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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그림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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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케치 작가 카콜의 MBTI는 ‘전략가’로 불리는 INTJ다. 그가 사랑하는 두 가지, 여행과 그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치밀한 전략적 판단과 부지런한 두 발, 다방면에 걸친 공부 덕분이었다.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그는 다음 날 오픈하는 전시에 필요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붓질 몇 번에 그의 시그너처 작품 ‘잉크 피플’이 캔버스 위에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사람, 가방 메고 있는 사람….

카콜/ 임세환

좋아하던 여행과 그림을 업으로 삼았다.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에서 영감을 받는다

본업
여행 스케치 작가
주특기
러닝, 카드 수집, 플레이스테이션∙스위치 게임하기, 다큐멘터리 보기
특징
INTJ, 잡지식 수집가



여행 스케치 작가로 자기소개를 하죠?

네. 강의, 집필, 외주, 협업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른 그림 작업도 많이 하는데, 정체성은 여행 스케치에 있어요.


어떤 도구를 쓰나요?

펜을 많이 쓰죠. 스테들러와 사쿠라 제품을 주로 써요. 검은색 펜에 포인트 컬러를 쓰고, 마카나 물감을 섞어 사용해요. 들고 다니며 현장에서 그려야 하니까 최대한 작고 휴대하기 편한 도구를 선호해요. 이 가방 안에 다 넣어 들고 다니거든요. 이건 쿠레타케 붓펜인데, 뒤쪽으로 물을 넣어 사용해요. 물통이 필요 없어요. 이건 엽서 사이즈 용지예요.


엽서 사이즈로 하는 이유가 있나요?

들고 다니기 편해서요. 여행 다니다 보면 그림도 그림이지만 보고 즐기는 게 중요하잖아요.




도구마다 맞는 종이가 있죠?

맞아요. 어번 스케치를 하다 보니 여러 종이 써보는 게 재미있어요. 펜탈릭이라는 브랜드의 스케치북을 좋아해요. 요 정사각형 사이즈를 좋아하는데, 가방에 딱 들어가는 크기이고 종이도 괜찮아요. 


좋아하는 종이가 있어요?

‘아마트루다’라는 종이를 좋아해요. 쓰기 쉬운 종이는 아니에요. 펜으로 그리기는 힘들고, 잉크를 진하게 써야 색이 잘 나오는 종이예요. 원래 판화 작업에 많이 써요. 색을 금방 흡수하고, 또 금방 건조돼서 색이 연해져요. 잉크가 잘 번지고 스며드는, 나름의 질감이 좋더라고요.


그리는 데 얼마 정도 걸려요?

크기에 따라 다른데, 물감을 쓰면 1~2시간 정도 걸려요. 마르는 시간까지. 작은 스케치는 30~40분이면 끝나요.




그림 노트가 정말 많네요.

이건 처음 채운 책이에요. 수채 색연필로 그린 거예요. 처음에는 그림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여러 가지를 많이 그렸어요. 일기장 쓰듯 하루에 하나씩은 그리자는 마음으로.


냅킨 같은 것도 활용하는군요.

네. 현장감도 살릴 수 있고 재미있어서 이런 식으로 노트에 붙여 그리죠.


어번 스케치를 하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보통 ‘어떤 빵이 맛있대’ 하면 그 빵 먹으러 카페 가듯이 ‘그림 그리러 가볼까’ 하고 카페에 가요. 지나가다 우연히 그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늘 가방에 이 도구를 넣어 다녀요.


직업병은 없어요? 어디 가면 유심히 관찰을 하게 된다거나.

심하지는 않지만 공간 같은 걸 주의 깊게 보는 편이죠. 천장에 조명이 어떻게 돼 있고 이런 거.


좋아하는 오브제가 있나요?

사람을 가장 좋아해요. 또 외국인은 그리는 재미가 있어요. 표정, 손짓, 옷 그런 게 전부 다르다 보니 새로운 자극이 되죠. 연출하지 않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사진 찍으면 느낌이 다르듯 그림도 그래요. 이건 ‘잉크 피플’ 시리즈인데, 현장에서 사람들 모습을 빠르게 스케치해서 담아내요.


여행 스케치를 잘 그리는 노하우도 있을까요?

노하우보다도 연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도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다른 사람의 그림을 많이 보는 게 중요해요. 내 그림을 그릴 토대와 표현 방법을 찾아갈 수 있어요.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어요?

시각디자인과에서 모션 그래픽, 광고 분야를 전공했어요. 원래 손으로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했어요. 2009년쯤 유럽 여행 갔을 때 어번 스케치하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 당시 한국에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시작해봤죠. 나중에 강의를 하거나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디자인하는 사람은 많고, 기술이 엄청 좋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 것 같으니 좋아하는 여행과 그림을 혼합해서 한번 해보자 한 거예요.


전략적 판단도 있었네요.

그렇죠. 여행 산업은 분명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어번 스케치를 처음 접하고 나서 바로 시도했나요?

아뇨. 일단 재료도, 정보도 없으니 유튜브를 검색해보며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디즈니 스타워즈 콘텐츠 공모전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거군요.

네. 당시 여행 공모전이 많았는데 의외로 그림이나 디자인 쪽 참가자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림으로 여행 공모전에 계속 응모했어요. 이렇게 하다 보면 전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게 업이 되기까지는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 강의를 많이 했죠. 처음 강의를 시작하기 좋은 곳은 백화점 문화센터라고 생각해 일일이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냈어요. 디즈니 공모전 수상 경력도 있으니까. 그렇게 수업을 시작하게 됐죠.


아티스트에서 마케터, 영업자까지 1인 다역이네요. 취미를 업으로 삼으려면 어떤 게 중요할까요?

일단 본업이 중요하죠. 본업을 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보고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해요. 수입의 몇 퍼센트는 경험에 투자하고요.




영향받은 작가가 있나요?

제임스 거니라고 야외에서 수채화, 유화를 그리는 작가예요. 영화 <주라기 파크> 일러스트레이션도 담당했어요. 많은 나이에도 열정적이고 유튜브도 재미나게 해요. 구도, 위치, 색감, 여러 가지로 배워요. 만화 <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다니구치 지로도 좋아해요. 루이 비통 여행기 시리즈 <베네치아> 편을 이 작가가 그렸어요.


그러고 보니 작업실에 정말 다양한 책이 있어요.

그림책 위주로 많이 봐요. 만화 관련 책도 많고 해외 서적도 많아요. 특이한 책도 있어요. <세계 대공황 레시피 북> 같은 것.


어디서 재충전을 하나요?

여행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살아 있는 기분,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 들죠.


여행 계획이 있어요?

다음 달에 수강생들과 교토로 스케치 투어를 가요. 다음 달 말에는 혼자 마쓰야마에 가고요. 제주항공이 얼마 전 재취항해서 티켓이 저렴했거든요. 마쓰야마는 온천과 귤이 유명한 곳이에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있고 나쓰메 소세키 작품 <도련님>의 배경도 있어서 작은 도시지만 그릴 소재가 좀 있어요.


일본에 자주 가나요?

자주 가는 편이에요. 시코쿠, 시즈오카, 가나자와에도 가봤어요. 한 도시에 머물며 근처 소도시에 당일치기로 다녀오죠. 팬데믹 전에는 두 달에 한 번씩 해외에 나갔다 왔어요.


여행 스타일이 있나요?

한곳에 장기로 머무는 편이에요. 사람 그리는 걸 좋아하고, 오래 머물며 여유 있게 현지 문화 즐기는 걸 좋아해서요. 또 가급적 일을 만들어서 가려고 해요. 여행을 가도 뭔가 업무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예요?

포르투갈요. 리스본, 포르투에 80일 정도 머물렀어요. 출판사에서 제의받아 갔다가 <드로잉 인 포르투갈>이라는 책을 냈죠.




일과가 어떻게 돼요?

아침 6시 반, 7시 정도에 일어나서 먼저 문서 작업을 해요. 그림 작업은 최대한 점심 전에 마무리하려고 해요. 아침에 여유가 있으면 러닝을 하고, 아니면 저녁에 해요. 오후에는 미팅이나 외부 일정이 있어요. 일 마치고 저녁에 돌아와서 작업을 하죠.


러닝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2년 정도 됐어요. 돈이 안 들고, 밖에 나가면 바로 할 수 있고, 체력을 기를 수 있어서 하게 됐죠. 하고 나면 개운한 느낌도 들고, 머리에 피가 돈다고 할까요?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 워라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워라밸이란 돈도 잘 벌면서 일도 즐겁게 한다는 뜻이거든요. 그 첫 번째 조건은 수익인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해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 자연히 워라밸이 지켜지겠죠. 그림 작업에 대해 물어보는 분이 많은데, 저는 현실적으로 이야기해주는 편이에요.




작업이 잘 안될 때는 어떻게 풀어요?

누워야죠. 눕거나 러닝을 하거나 돌아다니거나, 다른 걸 해서 풀어야죠. 책 보거나. 다른 사람은 이런 걸 이렇게 표현했네,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 같아요.


집에서 휴식 시간엔 뭘 하나요?

영상 보고 게임하고 책 읽어요. 요리도 좋아하는데 요리를 해봐야 음식 그림도 잘 나오더라고요. 만드는 과정을 알면 채색도 더 잘되거든요. 빵 구울 때, 밀가루 반죽 색을 먼저 바르고 점차 달걀물을 묻혀 설탕을 입혀 구워가는 과정대로, 색을 조금씩 올려주며 그려요. 그러면 빵 그림이 훨씬 ‘빵스럽게’ 나와요.


영상은 어떤 걸 봐요?

예술이나 사회 관련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서 재밌는 영상이 있으면 다 봐요. 잡지식을 쌓는 거죠. 시야가 넓어지고 그림에 접목하기에도 좋더라고요. 여러 직종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거나 일 벌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죠.


카드 수집도 하잖아요.

네. 이걸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했어요. 영화, 캐릭터, 올림픽 관련된 것도 있고 가장 오래된 건 100년이 넘었어요. ‘카콜’이라는 예명도 ‘카드 콜렉터’를 줄인 거예요.




그림을 그리려면 정말 많은 게 필요하네요.

제가 관심사가 다양해서 그래요.


그런 다양한 관심사와 활동이 결국에는 작품으로 실현되는 것 같아요.

맞아요. 관심사가 많으면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더라고요.


그려보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요?

300호 정도 되는 종이에 ‘잉크 피플’을 그려서 멋진 곳에 전시해보고 싶네요. 판매도 하면 좋겠고요. 그리고 매년 여행 스케치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올해는 일본을 테마로 쓰고 싶고요. 다만 책에 대한 수입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림 말고 하고 싶은 것도 있나요?

‘월세 1유로 프로젝트’라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어요. 노후 건물에 갤러리와 카페를 만드는 거죠. 소비자는 예술가의 그림이나 제작 상품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고, 작가는 판매 금액에서 일정 비율을 월세나 관리비로 충당하는 거예요. 작가의 부담이 덜하고, 작품을 더 열심히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Tips

카콜에게 영감을  작품

RPG 게임 ‘호라이즌 제로 던’

지구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다가 멸망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해요. 동물을 닮은 로봇이 돌아다녀요. 게임할 때는 스토리와 그래픽을 중시해요. 그걸 보고 그릴 때도 있거든요.


다큐멘터리 <팀스 버미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 페르메이르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그가 어떻게 그런 걸작을 그리게 되었는지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예요.


책 <인생, 예술>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윤혜정 저자의 예술가 인터뷰집이에요. 영감을 많이 받아요.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고 생각을 정리한 것 같아요. 제가 장인에 대한 내용을 좋아하는데 게르하르트 슈타이들 인터뷰가 특히 좋았어요.

Editor
Kisun Lee
|
Photographer
Hoon Shin
|
Date
20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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