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 신축 아파트네요. 주택에 사실 줄 알았어요.
사람들이 다들 제가 구옥 단독주택을 고쳐 살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지인들도 제가 속초로 이사를 한다고 했을 때 주택 매물을 소개시켜주려고 했었어요. 공손하게 말씀드렸죠. ‘죄송한데, 저희 아파트 계약했어요.’
강원도 지역으로 주거를 옮기는 이들은 대개 구옥 또는 단독주택에서 사는 로망을 실현하고 싶어하죠.
저는 주택에서 나고 자랐어요. 결혼 전후로도 서울 이태원의 구옥에서 살았고요. 평생 춥게 살았다는 이야기예요. (보일러비가 36만원 나와도 추운 집이었다니까요.) 아내와 함께 속초까지 가서 새로운 삶을 꾸리는데, 또 추운 데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생애 첫 아파트 살이를 시작했어요.
왜 산을 좋아하게 됐나요?
유년시절을 보냈던 지역엔 산이 많았어요. 그래서 산은 익숙한 풍경이죠. 성인이 된 후 잠시 산을 잊고 살다가, 아내가 좋아해서 같이 좋아하게 됐어요. 아내와는 벌써 13년을 함께 했는데요. 자전거라는 공통 관심사로 만나게 된 후 제주도로 자전거 캠핑을 가기도 하며 친해졌어요. 처음으로 하는 캠핑이었는데 정말 잘 맞더라고요. 자전거와 캠핑을 자주 하다보니 자연히 아웃도어 브랜드와 제품에 큰 관심을 갖게 됐죠. 이후엔 산을 오르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자전거, 캠핑, 트래킹을 하면서 담배도 끊게 됐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기위한 체력이 부족할 것 같아 마다하다보니 그렇게 뚝 끊어버리게 됐죠. 몸에서 담배 냄새도 안나고, 정신적으로도 더 건강해진 기분이에요.
아파트 살이는 만족스러운가요?
네. 딱 1년을 살았는데 한 겨울에도 보일러를 한번도 안 켰어요. 겨울에 창문을 열어둬도 전에 살던 집보다 더 따뜻해요. 속초에 올 무렵, 돈을 차곡차곡 모아 구옥을 고친 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해보고 싶단 생각은 했어요. 그래서 주식에 투자를 해보기로 했는데. 아, 그 때가 고점이었어요. 삼전(삼성전자)이 10층이었어요. 하필이면. 지금도 상황은 그렇습니다. 다 같지 않나요?
강원도에 좋은 곳이 많은데, 왜 속초였나요?
집을 고를 때 상징적인 산 아래에 있고 싶었어요.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중에 결정 하기로 했죠. 거래처는 대개 서울에 있으니 한라산과 지리산은 물리적 거리면에서 힘들겠죠. 그래서 설악산과 가까이에 있을 수 있으며 차로 2시간 남짓 거리인 속초가 좋겠다 생각했죠.
산 타는 사람에게 설악산은 중요한 의미인가요?
설악산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로 멋지고, 좋은 산이에요. 최근 암벽등반을 배우면서 암벽으로 올라가봤는데요. 길을 따라 가는 것 하고 암벽 등반을 하며 보는 것 하고 또 다르더라고요. 설악산이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산 중 하나인 건 역시 ‘산’이라는 자연의 매력이 가장 극대화된 곳이라서 일 거예요.
설악산을 제대로 감상하는 진곤씨만의 방법이 있나요?
혼자도 좋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요. 초입에서는 일행들과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간 즈음부터 대화가 없어지고,. 정상가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거든요. 힘들고 땀이 나는 과정이어도 그 과정에서 비로소 산을 호흡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산을 오르기 가장 좋은 때는 언제예요?
산을 타다보면 겨울과 봄 사이에 나뭇잎이 연두색에서 짙은 녹색을 띄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5월 경이죠. 이 때 산을 타면 덥고 힘들어 숨을 몰아쉬다,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확 몰려오는 때가 있어요. 그땐 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면서 일행과 ‘시원하다’고 웃으며 얘기하죠. 저는 그런 순간이 좋아요. 눈, 비가 오고 새싹이 나고, 어느새 또 낙엽이 지는 그 모든 과정을 가까이서 보는 기분도 형용할 수 없고요.


진곤씨의 서울살이는 어땠어요?
19살부터 20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았어요. 옷에 관심이 많아서 동대문에서도 일하고, 구제랑 피어싱이 좋아서 거평프레야와 서울 이화여대 앞 패션 상가 거리에서도 일해봤어요. 그러다 스포츠 의류 회사에서 온라인 영업 담당자로 일하게 됐죠. 이 때 옷을 만드는 여러 과정을 경험했어요. 회사가 바쁠 때면 봉제 공장에 가서 실밥 뜯는 일도 했을 정도죠.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익숙해질 때 쯤, 좋아하는 트래킹을 위해 제게 필요한 물건들이 작게나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니까 디자인에 어려움이 따랐을텐데요.
학원에 다니면서 미싱과 패턴을 조금 배웠어요. 정부에서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지원사업을 통해서 6주 간 현직 패턴사와 함께 제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이수했어요. 그 때 처음으로 등산용 백팩을 만들게됐죠.
회사 다니면서 교육 프로그램까지 이수하다니, 그야말로 갓생이네요?
노력을 좋아해요.(웃음) 웹 디자인을 하다 코딩을 배우기도하고, 다시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아내와 차곡차곡 일군 브랜드가 ‘코너트립’이군요. 대표님인데 왜 다들 진곤씨를 오차장이라고 불러요?
아내가 지어줬어요. 부장도 아니고, 대리도 아니고 차장이라는 이미지가 제게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대표님보다는 ‘차장님’이라는 이미지가 왠지 편했고요. 언젠가부터 다른 이들도 저를 그렇게 불러주기 시작했어요.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면서 이 일을 하고 있으니, 제작자로 대해주는 게 더 편하기도 하고요.
진곤씨의 브랜드 코너트립은 장점이 뭐예요?
주문제작 아이템이다보니까, 컬러를 지정해서 만든 것 이외에 고객이 좋아하는 컬러와 스타일대로 커스텀을 할 수 있어요. 가방은 물론 사코슈도 만들 수 있어요. 코너트립은 ‘이걸 쓰면 더 편해요’라는 이야기보다는 나만의 가방을 메고 오랫동안 걸어보기를 권하는 브랜드죠. 어떤 가방을 사용해도 트래킹을 하다보면 허리와 어깨가 아파요. 다만 내가 만든 가방을 들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순간의 기쁨을 갖고 있으면 발걸음이 더 가볍죠. 결국은 저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거예요. 트래킹, 자전거 여행, 캠핑 모두 타인과 함께 하지만 결국 각자의 여행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게 아웃도어라이프의 매력이고요. ‘코너를 돌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브랜드 이름도 그런 아이디어에서 왔어요.

저는 캠핑을 해본 적이 없어서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씻기도 먹기도 불편할텐데 싶어 걱정이 되고요. 진곤씨는 첫캠핑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나요? 뭐가 좋았어요?
해는 일찍 지고, 좁은 텐트 안에서 아내와 함께 있는 게 좋았어요. 세상에 둘만 남은 느낌이 들거든요. 캠핑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는데, 저는 캠핑 음식을 즐기거나 큰 텐트를 펴고 며칠 편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라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몰라요. 잘 씻고, 잘 먹어야만 좋은 여행은 아니지 않나요? 일주일 내내 잘 먹고 다니는데, 굳이 캠핑장에서 차려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딱 하루쯤 머무는데 이런저런 캠핑가구도 꼭 필요치 않고요. 간편하게 꾸려서 간편히 먹고, 간편히 내려오는 게 더 좋은 경험 같아요. 아내와 저는 그런 면에서도 잘 맞죠.
제가 생각하는 ‘캠핑의 로망’보다 더 콤팩트하네요.
많은 캠핑용 도구나 음식, 음료 등을 챙겨서 사이트를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결의 캠핑도 분명 매력이 있죠. 근데 속초와 고성 지역엔 30분만 산을 올라도 캠핑하기 좋은 스폿이 많아요. 예를 들면 운봉산이요. 이런 곳엔 닭강정 하나 사들고 올라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아 물론 8시간 정도 산을 올라야 하는 코스도 있죠. 그럴 때엔 더더욱 짐을 간소화 해 가볍게 오르는 게 좋고요.
요즘 산 인구가 좀 늘었죠?
확실히 많이 늘었어요. 팬데믹이 기준이죠. 저처럼 소규모 브랜드를 하는 입장에선 좋은 현상이고요, 개인적으로는 고요한 산행길이 그리워질 때도 있긴 하죠. 사실 솔캠(혼자 하는 캠핑)을 좋아하지 않아서 산인구가 많아진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솔캠은 왜 싫어하세요?
늦은 밤 어두운 산에 혼자 있으면 조금 무서워져요. 산에 사는 동물들이 내는 ‘부스럭’ 소리도 엄청나게 크게 들리거든요. 그러니까 꼭 산에서 혼자 떨다오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안가요.
아내와 함께면 무섭지 않은가봐요.
아내가 무서워하고, 저는 잘 자요. 한번은 아내와 영월의 산꼬라데이길에 간 적이 있는데요. 해가 떨어져서 텐트를 쳤는데, 바로 앞에 폐광이 있는 거예요. 온통 새카만 거기서 아내가 한숨을 못잤다더라고요. 전 되게 잘 잤는데. 아내는 원래 강원도의 산이 지닌 기운을 조금 무서워해요.
아, 풍수지리가들도 강원도 산이 지닌 기운이 강하다고들 하죠.
이런 적도 있어요. 아내와 평창에 있는 장전계곡에 갔을 때의 이야긴데요. 아내가 낮잠을 자는 동안 갑자기 등에 시린 기운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게 느껴졌다는 거예요. 저희 집에선 울산 바위가 보이는데요. 이번에 눈이 많이 왔을 때도 자연이 정말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오컬트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대자연의 기운이 실제로 와닿을 때가 있어요. 멋지지 않나요?
아웃도어 활동을 시작하는 단계에선 어떤 경로를 통해서 캠핑과 트래킹에 관한 정보를 얻었나요?
사실 장비든 스폿이든, 누구나 좋아하는 걸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서울 화곡동의 아웃도어 용품점 ‘보즈만(Bozeman)’에서 정보를 많이 얻었어요. 그 곳을 운영하는 대표님과 친해진 걸 계기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됐죠. 일본에 여행을 갈 때마다 국내에 없는 물건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기도 했고, 브랜드 홈페이지도 열심히 들어가보고요.
물건이 계속 늘어났겠네요.
그러던 때가 있었어요. 그래도 물건을 늘리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죠. 쓰지 않는 걸 모아두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고요. 수많은 중고거래를 통해서 마침내 내게 가장 적절한 기구들을 찾아냈어요. 내게 맞는 걸 찾고나면 물욕이 없어지더군요.

서울에 비즈니스를 두고, 강원도에 주거지를 두기 위해선 어떤 시스템도 필요했을 듯 한데요.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우선 다녔어요. 저는 설악산을 와봤지만, 속초 시내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단 생각이 들어 우선 이 곳에 사는 동생들과 함께 시내를 다녀봤어요. 일단 시작하니 그 이후의 것들은 차근차근 정리됐어요.
오차장이라는 별명 만큼이나 유명한 게 진곤씨의 차 ‘맥모닝’이죠?
지인에게 50만원 주고 산 노란 모닝이에요. 2007년 즈음 출시된 구형 모델인데요. 정말 잘 타고 다니고 있어요. 제가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속초에 노란색 모닝이 2대 있었거든요, 그러다 3대로 늘었고 이제는 4대나 돼요. 같은 색상을 유심히 보면서 ‘저 차주는 출근하시나보네’ ‘저 차주는 커피 드시나보네’ 오가며 그렇게 내적 친밀감을 다지죠. 이 차가 연비는 안좋은데요. 차가 작으니까 어디에든 주차하기 편하고 오가기도 좋아요.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유난히 경차가 많은데, 다니다보니 왜 그렇게 많은지 알겠어요. 날씨가 좋으면 자주 핸들을 꺾어 고성 부근의 좁은 시골길 골목을 따라서 드라이브하기 좋더라고요.
속초에서의 삶은 대체로 만족스러워요?
네, 만족스러워요. 동네도 맘에 들고 산도 좋고요. 언젠가는 여기에 집을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아, 여기에 몇 년 내 KTX역이 생긴대요. 호재죠? 호재는 선반영입니다. 으하하. 곧 부산까지 닿는 고속도로도 난다고 하더라고요. 교통이 그렇게 편리해지면, 여행 좋아하는 저와 아내는 더할나위 없이 좋겠죠. 특히 집이 좋아요. 한 겨울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보일러를 켜지 않았는데 집이 따뜻할 때요. 1년을 살아도 아내랑 그 얘길 해요. ‘아, 따뜻한 집이 좋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