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 대전까지 온다고 역까지 마중나와 주셨잖아요, ‘다마스’를 끌고. 오늘 나눠볼 목공 이야기의 좋은 시작점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잘 가꾼 구옥 앞에 그림같이 주차된 다마스를 보니 이미 행크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느낌이에요.
다마스는 제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자동차예요. 길에서 보이는 가구나 자재들을 운반해오는 데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 중이에요. 미국에서 목수로 일할 때는 자재 운반 등에 픽업트럭을 사용하곤 했는데, 다마스도 뒷좌석이 다 접혀서 꽤 많은 양을 실을 수 있어요. 가구를 만들 때 목재상에서 보통 7피트(213cm)에 3~3.5피트(약 100cm) 너비 정도의 나무 한 장을 제 벤에 싣고 와요. 차체보다 길면 그냥 뒷 트렁크문을 열고 운반하기도 한답니다.
대전의 원도심인 동구 자양동 골목에 30년된 2층 구옥을 고쳐 살고 계세요. 언뜻 보기에도 잘 가꾼 조경과 원색 페인트의 벽, 갤러리 입구를 연상시키는 자갈길 등이 범상치 않은데, 이 집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2002년 대전에 온 이후로 대전 안에서만 10번 이사를 했어요. 혼자 살 때는 좁은 원룸생활도 해봤고 저희 부부 둘이 살기에는 너무 컸던 45평짜리 아파트에서도 살아봤어요. 나의 생활과 활동 반경에 최적화된 공간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자각하게 됐죠. 그럴수록 내가 고쳐가며 쓸 수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어졌어요. 그러다 2011년 봄에 이 집을 만났어요. 여기는 도시 개발이 딱 멈춘 경계 마을이예요. 저희 집 뒤로 고등학교가 하나 있고 그 다음부터는 바로 산이에요. 쌩쌩 달리던 찻길에서 이 골목으로 들어서면 상상도 못한 골목 뷰가 펼쳐지죠. 비슷비슷한 크기의 집들이 줄 지어있고, 이웃들도 서로 다 알고 지내는 다정한 분위기가 남아있는 곳이에요.
구경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이것을 다 소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현관 옆 자갈길부터 이어지는 해덕씨의 작품들, 공구보관실, 공중에 떠 있는 독특한 하나의 방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없어졌지만 대전 시내에 ‘아트&아트’ 라는 갤러리가 있었어요. 저는 ‘대전 아트콜렉티브’라는 네트워크의 일원이기도 한데, 이 친구들과 갤러리에서 각자의 예술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블랙앤화이트를 컨셉으로 의자도 만들고, 에어컴프레셔나 하수구 뚜껑, 자동차의 그릴 모두 동네 길가에 버려져있던 것을 재가공한 오브제를 만들었었죠. 그 때 전시하고 남은 것을 집 바깥에 한 켠에 모아두었더니 사람들이 카페인 줄 알고 들어올 때도 있어요.(웃음)
공중에 떠있는 공간은 대체 뭔가요? 작은 경비실이나 초소, 엘레베이터 같이 작은 공간 같은데 왜 저기에...
제가 ‘디 에디션 The Addition’ 이라고 부르는 곳이에요. 글쓰는 작업실 같은 개념이죠. 제가 만든 책상에 타자기 하나와 조명만 하나 있어서 집중하고 싶을 때, 말그대로 여기저기를 딛고 기어 올라가야 하는 곳입니다. 아, 에어콘도 있어서 여름에도 사용가능하고요.
그 아래 공구실은 ‘미국’하면 떠오르는 가라지(차고)가 이런 건가 싶네요. 내부에 연두색 페인트칠을 하셔서 그런지 안락한 느낌도 들고요.
아버지가 해군 장교셨기에 견고하고 오래된 철제 보관함들이 집에 많았고 여기에도 가져왔어요. 한 켠에 주렁주렁 달아둔 것은 제가 사용했던 자전거 핸들이에요. 이건 제가 14살 소년이었을 때 처음으로 소유한 로드 바이크에서 떼어서 간직하고 있는 것이에요. 이탈리아 콜럼버스사의 튜빙으로 만든, 1960년대 최고의 로드바이크죠. 다른 어떤 핸들보다도 그저 생긴 게 멋져서 가지고 있어요. 로드바이크는 아름답고 빠르죠. 어릴적부터 기능적이면서도 조형미가 있는 물건들을 좋아했어요.
집 안에도 직접 만드신 개성이 넘치는 구조와 가구들이 빼곡합니다. 어떤 필요들로 이것들을 하나씩 다 만들게 되신 거예요?
저는 창작활동을 해왔는데요. 처음에는 글을 썼고 그 다음에 추상화를 그렸어요. 그리고 지금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이 공간에 맞는 가구들을 하나씩 만드는 작업을 해보게됐어요. 글을 쓸 책상이 필요하면 테이블 상판을 주워와서 조금 더 변형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가파른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직접 계단 발판을 재단해서 계단도 만들었어요. 2층에 있는 작은 침대방 같은 경우에는 벽 위쪽으로 난 좁은 다락같은 수납 공간이 있어서 클라이밍벽처럼 벽에 목재 노드를 박아두기도 했고요. 제가 사용하는 공간에 꼭 들어맞는 필요한 구조나 가구를 만드는 일은 즉각적으로 사용될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여기저기 벽에 작품처럼 걸어둔 공예품은, 테이블 상판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조각들을 추상적으로 조합해 걸어둔 거예요. 원래는 테이블 상판이었던 것이 또 다른 추상화이자 목공의 작업이 된 거죠.
엔조 마리와 게릿 리트펠트의 책에 빼곡히 메모를 해둔 것도 봤어요.
엔조 마리는 하이엔드 디자인가구를 만드는 가구 디자이너인데요. 이 책은 아주 비싼 가구를 살 여력은 안되는 이들에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스스로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보세요’ 라고 제안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어요. 이 책은 톱과 망치와 못만 있으면 모든 것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죠. 게릿 리트펠트의 경우, 저는 그가 1934년 디자인한 ‘이지 체어easy chair’를 가장 좋아해요. 각도가 딱 떨어지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한 손으로 들고 이동하기도 편해서 마음에 들어요. 거실에 핑크색 랙커 스프레이로 채색한 이 의자가 바로 이지체어예요. 이 디자인으로 적어도 열개 이상은 만들었던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을 보고 자라셨을까 궁금해져요. 이사를 많이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나라 혹은 도시 간 이동만 8번 넘게 하셨다고.
저는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의 로다 드 바라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이후 펜실베니아 메카닉스버그로 이사했고 그 다음은 미시간 주 앤아버, 코테니컷 외곽으로 이사했어요. 아빠가 군부대 보급 장교셨거든요. 그리고 호주 왕립 해군의 교환 장교로 근무하시면서 2년 동안 호주 캔버라에 있었고, 이후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턴, 애틀란타, 덴버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재주가 많던 주부이던 어머니는 늘 누구보다 창의적이셨죠. 어느 나라의 어떤 도시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나건, 어머니가 그곳을 우리들의 집으로 꾸며나가시는 걸 보면서 자연히 이 모든 걸 배운게 아닐까 싶어요.
어머니는 이를 테면 어떤 것을 만드시곤 했나요?
어머니는 호주 미군부대 내의 집 구조를 매우 좋아하셨어요. 당시 집은 너른 앞마당이 집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는데, 덴버로 이사를 한 이후에 넓은 땅을 사서 직접 도안을 그리고, 건축 승인도 받고, 업자를 고용해서 호주에서 살던 집과 비슷한 구조를 만드실 정도였죠. 21살의 대학생이던 저는 그 집을 만드는 걸 도왔고, 그 기억으로 아르바이트로 동네 목공일을 하다가 졸업 후 전업으로 목수로 일하기도 했죠. 어머니가 좋아했던 호주 집 부엌의 바닥 타일이 지금과 같은 블랙앤화이트 체커보드 형태였어서, 저는 그 기억을 대전의 집에도 적용해봤어요.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집을 구하고, 공간을 짓고 꾸민 경험은 어땠나요?
이사가 잦은 성장환경이 혼란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멋진 기회로 인식된 것 같아요. 저와 아내는 지금 이 집에서 12년 째 살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집을 바꾸고 저에게 맞게 조정하고 있어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다시 만드는 것은 제게 중압감을 준다거나 하는 류의 일이 아니에요. 이런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죠. 단, 부모님과 제가 조금 달랐던 점이라면 두 분은 예술에 큰 관심은 없었어요. 저는 여러 목공적 요소들을 예술과 가구에 접목시켰고요. 물론 목수일을 할 때는, 예술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작업들의 연속이었지만 동시에 매우 유용한 기술을 연마하는 시기이기도 했죠. 목공일이란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낭패를 보는 단계들이 있으니까.
가장 나다운 공간을 찾아내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누구든지 자기가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지는 직감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공간에 잠시 앉아서 생각해보면 이 공간을 어떻게 배치해야 동선이 편하고 활용을 잘 할 수 있을지 보이죠. 그런데 감각은 계속해서 변하잖아요. 삶의 주기에 따라 필요한 것이나 관심사가 바뀌니까요. 그러니 집의 모양새를 이렇게 정해두었다고 모든 게 완벽해진 거라고 기대하지 않죠. 공간을 디자인하고 충분히 사용해본 다음에 또 변경을 가하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행크씨가 가구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러프하게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기본적으로 저는 철저히 재료와 용도 중심으로 가구를 만들어요. 시작은 ‘길에서 가장 멋진 재료를 발견한다.’ 그 다음은 그 재료들을 ‘내가 필요로 하는 순간까지 잘 보관한다.’겠죠. 근데 보통 보통 일주일 이내로 무엇인가가 필요할 때 빠르게 재료가 보이고 디자인도 구체화되더라고요. 이를 테면 제가 사진필름을 늘어뜨려놓고 건조시킬 캐비닛이 필요해 있는 재료들로 집에서 만들고보니 빛을 차단하기 위해 문도 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 거리에서 나무에 글자를 각인시킨 오래된 현판같은 것을 하나 발견하는 식이죠. 그 다음에는 최대한 손에 잡히는대로 그냥 만드는 것 뿐이에요. 책상하고 높이가 맞는 벤치가 하나 필요하면, 처음에는 길이만 대략 정해놓고 만들다가 '벤치 다리에 선반기능을 한 쪽에는 넣어볼까?' 하는 식으로 가지를 치듯 디자인을 확장해나가요.
행크씨의 또 다른 부캐는 '스트릿 포토그래퍼'잖아요. 대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순간들을 포착하신 걸 봤는데요, 길에서 폐가구나 소재들을 찾아내는 것도, 사진도 결국은 고도의 관찰을 필요로 하는 일 같아요.
저는 길을 다닐 때 절대 음악을 듣지 않아요. 두뇌를 풀가동시켜서 주변을 봐야 해서요. 이런 면에서 스트릿 포토그래피는 스포츠같아요. 언제나 셔터를 누를 준비가 돼있어야 하니까요.
예술작업을 하기 위한 재료, 가구가 될 재료도 마찬가지로 늘 분주하게 주변을 살펴야 해요. 종종 친구들이랑 길을 걷다가 누군가가 제게 ‘저 나무 상판 괜찮지 않아?’ 할 때가 있는데요. 대개 저는 '이미 봤어, 필요 없다는 판단도 끝냈어'라고 하죠. (웃음). 대략 30m 전부터 ‘저것은 파티클 보드와 필름지로 만들어진 것이구나, 2cm 두께 정도구나’ 하며 파악을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까요.
행크씨로 하여금 글이나, 사진, 가구 등을 끊임없이 창조하게 하는 힘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불안과 고뇌?(웃음) 당신이 예술가라면 당신의 삶은 이미 예술입니다. 그래서 어떤 표현방식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대신 저는 글, 사진, 가구도 아주 잘 한다고는 말 못합니다. 저는 그저 아주 많은 다른 것들에 동시에 집중을 하는 스타일 같아요. 한 가지 확실한 지점이 있다면, 저는 한 가지 일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올바른 방법을 반드시 배우고 이를 기억하고자 한다는 거예요. 매번 사용하지 않더라도, 필요에 따라 꺼내야 할 때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연마하는 것, 그것이 다예요.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풀타임 직업을 갖고 계시고, 이외 시간에는 이렇게 집을 가꾸며 목공으로 이런 저런 것을 만들고 종종 전시도 하시는데요 이 두 가지 활동을 구분짓는 것은 어떤 행크씨에게 의미인가요?
저는 일단 목공으로 돈을 벌지 않아요. 월급을 받는 직업이 따로 있죠. 돈이 개입되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망쳐버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들 하잖아요(웃음). 적어도 저는 제가 정말로 하고자 하는 일이 따로 있을 때, 그날 하루의 삶을 즐기기가 더 쉬워지더라고요. 낮에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일을 마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면 낮 시간에도 더욱 신이 나요. 어쩌면 제가 있던 일종의 아티스트적 기질이 있어서 인 것 같기도 해요. 내 시간 만큼은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면모랄까요.
직접 만든 가구를 팔거나 주문 제작을 받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일주일에 20시간 가구를 만드는 데 한 달에 300만 원을 준다면 저는 그 일을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도 이런 제안을 하지 않겠죠 (웃음) 그리고 또 구매자가 제 친구들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고요. 내가 하는 작업이 너무 멋져서, 너의 가구를 내 공간에 들이고 싶다 하면 완전 다른 이야기니까요. 실제 이런 일이 왕왕 있어요. 바로 두 집 건너에 사는 친구네 부부가 이사를 와서 집에 가구가 없을 때, 제가 만들어둔 가구들 중 7-8점을 산 적이 있어요. 그들이 제 가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반응을 보면 바로 알아요. 또 한번은 이들이 벽걸이 티비 아래 선반이 필요하대요. 박스형태의 선반을 만들어서 케이블을 가릴 수 있게 기능성을 위한 선반을 만들어줬어요. 그 친구는 필름 사진작가였는데요. 저 역시 사진을 찍기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흔쾌히 선반을 만들어줬죠. 페이는 코닥 트라이엑스 벌크 필름으로 받았고, 매우 만족스러웠죠. (웃음)
앞으로 더 시도해보고 싶은 예술이나 목공의 영역이 있다면요?
공주대학교에서 가구 디자인 프로그램을 1년 수강했는데, 함께 공부하던 분이 알려줘서 네덜란드 디자이너 피트 하인 이크Piet Hein Eek를 알게 됐어요. 각종 자투리 소재를 조합해 가구를 만드는 재료에 관한 철학이 마음에 들어요. 그는 파이프, 나무, 금속과 같은 모든 종류의 다른 재료로 작업을 수행하는데요. 저보다 훨씬 더 넓은 작업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게 부럽죠. 더 많은 재료를, 활용처가 생길 때까지 잘 모아둘 수 있잖아요. 저도 목재 책꽃이 등에 알프레드 볼트와 금속을 접목해 높이를 조정할 수 있는 선반을 참 좋아하는데 이런 걸 더 많이 잘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 정도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