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함께 셰어 하우스 형태로 살고 있네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월세 부담을 줄이려고 친구와 지내기 시작했고, 이후 집을 조금씩 넓히면서 남는 방을 작업실로 빌려줬어요. 공동 생활은 즐거움과 불편함이 공존하는데, 일단 사람들과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교류할 수 있어서 좋아요. 물론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하고 혼자 살 때보다 부지런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점이 프리랜서 생활에 긴장감을 줘서 좋은 것 같기도 해요.
함께 사는 분들과 취향은 잘 맞나요?
구성원들이 친구나 지인이어서 아무래도 취향은 많이 비슷한 편이에요. 모두 독립 출판 관련 일을 하거나 시각예술 작업을 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보통 함께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대부분 각자 방에서 작업에 집중합니다.
집과 작업실이 공존하는 셈인데 그 경계를 어떻게 구분 짓나요?
사실 저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최대한 집을 작업실처럼 꾸미려고 갖은 노력을 하죠. 종종 인테리어를 바꿔보기도 하고요.
작가님 유튜브 중 룸 투어 브이로그가 특히 반응이 좋던데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공간이다 보니 영상으로나마 제 작업실을 볼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틈틈이 작업실 브이로그를 업로드하는데 사실 고민이 되긴 해요. 제가 인테리어 전문 유튜버는 아니니까요. 한편으로는 독립 출판 외 분야에서 저를 알게 되는 분들이 생겨 반갑기도 해요.
현재의 집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전에 살던 집에 비해 넓은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채광이 좋은 것도 한몫했죠. 연남동은 예전에 살아본 동네라 친숙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경의선숲길이 바로 곁에 있어서 산책하기 좋아요.
창작을 위한 작업 환경은 어떻게 만드는 편인가요?
저는 작업할 때 음악을 듣지 않아요. 최대한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하는데, 사실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계속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거죠. 저는 이른 오전보다는 늦은 오후나 저녁에 일이 잘되는 편이에요.
애착이 가는 가구가 있나요?
도면함이요. 8년 전 작업실을 구하면서 처음 산 가구예요. 여행하면서 모은 수집품이나 작업 도구, 종이 등을 보관할 수 있어서 유용해요. 나름 칸마다 역할도 달라요. 첫 번째 칸에는 분류하기 좀 애매한 물건을 넣어두죠.
여행 수집품은 어떻게 분류하나요?
남들이 보기에는 정리가 전혀 안 되어 보이지만 제 나름의 분류 방식이 있어요. 대체로 다녀온 곳과 시기별로 큰 봉투에 모아두죠. 정확하게 딱 나누는 건 아니지만, 대략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해 두는 편입니다. 여행의 단상을 책과 그림, 굿즈, 심지어 유튜브까지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로 만들고 있어요. 여행을 떠나면 가능한 선에서 일단 자료와 물건을 모아요. 눈길이 가는 물건을 수집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고 그림이나 글로 기록을 남기는 식이죠.
그럼 특정 작업을 염두에 두고 여행을 떠나나요?
대략 구상은 하지만 구체화된 상태로 떠나지는 않아요. 여행에서 어떤 순간을 만나게 될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제가 계속 여행을 주제로 작업하게 되니 차츰 어떤 것은 꼭 수집하거나 기록해 둬야겠다는 감이 올 때가 있어요.
왠지 빡빡한 스케줄로 여행을 다닐 것 같은데요.
여행 계획을 세우는 걸 좋아해요. 막상 현지에서는 계획대로 다니는 게 아니지만요. 마음에 드는 곳에 갔을 때는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편이라 활동량으로 치면 빡빡하게 다니는 유형이긴 하겠네요.
현지에서 수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기준을 두지는 않아요. 마음이 가고 시선이 머물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기록하거나 구입하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은근히 종이가 많이 생기잖아요. 명함이나 브로슈어, 티켓 같은. 그렇게 제가 주로 수집하는 종이류는 수집 난이도가 굉장히 낮은 것들이에요. 비싸지도 않고 가져오기도 간편하고요.
그런 종이를 콜라주한 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전공이 회화인데 졸업 무렵 디자인과 수업을 진짜 많이 청강했어요. 그중 타이포그래피를 배우고 인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책을 만드는 편집 디자인 수업이 있었죠. 그때 ‘책은 평면이 아니라 하나의 오브제이고 물성이 있다’는 교수님 설명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종이의 질감, 판형 같은 책의 요소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게다가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좀 더 자유롭게, 해보고 싶은 대로 이리저리 디자인을 시도해본 게 도움이 되었고요.
책 작업에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나요?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의 아트북 를 좋아해요. 여러 종이를 다르게 사용하고 구멍을 내는 식의 디자인 요소가 진짜 딱 제목처럼 밤에 산책을 떠나는 기분이 들게 하죠. 이처럼 책 자체만으로 몰입이 되는 경험이 초반 책 작업에 영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쇼트브레드 다이어리>를 비롯해 작가님이 만드는 책의 형태도 매번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얘기하고 싶은 주제와 가장 잘 맞는 책의 형태에 대해 고민을 해요. 가령 저의 여행 노트를 책으로 만든 <스몰 컬렉팅북>의 경우 제가 실제 여행 노트로 사용했던 것을 그대로 스캔해서 인쇄한 것이에요. 결국 사람들에게 책을 통해 어떤 경험을 전달하면 좋을지를 가장 염두에 두는 것 같아요. 책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타이포그래피나 최소한의 요소는 비슷하게 가려고 신경 쓰고요.
제본이나 재단 등 수작업 방식도 독특해요.
손으로 작업하면 아무래도 제약 없이 제가 구상한 대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요. 독립 출판이니 가능한 선에서 소량으로 만들면 되고요. 제가 꼼꼼한 편은 아니어서 완성도 높게 만들 수는 없어요. 하지만 중간에 별지를 끼워 넣거나 전혀 다른 재질의 종이를 사용해 보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부담 없이 적용해 볼 수 있죠.
책갈피, 엽서, 문진 같은 굿즈도 다양하게 만들었네요.
북 페어에 참가할 때 굿즈를 제작하곤 하는데, 저를 좋아하는 분들과 교류하는 방법이 된 것 같아요. ‘여행자의 책갈피’는 실제 제가 여행할 때 썼던 책갈피를 모아 만든 거라 책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저의 경험을 전할 수 있었죠.
유튜브는 책 작업과는 전혀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촬영해서 영상 편집을 하는 게 재미있기도 했고요. 어떻게 보면 영상 편집도 제가 가지고 있는 소스를 정리하는 것이잖아요. 클립을 배치하고 길이를 정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보면 책 작업이랑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책도 결국 이미지나 텍스트를 배열하는 것이니까요.
최근 서촌에서 <쇼트브레드 다이어리>라는 팝업 전시를 하기도 했어요. 오프라인 전시에서는 어떤 점을 신경 쓰나요?
오프라인 공간에서 진행하는 전시 역시 작업의 연장으로 다가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재료를 책으로 만드느냐, 공간에서 보여주냐는 결국 담아내는 그릇의 차이인 거죠. 책 내용을 공간으로 옮긴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 고민했어요. <쇼트브레드 다이어리>에 등장한 쇼트브레드를 실제로 맛보면서 저의 콜라주 작업을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색다른 경험을 제공했던 것 같아요.
작업 분야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 같군요.
제가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하기에는 그림 작업의 비중이 크지 않고 오히려 책을 만든다든지 영상을 촬영한다든지 콜라주 작업을 한다든지, 이렇게 여행과 경험을 여러 매체로 풀어내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직업에 관련한 호칭이 아닌 그냥 영민으로 불리는 게 어울리기도 해요.
그렇다면 다행이죠. 올해는 저 스스로를 브랜딩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간 중구난방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방향을 잘 잡아서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고 싶어요. 그런데 이게 또 어렵기는 해요. 그러니까 저 스스로를 정의하기에는 아직 하고 싶은 분야가 많고, 앞으로도 이끌리는 대로 작업하게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