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SNS와 유튜브에서 엄청난 인기죠, 진영님의 정원을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부끄럽습니다. 대단한 주택 가드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봄이나 가을에 오셨다면 정원의 더 예쁜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 수 있었을텐데. 그게 좀 아쉬워요.
꽃이 피는 계절이었다면 이 정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5월이라면 정원 입구부터 장미넝쿨을 볼 수 있었을 거예요. 50여 종의 장미가 제각각 모습을 뽐내고, 한켠에는 물망초와 여러해살이 그라스가 한들한들하고. 유리 온실 근처엔 튤립과 온갖 들꽃들이 피어있겠죠.
진영씨의 정원을 좋아하는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이 온실인 듯 해요.
남편과 함께 일주일 내내 설계면과 씨름을 하면서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웃음) 점점 더 큰 정원을 가꾸다보니, 온실의 필요가 느껴지더라고요. 땅을 솎아내고, 씨를 뿌리고 식물들을 살펴보는 일 외에도 뿌리를 자라나게 하고, 구근을 영글게 하는 작업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제가 사용하던 온실은 원래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천장과 벽면을 마감한 온실이었는데요. 최근에 제 정원을 보고 온실 제조 회사에서 유리 소재로 바꿔주셨어요. 협찬은 아니고, 잘 써줘서 고맙다는 의미래요. 직접 써보니 유리로 만든 온실이 식물의 생장 환경에 더 잘 맞아요.
진영씨가 나고자란 이곳의 이름이 ‘성제리’죠, 어쩐지 프랑스 남부의 어느 마을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지극히 한국적인 시골 마을입니다.(웃음) 제가 자랄 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은 논밭과 단층집들이 부락을 이룬 그 모습 그대로예요. 근처에 예쁜 저수지가 있어서 이곳 사람들에게는 꽤 잘 알려진 동네인데요.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죠.
도시에선 얼마나 살았어요?
캠퍼스 커플이던 남편과 결혼 후 그의 고향인 서울에서 1년을 살았어요. 남편은 제약회사에서, 저는 약국에서 일을 했었죠.
도시에서의 삶을 어떻게 회상하나요?
직업의 특성상 일하는 시간을 조율할 수 있어서 직장인 치고는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어요. 일반 직장인과 달리 주말 근무가 잦고 연차의 개념이 없으니 그게 답답했던 정도요. 현관문을 열고 한참을 내려가야 땅을 밟는 아파트의 환경엔 끝내 적응이 되지 않더라고요. 좋은 집이 아니어도 되니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남편을 설득했죠.
남편은 어떤 반응이었어요?
내내 서울에서 살던 남편은 되도록 생활이 편리한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주택을 짓는 선택지를 고른거죠. 서울 근교에 집을 지으려니 땅값이며 건축비가 만만치 않았고, 비교적 싼 값에 땅을 구할 수 있는 고향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어요. 다행히 남편은 프리랜서로 업무를 전향하던 시기였고, 저 역시 어떤 지역에서나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꽤 합리적인 선택이었어요.
대지는 몇 평이나 되나요?
약 300평의 면적 중 100평 남짓을 집짓는 데에 썼어요. 그리고 20여평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남편을 위한 작업실로 만들었고요.
꽤 비쌌겠는데요?
7년 전만 해도 안그랬어요. 정말 허허벌판이던 땅을 샀으니 매매할 수 있었던 거죠.
주택을 설계할 때 정원을 가꾸기 위한 계획이 있었나요?
아니예요.(웃음) 그땐 정원을 꾸미는 데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남는 대지가 100평이 넘었지만 2년 간은 거의 풀밭으로 두었어요.
그럼 정원을 가꾸게 된 계기가 뭔가요?
생존을 위해서예요. 정원을 가꾸지 않은 땅에서 잡초가 엄청나게 올라왔는데, 손질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예초기로 다 밀어주어야 했거든요. 노지 관리를 위해선 꽃을 심는 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격적으로 정원에 뭔가를 심기 시작했죠. 조건도 잘 맞았어요. 처음에 이 곳으로 이사를 결심했을 땐 아이들을 위해 제 시간을 많이 투자할 것이라 예상했어요. 학교가 머니까요. 다행히 학교에서 운행하는 스쿨버스가 있더군요. ‘일 외에도 내가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겠다.’ 싶었죠.
처음에 심었던 건 뭐예요?
6년 전 봄에 한 포트(pot)에 3만원 쯤 하는 장미를 몇 개 샀어요. 그땐 정말 뭘 몰라서 이걸 심어서 키우면 곧바로 커다란 장미 정원이 생길 줄 알았죠. 이듬 해에 꽃봉오리가 두어개 달린 걸 보고 굉장히 실망했어요. (웃음)
장미는 꽤 키우기 힘든 화초로 손꼽히니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장미는 해가 잘 드는 양지에서, 다른 식물과의 경쟁을 피하게 해주어야 하는 등 비교적 까다롭긴 해요. 2년 간 꽃을 피우지 않아서 포기하는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3년째 되는 해에 벽이 장미로 다 뒤덮일 정도로 거대한 넝쿨을 이루더라고요. 그걸 SNS에 올리니까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저 역시 너무 기뻐서 더 열심히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다음엔 어떤 꽃들을 심기 시작했어요?
장미 다음엔 작약이었어요. 작약 역시 심은 지 2년까지도 겨우 한두송이가 피더니, 3년이 되는 해에 100송이가 넘게 꽃피더라고요. 그 이후로 매년 작약이 흐드러져요. 작약의 뿌리 수명은 90~100년 이래요. 그러니까 뿌리만 썩지 않는다면 앞으로 100년 쯤은 이 자리에 작약이 필 거예요.
꽃들이 왜 3년이나 지나야 제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줄기에 꽃이 달리는 초본과의 식물들은 뿌리를 키우면서 만개할 준비를 하는 기간이 있대요. 이걸 ‘몸살을 한다’고 하는데요. 간신히 피워낸 몇 송이 꽃으로 워밍업을 하고, 이듬 해에 그 자리에 더 큰 꽃을 피우는 거죠. 그러니까, 3년 동안 자기가 자라고 있는 땅에 적응을 하려고 몸살을 앓는 거예요.
몸살을 앓다 꽃피우기를 실패하는 경우도 있나요?
셀 수 없이 많았죠. 정원가에겐 그 또한 기쁨이에요. 계속 성공하면 시시하잖아요.
저는 실패가 거듭되면 ‘내 길이 아닌가보다’ 하고 포기하고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생기던데.
저 역시 실증도 잘 내고, 결과가 잘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곤 했는데요. 실패 끝에 얻는 성공이 더 기쁜 것 같아요. 정원이 알려줬어요.
정원이 인내를 길러준다고요?
네. 이런 식이죠. 지난 해에 심은 꽃이 올해에 피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 없어요. ‘내년에 피려나?’하고 기다려야만 해요. 2년 쯤 기다리면 비실비실한 꽃 한송이가 올라옵니다. 이 때 결과가 좋지 않으니 포기할까 싶겠지만 더 기다려야해요. 그게 희망의 표시거든요. 겨울이 한 번 더 지나면 그때 비로소 튼튼한 열송이 꽃이 맺혀요. 정원가의 일이란 게 그렇더라고요. 기다림이 전부예요. 그렇게 3년을 기다리는 동안 내 안에서 실패를 견딜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좋은 결과가 나지 않아도 그로 배우는 것이 있을 거고, 꽃을 피웠다면 그 자체로 기쁨이고요. 제 생각에 좋은 정원가는 잘 기다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
기다리기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죠?
물론 아닙니다. 겨울이 아닌 때의 저는 매일 오전 5시에 마음을 졸이며 눈을 번쩍 떠요. (웃음) 잡초를 뽑아야하거든요. 아침이 오면 너무 더워지니까요. 그때 반드시 하지 않으면 다음이 없는 일들도 기다리고 있으니 손발을 바쁘게 놀려야해요. 지금 이 잡초를 뽑지 않으면 곧 괴물처럼 커질 거고, 씨앗을 지금 심지 않으면 다음에 꽃을 볼 수 없을 거고... 체력 유지도 필수입니다. 저는 정원일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2년 전에 필라테스를 시작했어요. 코어 근육이 없으면 무릎과 허리가 아파서 정원을 돌볼 수가 없어요. 정원가들의 고질병도 있습니다. 손관절이 계속 아파요. 풀 뽑고, 호미질하고, 흙을 고르는 과정 내내 손을 쓰게되니까요.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운동선수가 부상과 친해지고, 자기만의 투혼을 하는 것 같은 이치랄까요.
정원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요?
불안보다 더 큰 설렘을 주기 때문이죠. 정원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시간은 해가 뜬 직후예요. 아직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보는 아침 정원의 모습은 정말 청초하거든요. 자연이 만들어낸 완전하고 근본적인 아름다움의 결정체처럼 보여요. 흙과 식물에서 나는 기분 좋은 싱그러운 향, 새벽녘의 고요한 정취를 보고있자면 정원을 돌보며 얻는 피로는 다 잊혀요.
한겨울에는 일이 별로 없지 않나요?
겨우내 땅 속에서 보내야 하는 에키네시아, 물망초, 세이지 같은 꽃들을 파종하고 나면 사실 휴식기에요. 식물보다는 나 자신을 돌보는 시기죠.
더 좋은 가드너가 되기 위해 이 겨울동안 어떤 일을 하고있나요?
정원을 가꾸면서 제 삶 안에서 생긴 조그만 변화들에 응답하는 중인 것 같아요. 제철에 피운 꽃들을 수채화로 그려보기도 하고, 정원에서의 일상을 영상으로 담아 유튜브에 게시하고요. 요즘엔 리스도 만들고 있어요. 정원에서 나는 여러가지 재료를 한데 모아 엮어내는 작업이죠. 스스로 독학을 하다가, 지인들에게 선물을 해봤는데 선물하는 제 마음이 더 기쁘더라고요.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여러 공부를 했고 최근엔 저만의 클래스도 시작하게 됐어요.
6년 간의 취미가 생활의 모습을 많이 바꿨다면, 마음에는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
전보다 마음이 여유로워졌어요. 무언가가 꽃 피우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게 자연의 섭리라면, 인간의 삶 또한 그렇겠죠. 꽃들이 겨울 노지에서 비바람을 맞고 고생하고, 눈 속에 웅크려 잠자는 것처럼 보일 때도 꾸준히 자기 나름대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중인 거잖아요? 우리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 내 힘으로 안되는 일이 있다면 때를 기다리면 되는 거예요. 그런 마음 가짐이 저에게 쉴 방 한 켠을 내어줘요.
초보 정원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사실 이건 연차가 생긴 정원가들만의 비밀인데요. 너무 열심히 계획하지 마세요. 여러가지 레퍼런스와 책을 참고하되, 따라하지 마세요. 자연물로 하는 모든 일들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삐뚤빼뚤해도 그냥 예쁘고 좋아요.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도, 걱정하지도 말고 묵묵히 할 일을 해보세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잖아요. 그런 우직함만 있다면 자연이 크게 보답해줄 거예요.
올 봄에는 어떤 정원을 꾸미고 싶어요?
피트 아우돌프의 작업을 참고해서 제게 맞는 여러해살이 정원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갈대 같은 들풀로 배경을 만들고, 원근감을 고려해 화려한 꽃이 돋보이도록 하고 싶어요. 주택정원 설계라는 게,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한번에 해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니긴해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많은 노력이 들겠죠. 아주 조금씩 꿈을 펼쳐보려고요. 시간은 언제나 정원가의 편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