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집에서의 일상은 저의 것과 좀 다를 것 같은데요.
하루의 시작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이불 위에서 요가를 하고 의식처럼 이불을 개면서 맞습니다. 이 집에는 침대가 없잖아요. 둘 곳도 없고요. 그래서 방 한 켠에 이불을 쌓고 덮개를 만들어 입혀서 정리합니다. 프랑스에서 지낼 때 방마다 침대가 있는 삶을 살면서 침대가 방하나를 다 차지 하며 사는 것은 참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주거형태인 한옥에서 방이란 특정한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방’에서는 이불을 펴면 침실이고 밥을 먹으면 식당이 되지요. 그것은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몸에 익어 있는 정서 같은 것이예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융통성이 있는 태도가 공간으로부터 드러나는 곳이 방이지요. 침대가 없는 방은 잠을 잤던 공간을 정리하고 다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일어나 침구정리를 하고 나면요?
이불을 개고는 집안과 마당의 청소를 하고서 하루 동안 마실 따뜻한 물을 끓여서 보온 병에 넣고, 식사 준비를 합니다. 거의 음악을 틀어 두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집 주변의 소리를 듣는 것이 좋거든요. 주변을 정돈하는 일, 내 몸을 챙기는 행위는 그 주체가 나에 있지 않아요. 집과 내 자신이 서로 보살핌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해요. 집도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서로에게 예의를 지켜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집에 계절과 자연이 깃들어 사는 것이 하나가 되면 알람을 맞추지 않고도 일정한 시간에 일어 나게 됩니다. 집이 나를 깨우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일어나 집의 일과가 시작 되는 것이지요.
한옥의 존재를 그대로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집의 풍경과 소리와 냄새가 자연이 전하려는 정서에 닿아 있는 것이라고 할까요? 계절마다 다른 풍경들이 집에 깃들어요. 계절마다 빛이 대나무 사이로 비추어 그림자를 만들며 하늘거리는데 그게 마치 음악 같아요. 겨울에 마당으로 천천히 눈이 내려 앉는 장면을 보면 '고요'의 진짜 의미를 보여 주는 것 같고요. 아마도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철학은 계절의 장면들로부터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옥이 우리에게 건네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연이 깃든 집에서 인간의 몸과 정신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무쇠 솥에 하는 밥이 다 되었다는 것을 기계가 아니라 냄새를 맡아 아는 것 같은 일상을 보내는 거죠. 말하고 보니 굉장히 원시적이네요. (웃음)
언제 가장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 지나요?
여름이예요. 자연이 가장 기운이 차 오를 때 저도 기운이 넘쳐요. 요즘은 여름이 빨리 시작되니 사실 긴 더위의 끝에는 지치는 일들이 있지만 봄에 꽃이 필 때 잠자던 몸이 깨어나는 것을 꽃나무들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땀을 흘리는 여름이 되면 온 몸이 달구어지듯 모든 에너지가 안에서 솟아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할 것 같은 힘이 나요. 또 그렇게 활동을 하고요. 그 힘으로 가을까지 이어갑니다. 겨울은 겨울잠을 자는 계절이예요. 나무가 겨울에 앙상한 이유는 잎을 떨구어 나무가 가진 수분을 다 없애야만 겨울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수분을 머금고 있으면 추운 날엔 얼어버릴 테니 몸을 가장 건조한 상태로 만드는 거예요. 제 몸도 그렇게 하길 원한다고 느껴요. 겨울에는 조용히 공부하거나, 나를 성장하게 하는 일을 조용히 준비합니다. 다시 봄이 되고 온기가 돌고 나서야 비로소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멋진 삶 같아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집에서 계절을 오롯이 느끼고 살기가 어렵잖아요.
저야 9년을 한옥에 살았지만,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니 삶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겠지요. 다만 저는 ‘오랜 시간 땅을 딛고 살아 온 삶은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 ‘우리가 마당을 잃고 사는 삶이 앗아간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싶어요. 아파트를 편리한 삶으로 생각하지만 우리가 마당과 땅을 잃고서 ‘집’이라는 문화 유산을 함께 잃었어요. 모든 삶은 주거에서부터 시작되고 사는 일은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니 거기서 지혜가 생기고 그 지혜가 양식을 만들기 때문이지요. 오랜 시간 땅을 딛고 살며 쌓아 온 지혜의 유산을 송두리채 잃고 사는 것이 사실 아파트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다시 집의 의미를 이해하고 찾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집을 가꾸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편리한 삶과 맞바꾸며 놓친 가치와 삶이 무언지 한 번쯤 생각 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에서는 뿌리를 찾을 수 없을까요?
그 뿌리가 자기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찾을 수 있죠. (웃음) 우리는 누구인가, 또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인식하는 게 중요해요.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준을 세우는 일은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죠. 할 수 있어요. 자숙과 성찰의 과정이 필요한 것뿐이니까요. 예를 들어,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 본다면, 내가 굳이 어딘가로 나가서 환경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삶의 가치를 지속 가능한 지구의 생태를 지켜가는 것에 마음을 두기로 했다면 자연히 그렇게 살아지겠지요. 플라스틱을 줄여 쓰고, 일회용품을 쓰지않고,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고, 걷게 되겠지요. ‘아름다운 삶’은 결국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과 멀어지고, 내게 중요하고 가치를 두는 생각이 무엇인지 분명하고 뾰족하게 아는 삶이예요.
자신을 찾아 가는 방법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내 삶의 주인이 되려면, 내 확신에 대한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자기 확신을 갖는 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우리 옛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생각과 마음의 결을 알아가려고 노력 했어요. 그것이 제가 ‘뿌리 미감’이라 부르는 것들입니다. 나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내 뿌리의 환경과 정서와 지혜를 이해하고 있다면 그리고 거기서 가치의 확신을 얻는다면 오늘의 삶에서도 더욱 단단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각 개인이 자기다운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수평적 평화를 이룰 수 있어요. 세대, 인종, 성별, 자연의 모든 다름이 동등하게 평화를 이루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삶의 가치에 대해 철학 하게 되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생각하지 않으면 주어진 삶의 조건에 소비되지 않을까요. 해마다, 계절마다 새로운 제품,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버전이 나오고 그걸 소비하게 하지요. 때론 그 변화를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을 때도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자기 판단이 없으면 우리는 그저 주는 대로 받아쓰는 사람이 돼요. 조금은 달라져야 해요. ‘왜’ 를 스스로 묻고 답을 찾기 시작하면 내가 누구인가, 나의 뿌리가 무언인가 생각하게 되고 단단히 자기 판단의 기준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엄청난 삶의 변화가 아닐까요.

‘태도로서의 예술’에 관해 오랫동안 이야기하셨죠. 어떻게 태도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설치미술 작가로 활동할 때, 항상 고민을 했어요. ‘세상에 무슨 이야기를 던져야 하는가’ ,‘나는 작가로서 어떤 주장을 할 수 있는가’ 하고요. 시대적 이슈들, 특히 과잉 소비와 자본주의 폐단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제가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이 그 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것 같더군요. 재료를 소비하고 작품이 끝이 나면 다시 쓰레기로 만들어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어 있는 거예요. 작품 가격이 작가의 질과 수준을 결정 했고, 비싼 돈을 주고 작품을 산 사람들의 자존심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가격이 계속 유지 되어야 했고요. 마치 주식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예술의 행위는 그런 것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를 바랬어요. 내가 하는 예술이 비지니스가 아니라 진짜 예술이 되려면 팔고 사는 행위가 아니라 가장 예술적인 방법으로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방향을 결정하고 그 삶의 방식이 내 작업의 방향과 동일시 되었을 때 비로소 누군가를 설득하고 감동을 주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그 작업은 만들어 내는 오브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오브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마음과 태도라고 생각해요.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 그래서 그 누군가를 감동하게 하고 삶과 목적과 방향에 변화를 주는 것. 저는 그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태도로서의 예술>이라 이름하고 있고요. 그 삶을 통해 이루어내는 결과물은 예술품이 되어 하나의 부표와 같은 과정의 산물이 되겠지요. 그것을 누군가 소장해 주신다면 그 예술적인 삶과 과정에 대한 존중과 지지와 응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예술적 삶’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나요?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을 세상의 기준에 기대지 않고 꿋꿋하게 지켜가는 일이예요. 우리의 뿌리문화가 지켜오던 것은 곧 ‘집’을 기반으로 우리문화의 정신과 유산의 귀함을 스스로 알고 전하는 일에 가치를 두었다면 그 불편을 기꺼이 감당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지요. 저의 경우는 그러했습니다.
기계를 쓰지 않는 것이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작은 집을 효율적으로 누리려면 물건이나 기계를 둘 수가 없어요. 이 집은 한국의 전통 가옥이니 그 집을 통해 누려왔던 것을 똑같이 느끼고 누리려면 그런 조건들을 감당하는 것이 옳겠지요. 그렇게 살다 보면 그 삶이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인 줄을 아는 것이지요. 거기에서 우리 선조들이 누렸던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읽게 됩니다. 그것을 알고 나면 그릇을 빚거나 지리지 그림을 그릴 때 그런 태도를 기억하며 작업을 하게 돼요. 그런 삶을 이해했는데 어떻게 매일매일 한번 쓰고 버리는 휴지를 사용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일회용품을 쓰고 어떻게 배달음식으로 나를 채울 수 있을까요. 삶과 나의 선택은 다른 것일 수가 없어요. 내가 말 하는 것과 내가 다른 삶을 살수가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햇빛이 제게는 참 중요해요. 빛이 언제나 한 가득 드는 것은 아닌데 저는 대나무 사이로 비추어 드는 이 빛이 마치 나를 위로하는 보드라운 손길 같다고 느껴요. 희망 같고, 선물 같아요. 그래서 이 빛을 혼자서 누리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 해요.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이 집의 시간 속에 있고 싶어요. 소유할 수 없는 이 볕의 시간이 있어서 저는 가장 소중한 것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