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어스테이블 계정을 보니 무척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던데요.
경문 동파육, 메밀 소바, 다마고산도, 마라탕 등 국적 불문하고 다양한 요리를 해요. 어느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인상 깊게 남아 있으면 시도해 보기도 하고 요리책을 보고 만들 때도 많아요. 점심은 한식 위주로 하고, 주말이나 여유로운 저녁 혹은 친구들을 초대하는 날에는 다양한 메뉴로 식탁을 차려요.
민정 같이 음식을 먹으며 즐긴 시간은 기억에 남잖아요. 그걸 아무 흔적 없이 떠나보내는 게 좀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서 계정을 만들어봤어요. 경문 씨가 요리하면 제가 사진을 찍고 업로드해요.
부엌에서 분업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민정 요리는 전적으로 경문 씨가 담당하고 저는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해요. 주변 정리도 하고 틈틈이 설거지도 하고. 요리야 경문 씨가 워낙 잘하니까 저는 안 하기로 했어요.(웃음)
경문 저는 어렸을 때도 집에서 요리 담당이었어요. 그때는 요리를 잘한 건 아니었는데 점점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결혼한 후에도 집에서 먹는 모든 음식을 제가 맡아서 해요.
언제부터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경문 예전에 여행 매거진을 디자인할 때 전국의 맛있는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지역별 문화와 음식이 발달하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고요. 그때부터 점점 요리에 더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파트너가 이렇게 매일 요리를 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민정 지금은 요리를 잘해서 다행인데 처음에는 진짜 아니었어요.(웃음)
경문 어느 날 정말 맛있는 오일 파스타를 먹어보고 처음으로 민정 씨에게 해줬는데 두 입 먹고 버렸어요.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날이에요.
어떻게 만회했나요?
경문 그날부로 오기가 생겨서 엄청 연습했어요. 결혼 전 동생이랑 같이 살던 때였는데 저희 둘 다 퇴근이 늦었거든요. 밤 11시가 넘어서 집에 오면 엄청 배고프잖아요. 그때 동생에게 파스타를 만들어줬어요. 일주일에 다섯 번은 먹었을 거예요. 그러다 어느 순간 동생이 맛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특별한 비결을 찾았던 건가요?
경문 주로 책 보고 따라 하면서 익혔어요. 한 단계 한 단계 세심하게 따르면서 요리 과정을 들여다보니까 음식이 맛있어지는 원리를 조금씩 알게 됐어요. 파스타를 만들 때도 식재료를 구울 때 발생하는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감칠맛과 풍미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적용할 수 있더라고요. 또 어떤 식재료와 조합했을 때 맛있는지 맛의 레이어를 좀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하다 보니 요리 실력이 늘었어요.
민정 씨는 경문 씨의 어떤 요리가 가장 맛있나요?
민정 파스타요. 처음 맛본 파스타일련의 과정이 있어서 그런지 질리지 않는 집밥 같은 느낌도 있어요.
경문 제가 아주 다양한 요리를 하는데 항상 파스타를 꼽아요.
사무실에서 점심 식사도 직접 요리해 먹는다고요?
경문 코로나19 영향이 컸어요. 아무래도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게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때는 집이 사무실에서 꽤 멀었는데 아침마다 식재료를 아이스박스에 담아 가지고 출근했어요.
민정 사무실 뒤편에 작은 외부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버너를 사용하고 설거지는 화장실에서 하고요. 사무실이 요리하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는데도 아주 바쁜 날을 제외하고는 경문 씨가 늘 요리를 해줬어요.
수고롭지 않은가요?
경문 신경 쓰이는 부분도 있지만 직접 해 먹는 것이 훨씬 더 만족스럽더라고요. 매일 밖에서 점심을 사 먹으면 식사비로 한 달에 20만-30만 원 나가요. 주변에 맛있는 식당이 많아도 점심시간이면 늘 붐비고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그러다 보니 그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런 점심 식사를 하는 게 아쉽더라고요. 반면 직접 요리를 하면 신경은 조금 쓰이지만 편안한 곳에서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으니까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동료들의 입장에서는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경문 맞아요. 매일 '오늘 점심 뭐 먹을까?' 하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이 대부분 ‘아무거나’잖아요. 그런데 직원들이 '실장님, 오늘은 어떤 메뉴예요?' 하고 물을 땐 또 다른 느낌이거든요. 작은 기대감이 있어요.
점심 메뉴는 주로 어떤 건가요?
경문 점심은 한식 위주로 많이 해요. 손질이 필요한 식재료나 고기류는 주말에 미리 손질하고 재워놓고 그날그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국과 반찬을 준비해요.
민정 이제는 사무실 근처로 집을 이사해서 점심시간 15분 전에 경문 씨가 먼저 집에 가서 요리를 해요. 준비가 다 될 때쯤 팀원들과 함께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요.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정리하고 나서 과일도 깎아 먹으면서 훨씬 느긋하고 긴밀한 시간을 보내죠.
집이 사무실에서 1분 거리도 안 될 만큼 가까워서 가능한 점심 문화군요.
경문 이사 온 지는 6개월 정도 됐어요. 출퇴근 시간이 확 줄어서 만족감이 커요. 이제 식재료를 챙겨 올 필요 없이 집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따뜻한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여건이 돼서 기뻐요. 어릴 때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좋더라고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 바로 큰 테이블이 자리한 모습이 눈에 띄어요. 마치 프라이빗한 식당에 온 느낌이에요.
민정 저희가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집에서는 주로 잠만 자는 생활을 하다 보니 크기보다는 위치가 중요했어요. 서촌에는 워낙 매물이 없다 보니 이런저런 것을 다질 형편도 안 됐고요. 그래서 우리에게 집은 잠자고 요리하고 식사하는 곳이라 정의하고 집을 꾸몄어요.
아무래도 이사하면서 경문 씨는 부엌에 욕심이 있었을 것 같아요.
경문 아일랜드 식탁을 꼭 두고 싶었어요. 항상 공간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요리를 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가장 먼저 고른 게 아일랜드 테이블이에요. 또 최근 들어 식기 등 테이블웨어에도 관심이 부쩍 늘었어요. 사실 저희가 결혼 후에 유학을 가려고 했기 때문에 살림살이에 신경을 안 썼거든요. 냉장고며 그릇이며 대부분 얻어 온 거였어요. 그런데 이사 후에는 저희가 좋아하는 것을 두고 싶어서 하나씩 꾸미고 있어요. 이 집 역시 우리가 그동안 노력해서 얻은 집이니 제대로 꾸미고 살아보자는 마음이에요.
요리할 때 어떤 과정이 가장 즐거운가요?
경문 요리하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요. 우선 재료를 하나하나 고르는 일, 재료를 다듬고 준비할 때도 좋아요. 재료를 보기 좋게 배열한 모습을 보면 든든한 기분도 들고요. 순차적으로 조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안정감을 느껴요.
요리가 일하는 데 어떤 영향이나 변화를 주기도 하나요?
경문 식재료를 보며 어떤 메뉴를 떠올리고, 재료를 다듬어서 준비하고, 알맞은 타이밍에 넣어 조리하는 과정, 보기 좋게 플레이팅을 하고 다 함께 즐겁게 누리는 일련의 과정이 디자인과 닮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디자인 프로젝트는 짧으면 2-3개월, 길면 6개월 이상 걸려요. 그 긴 과정이 지난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요. 그런데 요리는 디자인할 때의 즐거움이 그대로 느껴지면서 그 과정을 훨씬 짧게 해낼 수 있어요. 그래서 일하다 점심시간에 요리하는 게 전혀 귀찮거나 번거롭지 않아요. 저는 요리하면서 디자인이 더 좋아졌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요리가 있나요?
경문 이탈리아 요리요. 식재료를 많이 가공하지 않고 바로 맛을 내는 게 재미있어요. 면, 오일, 마늘, 소금, 후추로만 맛을 내는 알리오올리오를 떠올려보면 돼요. 최소한의 재료에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는 조합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게 매력적이죠. 우리나라의 나물 음식 또한 빠르게 데치고 적당히 간을 해 심플하게 완성한다는 면에서 좋아해요.
귀찮거나 번거롭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죠?
경문 저는 디자인할 때 이미지나 텍스트 등 디자인의 재료가 될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를 받아서 이걸 어떻게 가공하고 배치해서 완성시킬지 고민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해요. 마치 요리하기 전 날것의 식재료를 대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인지 재료의 맛이 단계별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요리를 맛볼 때 감탄하고, 직접 만드는 것 역시 재미있어요.
요리에 관한 콘텐츠도 자주 즐기나요?
경문 요리에 관한 유튜브 콘텐츠를 매일 틀어놔요. 승우아빠, 백종원, 재료의 산책, 다케시마 타케시의 극한 밥, 요리 용디, 이태리 파브리, 이연복의 복주머니… <셰프의 테이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같은 OTT 프로그램도 봐요. 요리에 관한 거라면 다 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요리할 때는 책을 더 많이 참고해요. 주방 서랍에 레시피 책을 넣어두고 ‘오늘은 뭐 해 먹지?’ 하면서 훑어보는 게 시작이고요. 레시피대로 하기보다는 집에 있는 재료를 조합해서 만들어요.
음식에 관한 책 디자인 작업도 했죠?
경문 최근에 토마토에 관한 책 <내일의 토마토>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그래도팜’이라는 토마토 농장이 토마토의 진면모를 보여주려고 만든 책이에요. 콘셉트를 잡고 기획하는 과정부터 함께했는데 푸드 스타일리스트, 사진가, 에디터와 함께 작업한 모든 시간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저는 이렇게 알찬 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작업을 할 때 무척 기쁘고 즐거워요.
음식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깊다면 여행을 다닐 때도 먹거리가 중요하겠어요.
민정 작년에 한 달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했어요. 테마가 미식이었죠. 10개 이상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로컬 음식을 열심히 먹었어요. 이탈리아는 볼로네제 파스타, 나폴리 피자 등 지역마다 고유한 음식 문화가 무척 강해요. 지역마다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을 정도인 음식 문화가 인상적이었어요.
경문 이를테면 마르게리타 피자는 과거 이탈리아 왕국의 여왕이 나폴리에 방문했는데 이를 기념해 피자를 만들어 여왕 이름을 붙인 거래요. 흰색, 초록색, 붉은색의 조합이 이탈리아 국기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피자로 전해 내려오고 있대요. 이렇게 여행하면서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게 재미있었어요. 요리하는 행위뿐 아니라 음식 문화, 그리고 다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는 시간 모두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음식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이니 그 콘텐츠 역시 무궁무진하죠.
경문 그래서 저도 <내일의 토마토> 같은 우리 농작물에 관한 콘텐츠를 다뤄보고 싶어요. 농부들의 노고를 형태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게 기뻤거든요. 일본 쌀은 지역에 따라, 종자에 따라, 경작자에 따라 이야기를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하잖아요. 저는 그 문화가 부러웠어요. 국내에도 다양한 쌀 품종이 있고 도정하는 과정과 방법 등 농부마다 이야기가 있을 거란 말이죠. 쌀이란 게 매일 먹는, 똑같아 보이는 곡물이지만 무심코 대했던 것을 사려 깊게 다룰 때 흥미가 배가돼요. 이런 작업을 할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