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표현하는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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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꽂힌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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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번아웃을 겪은 이현주는 요즘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 중이다. 아직 완충되지 않은 에너지는 소중한 데에만 쓴다. 예를 들면 꽃을 보기 좋게 꽂는 일이나 자신이 살고 싶은 공간을 알아내는 일 등.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집에 머물며 아름다운 꽃을 더 오래 감상할 수 있을까? 이현주는 그 답을 찾는 길 위에 있다. 적극적으로 헤매고 씩씩하게 걸으며.


이현주

다양한 꽃 스타일링으로 공간의 인상을 매일같이 바꾸는 집스터

주요 장비
김장용 비닐 봉투, 신문지, 화병
주특기
프렌치 스타일 꽃꽂이
집스터 일과
꽃 이미지 검색, 화분에 물 주기, 광합성, 일주일에 한 번씩 꽃꽂이
꽃봉오리 치마와 꽃무늬 양말 차림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고요.

전 정말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 이런 인터뷰를 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MBTI로 치면 저는 ‘슈퍼 대문자 I’거든요. 내향형 인간이라 집에 있는 게 좋아요.


슈퍼 I의 집에 초대해 줘서 고맙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에서 초대했어요. 이런 제안을 늘 거절했지만 최근에 몇 번 인터뷰를 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이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돼서 좋더라고요. 그러니 편하게 질문해 주세요.


네, 그럴게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나요?

유튜브 보고,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 계정 둘러보면서 다양한 꽃 이미지를 구경해요. 카트린뮐러파리, 자댕드 에포크, 아트 페트로브, 브론즈블루 같은 계정이죠. 집에 있는 식물을 화장실로 옮겨서 물도 주고요.


대부분 꽃과 관련한 것이네요? 꽃이 왜 좋아요?

꽃의 예쁨은 사람을 홀려요. 매일 다르게 예쁘고요.


이전에도 꽃과 관련한 일을 했나요?

첫 직업은 학원의 언어 영역 강사였어요. 대학교 3학년 때 시작해서 10년이나 했는데 사교육 시스템에 회의를 느껴서 그만두게 됐습니다. 성적을 올려주는 것에 더 이상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 여정을 시작했죠.


어떤 여정이죠?

내가 좋아하는 걸 안다는 것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인데 학교에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오히려 방해만 하죠. 스스로 시간을 내서 내가 좋아하는 걸 알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못 찾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를 몇십 만 원어치 등록했어요. 학교생활처럼 하루 10시간씩 온갖 종류를 탐험한 거죠. ‘내가 요리를 좋아하나? 사진을 좋아하나? 노래인가?’ 하면서요. 꽃과의 인연은 그때 시작됐어요.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꽃꽂이를 해온 건가요?

아니요. 사실 그때 제가 좀 오만했어요. 꽃꽂이 취미반 강좌 두어 개 듣고 나서 더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선생님이 골라준 꽃을 시키는 대로 꽂고 나오면서 ‘이건 그냥 감각의 영역이구나’ 생각했어요. 스스로 감각이 좀 있다고 느꼈고 내가 좋아하니까 언제든 또 하면 되겠지 싶었어요. 어쨌든 그때 꽃꽂이를 배운 덕분에 카페 식물을 관리하는 일종의 플랜테리어 컨설팅을 제안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직업으로 택하진 않았나봐요?

계속 다른 일의 세계가 열렸어요. 커뮤니티 매니저를 했고, 대체육 회사와 공유 주택 회사를 다녔어요. 매번 정말 온 힘을 다해 일했어요. 영혼이 다 털릴 정도로요. 그러다 몇 년 전 우울증에 수면 장애가 왔어요. 번아웃으로 모든 일을 중단해야 했죠. 올해로 3년째 쉬고 있는데 여전히 번아웃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전력 질주를 하다가 숨이 넘어가는 경험을 한 거예요. 에너지가 바닥나도록 썼고 여전히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상태예요. 현재 저에게 에너지는 정말 소중해요. 밖에 나가 아무렇게나 막 써도 남아 있는 그런 게 아니거든요. 소중한 곳에만 에너지를 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쓰는 곳은 어디인가요?

예를 들면 나에게 맞는 집을 찾는 일이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경험이 제게 좋은 자극이 됐어요. 천장 도배도 해보고 페인트칠도 하고 방마다 손잡이도 바꿔보면서 남편과 내가 선호하는 집의 조건을 찾아나갔어요. 예전에 문화센터 강좌 몰아 듣기 하듯이요.


지금 집은 어떤가요? 원하는 조건이 반영되었나요?

저희 부부는 거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거실 구조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 집의 장점은 채광이 좋고,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거대한 마당이 있다는 거예요. 바로 서울숲이죠. 자주 숲 산책을 하면서 앞마당처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럼 꽃꽂이도 마찬가지로 공간에 대한 관심 중 하나였을까요?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꽃꽂이는 한창 자신감을 잃었을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보다 시작하게 됐어요. 예전에 문화센터 도장 깨기 할 때 가장 재미있었고, 또 잘해서 주변에서 반응을 보였던 분야가 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예전에 어설프게 배우다 말았던 꽃꽂이를 아예 정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그래서 2022년도에 큰맘 먹고 청담동 ‘맥퀸즈 플라워 스쿨’ 전문가반 40회 과정에 등록했어요. 수료 후 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에 도전할 생각이었죠.


플라워 스쿨에서 전문가 코스를 공부하고 나니 어떻던가요?

균형을 맞추는 일이 정말 어려워요. 크기와 높이, 질감과 색감을 조화롭게 만들수록 보기 좋은 작품이 만들어져요. 같은 꽃이라도 꽃잎마다 텍스처와 느낌이 다 다르거든요. 여리여리한 게 있고, 도톰한 게 있고, 광택이 나기도 하고요. 뾰족한 풀과 부드러운 꽃잎을 섞으면 조화로워요. 주어진 재료의 성질을 잘 알고 이를 조합하는 과정이 재밌으면서도 어려워요.


본인이 만든 작품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저는 그때그때 있는 재료로 작업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 준 것들이 기억에 남네요. 사무실을 새로 연 브랜드를 축하하기 위해 만든 조각 케이크 모양 꽃꽂이가 있고, 또 하나는 운동 강사의 책 출판 기념으로 만든 케틀벨 모양 꽃꽂이예요.


꽃으로 케틀벨 모양을 만들었다고요?

네. 동그랗게 만든 꽃꽂이에 나무 손잡이를 달아서요. 축하받는 사람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볼 수 있어요. 얼마든지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니까.


오늘의 꽃꽂이가 궁금해지네요. 얘기를 들어볼까요?

제가 좋아하는 프렌치 스타일 꽃꽂이예요.


프렌치 스타일은 어떤 특징이 있어요?

꽃꽂이는 크게 영국식과 프랑스식으로 나뉘어요. 영국식은 정형화,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특징이라면 프랑스식 꽃꽂이는 들판에서 꺾어 온 꽃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하더라고요. 크고, 색대비가 확실하고, 자연스러운.


집에서 꽃꽂이하려면 뭐가 필요해요?

꽃꽂이에는 와이어, 리본, 가위 등 전용 툴이 있거든요. 그런데 집에서 꽃꽂이를 하려면 대체제를 활용하면 돼요. 꽃 시장에 가서 꽃을 사다가 신문지 위에 펼쳐요. 손이나 가위로 잎을 뜯어요. 잎이 물에 닿으면 빨리 썩거든요. 그리고 줄기를 잘라 전체 높이를 맞춰요. 이걸 밑 작업이라고 해요. 아무래도 복잡하고 큰 식물은 집에서 작업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집에서는 거의 꽃병에 꽂는 작업을 해요.


지금 옆에서 지켜보니 생각했던 것처럼 우아한 작업이 아니네요.

어휴, 그럼요. 의외로 강도 높은 막노동이에요. 김장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플라워 스쿨 40회 과정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었나요?

끝났어요.(웃음) 어떤 분야든 어설프게 알 때는 금방 잘할 수 있을 것 같잖아요. 하지만 알면 알수록 하나도 모르겠고요. 수업만 듣고 나면 ‘어서 옵쇼’ 하고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어요.


그래도 수업을 듣고 나서 생긴 변화가 있을까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꽃꽂이를 해요. 꽃 비수기인 겨울에는 그보다 좀 덜 하고요. 제가 꽃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 중이에요.


어떤 고민을 거쳤어요?

스스로 물어봤어요.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팔고 싶은지, 꽃 정기 배송 같은 사업을 하고 싶은지,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지. 다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저처럼 꽃을 취미로 즐길 때의 장단점을 생각해 봤어요.


취미로 꽃을 즐길 때의 기쁨은 무엇일까요?

꽃을 가지고 원하는 대로 구성해 볼 수 있죠. 그 균형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요. 제가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 아닌데도 직접 꽃다발을 만들고 선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동과 보람이 커요.


그렇다면 어떤 점이 아쉬운가요?

꽃 산업 자체를 떠올리면 즐겁지만은 않아요. ‘내가 예쁜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일단 꽃을 인위적으로 키운 다음 잘라서 파는 일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요. 또 꽃다발 만들고 남은 꽃은 일반 쓰레기로 처리하거든요. 이렇게 아름다움을 위해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것을 개선한 꽃꽂이를 하고 싶어요. 특히 꽃꽂이에 쓰는 초록색 블록인 ‘오아시스’는 미세 플라스틱 그 자체라서 저는 가급적이면 꽃병에 꽂는 방식을 추구해요.


올해 제주로 이사가신다고 했는데요, 새로운 집에서 기대하는 일이 있나요?

지금처럼 꽃시장에 가지 않고, 마당에 자란 꽃과 풀로 버리는 것 없이 꽃꽂이를 하고 싶네요. 인위적인 재료가 아닌 제주 자연에서 나고자란 들꽃과 풀 만으로도 멋진 꽃다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Tips

이현주 의 꽃병에 꽃꽂이하는 법

1.
꽃꽂이는 어려운 게 아니다. 어떤 분위기를 내고 싶은지 정한 뒤 꽃과 풀을 산다.
2.
높이와 질감이 같은 식물보다 다양한 종류로 준비해야 느낌이 좋은 꽃꽂이가 된다.
3.
줄기가 단단한 국화나 장미류는 끝부분을 80℃ 정도 되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다. 물 올림이 좋아지도록 하는 방법이다.
4.
주연과 조연을 정한 뒤 주연이 강조되도록 배치한다.
5.
꽃병 입구가 넓다면 투명 스카치테이프로 그리드를 만들고 꽃을 꽂는다.
Editor
Seohyung Jo
|
Photographer
Hoon Shin
|
Date
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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