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비해서 TV가 굉장히 크네요?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TV 화면은 크면 클수록 좋아요.
거실에서 하는 일은 주로 영화 감상인가요?
대개 그래요. 친구들 초대해 차를 마실 때도 있고, 책을 볼 때도 있지만요.
훌륭한 영화 관람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은 뭔가요?
소파, 스툴, 고양이. 저희 집의 경우 거실 소파 귀퉁이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쭉 펴면 스툴에 발이 딱 맞게 걸쳐지도록 만들었어요. 이때 소파는 최대한 좌판이 넓고 푹신한 게 좋습니다. 저는 이 자세로 왼편엔 먹을 걸 쌓아놓고 옆구리엔 반려묘 한솔로를 끼고 앉아서 영화를 봐요.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업이 되면 좀 피곤할 때가 있잖아요. 영화 보는 건 안 질리나요?
저는 원래 영상 중독이에요. 영화를 안 보는 시간에는 대개 유튜브를 봅니다.(웃음) 영화평론가라는 직업 때 문에 영화를 더 보게 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아직도 영화가 너무 좋아요.
유튜브도 자주 보시는구나. 주로 뭘 보나요?
뉴진스요.
뉴진스 정말 예쁘죠.
예뻐요. 저는 아이돌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뉴진스 보고 처음으로 팬클럽에 가입하고 굿즈도 사고 CD도 샀어요. 뉴진스 굿즈 티셔츠도 사야 하는데. 너무 빨리 품절되는 아이템이라 아직 못 구했어요. 곧 단콘(단독 콘서트)할 거라는 소식을 들어서, 지인들에게 표 못 구하면 회사 소속사 앞에서 분신이라도 할 테니까 그렇게 알라고 으름장을 놨어요.(웃음)
그러고 보니 이 집은 청량하기도, 귀엽기도, 편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키치한 게 꼭 뉴진스를 닮은 것 같 아요.
제가 컬러를 다양하게 쓰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집에 이사 올 때도 그런 걸 고려했어요. 거실 한쪽 벽면이 핑크색이었으면 했고, 그 위에 다채로운 컬러를 지닌 액자가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렌지색을 워낙 좋아해서 집 안 구석구석에 오렌지색 아이템이 있고, 오브제며 조명이며 의자며 컬러며 형태가 전부 제각각. 전 이게 좋아요.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운 집이니까.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 볼 수 있을까요?
정말 많은데요. 영화는 물론이고 디자인과 가구를 정말 좋아해요. 인물에 대한 관심도 많고요. 음악도 많이 듣습니다. 장르 불문하고 예술 분야가 좋아요. 패션도 사랑하고요.
함께 촬영하는 사진가가 서가에 가득 꽂힌 사진집을 보고 엄청 놀라던데요.
포토그래피 작업을 좋아해서 20년쯤 관련 도서를 수집해 왔어요. 여러 책 중에서도 라이언 맥긴리의 초기 전시회 도록 같은 것이 자랑할 만합니다. 어떤 건 현재 시세로 몇만 달러 줘야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있어요. 물론 판매할 생각은 없습니다. 평생 가지고 갈 거예요.
취향이 깊어지려면 필연적으로 돈을 써야 한다더라고요.
완전히 동의해요. 이 집이 바로 그 증거죠. 20년간 차곡차곡 모은 취향의 기물이 집에 가득해요. 어떤 물건을 집어 들어도 그 물건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물건에 대한 배경지식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어떤 취향에 가장 돈을 많이 썼나요?
가구에 가장 많은 돈을 들인 것 같아요. 물건 하나에 천문학적 단위의 돈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사이드 테이블만은 정말 신경 써서 골랐어요. 5년 전쯤 여기로 이사 왔을 때 목재 빈티지 제품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왕이면 1960-1970년대 덴마크 제품이길 바랬고요. 유럽과 한국은 집의 층고나 규모가 다르니 맞는 제품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떤 건 TV를 올리기 힘들 정도로 너무 높고, 또 어떤 건 너무 육중했어요. 결국 한참을 서칭하고 3개월이나 기다렸다가 물건을 받았는데, 정말 만족스러웠죠. 배송비 합쳐서 600만~700만 원 정도를 썼는데요. 저희 집에선 이게 가장 값비싼 물건이에요.
가구를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 있나요?
다른 물건은 보통 예쁘고 맘에 들면 구매하지만 가구는 제가 생각하는 각각의 필요에 집중해요. 예를 들어 작업할 때 쓰는 의자는 일부러 약간 불편한 이케아의 빈티지 체어를 골랐어요. 불편한 의자에 앉았을 때 몸이 약간 긴장하고, 그게 원고를 쓰는 동력이 되니까요.
집을 작업실이자 생활 공간으로 쓰는데,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서 고단하진 않나요?
제 직업은 원래 삶과 분리할 수 없어요. 굳이 분리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어요.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저처럼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이들 중엔 작은 월세 작업실을 구해서 출퇴근하는 분들도 많다고 해요. 저도 그럴까 싶었는데요.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데 굳이 나가야 할까’ 싶더군요. 내가 거기서 일한다고 일을 더 많이 할까 싶기도 하고요.(웃음) 거기 돈 쓰느니 좋아하는 물건 하나 더 사서 집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성격 자체가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걸 보고 있으면 일도 잘 돼요. ‘저걸 샀으니까 일을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집중이 안될 땐 어떻게 하나요?
저는 원래 집중력이 좋은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정말 빨리 쓰는데, ‘지금 쓰지 않으면 나는 끝장이다’ 아니면 ‘더 이상 돌아갈 길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빈둥댑니다. (웃음) 그러면서 집 안을 항해합니다. 이 집에 물건도 많고 책도 많으니 여기저기서 책을 집어다가 침실에서도 보고, 음악도 좀 듣다가 영화도 보고. 그동안 글감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요. 그러다 갑자기 확 써요. 그래야 하는 타입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집을 꾸몄고요.
부엌에 식탁 대신 커다란 작업용 테이블을 둔 것도 그런 맥락이겠네요.
네, 좋아하는 게 많지만 먹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식탁 쓸 일이 별로 없으니 이것저것 할 수 있도록 커다란 책상을 작업용도로 두는 게 좋겠더라고요. 볕을 중요한 삶의 요소로 생각하고 있어서, 해가 가장 잘 드는 거실에서 작업을 하는 게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이 집에선 얼마나 살았나요?
5년 정도요. 첫 직장 생활과 대부분의 삶을 마포구에서 보냈는데, 2년마다 한 번씩 이사 다니는 일에 점점 지 쳐갈 무렵이었어요. 이렇게나 짐이 많으니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 센터 반장님들 표정이 정말 안 좋았습니다.(웃음) 다행히 정착해야 하는 시점에는 아파트 가격이 그리 높지 않았어요. 그 당시에 집을 산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참 다행인 일이 됐지요.
집을 좋아하는 이들의 소망은 결국 집을 짓는 것이던데. 작가님이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반영한 집을 짓는다면 어떤 모양일까요?
짓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아파트를 선택할래요. 아파트는 획일화된 구조에 비인간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은 데, 저는 태어나서 줄곧 아파트에 살아서 외려 편해요. 관리비만 내면 주민 편의를 위해 이것저것 다 해결 해주는 것도 좋고요. 다만 돈을 진짜 많이 벌면 층고가 높고 탁 트인 로프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구조도 없고, 그냥 탁 트인 채로 모든 게 다 보이는 곳이 제 꿈의 집이에요.
구조가 없는 집이라. 그러고 보니 집 안에 수납 공간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지닌 물건들이 이렇게 눈에 다 보이는 쪽이 더 안심 돼요. 눈에 잘 띄게. 그래서 집 구조가 스마트한 집보다는 넓은 집이 갖고 싶더라고요.
공간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식은 아니네요.
그렇죠?(웃음) 사람이 100명이면 라이프스타일도 100이라고 하잖아요. 어떤 사람에겐 이렇게 물건을 늘어놓는 게 최고의 인테리어이고, 어떤 사람에겐 정갈하게 수납한 집이 최고인 거죠.
집에 있는 동안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마감이 끝났을 때요. 심지어 내가 쓴 글 10개 중 하나인 ‘아, 이건 잘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요.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마감을 동시에 진행하다보면 결국 3일 정도 쉬고 다른 마감을 맞이하지만요. 이런 방식의 삶이 재미있기도 해요. 저는 일과 삶이 뒤엉켜 돌아가는 게 좋아요.
집에 있는 오브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건 뭐예요?
일러스트레이터 스테판 막스의 오리지널 프린트요. 사람들에게 항상 권하는 작가예요. 어느 공간에 둬도 예쁘니까 꼭 사라고 추천하는 편이죠. 저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이 굉장히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유행하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전시 포스터나 디자인 액자를 선택하기보다, 나한테 잘 맞는 작가를 찾아내는 것 자체도 굉장히 즐거운 삶의 과정인데.
나한테 잘 맞는 작가는 어떻게 찾아요?
일단 많이 보는 걸 추천해요. 작은 갤러리이건 커다란 박물관이건 전시에 자주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는 거죠. 그렇게 해서 취향이 분명해지면 내가 그림을 사려는 목적을 생각하면 돼요. ‘집을 예쁘게 꾸며야 겠다’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거요. 제 경우엔 ‘젊고 실력 있는 작가들이 잘 먹고 잘 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해요. 그래서 유명 작가보다는 이제 막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를 시작한 신진 작가의 작품을 더 많이 사고 싶어요.
어린 시절 작가님에게 ‘집’은 어떤 공간이었을지 궁금해요.
저희 아버지는 1970~80년대 외항 무역선 선장으로 일하셨어요. 전 세계를 다니시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버지를 봤죠. 그때마다 어마어마한 걸 들고 오셨던 기억이 나요. 커다란 상아부터 아프리카 공항에서 사 온 탈, 악어 모형, 산호까지. 과거엔 무역 금지 품목이 아니었던 것들이죠. 1980년대 초반에 유년을 보낸 저는 그런 어마어마한 것들로 가득했던 집을 기억해요. 어쩌면 어릴 때 그걸 보고 자랐기 때문에 집에 물건이 많아야 안정을 찾는 것일 수도 있겠죠. 아, 집에 깔려 있던 부드러운 페르시안 카펫이 발바닥에 닿는 보드라운 감촉도 기억나요. 그래서일까요? 지금도 저는 어디에나 카펫을 깔아요.
우리의 취향 중에는 유년의 기억에서 온 게 꽤 많죠.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걸 느껴요. 알고 보면 내 모든 건 이미 유년기에 완성됐을지도 모르죠. 집을 채우는 모 양, 카펫을 좋아하는 취향뿐만 아니라 LP를 모으는 취미까지. 음악 취향 역시 디스코 팬이었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희한하고 재미있고 이상하기도 한 부모님의 여러 모습으로부터 지금의 제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 작가님의 집처럼 나만의 개성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공간을 꾸미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맞아요.(웃음) 한때는 천장엔 북유럽풍의 펜던트 등을 달고, 벽면과 바닥을 하얗게 꾸미는 게 인테리어의 정석처럼 여겨졌었는데. 몇 년 전부터 트렌드가 바뀐 것 같아요. 맥시멀리즘이라고 하는 인테리어 사조가 유행하면서겠죠? 그래서 저도 ‘이렇게 집을 꾸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저도 같은 질문을 해도 될까요? 이런 집을 꾸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년 안에 이런 집을 갖겠다고 욕심부리지 않으면 됩니다. ‘나는 오늘부터 맥시멀리즘을 하겠어’라면서 1년 동안 수십 가지 살림살이를 사들이는 건 실수예요. 그렇게 사들인 물건들은 결국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나만이 지닌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집도 조금씩 완성이 되는 게 아닐까요? 몇년 전 여행에서 찾아낸 머그컵 하나, 지난 달에 봤던 영화에 나온 조명등 하나, 어느날 떠오른 어린시절의 향수 하나가 맥시멀리즘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거죠. 적어도 10년에서 20년 동안 차곡차곡, 하나씩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계획하고 모은 건 아니에요. 좋아하는 걸 모으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죠.
작가님이 레퍼런스로 삼는 집이 있나요?
스페인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아파르타멘토>를 보면 나이가 60-70대인 맥시멀리스트들의 집이 종종 등장해요. 그런 집을 가만히 보면 세상에서 최고로 예쁜 쓰레기장 같거든요.(웃음) 근데 또 물건 하나하나에 다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살고 싶은 집은 그런 곳이란 걸 깨닫는 중 이에요. 그런 곳에 사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은, 귀여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