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평에 세컨하우스는 언제 지으신 건가요?
이제 딱 1년이 지났네요. 계절을 한 번씩 보낸 셈이죠. 저는 이곳을 ‘오두막’이라 불러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금요일에 와서 주말 내내 머물렀다 돌아가죠. 초반에는 가족들이랑 왔는데, 요즘에는 혼자 올 때가 더 많아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친구들이랑 보내고 싶어하고, 아내가 아이들을 챙기니 주말에 잠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거죠.
오두막에서는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요?
일단 읍내 마트에서 삼겹살이랑 맥주를 사요. 와인을 챙겨올 때도 있고요. 도착해서는 짐 정리를 하고 문을 활짝 열고 청소기 돌리고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마당에 물 고인 데 있으면 정리도 하고요. 그런 후에 책을 읽고 커피 마시고 진짜 오롯이 오두막을 만끽해요. 일을 할 때도 있는데 음악은 거의 안 트는 편이죠. 오두막에서는 가급적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요.
오두막에 머물 때 좋아하는 시간대가 있나요?
계절마다 다른데 특별히 좋아하는 시간대가 있기는 해요. 제가 워낙 아침형 인간이라 새벽 4시쯤 일어나는데 여름이면 깨어나서 잠시 밖에 나가 있어요. 여명이 동틀 무렵이니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어떤 날은 주황빛으로 물들 때도 있죠. 정원에 물을 주고 한 바퀴 산책하는 새벽 시간이 참 좋아요. 유달리 더 고요하기도 하고요.
세컨하우스를 짓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서촌에 협소주택을 지었잖아요. 아내가 좁은 집에 살아서 그런지 어느 날 땅을 알아보자고 하더군요. 100평 정도의 대지가 생기면 좋겠다고요. 그런 땅을 서울에서 구하기는 힘들고 가격도 너무 비싸고 그래서 네이버에 ‘100평 땅’ 이렇게 키워드를 넣어 검색을 해봤어요. 그러니까 양평쪽 부동산 정보가 주루룩 뜨는 거예요. 요즘에는 부동산도 블로그에 사진과 설명을 잘 정리해 놓더라고요. 그래서 주말이나 평일 저녁 때 아내랑 인터넷으로 여러 후보지를 골라봤어요. 가장 많은 매물을 가지고 있는 부동산에 연락해 한번 땅을 보러 갔죠. 부동산 중개인의 그랜저를 타고 3군데를 돌아봤어요.
그중 가장 마음에 든 곳이 바로 여기였군요.
이곳이 마지막 땅이었는데 당초 구글 위성 지도를 보고 후보지로 낙점했어요. 한 면이 국유림이니 다른 건물이 들어설 리도 없고 벚나무들이 사방에 둘러 있었거든요. 위성 사진으로 보니 봄에 찍은 거더라고요. 한참 벚꽃이 만발할 때니까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런 게 저는 또 인연인 것 같아요. 만약 황량한 겨울 사진이었으면 애초에 후보지로 고려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서승모 건축가가 오두막의 설계를 맡았습니다.
‘건축가의 집’ 토크를 오래 진행했어요. 그 때 인연을 맺기도 했고, 또 서승모 소장님이 서촌에 살거든요. 동네를 돌아다니면 눈에 띄는 건물 중 소장님이 설계한 곳들이 굉장히 많아요. 워낙 정제돼 있고 깔끔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데다 제가 그분이 설계한 건물 몇 군데를 취재한 적도 있었죠. 외관상의 어떤 독특함보다는 항상 내부가 편안한 느낌을 줬어요. 멋있어 보이는 집이 아니라 따뜻하고 살고 싶은 집인 거죠. 언젠가 소장님에게 설계를 부탁하고 싶었는데, 마침 오두막을 지을 때 기회가 생겼어요.
설계할 때 어떤 점에 가장 신경을 썼나요?
제가 한옥을 참 좋아해요. 기와 처마 밑 그늘에 앉아 있는 시간을 특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오두막의 지붕인 아연 골강판을 한옥 처마처럼 길게 빼서 건물 전체를 덮었어요. 한쪽은 길게 빼서 그늘이 넓게 생기도록 했죠. 지붕 때문에 집 자체는 작아졌지만 애초에 집 바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소장님이 그런 저의 바람을 반영해서 화끈하게 사방에 그늘이 지도록 설계를 한 거죠. 캠핑 의자를 들고 햇빛 없는 그늘에 자리를 잡고 바깥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평소 가족들과 여행을 자주 다니더군요. 그런 여행의 경험이 오두막에도 반영이 되었을까요?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이라면 욕심을 최대한 부리지 않으려 했어요. 예쁜 집, 단정한 집, 아름다운 집, 다정한 집에 참 많이 머물러 봤거든요. 그런데 꼭 화려하고 멋진 집이 아니라 주인이 시간과 마음을 들인 곳들에 더 정이 가요. 제가 에디터, 편집장 일을 할 때부터 디자인 가구라든가 건축물을 취재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래서 디자인 가구를 들여야 하나 고민을 해봤어요. 그런데 그게 별 의미도 없고 결정적으로 머무는 동안 눈도 마음도 편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가급적 저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편안한 물건들을 갖다 놓기로 했죠. 또 너무 많은 물건들로 채우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야 온전히 비워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가구 중 평상이 눈에 띄네요.
예전부터 데이베드를 꼭 하나 갖고 싶었는데 마침 아내랑 동업하는 분 남편이 목수로 일하세요. 종종 같이 캠핑도 다니고 친분이 있으니까 한번 부탁을 드렸죠. 그래서 2개를 만들어줬는데, 마감을 어찌나 깔끔하게 해주셨는지 수십 번 다 깎고 오일을 발라서 질감이 정말 맨들맨들해요. 최고로 만족하는 가구에요.
‘워케이션’ ‘리모트 워크’처럼 한적한 교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두막도 그런 역할을 할 때가 있나요?
갤러리 운영도 그렇고 공예 잡지도 만들고 여러 일을 동시에 하니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요. 오두막에서 일을 하면 혼자 오롯이 완급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 일의 집중도가 훨씬 높고 효율성도 좋아요. 일하다가 뭔가 아이디어가 막히면 바로 나가서 바람 쐬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산책을 하면서 잠시 환기를 시키죠. 그럴 때 또 아이디어나 영감을 얻고 순간순간 생각한 것들을 메모하고 그러면서 여러 일들의 블럭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것 같아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쉬나요?
일단 음악을 최대한 듣지 않아요. 새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오후 5시면 개구리가 엄청 울거든요. 그런 자연의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좋아요. 음악은 사실 운전할 때나 집에 있을 때 충분히 들을 수 있으니까 굳이 오두막에 인공적인 소리를 채우고 싶진 않아요.
세컨하우스를 짓고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좀 쑥스러운 표현인데 제 삶을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오두막을 지은 게 제 인생에서 가장 잘 한 결정 같기도 하거든요. 요즘 5도2촌이라고들 하잖아요. 5일은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 이틀은 시골에서 보내는 루틴인데, 꼭 그런 용어로 규정짓기 보다 그 너머에 훨씬 더 자유롭고 풍성한 이야기가 생기는 거 같아요. 오두막에 오기 전부터 진짜 설레거든요. 나무가 우거져 있는 오두막에 도착할 때부터 기분이 좋아지고, 실제로 머무는 내내 제 자신을 비우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어요.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가족들에게도 더 잘하게 되고, 일도 더 집중해서 하게 되고요. 그렇게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이런 루틴이 정말 좋아요.
오두막 한쪽은 정원으로 가꿨습니다. 평소 꽃에 관심이 많은 편이가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단독주택과 한옥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자그마한 마당이 있으니까 꽃을 심어 놓으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거죠. 이전에 플로리스트 무구와 함께 운경고택에서 전시를 연 적이 있어요. 대청마루를 애기똥풀로 채웠는데, 그 이후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됐죠. 도시든 시골이든 어디서든 잘 자라는데 볼 때마다 다정하고 귀여워요. 여기 양평에서는 금계국도 좋아하게 됐고요. 화려한 꽃보다는 수수한 꽃들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한옥, 빌라, 아파트, 협소주택 등 여러 주거 형태를 경험하셨습니다. 그 연대기를 담은 에세이 <집을 쫓는 모험>도 쓰셨고요. 주거 방식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집 자체가 이렇게 제 인생에 이토록 의미 있는 키워드가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아파트로 욕심을 부렸던 경험이죠. 아파트값이 떨어지니 그곳에서의 삶이 너무 불행한 거예요. 허무하기도 하면서 집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을 하게 됐고, 이후에 단독주택에 살아보게 된 거죠. 그렇게 서촌에서 한옥살이를 하면서 아파트에서 벗어난 게 벌써 12년이 되었네요. 아무래도 한옥에서 보낸 시간이 결정적었죠. 마당에 데크를 깔고 안방에서 화장실로 넘어가는 문도 달고 주방에 목공 가구를 짜 넣고 선반도 달고 하면서 집에 머무는 즐거움을 알아갔어요.
협소주택을 지은 이후 현재 다시 한옥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빌라에서도 살아보고 다른 한옥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 불안감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아예 협소주택을 짓게 된 거죠. 그곳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아내가 이전에 낸 책 제목이 <마당의 기억>인데, 우리 가족한테는 마당에서 보낸 시간이 중요하고 행복의 비중에 많은 걸 차지했더라고요. 더이상 이사를 안 가려고 집을 지었는데 마당의 기억으로 인해 다시 한옥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죠. 마당에서 밥 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삼겹살 구워 먹고 가만히 앉아 멍 때리고 구름 구경하고 그런 시간이 정말 소중해요. 여기 오두막에 외부 공간을 둔 것도 그래서에요.
한옥살이가 주는 즐거움은 결국 마당에서 이뤄지는 것이군요.
제가 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보는 게 간접 경험이면 한옥은 직접 경험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안쪽에서 예쁜 풍경이 보이면 곧장 마당으로 나가서 그 풍경을 경험하게 되니까요. 몸은 이런 직접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해요. 한옥은 항상 마당을 중심에 두잖아요. 양옥의 정원만 해도 어떤 별개의 공간처럼 다가오는데 한옥 마당은 수시로 오가는 구조니까 집의 핵심 공간이 되는 거죠.
서촌에 오래 머문 만큼 동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동네 어디든 걸어다니기 좋은 보행로가 많아요. 걷다 보면 시장을 지나치고 계곡도 나오고 단골집도 갈 수 있죠. 아파트에 살 때는 영화 <트루먼 쇼>처럼 거대한 세트장에 들어온 기분이 들기도 했거든요. 정해진 시간에 유치원 통학 버스가 멈추고 상가에 사람들이 오가는 짜여진 동선 안에서 일상이 이뤄지는 것 같았어요. 그런 반면 서촌은 동선을 어디로든 정할 수 있어요. 유현준 교수가 좋은 도시는 걷기 좋은 도시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서촌이 딱 그런 동네죠. 경관도 아름답고 봄이면 왕벚꽃 나무가 화사하게 피고 골목마다 재미 있는 장소도 많고요. 요즘에는 쌀집이며 세탁소며 오래된 가게들이 사라지고 있어서 좀 아쉬워요.
집을 쫓는 다음 모험이 궁금합니다. 다른 형태의 집을 꿈꾸고 있나요?
다른 형태보다는 좀 더 넓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기는 해요. 주방도 좀 더 커지면 지인들도 편하게 초대할 수 있고,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서재도 두고. 야외 정원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고요. 무엇보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보내고 싶어요. 집에서 시간을 오롯이 보내는 삶을 바라는데 그러려면 무엇보다 그 집을 좋아해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