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로 세상을 채우는 수집가
48

씨앗을 돌보는 마음

  • collector
  • plant

입춘이 지났다. 허리를 곧게 펴게 하는 훈풍과 눈을 지그시 감게 하는 햇빛이 산과 들, 가로수와 화단에 드리워진다. 그러자 만물이 생동하기 시작한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라는 우주의 신호가 아닐 수 없다. 김지안은 그 방면의 전문가다. 이미 식물 레이더를 켠 지 5년째. 집 안에 차린 화원이 그의 숙련도를 말해준다. 베란다에 심은 꽃씨 몇 알로 시작해 이렇게 거실과 부엌과 반대쪽 베란다까지 숲을 이룬 것을 보라. 김지안은 식물을 당연하게 잘 키우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저 자주 안부를 물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당신도 한번 그렇게 식물에 귀 기울여보라고 권한다. 

튤립러버/ 김지안

매년 구근 300개를 심는 튤립 애호가

주요 장비
카마사 원예용 가위, 하이포넥스 영양제
본업
그림책 작가
특징
타고나길 꼼꼼한 타입은 아니지만 후천적 경험 데이터로 노력하는 은근한 계획가
화훼 매장을 돌며 식물의 계절 안부 확인하기


와, 거실에 식물이 정말 많아요. 화원이 따로 없네요! 

화분이 200개를 넘은 뒤로는 세어보지 않았어요. 새 화분이 생기기도 하고 또 떠나보내는 화분이 있기도 하고, 이제는 그냥 일상이에요.


언제부터 식집사로 살았어요?

이전 집에서부터 식집사에 대한 꿈이 꿈틀꿈틀했고요, 이 집에 와서 본격적으로 원을 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남편이 좀 불편해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화분을 계속 날랐죠. 친구들은 저보고 식물 광인이라고 해요.


집이 참 예뻐요. 이 집에 얼마나 살았어요?

이제 5년 됐어요. 입주할 때 인테리어를 싹 새로 하고 들어왔어요. 베란다에 식물등을 위한 레일도 두 줄이나 달았죠. 돌아보면 저는 원래 집 꾸미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결혼 전 자취방이나 첫 신혼집도 다 제가 페인트칠하고 조명 바꾸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서 제가 살던 집은 나갈 때 세입자가 빨리 구해졌어요. 이사 나갈 때 집주인이 고맙다며 선물을 준 적도 있어요.


곳곳이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거실 말고 베란다에도 식물이 많은데 구분해서 두는 기준이 있나요?

실내외 온도 차이가 큰 겨울에는 되도록 실내에 화분을 두는 편이고요. 일반적으로 실내에는 성향이 무던한 것, 그러니까 그늘에서도 잘 생장하는 열대식물을 두고 햇빛, 바람이 필요한 것은 베란다에 둬요. 실내 온도는 20℃ 내외, 습도는 50~60%를 지키려고 해요. 온습도기를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항상 체크하고, 공기 순환을 위해 선풍기도 돌려요. 지금 베란다에 튤립이 좀 폈어요. 나가서 보실래요? 아쉬운 게, 지난해에는 정말 하나하나 다 예쁘고 풍성했는데 올해는 제가 조금 덜 심기도 했고 한 번 물을 잘못 준 적도 있어서 지금 핀 게 많지 않아요. 그렇지만 귀해요. 예뻐요. 


물 주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요. 하루 루틴이 어때요?

저는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편이에요. 새벽 3~4시쯤? 전생에 농부였나 싶을 정도로 저녁 9시만 되면 자야 하고 이른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져요. 사위가 고요한 가운데 거실 작업대로 가서 아침 작업을 하는 게 저의 첫 번째 일과이고, 오전 9시쯤 아침밥을 먹고 식물에 물을 주죠. 가급적 한 시간 안에 끝내려고 해요. 거실 30분, 베란다 30분 이렇게요. 그리고 이른 오후까지 다시 작업을 하다가 틈날 때 식물 손질도 하고 영양제를 주고 화분을 가꿔요.


매일 물을 주나요?

아뇨. 식물 종에 따라 상태를 봐가면서 얘는 줘야겠다, 너는 내일 줘도 되겠다, 이런 판단을 해요. 식물과 함께 산 지 5년이 되니 나름 쌓인 데이터가 있죠. 물을 줘야 할 때를 확인하기 쉬운 방법은 겉흙을 보는 거예요. 보슬보슬하게 흙이 날릴 정도로 말랐을 때 물을 준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그리고 화분을 들었을 때 가벼운 것에 물을 주고요. 매일 하다 보면 그 미묘한 중량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죠.



이 정도 규모의 식물을 5년이나 유지하다니 놀라워요.

가드닝에 관한 정규 강좌나 강의를 수강한 적은 없는데 매일 들여다보면 저절로 배우는 것들이 있어요. 이건 어디서 왔구나, 지금 뭔가 불편하구나 알아차리고 정보를 찾아보고 따라 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요. 올해 처음 강좌를 하나 신청했어요. 야외에서 식물 키우는 법에 관한 강좌인데, 지금은 아파트에 살지만 언젠가 전원주택에 살면서 정원을 가꾸고 싶거든요. 


이 모든 식집사 생활의 시작에 타샤 튜터가 있었다는 글을 봤어요. 

첫 단추는 튤립이었어요. 2018년 여름에 타샤 튜터의 책 <타샤의 정원>을 읽고 놀랐어요. ‘이렇게 살아야겠다’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리고 그해 가을에 튤립 구근을 조금 샀어요. 보통 5알 묶음으로 파는데 5종을 샀으니까 25알 정도였죠. 그땐 개화 성공률이 100%였어요.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죠. 매일같이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고 들여다보면서 열정을 쏟아부었으니까요. 꽃이 필 때 그 환희와 희열은 대단했고요. 그래서 더 많이 보고 싶어서 매해 약 200알씩 심었어요.


와, 이제 튤립 전문가가 됐겠네요!

작년에 튤립 심는 수업을 한번 진행한 적도 있어요. 튤립은 싹이 난 후로는 관리하기 쉬운데 거기까지 가기가 조금 어렵거든요. 


어떤 부분을 유의해야 할까요?

구근 상태일 때 물 관리를 특히 세심하게 해줘야 해요. 과습 상태가 되면 구근이 썩거든요. 배수가 잘되는 흙을 쓰는 건 물론이고 겉흙이 충분히 마른 다음에 물을 줘야 하고요. 구근을 노출해 심는 방식도 있는데 그럴 때는 싹이 나는 부분에 물이 들어가면 안 돼요. 만약 그렇게 관리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구근을 깊게 심는 게 좋죠. 


튤립은 언제 심어요?

11월 초에 심고 실내에서 키우면 1월 말이나 2월 초에 꽃을 볼 수 있어요. 10월쯤이면 수입사에서 수입할 튤립 정보를 알리고 예약 접수를 받기도 해요. 저는 용돈을 알토란같이 모아서 그때 마음에 드는 튤립을 구매해요. 저한테는 쇼핑몰의 봄 신상, 가을 신상 다 필요 없어요. 새로 들어오는 튤립 구근이 최고예요. 


튤립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드는 편인가요?

튤립은 한 구근에 한 번만 꽃을 보여줘요. 그래서 매년 사야 하죠. 현 시세로 구근 한 알에 600원 정도 해요. 5알씩 묶어 파니까 대략 3000원에서 비싸면 6000원까지 가죠. 그리고 흙도 사야 하는데 저는 2포대씩 사니까 돈이 또 들어요. 거기다 화분, 영양제까지 새로 준비하려면 금액이 커지죠.


<튤립 호텔>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지난 봄에 출간한 책이죠.

제가 튤립을 키우지 않았다면 이런 책을 내지 못했을 거예요. 튤립을 키운 지 4년 됐는데 이걸로 그림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튤립 품종을 검색하다가 사진 한 장을 본 거예요. 튤립과 그 안에 들어간 멧밭쥐를 담은 사진작가 마일스 허버트(Miles Herbert)의 작품이었어요.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멧밭쥐가 우리 집 튤립에도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뒤로는 즐겁고 꽤 수월하게 이야기를 풀어갔어요. 튤립의 구조와 생리를 곁에서 봐왔고 찍어놓은 사진도 많으니까 레퍼런스를 확인하기에도 그만이었죠.



거실에 관엽식물도 많네요. 식물을 꾸준히 구매하는 편인가요?

한창 화분을 들일 때는 그것 때문에 SUV를 사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어요.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화훼 시장을 정말 자주 다녔어요. 그중에서도 양재 화훼 시장, 파주의 조인폴리아, 일산의 더그린 가든센터, 용인의 남사화훼단지를 손에 꼽아요. 요즘에는 식물을 새로 사지는 않고 시장을 다니면서 식물과 마음속으로 인사만 해요. ‘음, 그래. 나올 때 되니 나왔구나’ 하면서.


식물에도 트렌드가 있다면서요. 극락조같이 잎이 넓은 식물이 유행일 때도 있었고요. 그런 흐름이 느껴지기도 하나요?

글쎄요, 저는 트렌드를 의식하는 사람은 아니라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식물이 있긴 해요. 


궁금해요. 소개해주세요.

마치 폭죽처럼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호주산 아카시아 나무예요. 한 식물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한눈에 반해 최근 한 그루 들였어요. 바람을 맞고 자라는 식물이라 그 환경을 갖추는 게 요즘 저의 과제예요.


이제 막 식물 세계에 눈을 뜬 초보가 키우기 좋은 식물 몇 가지만 추천해주세요.

처음에는 순둥한 식물과 친해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선 스킨답서스는 어떨까 싶은데요. 부모님 집에 가면 냉장고 위에 하나씩 있는 거요. 주방에 있다는 건 햇빛이 없어도 괜찮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성정이 원체 무던한 거죠. 저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살아보려고 해요. 다음으로는 몬스테라! 이것도 생명력이 강해요. 만약 공간이 좀 여유 있고 간혹 외로움을 느끼는 분이라면 몬스테라가 듬직한 친구가 되어줄 거예요. 임이랑 작가가 쓴 <아무튼, 식물>을 보면 ‘추천서는 몬스테라가 써줬으면 합니다’라는 챕터가 있어요. 그만큼 몬스테라는 식집사들에게 가장 후하고 따스한 추천서를 써줄 것 같은 식물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나 튤립이에요. 처음에 물 주는 것만 주의하면 줄기가 위로 쭉쭉 자라서 마침내 꽃을 보여줄 거예요. 그 모습은 볼 때마다 놀라워요. 


그리고 초보에게 단 하나의 팁을 전수한다면요?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면 영양제를 챙겨주세요. 저는 어느 식물에든 두루 쓸 수 있는 것과 개화용 2개를 구비해둔답니다. 또 화분 가까이에 노트와 펜을 두고 언제 어느 식물에 영양제를 줬는지 기록하는 것도 도움이 돼요.



본업은 그림책 작가잖아요. 그 세계로 입문한 계기를 물어봐도 될까요?

만화를 전공했어요. 지금은 웹툰이 뜨거운 시장이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출판 시장은 다 죽었다고 어서 다른 진로를 알아보라고 하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익혀 클라이언트 잡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커뮤니케이션이 고되더라고요. “귀엽고 웅장하게 해주세요.” “클래식한데 세상에 없는 거요.” 클라이언트의 요청이란 게 대개 이런 식이라 나날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내 거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그림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원래 이야기를 짓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주요 기법이 수채화죠. 한 획 한 획 다 그려야 하는데 힘들지는 않나요?

수채화만 고집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다만 제가 지금 재미를 느끼고 제 생각을 표현하기에 좋은 툴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독자들이 제 이야기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식물을 키우면서 저 자신을 더 알게 되었는데, 저는 아날로그형 인간인 것 같아요. 내향적이고 오프라인을 선호하고 물성이 있는 것을 좋아하죠.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건 마치 제 시간을 직접 종이에 쓰는 느낌이라 더 생생한 것 같아요.


식물 키우기도 그 연장선에 있는 즐거움이겠네요.

맞아요. 식물은 저를 기다려주는 법이 없어요. 만약 오늘 무슨 일이 있다면 우리는 약속을 미루거나 조정하겠죠. 하지만 식물은 제 속도만큼 살아요. 그러니까 저는 제 상황과 무관하게 식물을 성실하게 보살피는 책임을 져야 해요. <튤립 호텔>의 멧밭쥐는 사실 제 자신이기도 해요. 튤립이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늘 성심껏 튤립을 돌보는 집사죠. 물론 저는 호텔을 열지 않지만요.


식물을 돌본다는 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성실함, 평온함을 주나 보네요.

가끔 생각해요. 식물이 나한테 먹을 걸 주는 것도 아니고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계속하고 있을까.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런 것 같아요. 식물과 있으면 저 스스로 단단해지고 지켜지는 어떤 게 있어요. 그런 것을 사람들은 힐링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고요. 사실 나와 완전히 동일시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평정심을 얻는 것 같아요. 식물은 고요하지만 사실 매우 강하잖아요. 


집에 돌아가 저도 제 식물과 대화를 해봐야겠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관심 있는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식집사로서의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어요. 근데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에요. 여태 한 경험은 내 것인데 이걸 다른 사람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식물을 키우고 또 보면서 느꼈던 내 생각을 어떻게 활자화할 수 있을까. 책이란 무릇 씨앗이거든요.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건 모두 독자의 영토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그렇다면 나는 어떤 튼튼한 씨앗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요즘 키워가고 있어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완연한 봄인데 꽃 보러 어디 안 가세요?

남의 꽃 보는 즐거움도 크죠. 저는 광양매화축제에 가려고 숙소를 예약해뒀어요. 그리고 경주의 겹벚꽃도 챙겨 보는 편이에요. 서울에서는 망원동 벚꽃길을 찾아 걷습니다. 또 4월이면 서울숲공원에 튤립이 꽤 피거든요. 저는 새벽 5~6시에 서울숲에 갈 겁니다. 그리고 마치 내 튤립밭인 것처럼 아침 햇살이 나무 사이로 들고 튤립 안으로 맺힐 때까지 거닐 거예요.



Tips

김지안의 서가에서 꺼낸 식물을 주제로  🌷사랑스러운 그림책 

🌷<튤립 호텔> 김지안 글/그림

다섯 마리 멧밭쥐가 매일 부지런히 튤립밭을 돌보는 이야기. 튤립이 필 때 호텔 문이 열리고 모두의 축제 같은 향긋한 시간이 흘러나온다.


🌳<나무의 아기들> 이세 히데코 글/그림
그동안 나무만 보며 살아온 이들에게 씨앗의 존재와 그 힘을 보여주는 그림책. 다종다양한 나무의 아기들을 좇는 저자의 사랑스러운 시선에 절로 마음이 커지는 건 물론이다.

🏕️<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글/그림
도쿄에 사는 친구들이 주말마다 디저트 하나씩 포장해 시골로 이사 간 친구를 만나 함께 숲을 거닐며 나누는 이야기. 이들이 주고받는 작은 안부는 따듯하고 큰 힘이 무엇인지 넌지시 보여준다.

Editor
Yoon Solhee
|
Photographer
Hoon Shin
|
Date
2023-05-09

  • 집스터 인터뷰 연관 썸네일 0
    • collector
    • movie-enter
    03

    내 방은 언제나 겨울왕국

    자신이 건설한 디즈니랜드 안에서 만큼은 겨울왕국의 ‘엘사’로 살고있는 ‘모닝23’. 각각의 아이템에 담긴 스토리를 만나보세요.

  • 집스터 인터뷰 연관 썸네일 1
    • specialist
    • plant
    13

    어느 가드너의 겨울나기

    유튜브 ‘더초록’을 운영하는 홍진영 씨의 아름다운 정원과 정원 가꾸기 노하우를 만나봅니다.

  • 집스터 인터뷰 연관 썸네일 2
    • home-tourist
    • plant
    26

    스마트 정원사 말리의 비밀 정원

    스마트한 ‘식집사’를 꿈꾸며 식물의 생장 환경을 연구하는 이연경 씨의 집을 방문합니다.

41
43

로그인하여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로그인
커뮤니티
마이.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