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연말 즈음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니까 요가와 커피를 접목한 스페셜 세션을 운영하시더라고요.
요가 & 커피 세션을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운영했는데, 수련을 마치고 제가 볶은 커피를 내려 드리면서 스토리텔링하듯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건 어떤 커피입니다, 어떤 맛이 나고, 어떤 농장에서 어떻게 가공했습니다’ 하고, 마치 와인처럼요.
정말 와이너리 시음회 같네요.
그래야 마시는 분들이 더 재미있을 테니까요. 공들여 15잔씩 드립 커피를 내리다 보면 방금 한 요가보다 커피 내리기가 더 힘들다 싶을 때도 있어요. 요즘엔 일반 요가 수업 말고 커피와 요가를 접목한 수업만 의뢰가 들어올 정도랄까요.(웃음)
파트너 세아와 함께 제주도에서 일 년 반 정도 요가원을 운영하셨죠. 커피와의 인연도 제주도에서 시작됐나요?
제주도 시골 마을에서 지내다 보니 한가로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원래 매일 보이차를 내려 마셨는데, 차도 누가 어떻게 공들여 내리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더라고요. 차 품질도 중요하지만 물 온도와 여유로운 마음 등이 맛있는 차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차를 내리는 동안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차를 내려 마시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시골 마을에서 별로 할 것도 없고 자연스럽게 ‘커피도 내 손으로 직접 내려 마셔볼까?’ 했던 거죠. 세아가 갖고 있던 각종 핸드 드립 기구를 만지작거리던 게 시작이었어요. 제주도의 유명한 커피숍들을 방문해 이것저것 마셔보고 바리스타들에게 세세한 것까지 물어보고 다녔죠.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방문해 마셔보고 질문한 곳은 어디인가요?
애월에 있는 고토커피바라는 곳에 혼자도 가고 세아와도 자주 갔어요. 마치 성당의 명상 공간처럼 고요한 기운이 감돌았는데, 혼자 바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제주도 시골에 살면 심심할 때도 있고 가끔 답답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 고토커피바에 가서 사장님과 커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라앉은 기분을 떨쳐내곤 했죠. 사장님이 늘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깊이 없는 저의 질문에도 인내심 있게 답해주셔서 커피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런 바이브를 만들 수 있는 오너가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지난여름 서울로 돌아와서도 그런 바이브가 있는 공간을 찾아냈나요?
성신여대입구 부근의 카페 시와라는 곳이 고토커비바와 비슷한 분위기인데, 커피도 맛있고 사장님이 다정하고 따뜻해요. 제가 인상적이라고 느끼는 곳은 사장님이 커피를 정말 사랑하는 모습, 그곳에 온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온 마음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누군가와 경쟁한다거나 자신만을 위한 카페가 아니라, 모두와 나누고 싶어 하는 맛있는 커피, 그런 커피를 내리는 곳이 정말 소중하게 여겨져요.
스스로도 누군가와 커피를 나눌 때 가장 행복한가요?
저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커피를 마신 분이 좋은 반응을 보이면 되게 감사하죠. 한 잔을 내더라도 두세 시간씩 공들여 볶은 커피를 여러 차례 테스트한 뒤 여러 이야기를 곁들여 내거든요. 만약 제가 이미 볶아놓은 원두를 사서 특별한 준비 없이 내린 커피라면 손님이 맛있다고 해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을 것 같아요. 직접 생두를 볶아 커피를 내린다는 건 그냥 커피만 내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커피를 즐기는 과정 중에서도 로스팅에 큰 의미를 두는군요.
커피업계에서는 로스터와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나뉘어 있어요. 커피를 볶는 로스터와 달리 바리스타는 커피를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손님과 이야기하며 접대하는 서비스도 포함된 업이죠. 그런데 저는 혼자 모든 과정을 하다 보니까 궁극적으로 내려 드리는 한 잔의 커피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요.
로스팅을 익히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프라이팬으로 볶기 시작했어요. 커피는 열을 가해 구워야만 메일라드 반응(캐러멜라이즈)이 일어나면서 이런저런 색깔이 나요. 로스팅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모든 면이 균일하게 볶아지면서 속까지 익히되 내가 원하는 적정 포인트에 오일을 배출시키는 거예요. 균형 감각이 중요한 거죠.
저기 존재감 넘치는 로스팅 기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유니온 로스터라고 일본 브랜드인데, 사실 수동보다 자동이 더 편리하고 빠르니까 요즘은 많이 안 쓰죠. 이건 약간 수동 카메라 쓰는 느낌 같아요. 조금 더 감성적이고 재미있죠. 가스 불 위에 올려서 직접 손잡이를 돌리면서 볶는 거예요. 이 침칠봉으로 원두를 뒤적이면서 향을 맡고 색을 보고 소리를 들으면서 로스팅 정도를 파악해야 해요. 로스팅이 끝나면 체에 밭쳐 원두를 식히죠. 저는 보통 300g씩 로스팅해요.
왜 수동 로스터를 선택했는지 궁금해요.
사실 번거롭고 귀찮고 효율은 떨어져요. 제일 큰 자동 로스터로 한 번에 10kg씩 볶을 수 있는 것을 300g씩 볶으면 언제 다 하겠어요. 저는 일단 집에서 쓰면서 공부도 하고 싶고, 저만의 개성을 담은 원두 아이덴티티도 유지하고 싶어서 골랐어요. 나중에 제가 커피숍을 한다고 해도 수동 로스터를 쓰려고요.
보통 어떤 사람들이 이 로스터를 사용하나요? 같은 로스터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특별한 기분이 들 것 같아요.
일단 되게 반갑죠. 일본에도 이것만 쓰는 카페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서촌의 ‘노멀 사이클 코페’라든가 ‘헬카페’ 사장님 역시 초창기부터 이 로스터를 사용했어요. 연희동 ‘라우터 커피’도 이 로스터를 쓰는 걸로 알고 있고, 제가 사는 곳과 가까운 응암동 ‘담대하게 커피 워크’도 마찬가지예요. 공통점이라면 사장님들이 개성 있고 고집스러운 분들이랄까요?(웃음)
자신만의 커피 루틴이 있나요?
매일 아침 컨디션에 맞춰 마시고 싶은 원두를 골라요. 발효된 느낌의 커피가 먹고 싶은 날이면 에티오피아 아즈메리오로 드립 커피를 내리고, 거의 탈 정도로 다크하게 볶은 커피가 당길 때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려 마시곤 해요. 에스프레소로 이 원두를 내리면 되게 진득한 다크 초콜릿 같거든요. 디저트처럼요.
그러고 보니 거실에 테이블이 3개나 있네요. 다이닝 테이블과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테이블, 좌식 테이블까지. 자연스럽게 거실이 3개 존으로 나뉜 것 같아요.
에소프레소 머신은 최근에 마련했는데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부엌에 둘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다이닝 테이블만 있던 거실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두려고 커피 테이블을 새로 들였어요. 핸드 드립은 전자레인지를 올려두었던 상판에서 내려요. 아무래도 싱크대 가까운 곳에 두는 게 편하더라고요. 맛있게 내린 커피를 들고 보통 해가 잘 드는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서 마셔요. 좌식 테이블에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마시기도 하고요.
요가와 커피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원두는 무한한 다양성이 있고 로스팅 정도에 따라서도 맛이 아주 많이 달라지거든요. 이 점이 제가 로스팅에 빠져든 계기였어요. 로스팅한 원두와 로스팅한 시간, 화력 세기 등을 다 기록해두는데 완전 과학적이에요. 그래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매력적이더라고요. 저는 요가도 직관이나 감성보다 해부학적으로 접근했어요. 커피도 어떻게 내리면 어떤 맛이 나는지 모든 변수를 이해해서 공부하려는, 그래서 내가 원하는 커피를 내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요가도 커피도 원리와 원칙에 입각해 차근차근 깊게 파는 스타일이군요.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상 다양한 취미를 갖기 어려워요. 또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데, 커피와 요가는 조용한 환경에서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공통점이죠.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요가원도 시끌벅적할 수 있고 커피숍도 번잡할 수 있지만, 오너가 선택해서 공간의 바이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만약 본인의 커피숍을 연다면 어떤 곳일까요?
실제로 4월 중순에 요가원 근처 남가좌동에 핸드 드립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커피숍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33㎡(약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고 기본적으로 동네 기반으로 운영하게 될 것 같아요. 육아하는 분들도 많이 올 것 같은데, 동네 커뮤니티가 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해요.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이야기 나누게 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테이블 배치를 구상하고 있어요.
핸드 브루잉을 전문으로 하려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필터 여과지를 사용하는 핸드 드립과, 물의 양을 정확히 계산하고 타이머와 저울을 이용해 추출 시간과 용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푸어 오버 방식으로 커피를 처음 접했어요. 그래서인지 이 방식으로 커피를 마실 때 원두 본연의 맛과 향이 잘 느껴지더라고요. 또 커피 맛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로스팅에 집중하고 싶기도 하고요. 에스프레소와 브루잉은 너무나 다른 전문 분야인데 한 분야에 더 깊이 집중하려고요. 브루잉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건 이상적이지만 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휴식의 순간을 잃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취미였던 요가가 본업이 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하나에 오래 집중하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 점에서 커피 역시 혼자서 수련하듯이 공부하고 연습하기를 반복하면서 제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커피에 대한 지식의 깊이가 생기면서 요가를 안내할 때도 더 자신감이 생기고, 수련하고 수업하는 시간에 더 활력이 생겼어요. 커피는 여전히 저의 유일한 놀이이자 재미를 주는 요소예요.
곧 커피숍을 운영할 브루어로서 요즘 국내 커피숍의 어떤 흐름을 눈여겨보나요?
로스팅과 추출 방법, 매장 분위기, 서비스, 마케팅 등 모든 것이 각자 개성이 있는 것 같아요. 손님들도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각자의 개성과 스타일에 맞춰 본인이 원하는 커피숍을 찾아가고요.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미국 커피 문화가 인기를 끈 다음 한 5~6년 전부터는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문화가 크게 각광받더니 요즘에는 조금씩 북유럽 커피 문화가 국내에 들어오더라고요.
북유럽 커피가 뭐예요?
몇 해 전부터 북유럽에서는 차처럼 가볍게 마시는 ‘티라이크tea-like’라고 하는 커피가 유행하더라고요. 꽃향기가 나고, 원두를 되게 가볍게 볶은 그런 느낌의 커피예요. 메뉴에 하나 정도는 꼭 티라이크 커피가 등장하더라고요. 코펜하겐에 ‘커피 컬렉티브’라고 있는데, 한국에도 얼마 전에 이런 덴마크식 커피가 들어왔어요.
가볍게 볶은 라이트 로스트의 특성은 무엇인가요?
고기 굽는 것에 비유하면, 고기를 레어로 구워서 고기 맛을 잘 느끼게 하는 것과 비슷해요. 너무 바싹 익히면 고기 맛을 잘 못 느낀다는 거죠. 채소도 그 맛을 온전히 느끼고 싶을 때는 아주 살짝만 익혀서 먹잖아요. 다크 로스팅이 직화식으로 구운 고기라면 라이트 로스트는 간접 화식으로 살짝 익힌 채소 같아요. 각자 장점과 특징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연하지만 향미는 충분히 발현된 라이트 로스팅이 주는 안정감을 좋아해요.
앞으로 어떤 커피숍이 살아남고, 새로 생겨날 거라고 보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커피는 점점 더 전문화될 것 같아요. 커피 중에서도 브루잉을 정말 잘하는 커피숍, 에스프레소를 잘하는 커피숍, 에스프레소 중에서도 우유가 들어간 밀크 베버리지를 잘하는 커피숍, 이런 식으로 전문화되고 개성이 뚜렷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취미 생활로서의 커피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가까운 동네 카페에 가서 궁금한 걸 하나씩 물어볼 것을 추천해요. 커피를 좋아하는 카페 주인이라면 자기 분야에 대해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반가워할 거예요. 그렇게 질문하다 보면 공부가 되면서 관심 영역이 확장됩니다. 저는 그랬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