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이 어두운 편이네요. 식물 때문인가요?
식물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제가 어둑한 걸 좋아해요. 집에 형광등도 잘 안 켜요. 몇 년 전 덴마크에서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의 방을 보고 나서 조명에 눈을 떴어요. 덴마크에는 ‘휘게’라 해서 근사한 조명을 밝혀 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휴식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직접 체험하니 매력적이더군요. 현재 우리 집 조명 몇 개는 그때 덴마크에서 사 온 거예요.
식물 생장을 위한 LED 등 같은 건 없나요?
아, 생장 등이요? 집에서 식물 키우는 사람들한테 많이 있던데 저는 없어요. 그 대신 햇볕에 신경을 많이 써요. 매일 아침 식물을 밖에 내놨다가 저녁에 들여놓는 정도의 노력만 있으면 돼요. 환경만 맞으면 식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의 빛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주로 키우는 식물은 야생화예요. 그 친구들은 본래 한국의 자연환경에서 자라잖아요. 최대한 그에 가깝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야생화를 주로 키우는군요. 집에 화분이 몇 개나 있어요?
크고 작은 것 모두 합치면 30개 정도 돼요. 나머지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비닐하우스에 맡겨 뒀어요. 비닐하우스에 70개 정도 더 있어요.
비닐하우스요?
예민한 야생화류는 비닐하우스에 맡겨 뒀어요. 공간을 돈 주고 대여했다고 보면 돼요. 비닐하우스 측에서는 물만 주고 제가 자주 살펴보러 가요.
식물은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했어요?
늘 자연을 좋아했어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선호해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라는 가장 트렌디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목가적인 분위기라….
힙한 아티스트와 소통하고 힙한 자리에 있긴 하죠. 그런데 주거만큼은 그런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제가 정미소를 하는 고모부 따라 5살 때부터 11살 때까지 충남 아산 시골 마을에 살았거든요. 그때의 유년 시절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나 봐요.
언제부터 집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독립하고 나서 음악 하는 친구들과 도시의 좁은 집에서 지낼 때도 식물을 키우긴 했어요. 그런데 식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강박적일 만큼 도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을 떠나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한 4년 전부터 식물을 맘껏 데려왔어요.
집에 어떤 식물이 있나요?
처음에는 남미나 동남아에서 온 관엽식물을 들이다가 야생화로 관심이 옮겨 갔어요. 관엽식물은 일 년 내내 따뜻하게 해줘야 해요. 추우면 죽어요. 반면 야생화는 겨울을 잘 견뎌요. 그래야 봄에 새싹이 더 힘차게 움트고요. -10℃에서도 거뜬히 버텨요. 식물 키우는 사람한테는 신(scene)이 3개 있어요. 관엽, 분재, 다육 신이에요.
본인의 관심사를 퍼센티지로 치면 무슨 신에 가까운가요?
분재 신에 가깝죠.
분재 신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분재는 작은 분에 자연 풍경을 담는 일이에요. 멀리서 보면 귀여운 나무인데 가까이서 보면 웅장해요. 오랜 세월 바람을 맞아 기울어진 줄기나 뿌리 근처의 이끼 같은 게 자연 속 고목을 연상시키죠. 좁은 집 안에서도 대자연을 누릴 수 있어요. 처음엔 비닐하우스를 돌아다니며 공짜로 지식을 얻다가 요즘은 수업을 듣고 있어요. 81세 된 선생님께요. 이제는 제자를 잘 안 들이는데 제가 너무 자주 들러 질문하기도 했고, 분재를 향한 제 마음을 알아봐 주셨어요. 얕은 호기심이 아닌 진짜 관심이란 걸요.
분재 하면 철사를 두른 작은 소나무가 떠오르는데, 그런 건 보이지 않는데요.
제가 철사 두르는 것도, 소나무도 별로 안 좋아해요. 침엽수 계열보다는 활엽수를 좋아하고요.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아요. 겨울엔 잎이 지고 봄에는 새싹이 돋고요. 사시사철 푸르른 건 별로 재미가 없어요. 집에 죽은 것 같은 나무들이 있는데 가까이서 보세요. 나뭇가지 끝에 잎망울이 있죠? 죽은 게 아니에요. 봄이 되면 여기서 새싹이 터져요.
그러고 보니 소나무 분재가 없네요.
소나무는 손이 많이 가요. 그리고 남자들이 소나무를 특히 좋아해요. 한번은 제가 비닐하우스에서 식물을 돌보고 있는데 중년 남자가 다가오더니 “아유, 털보 아저씨가 여기 주인이었어?” 하면서 말을 걸어요. 제 구역에 소나무는 없고 야생화만 있어서 주인이 여자라고 생각했대요.
식물을 돌보는 데 들이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매일 30분 정도? 밖에 내놓고 들여오고, 물 주고요. 이 집이 동향이라 아침에 바로 해가 들어요. 해 뜨자마자 식물을 밖에 내놔요.
분재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고급 취미로 알려졌는데 시간을 많이 들이진 않네요. 그럼 돈은요?
저는 물 주고 봄에 영양제 주는 게 전부라서 돈도 얼마 안 들어요. 다만 이 조건을 마련하기까지 돈이 들었어요. 관엽식물은 실내에서 잘 자라지만 분재는 고려할 게 많아요. 우리나라 청년들은 20대에 독립할 때 시작이 거의 원룸이잖아요. 창문 하나에 해도 잘 들지 않고 환기도 잘 안되는 그런 환경은 분재가 살기에 가혹해요. 자그마한 마당이라도 있어야 사계절을 맞이하고 숨을 쉴 수 있어요. 집 전체에 분재가 놓여 있지만 방 2개 중 하나는 아예 식물 방으로 내줬어요. 그 방은 두 면이 커다란 창이에요. 식물을 밖에 내놓기 쉽고요. 식물이 살기 좋은 구조예요.
고양이랑 산 지는 얼마나 됐어요?
중구랑은 2년 됐고 완다는 1년 됐어요. 야, 김중구! 너 카메라 있다고 까부네.
김중구라니, 고양이 이름치고 특이하네요.
귀엽죠? 인천에 있는 유기 동물 보호 센터에서 공고를 보고 데려왔어요. 형제가 유기되었는데 하나는 눈이 위로 올라갔고 하나는 눈이 아래로 처져 있었어요. 입양 신청을 했더니 눈이 처진 고양이가 제게 배당되었어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로 데리러 갔어요. 그래서 중구예요. 완다는 쇼에 제품 촬영도 하고 광고 모델도 했던 고양이였어요. 그러다 다섯 살이 넘었다고 무료 분양을 하더라고요. 중성화 비용만 내고 제가 데려왔지요.
분재와 고양이가 한집에 있는 게 걱정되지는 않았나요?
고양이를 집에 데려오기 전에 고민 많이 했어요. 풀을 뜯어 먹거나 화분을 깰까 봐요. 걱정과 달리 고양이들은 분재에 관심도 없어요. 화분을 떨어뜨려 깬 적은 있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요새 페스티벌이 다시 시작됐잖아요. 지방 출장도 많고 출퇴근 시간도 규칙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예민한 분재류는 비닐하우스에 맡겼어요. 나머지는 아랫집에 사는 아는 형님한테 부탁하죠. 일주일 정도 장기 출장이 잡히면 김장할 때 쓰는 넓은 대야에 물 받아놓고 분을 다 담가놔요.
동네 자랑 좀 해주세요.
도시 느낌은 확실히 없어요. 집 오른쪽엔 능이삼계탕집이 있어요. 아저씨들 맛집인 것 같더라고요. 왼쪽에는 풋살장이 있는데 종종 파이팅 넘치는 소리를 감상해요. 앞에는 도로가 있고 뒤로는 작은 정원이 있어요. 농촌과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요. 정원으로 가는 뒷문을 열어놓으면 벌이 많이 들어와요. 이사 오고 처음에는 집에 취해서 벌이 들어와도 좋아했어요. “와, 벌이다!” 하면서요.
지금은 벌이 들어오면 싫은가요?
싫죠.
아까 전원생활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것까지 모두 좋아할 줄 알았는데요.
아니요. 한 뼘이 넘는 커다란 사마귀가 현관에 서 있는데요? 좋아할 수 없죠. 무서워요.
중구와 완다가 개처럼 주인을 지켜주면 좋을 텐데요. 두 마리 고양이는 주인한테 뭘 해주죠?
귀엽죠.
식물은요?
제가 넋 놓고 바라볼 수 있게 해줘요. 제가 시골 풍경 보며 멍때리는 걸 좋아하는데, 집에서도 그걸 할 수 있게 해주죠. 들숨, 날숨, 나무 바라보기를 하면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요.
바라보는 재미가 동식물 친구들과 함께 사는 기쁨일까요?
그렇죠. 보면 사랑스럽잖아요. 나무도 매일 표정이 다 달라요. 햇볕을 어떻게 쬐는지, 어떤 분에 심었는지에 따라 모양이 변하고, 날씨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식물과 사는 데 어려움도 있을까요?
물 주는 게 힘들죠. 여름엔 하루에 두 번씩도 물을 먹으니까요. 대신 여름엔 비도 많이 와요. 비 맞히는 게 식물에는 최고예요. 어떤 영양제보다도 좋아요. 그걸 한번 느끼고 나면 봄비를 기다리게 돼요. 때깔이 달라져요. 애들이 봄비 맞잖아요? 그러고 나면 새싹이 튀어나와요.
집에서 기다리는 아기가 있는 아빠처럼 퇴근길이 설레고 그런가요? 달라진 식물들 빨리 보고 싶고?
아, 그렇게까지는 아니고요.(웃음) 근데 꽃 필 때는 좀 그런 것 같네요.
오늘이 올해 마지막 월요일이에요. 내년 계획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이 회사에서 8년쯤 일하면서 책임감이 막중해졌거든요. 회사도 확장했고요. 아티스트와 회사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잘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멋진 음악도 많이 만들고요. 개인적으로는 고양이와 식물이 건강하길 바라고 제게 특별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