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을 창조하는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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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성, 나의 언어, 나의 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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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홍은 그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위스키 바로 퇴근한다. 저녁 7시, ‘나만의 작은 우주’처럼 꾸민 거실이 그를 반긴다. 브랜드 빌더 ‘랩도쿠’를 운영하는 그는 일상에서 비롯된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취미 공간을 집에 꾸렸다. 진귀한 술로 가득한 찬장보다는 매일 마시며 자신만의 미각 팔레트를 촘촘히 채워나가는 것이 그의 기쁨이다.

랩도쿠 / 전주홍

집을 위스키 테이스팅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만든 10년차 위스키 애호가

특징
운영하는 브랜드의 미래와 제품의 내일 생각하기
집스터 일과
퇴근 후 소파와 혼연일체, 넷플릭스 보며 위스키 한잔하기
우주를 연상케 하는 거실 가구와 주방, 스테인리스 소재 트롤리

인테리어가 독특하네요?

차가운 물성의 메탈과 유리를 주로 사용했어요. 우주를 테마로 한 집이거든요.


왜 우주를 테마로 했나요?

저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브랜드를 만들고, 또 제품에 대해 끝없이 연구합니다. 브랜드 빌더라는 개념으로 8개나 되는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니 생활에서 마주치는 모든 물건이 관찰 대상이 돼요. 이건 어떻게 제작했을까, 어떤 철학으로 만들었을까. 피곤한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집에 오면 최대한 그런 생각에서 멀어지고 싶어요. 언젠가부터 퇴근 후 우주에 관한 영상을 보기 시작했어요. 광활한 우주를 보고 있으면 저의 고민은 한낱 먼지처럼 여겨지고, 그러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2년 전 이사를 계획하면서 집을 우주 한가운데 있는 행성처럼 꾸며보기로 했어요.


행성 같은 인테리어를 완성하기 위해 집 안에 어떤 물건을 들였나요?

우주선이나 행성을 연상케 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블랙 컬러 천장에 스틸 소재 아르떼미데 조명을 설치했어요. 빛을 여러 면으로 반사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요. 스툴과 사이드 테이블 등 가구와 소품은 모두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료로 작업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스틸디벨루카에 의뢰했고요.


본인만의 행성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최대한 아무 생각 안 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넷플릭스로 다큐멘터리 보면서 위스키 한잔 즐기는 시간을 제일 좋아해요.


찬장이 아니라 트롤리에 위스키를 채워뒀네요. 몇 병이나 되나요?

트롤리에 담아두니 한눈에 보고 고르기가 좋더라고요. 여기 있는 건 30병 정도예요. 언제든 즐길 수 있도록 늘 채워두는 위스키가 약 다섯 종류이고, 나머지는 여행 다니면서 모으거나 리큐어 숍에서 구매한 거예요.


위스키가 30병이나 된다면 나름 보관법도 있겠네요.

전 대단한 노하우는 없어요. 특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맛이 변하지 않는 와인과 달리 위스키는 그저 볕이 들지 않는 곳에 두면 됩니다. 입구를 테이핑해 밀봉하는 ‘실링’을 해두면 더 좋고요. 바를 여러 곳 다니며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밀봉할 때는 파라필름이라는 제품이 가장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실링에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실링을 잘 해두어도 오랫동안 보관하면 약간은 휘발되어 양이 줄지 않나요?

맞아요. 하지만 아까워할 필요 없어요. 위스키를 ⅓ 정도 마신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 위스키를 그냥 두면 맛이 훨씬 좋아져요. 주정을 제외한 물이 증발하는 이 과정을 ‘엔젤스 쉐어'라고 한다고 해요. 천사들의 몫이라고요.


위스키는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나요?

20대 초반에 학교 근처 바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이것저것 마셔봤어요. 도수는 높지만 다음 날 숙취가 덜하고 혼자 즐기기에도 좋은 술이란 걸 알았죠. 직접 마시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 부터예요.


위스키를 즐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일이 많아서 지치고 마음은 바쁜데, 딱 한 잔만 하고 집에 들어가고 싶은 날 있잖아요. 그런 날 우연히 회사 근처에 있는 작은 바에 혼자 갔어요. 위스키를 하나 골라서 바텐더에게 “이건 어떤 맛이에요?” 하고 물었어요. 그러면 대개 바텐더들이 그 술에 관해 설명해주는데 그 바텐더는 조금 달랐어요. 그냥 위스키 한 잔을 내주고는 어떤 맛이 느껴지는지 말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날이 시작이었어요.


그때 마신 위스키에서 어떤 맛과 향이 났나요?

공업용 소독약 향이요.(웃음)


위스키에서요?

정말 그랬어요. 그때도 이렇게 말했더니 바텐더가 그런 게 ‘피트’라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피트는 스코틀랜드에서 나는 일종의 석탄인데, 피트를 연료로 증류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훈연 향이 밴다고 해요. 이 향취를 흔히 ‘병원 냄새’, ‘소독약 냄새’라고 표현한다고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스스로 질문하면서 답을 찾게 한 거군요.

맞아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맛보면서 궁금한 맛을 찾아간 거죠. 과일이나 꽃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나는 것은 ‘플로럴’, 입천장이 시큰할 만큼 단맛은 ‘허니’, 익숙한 초콜릿 맛은 ‘더티’라고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 모든 맛이 나는 위스키가 탈리스커 12년산이고, 지금도 가장 즐겨 마시는 위스키예요.


맛과 향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는 놀이였던 거네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고요. 그 바텐더와 함께 한 달 동안 매일매일 한 잔씩 위스키를 마셨어요.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커피를 마시는데 초콜릿 맛이 나는 거예요. 외국어를 공부할 때, 계속 그 외국어를 접하다 보면 어느 날 ‘귀가 트이는’ 경험을 한다죠? 제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일종의 미각 훈련을 한 건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한 달 동안 했던 게 바텐더들 사이에서 ‘맛의 팔레트를 만드는 과정’이라 불리는 것이더라고요. 지금은 그 바텐더와 연락이 끊겼지만 나중에 만나게 되면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위스키를 통해 미각이 깨운 뒤 일상이 좀 달라졌나요?

오늘은 어떤 맛을 경험하게 될까 기대하게 돼요. 커피를 마실 때도 그 맛이 하나하나 느껴지고, 점심시간에도 밥이 너무 맛있었어요. 맛이 다 느껴지니까. 백종원 선생님이 이런 기분으로 살까 싶을 정도로 맛을 보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바 호핑(bar-hopping)을 다니면서 더 많은 위스키를 맛보기로 했죠.


어디로 호핑을 갔나요?

저는 리스트업이 최대한 많은 곳에서 여러 술을 마셔보는 게 좋았어요. 특히 청담동에 위치한 몰트바 ‘르 챔버(Le Chamber)’나 서촌에 위치한 ‘코블러(Cobbler)’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어서 위스키 초심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에요. 위스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후에는 여행 갈 때마다 지방에 있는 작은 바를 찾아가는 재미에 빠졌어요.


수도권 외 지역에도 추천할 만한 바가 있나요?

지역마다 위스키를 사랑하는 이들이 운영하는 작은 위스키 바가 하나씩은 있더라고요. 순천에 있는 몰트 바 ‘팬스터’에서는 인도산 위스키를 만나서 재미있었고, 경주에 있는 ‘스틸룸’에서는 국내에 정식 통관이 되지 않아 구하기 힘든 위스키를 수집하는 사장님을 만나서 즐거웠어요. 제가 운영하는 브랜드와 같은 이름을 지닌 위스키 ‘벤네비스’도 여기서 만났죠. 여행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위스키는 이후에 어떻게든 구해서 소장하려고 해요.


그렇게 국내 여행에서 구한 술 중 가장 아끼는 건 뭔가요?

앞서 말한 벤네비스 위스키예요. 고급 위스키인 건 아니지만, 국내에선 구하기가 매우 힘들거든요. 찾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웃음) 제가 만든 캠핑 브랜드 벤네비스와 이름이 같아서 제겐 의미가 커요. 스코틀랜드 탐험가의 DNA와 감성을 녹인 이 캠핑 브랜드의 수익이 100억 원이 넘으면 그걸 기념해 이 벤네비스를 오픈할 생각이에요.


위스키를 구매하기 좋은 나만의 스폿이 있나요?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에 있는 세계주류마켓은 성지라 불리는 곳이에요. 4000평(약 1만 3200m2) 부지의 수납고에 가득 쌓인 술병이 정말 인상적이에요. 이곳에 가면 희귀한 위스키부터 처음 보는 리큐어, 와인까지 정말 다양한 술을 만날 수 있어요.


위스키는 돈이 꽤 드는 취미인 것 같아요. 지갑 사정은 괜찮나요?

외제 차 한 대 값에 맞먹는 금액을 투자한 것 같아요. 그래도 비싼 취미라고 생각 안 해요. 주류라는 취미 중에서는 와인이 최고 금액대를 자랑하고, 그저 소주를 마신다고 해도 그 정도 금액은 썼을 것 같아요. 위스키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비싸다고 반드시 맛있다는 법은 없다는 거예요. 취향도 가격대도 다양하니 재정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고르면 돼요. 그래서 저의 지갑은 아직 괜찮습니다.


위스키는 마시는 잔도 중요하다고 하던데, 가장 좋아하는 글라스가 있나요?

저는 쇼토쿠 글라스를 가장 좋아해요. 호리병처럼 생긴 글라스 바닥에 뿔 형태의 구조물이 솟아 있는 특이한 형태죠. 여기에 술을 담으면 두 번 놀라게 될 거예요. 처음엔 위스키 위로 살짝 솟은 뿔이 주는 미감 때문이고, 두 번째는 뿔 형태 덕분에 산소와의 접점이 많아지면서 위스키 고유의 향취가 극대화되기 때문이에요. 열전도율이 좋아서 손에 들고 있으면 위스키에 체온이 전달되어 위스키의 캐릭터가 더욱 분명해지기도 하고요.


정말 얇으면서도 웬만해선 깨지지 않을 것처럼 감촉이 단단하네요.

이 잔을 만든 쇼토쿠는 본래 전구를 만들던 회사라고 해요. 그래서 이런 질감의 잔을 만들 수 있는 거죠. 이런 잔은 입술에 닿을 때 감촉이 가볍고 기분이 좋아요. 술맛을 즐기는 데 기쁨이 더할 수밖에 없는 거죠.


위스키 잔도 취향을 타나요? 

물론이죠. 저는 위스키를 마실 때 캐릭터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게 좋아요. 반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 에너지를 한번에 확 끌어 쓰고 다음 날 기절하듯이, 위스키 역시 향을 한번에 극대화시키면 이후엔 발향이 오래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요.  향을 조금 오랫동안 즐기는 걸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헤리터 월글래스’를 추천할게요. 입술에 닿는 감촉은 쇼토쿠 글라스만큼 좋지만 열전도율이 낮아서 위스키의 향취가 한번에 발산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위스키 맛을 더욱 깊게 해주는 음식은 없을까요?

초콜릿과 담배 같은 것이 위스키 맛을 더 깊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죠. 저는 음식을 준비하는 게 너무 귀찮고, 그냥 집에서 넷플릭스 보면서 가볍게 위스키만 한 잔 하는 게 좋아요.


대개 취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깊이가 더해지기 마련인데요, 본인의 위스키 취향에도 진화사가 있나요?

저는 ‘셰리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글랜드로낙과 글렌모렌지를 특히 좋아했어요. 제겐 그 맛과 향이 마시기 편하고 권하기도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다음은 자연스레 캐릭터가 더 강한 술로 옮겨 갔어요. 피트 향이 부드럽게 코끝을 치고 목을 타고 내려가는 오반 14년이 시작이었죠. 이 위스키의 생산지가 스코틀랜드와 영국 본토를 잇는 항구도시 아일러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드럽고 섬세한 위스키를 좋아하던 이가 ‘오반’이라는 배를 타고 강렬한 스카치위스키의 세계로 넘어가도록 돕는 역할을 한 셈이에요. 그다음엔 게일어로 ‘폭풍’을 뜻하는 아드벡 코리브레칸과 만나게 됩니다. 묵직하고 스모키한 데다 약간의 짠맛이 느껴지는 위스키예요. 맛이 혀에 남는 시간을 뜻하는 피니시도 긴 편이에요. 저는 요즘 이렇게 터프하면서도 위스키 자체의 맛과 향이 강렬한 것에 빠져 있어요.


약 10년 간의 위스키 여행 중 최고로 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탈리스커 25년이요. 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최근들어 구하기가 무척 힘들어진 술이에요. 10년간 딱 세 번 마셔봤는데 그때마다 감탄했죠. 첫맛은 피트하고 강렬하다가 갑자기 짠맛이 등장해요. 그다음은 단맛이 나고요. ‘단짠’을 어느 정도 반복하다가 서서히 그 맛이 사라지는데 15분 동안이나 이어져요. 그 밸런스와 여운을 잊을 수가 없네요.


역시 오래된 위스키일수록 맛있는 모양이에요.

아니에요. 아는 형과 친구들이 글랜파클라스 40년을 맛보여준 적이 있어요. 굉장히 값비싸고 귀한 술인데… 그 맛은 기억이 잘 안 나요.(웃음) 그러니까 위스키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은 결국 맛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자리에서 취향에 꼭 맞는 걸 마시는 건가 봐요.


오늘은 어떤 위스키를 마실 건가요?

이 인터뷰가 끝나면 소파에 반쯤 누워서 글렌파클라스 105 cs를 마실 거예요. 오늘은 왠지 그게 어울릴 것 같은 날이에요.

Tips

전주홍이 추천하는

위스키 바 호핑 스폿

1.
클래식한 서재 📚 분위기에서 지인들과 함께 다양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르챔버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55길 42 지하 1층

2.
경복궁 인근 작은 골목 안에 위치해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의 혼술하기 좋은 🥃코블러.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사직로12길 16

3.
위스키 종류가 방대하고 바텐더의 지식이 📖 풍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몰트바 배럴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로104길 10 2층

4.
마치 재미있는 친구네 집에 🚪 놀러간 듯 유쾌하고 자유롭게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모티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669

5.
경주 대릉원 앞에 위치, 천 년의 🕰 시간을 눈으로 담아내며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스틸룸

경상북도 경주시 중부동 원효로 87

Editor
Park Min-jeong
|
Photographer
Hoon Shin
|
Date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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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한혜인은 퇴근 후 칵테일 만드는 기록가로 변신합니다. 그의 집은 그가 만든 우주를 위한 작은 실험실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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