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을 창조하는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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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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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호는 꺼낼 카드가 많습니다. N잡러이기 때문입니다. 마케터, 브랜드 오너, 클럽 매니저, 플랫폼 운영자.... 그는 여러 수식어를 넘나들며 매일 신대륙을 개척하는 모험가처럼 삽니다. 모험가의 삶에도 중심은 필요합니다. 나의 작은 성취를 나열한 작은 방, 잠시 몸을 누일 수 있는 카우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향과 음악과 오브제까지. 공지호의 중심에, 그리고 출발에 집이 있습니다. 

공지호/

직업과 주거조건 수집가 그리고 모험가

본업
마케터, 브랜드 오너, 클럽 매니저, 플랫폼 운영자
특징
용산구 일대에서 개 산책시키는 사람
소장 아이템
유리, 주석으로 만든 1960~1970년대 오브제, 각종 페스티벌 기념 티셔츠
다음에 살아볼 집 서칭하기


집 구조가 굉장히 특이하네요.
재미있죠? 마치 밀푀유처럼 집이 여러 개의 레이어로 차곡차곡 나뉘어 있어요. 거실을 지나 주방 겸 테라스가 있고, 그 너머로 한남동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작은 마당까지 나아갈 때 기분이 좋아져요. 다양한 레이어를 지닌 집이라 커튼을 쳤을 때, 창을 열었을 때, 창을 닫았을 때 느낌이 모두 다른 것도 매력이에요. 빛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집이라 질리지 않더라고요. 곧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고 있어요. 문을 다 열어두면 안과 밖에 불분명해지거든요. 운동, 태닝, 바비큐 다 할 거예요.

여기서 얼마나 살았어요?
8개월 정도요. 2021년 5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다섯 번 이사를 거쳐 이 집으로 왔어요. 몸무게가 30kg이나 되는 대형 반려견 ‘호지’랑 살기에 더없이 좋은 집이라 맘에 들어요.


 전에도 자주 이사를 다녔다고 했는데 얼마나 다닌 거예요이사 다닌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집이 있나요?
자취한 지 13년쯤 됐는데 이사 경험은 셀 수 없이 많아요. 여러 주거 형태를 다 경험한 것 같아요. 마포구에 있는 작은 투룸에서 친구들 6명이랑 복닥복닥 살아본 적도 있고, 제주도 해변가 2층짜리 전원주택에서 마당을 누리며 살아본 적도 있어요. 가장 좋았던 건 2년 전 경험한 제주살이였어요. 날이 좋으면 지붕 위에 앉아 일몰을 보고, 200m 안에 사람 사는 집이 없으니 속옷만 입고 집 앞 청소도 하고, 매일매일 호지와 해변을 산책하고요. 그러는 동안 번아웃이 확실히 치료됐어요.



지호씨에게 집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집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자 새로운 삶의 동기로 저를 이끄는 공간이에요. 지난 1~2년간 호지와 함께 작은 전원주택이나 작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만 이사를 다녔어요. ‘이게 은퇴 후의 삶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노후에 이렇게 살려면 여태까지 살았던 대로 살면 안 되겠다!’ 이런 마음이요.(웃음) 


본인이 운영하는 02무라노(02murano) 어떤 브랜드인가요?
02무라노는 빈티지 셀렉트 숍이자 선물 가게입니다. 유리 제작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무라노에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과 서울의 지역 번호 ‘02’를 붙여서 만든 이름이에요. 02무라노는 유리뿐 아니라 주석 소재 물건도 소개해요. 주석은 한때는 아주 널리 쓰이다가 소재가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생산이 거의 중단 되다시피 했어요. 그래서인지 현대에 와서는 더 귀하고, 우리가 쉬이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소재보다 깊이 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런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제 취미의 총합이 브랜드가 됐어요. 저는 특히 유리로 만든 문진이나 오브제를 좋아하는데, 집이 제 삶의 동력이 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일상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 아름다운 물건에 눈이 가더라고요. 업무 차 영국과 프랑스에 갔을 때 알게 된 이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예쁜 오브제가 생각났어요. 그게 갖고 싶어서 현지에 있는 친구를 통해 오브제를 하나둘 들여왔는데 어느 순간 집에 쌓이기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단순히 제 취향을 아카이빙해봐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거였어요.




02무라노는 수집 욕구와도 연결되어 있나요수집하는 행위가 어떤 기쁨을 주나요?
수집 욕구보다는 선물하는 기쁨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저를 지탱해주고 아껴주는 가족과 친구들한테 뭘 선물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까 언젠가 진짜 선물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평소에 ‘내 친구랑 닮은 오브제’라고 생각했던 걸 들고 나갔어요.친구가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타인에게 특별한 기물이 되는 걸 보는 게 좋았어요.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라면 내 취향만 수집하지 말고 선물 가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단순히 예쁜 걸 보는 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누군가의 삶을 조금 밝힐 수 있는 기물을 선물하는 그 기분은 정말 짜릿해요.
 
 02
무라노가 소개하는 물건은 대개 두툼한 유리나 튼튼한 주석 소재라고 했죠물건이 파손될 일은 적겠어요.
맞아요.(웃음) 제가 왜 이런 물성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도 있어요. 제가 연약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유리, 주석 전부 깨지기 쉽고 휘기도 쉬운 물성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튼튼하고 내구성 있는 물건이 되어 존재감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한편으로 안심이 돼요. 제가 좋아하는 오브제들처럼 저도 변형되기 쉬우나 약하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고, 이걸 선물 받는 사람도 그런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아끼는 오브제와 그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솔리 플뢰르(seule fleur) 화병이요. 꽃을 한 송이만 꽂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화병인데요. 1970~1980년대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널리 유행했어요. 유리라는 소재 특유의 미니멀한 감성에 한 송이의 꽃만 피울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위태로운 소재로 만들어낸 견고함이 외려 더 완전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야말로 직업을 정의할  없는 N잡러의 삶을 살아왔죠어떤 직업을 거쳐왔나요?
학교에 다닐 땐 LG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 했고, 호텔에서 기획 관련 업무도 했어요. 그다음엔 페스티벌 기획, 디자이너 브랜드 매니저를 담당하며 서울패션위크 쇼 진행도 경험했어요. 친구들과 로파이 재즈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씬을 알리는 취지의 파티의 기획자이기도 했고, 타투를 주제로한 전시도 기획했어요. 스타트업을 꾸려보기도 했어요. 지금은 마케팅 에이전시와 02무라노를 운영하고, 영화와 출판 관련 시사회를 운영하기도 해요. 빈티지 데님을 업사이클링해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만드는 '리빌드 프로젝트', 세컨핸즈 플랫폼 '리볼트'의 브랜드 매니저고요. 주말에는 '타임즈'라는 힙합 클럽의 매니저로 일합니다. 

이렇게나 많은 직업을 경험했다고요
한 가지 일에 시간을 쏟기보다 여러 가지 일에 시간과 경험을 분산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계단을 오르듯 커리어를 쌓기보다는 정글짐을 타듯 순간에 집중하며 사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미래가 어떻게 되든 오늘만 잘 살아보겠다는 식의 태도는 아니에요. 이렇게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된 문제 해결 능력과 크고 작은 노하우가 쌓여 저의 진정한 가치가 깨어날 거라고 봐요. 잔근육이 많은 사람이 더 오랫동안 매달리기를 할 수 있고, 오프로드 러너의 호흡법은 마라토너의 그것과는 다른 거니까요.
 
어쨌든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겠네요
네.(웃음) 그런데 이런 삶이 잘 맞아요. 삶의 구조를 스스로 짤 수 있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으니까요. 저는 하루를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하는 시간으로 구분 하려고 노력해요. 이 중 ‘업무’는 해야 하는 일이자 수단이에요. 그래서 일로 동기부여를 하려고 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래야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더라고요요. 결과적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늘어질 때도 있기 마련이잖아요최대의 효율을 내는 노하우가 있나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하는 일을 빨리 구분해야죠. 일례로 저는 몸 쓰는 일에 더딘 편이에요. 그래서 02무라노를 운영하며 제품을 셀렉트하고 총괄하는 일에만 집중 해요. 물건을 포장하고 고객에게 꼼꼼히 전달하는 일은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인건비는 아깝지 않아요. 그걸로 시간을 버는 거니까. 관여도를 낮추되 직업의 가짓수를 늘리는 거예요. 




새로운 방식의 삶이에요. 장점만 있을 수는 없겠죠? 
단점도 있죠. 이렇게 사는 삶이 외로울 때가 있거든요. 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으며 성장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저는 매일이 모험이고, 눈뜨면 신입이 된 기분으로 살고 있으니까. 이렇게 바쁘게 사는데 손에 잡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그래서 집이 더 소중해요. 집은 내가 하는 일의 파편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요. 브랜드를 통해 소개하는 오브제, 내가 기획했던 행사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 열심히 준비했던 페스티벌에서 나온 굿즈, 출장지에서 사 온 온갖 패브릭 같은 게 다 있죠. 이것들이 ‘내가 잘 살고 있구나’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줘요. 


연봉 1억 받는 회사원의 삶과 지금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요? 
그건 고민 좀 해봐야겠네요. 근데 연봉 1억을 주는 회사라면 주 6일 하루 14시간 정도는 일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그럼 호지 밥그릇과 물그릇은 누가 채워주고, 제 삶은 누가 돌보죠? 저는 50만 원짜리 일을 10개 하는 편을 택할래요. 제 삶을 제가 기획하고, 한땀씩 꿰어나가고, 그 과정에서 오는 고통은 오롯이 감내하고 나만의 해결법을 찾아내는 과정이 좋아요.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회사가 주지 않아도 스스로 연봉 1억을 버는 날이 올거라고 믿어요.

가장 하기 싫은 일은 뭔가요?
일이 하기 싫은 순간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냥 하고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하고 싶은  뭐예요?
집이 주는 기쁨을 누리고 사는 거요. 집은 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발전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는 척도예요. 30대의 저는 20대의 제가 살던 달방에서 벗어나,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궁리를 하면서 살아요. 그런 제 모습이 집에 조금씩 묻어나는 걸 보는 기쁨이 벅찰 때가 있어요. 이 집은 월세이고, 앞으로 제가 다른 곳에서 어떻게 시작할지는 알 수 없죠. 그래도 지금 여기에서 내게 속해 있는 물건들을 눈에 담고 있을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이런 기쁨을 계속 누리고 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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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Park Min-jeong
|
Photographer
Hoon Shin
|
Date
20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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