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요.
담 오늘은 잡채를 좀 만들어봤어요. 고기가 안 들어간 비건 잡채예요.
이곳이 그 유명한 엄살원이군요. 의원이 셋이나 되네요?
유리 의원이라기보다는 ‘주인장 식구’라고 해요.(웃음) 이 집 주인인 담이가 ‘엄살원’이라는 모임을 기획했고 요리와 원고 편집을 담당해요. 저는 직원입니다. 손님을 섭외하고 원고를 함께 편집해요. 제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일은 식사 준비고요.(웃음) 예인은 이 모임을 기록하는 사진과 영상을 전담해요. 모든 연출과 편집, 촬영을 혼자서 해냅니다.
잡채 진짜 맛있어요. 누구 레시피예요?
담 저희 엄마 레시피예요.(웃음) 양념장 비율이 키포인트래요.
엄살원을 시작한 계기는 뭔가요?
담 담 제가 비건(vegan) 생활을 지향하면서부터 다른 사람의 끼니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비건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데 반해 인프라는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죠. ‘이거,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란 생각에 주변을 돌아봤어요. 역시나 주변의 비건 친구들이 밥을 잘 못 챙겨 먹고 있더라고요. ‘이 사람들 밥 먹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바쁜 날은 일반식으로도 끼니 챙기기가 힘든데 비건이면 더 그렇겠어요. 현실적으로 힘들면 안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담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친구들의 일도 삶도 사회도 그들의 비건 식생활을 돕지 않아요. ‘그럼에도 왜 내 친구들은 비건을 지향할까?’라는 생각에서 엄살원의 구체적인 기획을 하기 시작했죠.
담, 유리, 예인의 본업은 뭔가요?
담 저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 무늬글방이라는 글쓰기 공동체를운영하고 있어요.
유리 저는 사회단체 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틈틈이 글도 쓰고요. 얼마 전 저의 글을 모아 도서 <눈물에는 체력이 녹아있어>를 출간하기도 했어요.
예인 제 본업은 사진가예요. 6명의 여성 퀴어 멤버로 구성된 시각예술인 그룹 우프(W/O F.)의 일원이고, 인간의 억눌린 욕망에 관한 사진, 영상 작업을 합니다.
엄살원은 이곳을 찾아온 손님에게 어떤 식사를 대접하나요?
담 일단 모두 비건 음식이고요.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후식이 아닌 주식을 차렸어요. 든든한 저녁밥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메인 메뉴 외에도 몇 가지의 곁들이 메뉴를 꼭 챙겨서 보기에도 좋도록 신경쓰고요. 사진과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할 만한 음식이었으면 했어요. 손님이 좋아하는 메뉴가 있으면 그 음식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주인장이 먹이고 싶은 밥을 먹여요.
엄살원에 초대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담 처음에는 제 근처에서 비건이면서 밥을 잘 못 챙겨 먹는 사람, 자기 돌봄에 자꾸 실패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초대하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범위가 너무 넓더라고요. 활동가인 유리가 엄살원의 기획에 합류하면서 여성, 비건, 그리고 활동가인 사람으로손님의 영역을 좁힐 수 있었어요. 이 방식이 엄살원의 취지에 잘 맞는 듯해요.
유리 초대받은 이들이 밥값으로 내주는 이야기가 정말 소중해요.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자 소수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의, 비교적 조명받지 못했던 ‘일’에 관한 이야기라서요. 기후 위기 분야에서 활동했던 사람, 소수자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정치인 보좌관 등 다양한 인터뷰이가 엄살원을 다녀갔죠.
공적인 활동을 하는 이들에 한정된 목소리라고 하니 아쉬워할 사람이 많겠어요.
유리 실제로 아쉬워하는 분이 많아요.(웃음) 어떻게 하면 엄살원에 초대받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은 적도 있고요. 하지만 주변 활동가 중에 비건을 지향하면서 밥 못먹고 있는 사람만 쭉 리스트업 해봐도 너무 많은 거예요. 외부로 목소리를 내는 업의 특성상 노동자 개인으로서 겪는 고통을 드러내기도 어렵고요. 다들 힘든 일을 하니까, 저 사람도 아프고, 이 사람도 아프네. 따듯한 밥 한 끼 먹여서 보내고 싶다, 그리고 왜 이런 고생을 자처 하는지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왜 그동안은 일반 활동가를 위한 채널이 부족했을까요?
담 활동가는 대개 발언문, 입장문 처럼 특정한 집단이나 의제를 대변하고 대표하는 방식의 말하기를 하잖아요. 그게 진짜 사람이 내는 목소리라는 데까지 생각이 잘 미치지 않는 것 같아요. 기후 위기, 장애인 이동권, 성폭력 근절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그 사람의 얼굴을 상상하기는 어렵죠.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는,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고 밥을 먹으면 배부른. 그런 구체적이고 생생한 개인들이 마음과 체력을 다해서 쌓아가는 일인데도요.
유리 이전에도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는 기획이 있었어요. 다만 ‘비건 밥을 먹고 시작한다’는 정체성만큼은 안담이 있기에 가능한 엄살원의 특징이죠.
그러니까 엄살원은 우리 사회가 나누어야 할 이야기를 주목하는 방식에 대한 세 사람의 시선이군요.
담 맞아요. 무언가를 외치고 선언하는 무대에서 내려온 활동가들이 ‘밥을 먹는다’는 사적인 행동을 하면서 풀어놓게 되는 이야기가 있어요.
유리 일례로 불법 촬영물을 삭제하는 일을 하는 활동가를 인터뷰한 <삭제의 신, 쪼이> 편에 ‘눈이 아프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폭력적인 현장을 계속 눈으로 보니까요.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위로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담 밥을 먹는 일만큼 사적인 일이 없잖아요. 좀 예민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양껏 밥을 못 먹기도 하죠. 그만큼 ‘밥을 같이 먹고 난 사이’가 되었을 때만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있는 것 같아요. 밥 먹고 나면 손님들도 공적 자아를 잠시 내려놓고 좀더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가 조금 친해졌으니까요.
엄살원의 무대는 왜 집이 되었나요?
담 집에서 제가 제일 잘할 것 같았어요. 인터뷰어로서든, 호스트로서든.. ‘왠지 지금쯤 저 사람이 술을 한잔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쯤 과일을 먹어야겠다’ 같은 판단이 빨리빨리 되고, 그런 판단을 실천할 수 있는 자원도 다 집에 있고요. 제게 가장 편안한 공간이라야 타인의 마음도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물론 출장요리에 대한 욕심도 없진 않습니다.(웃음) 말 나온 김에 디저트를 좀 준비할까요?
유리 담의 집에는 ‘손님을 생각하며 준비한 접시’ 이런 게 있어요. 너무 예쁘죠. 텍스트에는 다 나와 있지 않지만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가는 분들도 있어요. 집이 아닌 공간에서는 그렇게 얘기가 길어질 수 없겠죠.
손님을 초대하는 시간은 대개 언제인가요?
담 주로 주말 저녁이지요. 유리가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평일 저녁은 조금 힘에 부치고요. 점심에 엄살원을 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준비 시간 때문이기도 해요. 사전 질문지 다시 읽기, 집 쓸고 닦기, 장보고 재료 준비하기, 촬영을 고려해서 음식하는 순서 정하기… 이걸 다 하려면 반나절은 걸려요. 점심에 엄살원을 열려면 저는 새벽같이 일어나야겠죠?(웃음)
굉장히 꼼꼼히 준비하는군요. 유리, 예인 씨는 모임 전에 어떤 준비를 하나요?
예인 저는 메모리 카드를 잘 챙겼는지 확인합니다.(웃음)
담 유리는 인터뷰이에 대한 공부를 정말 많이 해 와요. 어느 정도냐 하면, 어떤 순간엔 유리가 게스트에 빙의해서 당사자처럼 이야기할 수 있게 될 정도니까요.(웃음)
유리 좋은 인터뷰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방송인 ‘재재’가 진행하는 SBS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을 보고 많이 배웠어요. 재재님은 인터뷰이의 필모그래피는 물론이고 사소한 사건이나 언급까지 빠삭하게 외우더군요. 인터뷰어의 노력이 있을 때 게스트도 자기 말을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걸 알았어요.
담 예인은 후반 작업이 훨씬 많아요.
예인 활동가들의 일과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이다 보니 원고에 우리가 진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 주제가 많아요. 영상을 만드는 저는 따뜻한 분위기가 잘 전달되도록 편집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인간적이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고 싶어서요.
같이 엄살원을 만들어가면서 겪은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요.
담 팀이니까 역경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원고를 함께 쓰는 유리와 처음부터 잘 맞았어요. 글을 편집할 때 서로 얼마나 일을 할지, 사소한 뉘앙스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견해가 다르기 쉽거든요. 각자 쓰는 글의 문체는 완전히 다른데 엄살원의 원고를 쓸 때는 서로 동시에 편집할 수 있을 정도로 합이 좋다는 게 신기해요.
유리 내가 고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놔둔 단어를 담이가 명확한 단어로 바꿔놓는다든가 담이가 ‘이건 왠지 유리가 손볼 것 같아’라고 생각했던 문장을 제가 수정한다든가. 영상은 예인에게 전권을 맡겨요. 우리가 어떻게 해도 예인이가 더 잘한다, 이런 신뢰감이 있죠.
예인 처음에 편집 했을 때는 음식이 너무 맛있어 보이니까, 제가 침을 삼키는 소리 같은 게 들어가서 그걸 지우느라 엄청 고생했어요.(웃음) 영상 자막은 오탈자가 나기 굉장히 쉽거든요. 담과 유리가 그걸 기가 막히게 잘 잡아요. 기적적이고, 최고의 조별 과제를 하는 기분이에요.
영상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왜 인터뷰를 텍스트로 기록해 두나요?
유리 인터넷에 업로드된 텍스트는 가장 확산이 쉬우면서도 소외되는 이가 적은 매체인 것 같아요. 돈을 내지 않아도 볼 수 있고,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도 볼 수 있고,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도 스크립트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들을 수 있어요.
인터뷰에서 유의미한 대화를 이끌어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여러분만의 노하우가 있는지 궁금해요.
유리 저는 사전에 게스트에 관해 공부하면서 원하는 그림이 생겨요. 이 사람, 특정한 주제에 관해 좋은 얘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지며 원하는 답을 끌어내기 위해 대화의 흐름을 만들어요.(웃음)
담 저는 관찰해요. ‘방금 인터뷰이의 얼굴에 스친 미소가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는데, 어떻게 하면 그걸 다 볼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할 때 조금 약해지는 것 같다’라든가. 유리가 조금 더 활동가의 입장에 인터뷰를 준비한다면, 저는 독자의 입장에서 인터뷰이가 가장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순간을 보려 하는 것 같아요.
개인이나 사회에 엄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담 글쎄요. 누구나 한 번쯤은 엄살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엄살로 치부되는 아픔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퀴어의, 장애인의, 동물의 아픔이 더 많이 의심받죠. 엄살원이 그런 사람들을 위한 원없는 엄살의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개인이나 사회에 엄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 말을 경계하며 살아요. ‘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를 ‘All Lives Matter’로 고치지 말아야 하듯이요.
엄살원을 하면서 각자의 삶이 어떻게 변했나요?
담 제가 살림 노동에 대한 멸시를 깊이 내면화하고 있다는 걸 매순간 깨닫게 돼요. 손님들의 이야기가 너무 귀중하다 보니까 ‘꼴랑 밥 한번 차려주고 이런 이야기를 듣네’ 라고 자꾸 생각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손님들이 오히려 그런 생각을 못 하게 막아줘요. ‘너무 맛있다’ ‘한국 사람한테 밥을 해준다는 건 사랑이다’ ‘이게 얼마나 노동이냐’ 이런 반응이 저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일깨우고요. 엄살원 활동을 통해 내 밥이 창작의 원천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는 걸 많이 느껴요.
예인 제가 모른다는 걸 알게 된 거요. 저는 삶의 여러 면에서 소수자로 살다 보니 언제나 내가 더 많이 안다는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가장 힘들고 아픈 사람이야. 나는 더 많이 고생했어. 네가 뭘 알아’ 이런 식으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면서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많이 배우고 공부해야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앞으로 제가 더 많이 바뀔 것 같아요.
누군가 여러분처럼 집에서 모임과 인터뷰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유리 엄살원이 일방적으로 손님을 돌보는 게 아니라, 손님도 우리 엄살원 식구들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담 맞아요. 손님이 주인을 돌보는 관계라는 전제에서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다니 얼마나 복이냐, 그런 시혜적인 생각을 가지고는 할 수 없어요. 애초에 손님이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시공간이니까요. 이렇게 와서 내 밥을 맛있게 먹어주고, 자신이 가진 귀한 이야기의 한 조각을 내어주고 간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똑똑히 알고있어야겠지요.
예인 비주얼을 만드는 입장에선… 마감을 잘하자?(웃음)
담 앗, 그리고 팀원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기!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모자라다!
Editor Park Min-jeong Photographer. Hoon Sh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