
네. 계절마다 다양한 장르를 듣는데, 더운 계절에는 시티 팝이나 올드 팝을 주로 들어요. 요즘은 마이클 잭슨의 ‘Rock with you’ 가장 좋아해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걸 제작하기까지 과정은 보통 어떻게 되나요?
비닐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 하는 식의 아이디어가 핸드폰 메모장에 엄청 쌓여 있어요. 그중 하나를 정해 머릿속으로 계속 상상을 하는 거죠. 이걸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고… 그러다가 확신이 들면 작업을 해요. 확신이 들기까지 몇 달 걸릴 때도 있어요. 신중한 성격 탓도 있고, 위빙은 준비 기간이 워낙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무턱대고 일단 만들어보자, 할 수 없거든요.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샘플을 여러 번 낼 필요 없을 정도로 한 번에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 편이에요. 대신, 대부분 재료가 기부 받은 거라 분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여러 가지 색깔과 소재의 재료가 섞여서 오고, 오염되거나 구겨진 것도 있거든요.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때는 어떤 게 어렵나요?
메브는 공예와 디자인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공예는 미적인 부분만 생각해도 되지만, 생활용품을 만드는 거니까 실생활에서 오래 쓸 수 있도록 내구성도 좋아야 하잖아요. 그런 고민을 많이 하죠.
그런 건 경험이 쌓이면서 해결되는 부분일까요?
경험도 있고, 집에서 작업을 하니까 제가 만든 제품을 직접 써볼 수 있어 스스로 피드백이 돼요. 집에 놓여 있는 제품 사진을 SNS로 보여주면 반응도 바로바로 오고요. 집 겸 작업실이자 쇼룸인 셈이죠.
효과적이네요.
얼마전에 팝업을 한 우고 대표는 전에 제품 촬영으로 연이 닿았다가 친구가 되었거든요. 추구하는 방향성도 잘 맞고요. 저도 쌀이와 살다 보니 반려동물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팝업 판매 수익금 일부를 임보 강아지를 위해 기부했어요. 혼자 쓰기에는 집이 넓어서 어떻게 공간 활용을 할까 하다가, 그렇게 지향점이 비슷한 브랜드와 꾸준히 협업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또 계획하는 팝업이 있나요?
다와라고, 요가도 하고 뜨개질도 하는 분 있거든요. 인스타그램으로만 알던 사이인데 제가 DM 보내고 질척거리다가 친해졌어요. (웃음) 그 분과 뭔가 할 것 같아요. 또 요리하실 분, 커피 하실 분, 다 밑밥을 깔아놨어요. 수익금 일부를 좋은 일에 쓴다고 하니 다들 흔쾌히 응하세요. 다행히 쌀이가 사람을 좋아해서 할 수 있죠.
집에서 쉴 땐 뭘 해요?
식물이랑 쌀이 보살피고, 책을 많이 읽어요.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저는 책 읽으며 푸는 것 같아요. 예술, 디자인과 아예 상관없는 책만 읽어요. 과학이라든지 논리학, 양자역학 같은 주제요. 다른 분야 사람들도 많이 만나려고 하고요.
의식적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걸까요?
새로운 걸 만들려면 환경에 계속 새로운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새로운 지식도 쌓는 거죠. 제가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 같기도 해요. 혼자 일하다 보니 고립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꾸준히 새로운 걸 보다 보면 확장이 되는 것 같아요. 비닐로 제품 제작하는 아이디어도 그렇게 떠올리게 된 것 같고요. 요즘은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어요.
이것도 1년 정도 있으면 출시될까요?
1년 전부터 생각해온 거라 머지않아 나올 수도 있어요.
요즘은 무슨 책 읽어요?
<도쿄 레코드> 읽고 있어요. 다음 주에 도쿄 여행 가거든요. 친구와 시즈오카로 들어가서 차 타고 가마쿠라 지나서 도쿄까지 갈 생각이에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처럼요.
여행 많이 하는 편이에요?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하고, 또 쌀이가 아프다 보니 자주는 못 하고, 계절마다 한 번은 가려고 해요.
여행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창작자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아닌 거죠?
아닌 것 같아요. 친구도 예술, 디자인 쪽이 아닌 친구가 훨씬 많거든요. 그 친구들은 여행 가서 전시 보러 가자고 하면 싫어하죠. 그런데 같이 이야기하면 재밌어요. 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아요.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거죠.
쌀이처럼요? (웃음) 집에 화분이 많은데, 다 해서 몇 개예요?
세기를 포기했어요. 열 몇 개 있을 때는 물 주기 어플을 써가며 애지중지 키웠거든요. 지금은 강한 놈은 살아남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 날 잡아 화장실에서 한 번에 샤워기로 물 주고 끝이에요. 그랬더니 다 강해졌어요. (웃음) 채광이 좋고 창도 커선지. 경험상 인터넷으로 사면 죽는 것 같아요. 직접 보고 상태 좋은 걸로 사야 하는 거예요.
포트 클로스도 식물 키우며 생각한 거예요?
네, 원래 제가 쓰려고 만들었는데, 친구들이 괜찮다고 팔아보라는 거예요. 처음 식물 사면 보통 플라스틱 화분에 심겨 있는데, 식물 초보자는 분갈이 하기 어렵잖아요? 지금은 제일 반응이 좋은 제품이에요. 식물 키우세요?
다 죽여서 이제 안 키우려고요.
제가 좋아하는 책에 이런 말이 있어요. ‘언젠가 식물은 다 죽는다.’ 그냥 많이 키워보세요.
키워볼게요. 이 제품이 포트 스커트죠? 어떻게 제작하게 된 거예요?
원래는 다른 패치워크 작업을 하는데, 저렇게 자꾸 끝단의 실오라기가 풀리는 거예요. 짜증이 났는데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예뻐 보이더라고요. 친구에게 보여주니, 친구가 귀여운 치마를 입었네, 하는 거예요. 그래서 포트 스커트라고 이름 지었어요. 펼쳐 두어도 되고, 걸어서 늘어뜨려도 예뻐요.
식물 브랜드와 협업해도 좋을 것 같아요.
네. 팝업 행사를 하면 포트 클로스를 화분과 같이 사고 싶어 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제 제품은 컬러도 강하고 캐주얼한 느낌이잖아요. 의외로 분재와 협업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잘 어울리겠어요. 또 다른 협업 계획도 있나요?
아는 분 중에 퀼트 공예 하는 분이 있어요. 퀼트 하고 남은 천조각을 받아서 뭔가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고요. 꼭 섬유 작업이 아니더라도 사진이나 가죽 공예, 목공예가 될 수도 있고, 다양한 창작자들과 협업하려고 해요. 올해부터는 집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보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