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계를 쌓는 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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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집에서 요리먹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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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팕은 7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웃_픈> <우_잉> <도시시> 등의 책을 출간한 독립 출판 작가이자 춤추고 요리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서로 모르는 낯선 이들을 자신의 복층 오피스텔로 초대해 대화를 청한다. 포근하고 안락한 그만의 다이닝 공간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느슨한 연대감과 위로로 자라난다. 쿠킹 원데이 클래스 ‘잇어빌리티’를 시작으로 1인 소셜 다이닝 프로젝트 ‘함바데리카’까지. 요리연구가 대신 ‘요리먹구가’라는 정체성으로 관계를 창조해 냈던 식탁은 타인뿐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도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었다.
에리카팕/ 박지윤

집을 소셜다이닝 공간으로 활용하는 집스터

본업
요리먹구가
특징
먹잘알,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음
주특기
정리정돈을 빙자한 테트리스 고수
원형테이블, 레트로 식기, 귀여운 소품들

문 열자마자 반갑게 맞아줘서 고마웠어요. 원래 잘 알던 친구네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에요.

워낙 외향적인 사람이에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이야기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좋아해요.


라이프집은 대개 ‘본캐’와 ‘부캐’의 영역이 뚜렷한 사람을 만나는데요. 에리카팕은 한때 ‘부캐’로 여겼던 영역으로 완전히 업을 바꿨죠?

맞아요. 7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 집들이와 요리를 하며 저녁의 삶을 사는 것에 집중하던 때가 있었어요. ‘잇어빌리티(Eatability)’라는 쿠킹 클래스도 진행했고요. 지금은 소셜 다이닝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함께 나눈 이야기를 뉴스레터와 글로 풀어내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집들이를 시작한 계기가 뭐예요?

2017년부터 3년간 독립 출판물 세 권을 출간한 게 계기였어요. 책이 나올 때마다 가까운 친구들이 가장 먼저 구매해 줬는데요. 이게 뭐라고 1만 원이나 하는 책을 사주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소소한 출판 파티 겸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밥을 해주게 됐어요.


원래 요리를 잘했나요?

전혀요. 맛있는 걸 좋아하지만 요리를 직접 하진 않았어요. 배운 적도 없고요. 그래서 처음엔 만들기 편하고 맛도 좋은 밀키트를 사용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즐겨 이용하던 제품이 단종된 거예요. 친구들을 불렀는데 라면만 끓여줄 수도 없고.... 예쁘게 상 차려 든든하게 먹이고 싶어서 식재료를 하나씩 사기 시작했죠.


그 이후 요리하는 게 ‘저녁 있는 삶’의 일부가 된 거라면 요리에 꽤 소질이 있었나 봐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한 250번 집들이를 하면서 노하우도 늘고 재미도 붙이게 된 거죠.


250번이요? 1인 가구가 사는 오피스텔의 주방은 꽤 제약이 많을 것 같아요. 인덕션인 데다 화구도 별로 없고, 좁기도 할 테고요.

맞아요. 기본적으로 테트리스를 해가면서 요리를 해야 하죠.(웃음) 그래도 요리를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회사에서 다쳤던 마음이 요리하면서 가라앉더라고요. 마치 나만의 리추얼처럼. 이런 집들이를 SNS에 올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러니까 250번이나 할 수 있었죠.


본격적으로 클래스를 열게 된 건 언제였나요?

해방촌에 있는 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 사장님이 소셜 다이닝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마침 저 역시 재미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던 때였죠. 그렇게 해서 1인 가구여도, 주방이 작아도 쉽고 맛있고, 소위 ‘있어 보이는’ 요리를 소개하는 클래스 ‘잇어빌리티’를 시작했어요.


‘있어 보인다’는 게 무슨 의미예요?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만 있어도 완성도 높아 보이는 상차림을 할 수 있는 요리요. 예를 들면 참치 통조림으로 만드는 파스타 ‘참토레루케’와 ‘문어 스테이크’ 같은 거예요. 만드는 과정은 되게 간단한데 상에 올리면 모두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멋지고 맛도 아주 좋아요.


대개 이탈리아 음식이네요.

맛과 비주얼은 프렌치 퀴진이 뛰어나지만 시간과 테크닉이 많이 필요해요. 반면 이탈리아 음식은 만드는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고 투박한데도 훌륭한 식탁을 꾸밀 수 있어요.


집들이 음식은 차림도 굉장히 중요한데요. 에리카팕은 어떤 기물을 쓰는지 궁금해요.

여기서도 ‘잇어빌리티’를 추구해요.(웃음) 저는 주로 플라잉타이거 코펜하겐이나 H&M홈 제품을 이용해요. 가격대가 합리적이고 품질도 적당한데 예쁘기까지 하거든요. 식기 외에 주변 물건도 신경 쓰는 편이에요. 집들이 사진을 예쁘게 찍어두면 추억이 되니까 이런 커다란 안경도 사고.


아, 이 안경은 에리카팕의 시그너처 아이템이죠?

네.(웃음) 독립출판페어 행사장에서 쓰려고 샀어요. 부스가 워낙 많으니 그 사이에서 내가 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방법이에요. 그 당시 독립 출판 시장에서 제가 ‘그 안경 낀 여자’로 통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안경은 여기 놓아둘게요. 이따 사진가가 찍을 수 있게.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네요.

작년에 ‘함바데리카’ 프로젝트를 시작해 진행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웃음) 잇어빌리티를 진행한 이후 퇴사를 결정하고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인데 ‘자기만의 세계를 건설하는 여성 노동자를 위한 함바집’이라는 콘셉트였어요. 한 번에 1-2명씩,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밥값 대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했죠.


3월에 함바데리카 기록을 집대성한 책이 나온다고 들었어요. 어떤 내용이 실리나요?

노무사, 배우, 작사가, 일러스트레이터, 무용가, 마케터 등등 정말 많은 직업군의 사는 이야기요. 직급도 꽤 다양한데 대개 6-7년 차 제 또래 사람들이에요. 그맘때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하는 궁금증이 커지기 마련이니까요. 외국계 기업에 입사한 20대 초반 인턴부터, 자녀를 다 키운 후 커리어를 시작해 역사 학원 원장님이 된 50대 대표까지 다양한 이들의 커리어 패스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에리카팕이 잇어빌리티와 함바데리카를 가장 활발히 이어온 시기는 코로나19가 창궐할 때였죠. 이제 집들이의 저변을 넓혀서 조금 더 큰 소셜 모임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집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똑같은 사람을 만나도 밖에서 만나는 것과 집에서 만나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을 준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이야기가 주는 편안함과 친근함이 더 깊어진달까요? 특히 맥시멀리스트의 박물관 같은 저희 집은 “이게 뭐예요?” 같은 스몰토크부터 시작해서, 원형 테이블에 앉아 깊은 대화를 나누기까지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돕는 가장 좋은 재료예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 간의 유의미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건 오롯이 주최자의 몫일 텐데 꽤 어려울 것 같아요. 수많은 집들이와 상차림 끝에 얻은 노하우가 있다면요?

보통 집들이를 할 때는 손님맞이하랴, 음식 준비하랴 정신이 없어요. 대체로 빨리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준비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손님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어요. 손님은 꼭 2명 이상 모셔요. 내가 없어도 그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요.(웃음)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어떤 규칙을 말해두는 것도 중요해요. 3명이 모인 자리라면 “오늘 집에 가는 길이 행복하려면 모두가 33%씩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죠.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두면 손님들이 흥분해서 폭주하듯 이야기를 하다 스스로 쿨다운을 하기도 하고, 평소 하지 않았던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도 해요.


이런 소셜 다이닝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동력과 위로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말보다 볼멘소리 들을 일이 많아요. 그때의 감정이 부산물처럼 마음에 쌓이면 고단함을 느끼게 되는 거죠. 사람들과 나누는 음식과 대화는 저에게 ‘좋은 말 할당량’을 채우는 방식이 돼주었어요. 대화 안에서 나의 부족함도, 또 대단함도 발견하게 되죠. 각자의 삶의 방식에는 서로 다른 점도 있고, 또 어떤 면에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은 면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같이 밥을 먹는 행위는 에리카팕이 찾은 관계의 매개였던 거군요.

맞아요. 요리가 매개가 되어 사람들이 저를 요리하는 사람으로 알아주게 됐고, 거기에 부응하려고 하다 보니 스스로도 계속 요리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게 됐어요. 가끔은 요리를 통해서 제 스스로가 위안이 될 때도 있고요. 스스로 ‘요리먹구가’ 라는 직함을 붙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요리가 아닌 다른 매개나 키워드를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집은 이런 매개, 제가 만든 키워드를 가능하게 해주는 ‘무대’ 같기도 해요. 제가 지은 이름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저희 집인 거죠.


그래서 혼자 있을 때도 잘 차려 먹어요?

혼자 있을 때요? 음, 간장계란밥 좋아해요.(웃음)


T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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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있어빌리티템 / ISFI 핑크 페퍼, 백설 허브 솔트
Editor
Park Minjeong
|
Photographer
Jeong Taek
|
Date
20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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