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가 참 조용하네요. 환기미술관과 석파정 서울미술관도 가깝고요.
부암동은 학창 시절부터 살던 곳이에요. 아내도 동네 친구였답니다. 이 집은 결혼하고 1년 후에 살게 되었어요. 당시엔 이 건물의 좀 더 넓은 층도 비어 있었는데 이곳을 선택했어요. 본격적으로 식물을 키워보고 싶었거든요. 이 집이 테라스도 있고 해가 무척 잘 들어서요.
집 안 곳곳에 재밌는 아이템이 많네요.
예전에 러시아에서 포르투갈까지 2년간 자전거로 횡단하는 여행을 했어요. 그때 영감을 받았던 물건들이 많아서 이후 ‘에이스 포 하우스’라는 가구와 조명 등의 빈티지 아이템을 판매하는 숍도 운영했어요. 아무래도 아내와 함께 직접 고른 것들이라 다른 사람에게 떠나보내기 아쉬운 것도 있더라고요. 이 그림만 해도 그래요.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향해 함께 무릎을 꿇은 장면은 전에 본 적이 없거든요.
거실 수납장은 직접 제작한 건가요?
네. 식물 키울 때 필요한 화분과 삽을 구리를 활용해 직접 만들기도 하는데요. 화분을 올려놓을 겸 거실 한편에 둘 수납장도 같이 만들었어요.
많은 소재 중 왜 구리를 활용하나요?
제가 수집하고 키우는 괴근 식물과 아가베는 아프리카와 멕시코가 원산지입니다. 뜨거운 곳에서 서식하는 식물에는 햇빛의 뜨거움만큼이나 지열이 중요한데, 구리가 열전도율이 높으니 햇빛을 잘 받으면 40℃ 가까이 뜨거워져요. 그러면 얘네들이 신이 나서 뿌리를 쭉쭉 내린답니다.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을지로의 바 ‘에이스 포 클럽’도 운영 중이죠. 렌털 스튜디오인 ‘에이스 포 스튜디오’도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요. ‘에이스 포’는 카드 게임의 에이스 카드 4장을 말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제 태몽을 꾸셨대요. 꿈속에서 포커를 치는데 에이스 포 카드가 나왔대요. 에이스 포 카드가 제일 좋은 패는 아니에요. ‘이 정도면 훌륭한’, ‘베팅해볼 만한’ 정도랄까요? 이 얘기를 듣고 늘 머릿속에 카드 4장이 따라다녔어요. 을지로에 바를 오픈하면서 드디어 그 이름을 사용하게 됐죠. 이후로 제가 하는 일에 시리즈처럼 사용하고요. 취미로 괴근 식물을 키우면서부터는 다들 저를 ‘트리맨’이라 부르는데, 자연스럽게 에이스를 붙여 ‘에이스 트리맨’으로 괴근 식물 브랜드명을 지었어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플랜테리어가 큰 관심을 받았지만 괴근 식물은 여전히 생소한 것 같아요. 어쩌다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제가 원래 자연과 식물을 좋아했어요. 몬스테라처럼 친근한 관엽식물도 키워보고, 또 분재에도 도전했는데 오래 살려두지 못했어요. 특히 분재 같은 경우는 정말 오래 살길 바란다면 실외에서 키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겨울에도 바깥 환경을 버티는 우리나라 토종 자생종을 분재 식물로 키우는데, 아주 조그만 화분에 옮겨놓고 집 안에서 10년도 제대로 키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가공하지 않아도 되고, 동시에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을 찾다가 괴근 식물을 발견했어요. 제가 아는 다른 식물에 비해 저렴한 편은 아니었는데 우선 눈에 띄어서 들여놓게 됐죠. 하나 둘씩 들여놓는 수가 늘어나면서 괴근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교류도 하게 되었고요.
정말 특이하게 생겼는데 키우기 어렵지는 않나요?
까다로운 식물은 아니에요. 아프리카나 남미의 경우 한국에 비하면 거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싹을 틔운다는 건 생존 에너지가 아주 강하다는 뜻이거든요. 정말 화분에서 뿌리째 뽑아 밖에 내놔도 1년은 살아 있을 거예요. 만약 아가베를 죽인다면 아가베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 유명해질 거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예요.
‘아가베 시럽’의 그 아가베인가요?
네. 대형 아가베는 테킬라의 주재료이기도 한데 제가 집에서 키우는 아가베는 야생에 사는 소형종입니다. 것에 있는 건 죽은 잎인데 떼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어요. 어쩐지 산 잎과 죽은 잎이 함께 있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여서요.
괴근 식물도 종류가 다양하지요?
그럼요. 그중 파키포디움 그락실리우스는 요즘 꽤 유명한 품종 같아요. 괴근 식물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그락실리우스로 시작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 집에 있는 그락실리우스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왔고 좀 ‘곱상하게’ 생겼는데 이건 평온한 데서 자랐다는 증거예요. 반대로 모양이 울퉁불퉁할수록 좁은 바위틈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것입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매력적이에요. 사람은 만들 수 없는,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조형물인 셈이지요.
특이하게 생긴 만큼 화분 매칭에도 신중해야 할 것 같아요.
좀 전에 말한 것처럼, 그래서 화분은 제가 일부 만들어서 써요. 물론 만드는 것도, 모으는 것도 모두 좋아합니다. 장작 가마에 화분을 굽는 일본 작가에게 6개월을 기다려서 산 적도 있어요. 제가 제일 아끼는 화분은 인도네시아 도예가가 만든 화분이에요. 작가가 이 화분을 만들기 위해 먼저 우주선을 스케치했는데, 그 그림도 액자에 걸어놓았어요.
식물을 여럿 키우고 있으니 ‘가드너’라고 불러도 될까요?
가드너라고 하면 식물을 잘 키우고, 번식과 파종 등에 가장 관심을 쏟는 사람일 것 같은데, 저는 그보다 컬렉터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바람과 빛, 물 등의 조건을 달리하면서 식물 형태를 신경 쓰며 키우고 있지만 화분, 도구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 지점을 더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괴근 식물을 중심으로 일종의 컬처를 만드는 것에 욕심이 나요.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준다’ 같은 공식이 있을까요?
보통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죠. ‘흙이 마르면 물을 준다’ 같은 규칙이요. 틀린 말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어느 식물이나 키우는 집의 조건이 각각 다르잖아요. 꽃집 사장님이 알려주는 방법보다는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식물의 상태를 감각하게 돼요. 그때부터 정말 관계가 생겨난다고나 할까요? 괴근 식물과 아가베에도 물, 빛, 비료 그리고 바람이 중요해요. 특히 아가베 같은 경우에는 꽃처럼 중앙의 잎이 서서히 펼쳐지거든요. 안에서 계속 새로운 잎이 나고 겉에 있는 잎들은 서서히 시들고요. 그런데 적당한 바람이 있어야만 잎이 적당히 펼쳐지고 모이면서 아름다운 수형이 만들어져요.
아모레퍼시픽 성수에서 <Never Stop Planting>이라는 전시이자 팝업 스토어도 진행 중이죠. 여기에 ‘에이스 트리맨’이라는 브랜드로 참여했고요. 이 또한 괴근 식물을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일까요?
맞아요. ‘에이스 트리맨’을 통해 괴근 식물을 좀 더 알릴 수 있도록 화분과 삽, 문진, 지포라이터 등 다양한 굿즈를 만들었어요. 에이스 트리맨의 목표는 굿즈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에요. 일본의 스트리트 브랜드 네이버후드를 보면 괴근 식물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콘텐츠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아예 괴근 식물로 세컨드 브랜드를 낼 정도로 투자를 많이 하고 그만큼 마니아층도 두껍고요. 한국도 관엽식물이나 다육식물은 이제 친숙하니 괴근 식물의 매력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관심사와 즐거움, 가치가 공존했으면 합니다. 에이스 트리맨이 거기에 일조할 수 있다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우선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해 화분 시리즈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도자기 중에서 백자 항아리나 식기에 비해 아직까지 화분은 덜 조명되는데, 괴근 식물을 통해 식물 저변의 이야깃거리를 활성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되겠죠.
이렇게까지 취미에 집중하면 본업과 취미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 같아요.
제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일과 취미, 일상생활이 분리가 안 되어 있다고요.(웃음) 정확한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모든 일 중에서 제가 업무로 느끼는 것은 없어요. 에이스 포 클럽을 운영하는 것이나, 아내가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사이렌 도감’이나 렌털 스튜디오 일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예요. 진짜 일로만 생각했다면 지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즐겁기까지 해요.
수많은 즐거운 일 중 괴근 식물과 아가베가 본인에게 더 특별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식물을 돌보는 일은 제게 충전의 시간입니다. 에이스 포 클럽을 마치고 돌아오면 보통 새벽 2시, 늦으면 3시쯤 됩니다. 잠자기 전 30분~1시간 정도 시간을 들여 식물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분무기로 물 한번 분사해주고, 혹시 벌레는 없는지 확대경으로 체크하고요. 그러면서 하루를 정리하기도 해요. ‘오늘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이야기를 했고, 내일의 일정은 이렇게 흘러갈 거다’ 하면서요.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대끼다가 이렇게 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거예요. 아주 고요하고 귀중한 시간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