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이 정말 좋네요. 어떻게 이 동네로 오게 되었어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구리 아치울마을에 살았어요. 살아보고 싶은 동네에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여러 동네를 뒤지다가 이 집을 보고는 한번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오늘 미세먼지가 많아서 잘 안 보이는데 날이 맑으면 저기 경복궁, 잠실 롯데월드타워, 남산서울타워까지 보여요.
지금 어떤 일을 하나요?
디자인 회사에 다니다가 2016년부터 남편과 아치울 스튜디오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브랜드 디자인, 책 디자인 등 그래픽 전반을 다뤄요. 스튜디오를 운영한 지 6~7년 되니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이대로 유지할 것인지 규모를 키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해볼지. 남편도 커피와 맥주 브루잉을 배우고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취미를 취미 이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음식 콘텐츠나 브랜드 만드는 걸 고민 중이에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저쪽에서 해가 빨갛게 떠올라요. 그걸 보면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 하루를 희망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바쁜 날은 바로 오전 업무를 시작하고, 여유 있는 날은 음식 관련 책을 보거나 운동을 가요. 요즘에는 공복 유산소를 시작해서, 헬스장 가서 러닝하고 돌아와서 점심 차려 먹고 오후 업무를 시작하죠.
일은 언제쯤 끝내요?
오후 6시 전에는 끝내려고 해요. 언젠가부터 밤에 일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효율도 떨어지고. 차라리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바로 일을 시작한다든지 아침 시간을 활용하려고 노력해요. 저녁은 휴식 시간으로 보내고요.
집밥은 얼마나 자주 해 먹나요?
점심은 매일 해 먹고 최근에는 저녁도 거의 매일 해 먹어요. 일주일에 서너 번, 약속이 있거나 너무 바쁠 때 빼고요. 평소에는 냉장고에 낫토를 쌓아놓아요. 이틀에 한 번꼴로 밥을 지어서 냉동실에 쟁여두는데, 그걸 데워서 낫토에 비벼 김치랑 먹어요. 그러면 인스턴트보다 빠르거든요. 인스타그램 게시물 반응도 좋더라고요. 시도해볼 만하면서 너무 평범하지도 않고, 깔끔하고, 한 그릇 요리라 설거지도 편하니까요.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낫토 밥을 다양하게 변주해 먹더라고요.
늘 먹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요즘 같은 대저 토마토 철이면 대저 토마토를 썰어 넣는다든가, 아랫집에서 준 아보카드를 넣는다든가, 그때그때 있는 재료를 넣어 먹어요. 낫토 밥 추천합니다.
낫토 밥은 주로 점심으로 먹죠?
네. 근데 가장 자주 먹는 건 된장국이에요. 된장국을 두세 종류 끓여놓고 일주일 동안 먹어요. 바쁠 때는 밥을 말아서 김치랑만 먹고요. 그것만큼 맛있는 게 없어요. 좀 부족하면 두부를 굽거나 전을 부쳐요. 나물에 밀가루 묻혀서 부치면 금방 되거든요. 요즘은 나물이 좋은 계절이라 하루 일과 끝내고 자기 전에 나물을 다듬어요. 지금 아니면 못 먹잖아요. 생각보다 번거롭지 않고 머리도 비워져요. 저는 이걸 나물 명상이라고 이야기해요.
나물이야말로 호사스러운 요리 아닌가요? 워낙 손이 많이 가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먹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넷플릭스나 유튜브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손질해요.
스스로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전혀 아니에요. 요리에 관해서만 부지런해요. 경동시장에 가면 나물이 엄청 많아요. 이건 엊그제 사놓은 건데 쑥, 머위, 취나물, 부지깽이예요. 이 나물은 처음 봤는데 전호나물이래요. 이렇게 처음 보는 재료는 판매자한테 물어보고 알려주는 대로 요리해요.
이 나물로는 뭘 만들 거예요?
무침 반찬이요. 나물을 다듬고 물에 한번 데쳐서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요. 전호나물은 겉절이처럼 해 먹으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3월에만 나온대요.
된장국은 어떤 스타일로 끓여요?
제철 재료를 넣어요. 이 쑥도 된장국 끓이려고 샀어요. 가장 좋아하는 건 아욱 된장국이에요. 가을 아욱은 문 닫아놓고 먹는대요, 너무 맛있어서.
주희 씨 요리는 재료가 중심인 것 같아요.
맞아요. 처음에는 레시피에 맞춰 재료를 샀는데 이제는 지금 나오는 재료에 레시피를 맞추죠. 2018년부터 2년 정도 마크로비오틱 요리법을 배웠어요. 그때 요리에 눈을 떴어요. 마크로비오틱에서는 제철 지역 재료를 강조하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떻게 마크로비오틱을 배우게 되었어요?
밥을 좋아하니까 건강한 한식 채소 요리를 배워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재료 다듬는 것, 칼질하는 것부터 배웠죠. 그런데 제가 요리를 배운 선생님이 한식 기반 마크로비오틱을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이제는 마크로비오틱에 갇히지 않고 제 스타일을 찾게 됐어요.
마크로비오틱이 뭐예요?
요리 선생님은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하더라고요. 채소의 모든 부분에 영양소가 있으니 그걸 살려 조리해 먹는 거죠. 음양오행, 체질 의학 등 종합적으로 접근해 단순한 요리보다는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어 좋았어요. 그게 간혹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최근 다시 즐거움을 찾았어요. 이런 책 보면서요.
<앤드 프리미덤> 매거진, <카사 브루투스>네요. 어떤 내용을 주로 참고하나요?
어떤 조리 도구를 쓰는지, 냉장고는 어떻게 정리하는지 등에 관한 거요. 국내에서 못 구하는 조리 도구가 많아서 그걸 사러 2박 3일 일본에 다녀온 적도 있어요. 레시피 책은 거의 안 봐요. 어느 순간 레시피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문학이나 과학으로 요리를 풀어주는 책을 더 좋아해요. 최근에 알랭 드 보통이 <사유 식탁>이라는 레시피 책을 썼는데 되게 재밌어요. <조리 도구의 세계>도 강추해요.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필독서예요.
레시피를 참고하지 않는다면 어머니들이 하듯이 직관적으로 요리를 하나요? 실패할 수도 있지 않나요?
엄청 많이 실패했죠. 처음 배울 땐 매뉴얼대로만 했어요. 그런데 별로 맛이 없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그건 선생님 스타일이고 제 스타일은 따로 있잖아요. 기본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우선 레시피를 익히고, 여러 레시피를 찾아보며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돼요. 저도 망칠 때 있죠. 그런데 망칠 때가 중요해요.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면서 배우게 되거든요. 레시피에 ‘식초 2큰술’이라고 나와 있어도 그 식초랑 우리 집 식초는 다르잖아요. 브랜드도, 맛도.
집밥을 해 먹으면서 바뀐 점이 있나요?
100% 현미로 밥을 짓는 것처럼 재료에 변화가 생겼고, 재료를 사 오면 바로 다듬어요. 당근 같은 건 씻어서 보관해두면 요리할 때 편해요. (신용규 계절 따라 집에 오는 택배가 달라져요. 철마다 생소한 재료가 배달되거든요. 계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느끼면서 재료를 사는 거죠.) 맞아요. 음식이나 식재료로 계절을 느끼는 것 같아요.
계절마다 그런 식재료가 있나요?
다 있어요. 봄에는 나물이 나오는데, 나물도 시기가 다 달라요. 가장 먼저 나오는 게 냉이거든요. 냉이가 차가운 땅을 뚫고 나오면 봄이 시작하는구나 알게 돼요. 여름에는 콩국수 먹고, 하지 감자랑 옥수수도 삶아 먹고요.
가을과 겨울에는요?
가을이면 국 시즌이 돌아오죠. 우엉, 연근 같은 뿌리채소가 나오고 버섯도 다양하게 나와요. 늦가을부터 겨울은 무와 배추가 진짜 맛있거든요. 배춧국, 배추전, 온갖 거 다 해 먹어요. 동지에는 팥죽 해 먹고, 정월 대보름에는 말린 나물로 반찬 해 먹고, 그렇게 1년 나는 것 같네요.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나네요.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 영화 좋아해요.
영화나 드라마도 요리 관련된 걸 많이 보나요?
거의 그런 것만 봐요. <셰프스 테이블>은 여러 번 봤어요. 영화 <줄리 앤 줄리아> <아메리칸 셰프>도 좋아해요.
요리를 매일같이 하다 보니 본인만의 요리 습관이나 원칙이 생기지 않았나요?
생겼죠. 일단 당류는 거의 안 써요. 간장, 고추장, 된장, 식초 같은 기본 조미료는 생산자를 알아보고 구매하고요. 또 된장국 끓일 때 보통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끓이는데, 저는 나눠 넣으면서 끓여요. 무를 많이 쓰는데, 무에 소금 뿌리고 채수를 살짝 넣은 다음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끓여요. 대류 작용을 반복하면 채소의 단맛이 더 잘 우러나거든요. 물과 재료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것 같더라고요. 된장은 맨 마지막에 넣어요.
채수는 어떤 채소로 만들어요?
다시마와 버섯이요. 여러 가지 해봤는데 이게 가장 깔끔하더라고요.
부엌은 어떻게 꾸몄나요?
부엌이 좁은 편이라 잘 정리하는 것에 신경 썼어요. 조리 도구는 전부 서랍 안에 넣고, 다른 도구도 안 보이게 보관해요. 안쪽 팬트리에는 커피 그라인더, 캡슐 머신, 광파 오븐, 반찬 통 등을 보관하고요. 이사를 다니면 부엌이 바뀌는데, 제 부엌만의 인상을 유지하고 싶어서 이동 가능한 아일랜드 식탁을 제작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어요.
어떻게 구성했어요?
식탁 서랍 첫 번째 칸은 조리 도구, 두 번째 칸은 자주 쓰는 그릇, 세 번째 칸은 냄비를 보관해요. 부엌에 조리 도구가 많잖아요. 썰고 다듬는 일도 많이 하고요. 요리할 때 허둥지둥하지 않으려면 작업 영역을 정리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미리 준비해놓는 게 요리의 시작이라고 해요.
아까 요리 콘텐츠 이야기를 했잖아요.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요?
마크로비오틱을 같이 배운 친구가 사부작이라는 식당을 운영해요. 그 친구는 요리하고 연구하는 걸 좋아하고, 저는 디자인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걸 좋아해서 함께 프로젝트를 해볼 생각이에요. 올해 처음 농부시장 마르쉐에 같이 참여했어요. 그 친구는 소금 워크숍을 하고, 저는 소금 키트를 제작해 판매했는데 금방 완판되었어요. 어떤 형태의 프로젝트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책을 만들던 사람이다 보니 책을 기반으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리 도구처럼 식기 욕심도 많나요?
엄청 많죠. 요즘 원칙은 이래요. 나는 한식을 주로 하니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식기를 쓰자.
좋아하는 작가나 브랜드가 있나요?
도윤공방 그릇을 많이 써요. 한 그릇 요리에 적당한 양이 담기거든요. 1250℃에서 구워 만드는 이 그릇은 앞접시로 쓰려고 모으고 있어요. 아뜰리에 유지 제품도 자주 쓰고요. 제 음식이 정통 한식은 아니라 컬러감 있는 식기를 많이 써요. 특히 저와 나이대가 비슷한 작가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뭔가 같이 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연대 의식이나 동지애 같은 걸까요?
맞아요. 덜 알려진 작가를 발굴하는 재미도 있고 응원도 하게 되고요. 연대감이랄까, 그런 걸 추구하는 것 같아요.
요리 하나로 이렇게도 확장이 되네요.
네. 이건 다른 얘기인데, 의외로 우리나라에서 만든 좋은 숟가락, 젓가락 찾기가 힘들어요. 정말 비싼 전통 공예품 말고는요. 직접 만들어야 하나?
집에서 요리 외에 즐기는 취미가 있나요?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아,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어요. 이번 주에 토론하다 나온 이야기인데, 동양철학에서는 마음과 몸이 분리되는 상황을 경계하라고 한대요. 마음 가는 곳에 몸이 가야 하고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이것 또한 어딘가 불교적이네요, 나물 명상처럼.
제가 다른 일을 찾고 싶다고 했잖아요. 요리 콘텐츠든 브랜드든. 내 마음이 자꾸 거기로 가는 거죠. 그런데 지금 생계를 위해 하는 건 이제까지 해온 디자인 일이니까 행동과 마음의 불일치가 점점 심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빨리 일치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글쓰기 모임에서는 어떤 글을 써요?
24절기를 바탕으로 절기와 음식을 연관 지은 글을 15일에 한 편씩 쓰기로 했어요. 절기를 공부하면 음식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브런치에 연재해도 잘될 것 같아요.
그런 걸 조금씩 시도해보며 마음 가는 곳에 몸을 두려 하고 있어요. 그동안 오래 걸렸어요. 직업적으로 분야를 바꾸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해오던 일을 계속하면서 요리도 배우고 이것저것 해보며 3~4년 지내왔네요.
올해 뭔가 일을 벌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바라고 있어요.
스스로에게 집은 작업실이자 휴식처이자 하루 종일 보내는 곳이네요.
맞아요. 친구들이 이 동네 핫플 많아 부럽다 그러는데 저는 그런 데는 안 가요. 그냥 이 집이 좋고, 동네 분위기가 좋은 거죠.
어제처럼 비 올 때도 좋나요?
네, 좋아요.
아치울마을에서 멀리 이사했는데 사는 동네 결은 비슷하네요.
맞아요. 거기도 산 아래였거든요. 무시 못하는 것 같아요, 자기 성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