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묵 쿠키가 딱딱해요. 보이차에 담갔다가 드세요.
오, 자전거 여행자다운 팁인데요?
정묵 아유, 그런 거 아니에요. 근처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샀는데 그렇게 먹으니 맛있더라고요. 자전거 여행은 2014년에 떠났다가 2016년에 돌아왔어요. 벌써 한참 전 얘기죠.
자전거를 3년간 탄 거예요?
정묵 전체 기간으로 보면 그렇지만 중간에 잠시 쉬었어요. 처음에 3개월 정도 일본 여행을 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재정비했거든요.
부족한 장비를 사고 자전거 수리를 하는 기간이었나요?
금악 자전거보다는 사람 정비에 가까웠어요. 자전거 타는 것 말고도 할 줄 아는 게 좀 있어야겠더라고요. 저는 재봉이랑 미용을 배웠어요. 접이식 자전거 가방 제가 만든 거예요. 커트를 배우고 나서 남편 머리는 쭉 제가 잘라주고요. 남편은 제빵을 배웠어요.
정묵 일본 남부에 미야자키라는 도시가 있어요. 그곳에서 비를 피해 자전거를 세워놓고 갓 나온 식빵을 사 먹었는데 그게 엄청나게 맛있었어요. ‘이런 빵은 한 번쯤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 돌아와 1년간 교육을 받았죠.
여행할 땐 하루에 얼마나 이동하나요?
정묵 최대 100km 정도인데, 접이식 자전거 특성상 멀리는 못 가요.
금악 자전거뿐 아니라 저희 성격도 그래요. 가다가 좋은 데 있으면 옆길로 새요.
세계 여행을 했는데 빠진 대륙이나 나라도 있나요?
정묵 간 데를 말하는 게 더 빠를걸요. 말이 자전거 세계 여행이지 그냥 자전거로 이동하는 유럽 여행이었어요.

‘최강부부’라는 닉네임만 봤을 때는 지치지 않고 긴 거리를 달렸을 것 같은데요.
금악 그건 저희가 최 씨와 강 씨여서 붙인 별명이에요. ‘최고로 강하다’가 아닙니다.
처음에 자전거 여행을 꿈꾼 계기가 있었나요?
정묵 중학생 때 드라마 <사춘기>를 보고 나서예요. 춘천에 사는 고등학생이 여름방학 숙제로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는 내용이 나왔어요. 그때부터 쭉 해보고 싶었어요. 모험과 낭만이 있는 여행처럼 보였거든요.
본인들은 모험과 낭만이 있는 여행이었나요?
금악 모험이었죠.
여행한 내용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기록했나요?
정묵 여행 초기에는 매일 그날 있었던 일을 모조리 기록했어요. 이동하고 텐트 치고 저녁 먹고 나면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정리했어요. 고개를 돌려보면 금악은 늘 자고 있었고요. 기록은 다음 여행지인 영국에서 멈췄어요.
왜 기록을 멈췄나요?
금악 내리막을 달릴 때 였어요. 넓은 풀밭에서 검은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몸통에 흰 벨트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와, 저 소 좀 봐!” 하고 감탄하는데 남편은 땅만 보면서 자전거를 타더라고요. 나중에 아까 그 소들 멋지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무슨 소냐고 되묻더라고요.
정묵 벨티드 갤러웨이라는 소였는데, 그때 그런 걸 볼 틈이 없었죠. 여행 초반엔 계산하느라 머리가 아팠어요. 어디까지 이동하려면 몇 킬로미터 속력으로 달려야 하는지 계산해야 했거든요. 한참 뒤에 알았어요. 매일 얼마나 이동하는지보다 뭘 하면서 그 시간을 즐기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요.
금악 정묵은 여행 전과 후가 가장 많이 바뀐 사람이에요. 원래는 계획을 세워놓고 무조건 지키려는 강박이 있었어요.
여행 전 어떤 직업이었는지 궁금한데요.
정묵 아웃도어 매장 점장이었어요. 여행을 하다 보니 계획에 집착할 수가 없더라고요. 달리다가 좋아 보이는 데가 있으면 들러야 하고, 잠시 들렀다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기도 하고. 웜 샤워스 약속이 있을 때만 빡빡하게 움직이고 그 외에는 여유 있게 움직였어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나요?
금악 아예 창녕에 일자리를 구했어요. 전 우포늪에 사는 멸종 위기 생물 사육사예요. 따오기 먹이를 주고 번식기에는 인공으로 새끼를 키워요. 안정적인 직장이죠.
웜 샤워스 얘기가 궁금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정묵 자전거 여행 관련 책을 많이 읽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알게 됐어요. 웜 샤워스는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무료 숙박 시스템이에요. 여행자가 이동하는 지역의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내 숙박을 신청할 수 있어요.
금악 영국에서 처음 웜 샤워스를 이용해 봤어요. 히드로 공항에 내려 바로 호스트 집으로 갔죠. 이후에도 영국에서만 웜 샤워스로 열 집에 머물렀어요.
웜 샤워스를 이용하면 호스트 일정도 맞춰야 하고 남의 집이라 마냥 편하게 지내기는 어렵잖아요. 계속 웜 샤워스를 이용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금악 처음에는 숙박비를 아끼려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계속 이용하다 보니 매력이 있더라고요. 로컬 사람들과 같은 집에 지내면서 생활해보는 거죠. 이 사람들은 난방은 뭘로 하는지, 뭘 덮고 자는지, 뭘 먹고 어디서 물건을 사는지 알아가는 것도 모두 여행이니까요. 유럽에서 캠핑, 우핑(WWOOFing: 농가의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스테이), 웜 샤워스를 번갈아 했어요. ‘따뜻한 샤워’는 자전거 여행자를 정말 살아나게 해요.
정묵 웜 샤워스 호스트는 대부분 자전거 여행을 해본 사람들이에요. 자전거 타기 좋은 루트를 잘 알고 있죠. 즐겨 다니는 자전거 길이나 루트를 물어보면 신이 나서 알려줘요.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음 웜 샤워스 호스트가 나오고요. 추위를 피해 급하게 들어간 맥도날드 매장에서 만난 한 웜 샤워스 호스트가 저희 자전거만 보고 루트를 짜준 적도 있어요. 덕분에 국립공원을 방문해 판타지 영화에 나올 법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어요.
웜 샤워스 게스트로서 좋은 경험을 한 것과 호스트를 하는 일은 또 다를 것 같은데요. 금금금악 웜 샤워스 게스트로 저희가 너무 큰 혜택을 누렸어요. 여행 중에 제가 갑자기 아파서 급하게 입원하고 수술까지 했는데 적어도 3개월은 자전거를 타면 안 된다는 처방을 받았어요. 일단 퇴원하고 캠핑장에서 쉬고 있었는데 스코틀랜드에서 저희를 재워 줬던 웜 샤워스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어요. 사정을 듣더니 자기 집에 와서 몸이 회복될 때까지 쉬라고 하더라고요.
정묵 부부가 노후에 살려고 마련해 둔 3층짜리 저택이었는데 그 집을 관리하면서 세 달을 지냈어요. 그곳에서 3개월을 지내며 몸을 회복한 덕분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유럽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고요.
금악 여행 도중 크리스마스 무렵에 그 집에서 또 초대를 했어요. 다시 3개월을 지냈죠. 그러니까 총 6개월을 그 집에서 지낸 거예요. 스코틀랜드 펍 문화도 보고 크리스마스 시즌도 경험하면서요.
그럴 때 그냥 ‘나는 참 운이 좋다’ 생각하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어요.
금악 제가 그 호스트에게 물어봤어요.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그분들도 이전 호스트에게 빚진 걸 갚는 거래요. 우리도 한국에 돌아가서 자전거 여행자를 도와주면 된다고요. 지금 저희가 자전거 여행자를 먹이고 재우는 건 그때의 고마움을 갚는 일이에요.
정묵 자전거 여행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여행자의 마음을 알아요. 서로 그 마음을 나누는 게 정말 좋아요.
몇 명이나 이 집에 들렀다 갔나요?
정묵 50팀 정도? 가족, 커플, 혼자 등등.
금악 2017년에 창녕으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요.
창녕은 두 분의 고향인가요?
정묵 아니에요. 둘 다 창녕에는 연고가 없어요. 터키에서 여행을 끝낼 무렵, 아는 형이 한국에 돌아오면 창녕에 있는 집 수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수리 기간 동안 그 집에 살았는데, 그때는 방에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없고 화장실도 없어서 마을회관까지 가서 썼어요. 공사를 마친 뒤 미국 여행을 다녀와서는 아예 이곳에 눌러살았어요. 웜 샤워스 호스트를 시작하며 외양간을 고쳐서 수도랑 전기 시설 넣고, 손님은 텐트 치고 자고.
금악 이 집이 낙동강 자전거 길에서 가깝거든요. 자전거 타고 오기 좋은 위치예요.
웜 샤워스 신청 메시지를 보고 사람을 고르기도 하나요?
정묵 제가 정 바쁘면 사정을 얘기하고 거절하지만, 그 외에는 다 받아요.
같이 지내기 불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올 수도 있잖아요.
금악 사람마다 성격은 다 다르지만 자전거 여행자의 공통점은 악의가 없다는 거예요. 아주 가끔 부담스러운 스타일의 여행자가 오면 더 지내다 가라는 권유는 안 해요.
정묵 제가 집에서 게스트와 소통을 하다가 피로도가 높아지면 호스팅을 잠깐 멈추기도 해요. 좋은 컨디션일 때 게스트에게 더 잘해 줄 수 있으니까요.
문화 교류가 아닌 공짜 숙박을 바라고 온 사람이라면요?
금악 웜 샤워스의 목적 자체가 무료 숙박이니까 그것도 이해해요. 제가 게스트였을 때 태도도 돌아보면서요. 저희는 철없고 먹성만 좋은 손님이었어요. 그때 한 행동에 호스트가 불편했겠다 생각하면 부끄럽고 후회도 돼요. 그래서 게스트의 행동을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해요.
음, 그럼 뭘 훔쳐 가는 사람은 없나요?
정묵 한 번도 없었어요. 우리 집에는 훔쳐 갈 게 없어요. 그리고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오렌지 하나도 짐이에요. 떠나는 길에 간식을 챙겨줘도 거절하는 사람이 많아요.
종종 게스트와 식사도 같이 하나요?
정묵 우리 식사 챙기면서 같이 먹는 거죠. 상대의 특징을 사전에 파악해 둬요. 술을 먹는지, 채식을 하는지, 낯선 음식에 거부감은 없는지. 야채 카레, 부추전, 팬케이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치킨에 맥주를 권하기도 해요. 노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면 마을 행사에 같이 참여해 자연 재료로 조형물 만들기도 하고, 사물놀이나 가야금 연주도 구경하고, 동네에 당구를 치러 가기도 하고요.
동네 어르신들이 낯선 외국인을 불편해하지 않나 봐요.
금악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어요. 워낙 외국인 볼 일이 없는 동네였으니까 무서워하시더라고요. 하루는 아예 저희에게 “외국인들 이제 고마 안 오면 안 되나”라고 얘기했어요. 어르신께 설명드렸죠. 저희가 자전거 여행할 때 빚진 친구들이라고. 한국인은 빚지고는 못 살잖아요.

이제는 동네에서도 자전거 여행자를 환영하나요?
금악 이제는 길을 헤매는 외국인을 보면 어르신들이 나서서 우리 집으로 안내해 주세요. 몇 번 행사를 함께 해보니 재밌었나 봐요. 우포늪에 놀러 온 외국인을 무작정 우리 집에 데려온 적도 있어요. 설명을 듣고 서로 황당해하며 한바탕 웃었죠. 지금은 그만큼 여행자를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