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스타그램 계정 재녀베이크를 보고 정말 존재하는 베이커리인 줄 알았는데, 홈 베이킹의 결과물이라니 인상적이었어요. 본업은 무엇인지 궁금하더라고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다 지금은 디저트 브랜드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홈 베이커라는 정체성은 본업과 무관합니다.
디저트 브랜드라면 그래도 얼마간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패션 브랜드에서 글로벌 마케터로 일했는데, 회사가 디저트 브랜드를 하나 더 만들게 되면서 브랜딩 팀으로 자리를 옮겼어요.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베이킹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까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그렇다고 브랜드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예요. 디저트는 전문 파티셰가 담당하는 분야고, 저는 이걸 홍보하기 위해 메뉴를 설명하고 전달하는 방법에 신경쓰죠.
홈 베이킹을 즐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 적부터 빵이나 과자같은 디저트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가장 좋아한 책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나니아 연대기>였어요. 신비로운 디저트나 음료가 나오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죠. 그렇다고 디저트 숍을 찾아다니면서 소비하는 일은 딱히 흥미롭지 않더라고요. 직접 제 손으로 케이크와 쿠키를 만들어 삶의 일부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홈 베이킹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소비하지 않고 좋아한다는 게 흥미롭네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이유도 옷을 입거나 사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었어요. 직물이라는 재료의 속성과 한계를 활용해 무언가를 표현해내는 것이 저에게는 더 재미있는 일이었지요. 원단으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디자인이란 최선을 다해서 문제의 솔루션을 찾아내는 과정이고요. 디저트 역시 먹는 경험보다 제 손으로 직접 만들고 완성해내는 그 과정이 좋아요.
첫 홈 베이킹의 기억은 어땠나요?
2015년에 코스트코에서 가정용 오븐을 처음 샀어요. 당시에는 독립하고 혼자 살던 집이라 조리대 없이 바닥에서 준비해 쿠키를 구웠죠.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이 릴리즈 되던 무렵, 정관스님이 나오는 에피소드를 보는데 옆에서는 쿠키가 구워지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 처음에는 맛이 없었어요.
지금은 오븐이 거실에 있어서 집이 마치 아늑한 쿠킹 스튜디오 같아요.
베이킹을 하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보니 거실에 아일랜드 테이블을 두고 아예 주방처럼 이용하고 있어요. 침실에는 잘 때만 들어가다 보니 작은 방에 침대를 뒀고, 큰 방에 소파와 책상을 둬서 서재와 거실처럼 사용해요. 테라스는 낮에 해가 잘 들어와서 케이크 사진을 찍기에도 좋아요.
베이킹을 배운 적도 있나요?
한때 실력을 확 늘리고 싶기도 하고, 새로운 걸 경험해보고 싶어서 고급 디저트 클래스에 간 적이 있어요. 좋은 경험이었지만 제가 추구하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전문적인 베이커가 아니고 홈 베이커잖아요. 아주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두고 실패도 해보고 다시 만들어보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저의 취미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아름다운 비주얼과 함께 글쓰기 사이트 ‘브런치'에 베이킹에 대해 쓴 기록들이 남다르던데요.
베이킹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주로 미국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보다 보니 제가 만든 것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처음에는 베이킹 레시피를 공유할까 했는데, 제가 레시피 개발자가 아니기도 하고, 이렇게 전문가가 되려고 애쓰기 보다는 홈 베이커로서 경험하는 즐거움과 어려움 등 생활에서 느끼는 것들을 적기로 한 거죠. 사진은 블로그에 담기 위한 용도로 찍기 시작했어요.
그 기록을 엮어 에세이 <파도를 넘어 케이크>를 펴냈어요. 예상했던 바인가요?
전혀요. 책이라는 것은 정말 전문가가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일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브런치’에 올린 포스트는 베이킹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도 아니고, 그저 베이킹에 서툰 홈 베이커의 경험에 대한 내용이에요.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거든요. 절대 책으로 나올 수 있을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런데 어느 날 두 곳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마음 맞는 출판사와 책을 내기로 하고, 1년 반 정도 시간을 들여 원고를 완성했어요. 부담이 컸지만 긍정적으로 여기는 부분이 더 많아요.
책을 출판하기로 하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우선 책임감이 생겼고, 기록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블로그에는 제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쓰다보니 투정을 부린다거나 안 좋은 기분을 가감 없이 내비치는 경우도 있거든요. 책을 펴낸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하니 솔직함을 유지하면서도 독자의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표현도 세심하게 고민하게 됐죠.

책 소개에 ‘명상하는 마음으로 케이크를 만드는 홈 베이커’라고 적혀 있네요.
명상을 할 때 흔히 코 끝에 집중하라고 하잖아요. 딴 생각을 접어두고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한결 차분해지니까요. 케이크는 만드는 과정에서도 순서나 재료의 비율, 온도 등 생각해야 할 게 많고 특히 아이싱을 할 때는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해요. 마음이 흔들리면 바로 비뚤어지거든요. 이렇게 몰입하다 보면 머릿속이 홀가분해지고 위로 받는 기분도 들어요. 평소에 어려웠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 더 수월해지는데, 마치 수련하는 느낌도 들어요.
“케이크를 주는 것은 나의 한 조각을 주고 오는 것 같다”라는 표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베이킹도 쉬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웨딩 케이크를 제게 부탁한 거예요. 거절하기 어렵더라고요. 만들면서도 무척 버거웠어요. 케이크 하나 만드는 그 몇 시간 동안 그 친구가 내게 웨딩 케이크를 부탁했다는 고마움을 포함해 여러가지 좋은 마음, 힘든 마음, 그만두고 싶은 마음 등 다양한 생각이 들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는거예요. 또 만드는 도중에 망쳐서 수습하고… 결국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전달했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식이 시작되고 제가 만든 케이크가 놓인 것을 보니 직접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친구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수많은 감정이 그 케이크에 모두 담겨있는 것 같아서 마치 저의 일부분을 내어준 느낌이더라고요.
그렇게 쿠키나 케이크를 만들어서 선물하고 나눠주는 일이 많죠?
직접 만든 것을 제가 먹는 것도 한계가 있거든요 (웃음). 그래서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한두 번은 괜찮더라도 부담스럽거나 억지로 받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케이크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도 종종 있고 하니 주기적으로 이벤트를 열어 원하는 사람에게 전하기로 했어요. 최근에는 11월에 생일인 분들을 추첨해서 초콜릿 케이크를 나눠드렸어요.
재연 씨만의 홈 베이킹 루틴이 있나요?
주로 주말을 활용해요. 주중에는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레시피는 어떤 게 좋을지 책을 찾아보거나 검색하면서 준비하고, 식재료가 토요일 아침에 모두 도착하게끔 미리 주문해놓고요. 토요일은 베이킹 데이에요. 일요일 오전에는 테라스에 나가서 전날 만든 케이크를 햇빛에 두고 사진을 찍어요. 먹는 건 그 다음이죠.
어떤 케이크를 만들겠다는 영감은 주로 무엇에서 얻어요?
회화나 사진, 조각 같은 예술 작품이나 전혀 다른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에요. 한번은 마크 로스코의 페인팅이 케이크 레이어처럼 보이더라고요. 홈 베이킹에 서툴러서 겨우 하나씩 만들며 배우는 시기였는데, 처음으로 설계도 짜듯 레시피를 구성해서 만들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도 큰 동력이 됐죠. 그후로 이런 방식으로 케이크를 만드는 데 재미를 느꼈어요.
그럼 재연 씨는 어떤 케이크를 가장 좋아해요?
어려운 질문이에요. 저는 특별히 가장 좋아하는 게 없어요. 때에 따라 다르거든요.
역시 애호가다운 답변이네요. 그럼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질문을 좁혀볼게요.
요즘에는 사과요. 10월 말인 지금 사과가 정말 맛있는 시기거든요. 최근 보름 동안 애플파이만 4개를 만들었어요 (웃음). 사과 디저트를 좋아하는 편이라 자주 만든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어려워서 여러 번 만들어봤어요. 요새 일주일에 1-2번씩 사과를 주문해서 받아요. 철이 지나기 전에 몇 번 더 만들어보려고요.
재료는 주로 어떤 방법으로 구하는지 궁금해요.
신선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마켓컬리와 이마트 같은 새벽배송을 많이 이용해요. 재료 준비를 좀 전투적으로 하는 편인데요. 주말에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먼저 머릿속으로 재료를 정리해봐요. 모든 재료가 토요일 아침에 준비되도록 전략을 세우는 거죠. 예컨대 토요일에 사과 필링을 만든다면 그 전날 파이 도우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러면 버터가 있는지 확인해야겠죠. 없으면 그 전날 버터를 주문하고요. 주말을 위해서 이렇게 일주일 동안 재료를 준비하느라 머릿속의 70%는 베이킹이 차지하는것 같아요.
꽤나 복잡하군요.
이제는 적응이 되었어요. 그런데 사실 이 과정이 꽤 재미있어요. 재료를 고르는 게 마치 어떤 가능성을 주문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밀가루, 버터, 과일 같은 것들이 제 손을 거쳐 어떤 디저트로 탄생할지 상상하면 기대되고 설레요. 한편 시장에서는 제가 모르는 재료를 발견하는 게 꽤 즐거워요. 사과라고 하면 보통 붉은 사과를 떠올리는데, 파이를 만들 때는 좀 더 단단한 초록 사과가 좋거든요. 이렇게 철마다 어떤 재료가 좋은지 알게될 때, 어떤 디저트를 만들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큰 기쁨이죠.
재녀베이크 계정으로 활동하기 전과 후, 차이가 있다면요?
주체적으로 생활하게 된 것 같아요. 재녀베이크를 열지 않았다면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소비하는 정도의 삶을 살았을거예요. 직접 케이크를 만들고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얻는 즐거움도 무척 커요. 또 제가 만든 디저트를 콘텐츠로 소개하고 감각을 나눈다는 것도 좋은 일이죠. 가만히 있느냐, 아니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하느냐, 이 차이인 것 같아요.
홈 베이킹에 관해 도전하거나 시도해보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과감하고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작업실을 구하려고 해요. 베이킹에만 해당되는 작업보다는 패션이나 설치미술같은 분야와도 연관지을 수 있는 작업이요.
홈 베이킹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팁 하나만 전하자면?
홈 베이커로써 만드는 데 한계가 있을 거예요. 저는 그 한계가 재미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조건 좋은 오븐을 쓸 필요가 없고, 비싼 설비도 필요 없어요. 보여주기 위한 베이킹이 아니라 자기 손에서 뭐가 나올 수 있는지, 그 흥미진진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보면 좋겠어요. 그래서 처음 시도할 때는 오히려 클래스를 듣지 않는 것을 추천해요. 제로(0)에서 시작하더라도 집에서 혼자 스스로 해보고, 실패하고, 성공해내는 과정을 찾는 기쁨이 홈 베이커의 특권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