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멋진 한옥이네요. 요즘 거주 공간으로 쓰기 좋은 한옥집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던데요.
혜자 고맙습니다. 기본적으로 서울의 한옥은 사대문에 근접할 수록 만듦새가 좋고, 그만큼 구하기 어려워요. 집값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이미 집주인이 있는 경우가 많죠. 성북동은 사대문 밖에 있는 지역이라 비교적 시세가 낮죠. 예부터 그랬어요. 그래서 1930~1940년 대에 활동했던 청록파 시인들도 이 동네에 많이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이 집은 증축이나 신축을 할 수 없는 조건에, 한옥을 그대로 고쳐 살아야 했기 때문에 집이 팔리지 않고 6개월 이상 빈 집으로 있었으니 비교적 좋은 조건이었죠.
성준 저희가 이 집을 계약하겠다고 했을 때, 주인이 얼떨떨해 하면서 부동산에 왔던 게 기억이 나요. ‘이걸 왜 사지? 이 사람들이 미쳤나?’하는 표정으로요.
산과 인접해 지대가 높은 곳도 있고, 이렇게 대중교통과 접근성이 좋은 곳도 있고. 그런 역사도 있네요. 성북동은 참 재미있는 동네같아요. 이 곳에 산지는 얼마나 됐나요?혜자 저희는 원래 오랫동안 도심의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2016년 즈음 성북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오랫동안 빈 집을 보다 성북동 꼭대기에 있던 빈 집을 고쳐 ‘성북동 소행성’이라고 이름을 붙여 살았어요. 두 사람이 꼭 맞춰 살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집이었고, 약간의 불편이 따랐지만 그런대로 좋았죠. 3년 반을 살면서 ‘우리 삶엔 단독주택이 잘 맞다’는 확신을 얻었죠.
어떤 불편이 있었는데요?
성준 전철에서 내려 힘차게 15분을 걸어 올라가다보면 ‘목이 말라서 쓰러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요. 그때 쯤 딱 집에 도착했었죠.
혜자 술을 마시다가, 술이 떨어지면 포기해야해요. (웃음) 이런 식으로 일상의 작은 지점들에 피곤을 느끼다보니 돈을 모아 편안하고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자고 결심했어요. 성북동이 지닌 정취는 그대로 가져가고 싶어서 이 동네에서 집을 봤어요.
원하는 요건을 갖춘 집이었지만, 6개월이나 비어있던 한옥을 손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네요.
혜자 정말 그랬어요. 다행히 저희집을 수리해 준 한옥 목수님이 ‘이 집은 근래 본 오래된 한옥 중 가장 형태가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한옥은 서까래가 지표예요. 서까래가 굵고, 튼튼하고, 곧을 수록 이 집이 좋은 자재로 만들어졌음을 뜻하죠. 언젠가 EBS 다큐멘터리 시리즈 <건축탐구 : 집>을 진행했던 임형남 소장님이 저희 집을 둘러보신 적이 있는데요. ‘분명히 이 집을 지을 때 목수가 큰 집을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크고 좋은 집을 짓다가 남은 자재 중 일부틀 이 집에 썼던 거죠. 소장님 말씀이 ‘완전 계 탄 것’이래요.
단독 주택과 한옥이 잘 맞아도, 관리할 게 많으니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지닌 편리성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더군다나 두 분 모두가 직장 생활을 하느라 바빠 여러모로 아파트가 편했을 것 같은데요. 왜 아파트를 떠났어요?
혜자 제가 집에서 장을 담그는데요. 베란다 곁 해가 잘 드는 곳에서 환기를 잘 시켜주어도 도무지 장이 익질 않더라고요. 장이 발효되는 과정은 인간의 기초 대사와 원리가 비슷하다고 봐요. 그러니 장이 익지 않는 집에서 우리가 사는 게 말도 안되는 것처럼 느껴졌죠.
집에서 장을 담그셨다고요? 정겨운데, 흔한 일은 아니네요.
혜자 전 음식에 관심이 많아요. 출판사 기획일을 하다보니 텍스트로 무언가를 접하는 게 더 익숙해서 처음엔 음식문화평론가 황교익 씨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끼니’에서 식생활 관련 인문학을 공부했어요. 거기서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됐죠. 태도를 배우고나니, 결국은 내가 음식을 할 줄 알아야 배운 걸 확장 할 수 있겠더라고요. ‘나는 어떤 음식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 끝에 ‘일상식’이라는 결론을 얻고 지리산에 부엌을 꾸린 요리연구가 고은정 선생님을 떠올렸어요. 고은정 선생님은 장과 김치라는 일상적 음식을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는 분이죠. 그분에게 음식을 배웠어요.

선생님이 지리산에 계시는데, 음식 수업을 받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겠네요.
혜자 선생님을 서울에 모시고 올까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도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클래스를 기획했죠. 한달에 한번 1박2일간 지리산 스튜디오에서 음식 교육을 하는 수업을 만들었어요. 사계절간 수업을 듣고나면 심화수업인 ‘약선학교’ 과정을 들을 수 있는 커리큘럼이었죠. 이 클래스 이름이 <고은정의 제철 음식학교> 였는데요. 여기서 24가지 밥과 김치, 제철 식재료 반찬, 장 담그는 법을 배웠어요. 1년을 배우니 수강생들이 좋아하는 일상식을 마스터 할 수 있었어요. 그게 제 식생활과 음식의 근간이 됐어요.
밥과 제철 식재료, 장으로 부터 뭘 배웠나요?
혜자 나만의 간장과 된장이 생기면 냉장고가 달라져요. 냉장고가 달라지면 밥상에 혁명이 일어납니다. 어떤 나라의 음식을 말할 때, 그를 대표하는 미각이 있잖아요. 이게 대개는 그 나라의 ‘장’에서 비롯됩니다. 장은 특정 문화권에 있는 음식문화의 핵심이니까요. 이를테면 동남아 음식은 피시소스 특유의 시큼한 맛, 일본 음식은 일식간장의 단맛이요. 한국의 맛은 ‘조선간장’의 구수한 맛이라고 봐요. 이렇게 제맛을 내는 장이 있으면 부엌에 자잘한 조미료를 두지 않게 돼요. 장은 음식을 단순하고 맛있게 만드니까요.
성준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니까요.
그러고 보니 부엌이 굉장히 단순하네요.
성준 전기 밥솥과 전자레인지, 오븐과 에어프라이어 같은 주방 가전이 별로 없죠.
혜자 전기를 사용해 부엌에서 무언가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첫번째 이유는 제가 게을러서예요. 전기 가전은 사용하고나서 씻을 게 너무 많아요. 일례로 밥할 때 솥 하나면 될 것을 이 그릇 저 그릇 쓰게 되니까요. 솥밥을 매일 해먹는 게 습관이 되면 외려 편해요.
두 분은 평소 어떤 식사를 하세요?
성준 매 끼니를 해먹진 않아요. 하루에 두끼만 먹기로 했거든요. 아침을 11시 쯤 먹고, 그 다음 점심과 저녁을 겸해 5~6시에 밥을 먹습니다. 두끼 중에 한끼 정도는 사먹기도 하고요.
혜자 편성준 씨는 아침에 집중해 일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너무 일찍 끼니를 먹으면 이 사람의 리듬이 깨지더라고요. 제가 음식을 준비한다고 움직이면, 이 사람도 신경을 써야하니까요. 그래서 아침 시간을 온전히 집중하도록 두고, 저는 오전 시간에 잠을 충분히 자거나 잠시 누워서 일기를 끄적이는 등 저만의 시간을 보내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아 가능한 일 같기도 해요.
혜자 맞아요. 우리도 회사를 다닐 때엔 모든 걸 회사의 시스템에 맞췄었죠.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을 먹고, 내게 잘 맞는 루틴을 찾는 것도 어렵죠. 이렇게 생활해보니 아침, 점심, 저녁을 먹을 필요가 없어요.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두 분은 각각 베테랑 출판 기획자, 그리고 카피라이터였죠. 자신의 일을 좋아했고, 또 일가를 이룬 시기이니 회사에서 더 큰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듯 해요. 회사 왜 그만두셨어요?
성준 일이 너무 바빴으니까요. 회사 끝나고 허덕이며 집에 와서 잠을 자고, 눈 뜨면 출근 준비해 나가고. 주말에도 회사에 갔죠. 어쩌다 집에 사람이 놀러 온다고 할 땐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하는데요. 저는 늦거나 아예 손님을 못볼 때도 많았어요. 저녁 식사 약속을 잡거나, 저녁에 연극을 본다거나 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고요. 일 때문에요. 광고와 마케팅을 오래 하다보니 그 일에 대한 단점도 보였죠. 광고나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선 ‘가장 좋은 것 하나’만 선택이 되고 나머지 아이디어는 다 쓸 데 없는 게 돼요. 이보단 포괄적 사고가 가능한 ‘글쓰기’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딘가에 비교 당하거나 목적, 효율에 꼭 맞지 않아도 되는 창작의 영역이니까요.
직장을 그만둔 후 집의 쓰임은 어떻게 달라지던가요?
성준 일상이 주도적으로 변했죠. 마당에 앉아 혼자 논다거나 마루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기쁨도 알게되고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비로소 제게 가장 효과적인 일과 삶을 찾기 시작할 수 있었어요.
혜자 새로운 집에 대한 기획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 때예요. 성북동의 한옥을 세 칸으로 나눠 식의 공간, 문의 공간 그리고 두 공간이 만나는 거실을 두기로 했죠. ‘이 곳에서 우리의 작업도 하고, 사람들을 초대해 우리가 잘하고, 하고 싶은 걸 하자’면서요.
집이 휴식의 공간에서 확장되는 과정이었네요. 그렇다면 식과 문이 만나는 거실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을 하나요?
성준 저는 여기서 5개월 반 과정으로 책 쓰기 수업을 해요. 국내 소설을 한달에 한편씩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토요모임 ‘독하다 토요일’, 소행성에서 열리는 북토크 금요모임 ‘소금책’도 진행하고 있죠. 책 쓰기 수업의 경우 1:1 코칭이 필요한 이들에겐 따로 시간을 내고 있고요.
혜자 우리의 의식주가 이뤄지는 이 곳에서 재미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기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어요. 날이 좋은 때엔 마당에 15명 정도, 거실에서 모일 때엔 12명 정도가 모이게 되는데요. 모임의 절반정도는 기존에 수업을 들으셨던 이들에게 열려있는 편이죠. 여러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이지만 동시에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두 분 모두가 맹렬한 기획자이니, 밖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텐데. 굳이 집에서 하는 이유가 있나요?
혜자 무엇보다 이 곳이 사람들이 머물고 싶어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집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컨텐츠가 되더라고요. 이런 공간을 일상에서 경험하기가 쉽지 않죠. 어떤 이에겐 ‘한옥에 사는 로망’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이런 종류의 모임은 확장보다 단단해질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독하다 토요일’의 경우 5년차에 접어드니 이 커뮤니티가 가족같은 모습을 띄기도 하더군요. 이런 때에 전혀 결이 다른 이가 모임에 와 커뮤니티를 해치는 경험도 해보니 더 그렇게 느끼게 됐고요.
두 분에게도 사람이 어려운 때가 있군요. 집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할 때 겪는 힘든 점도 들어보고 싶어요.
성준 ‘한옥에 사는 것이 로망이에요’라는 이야기를 하며 공간에 오신 분들 중에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거나, 관리가 쉽지 않겠다며 도리질치고 돌아서시는 분들도 있죠. ‘당신들은 아이도 없고, 철이 없어서 속 편하니 이렇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지점이 있는 듯 해요. 그런 코멘트를 들을 때면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요. 맞아요.’
혜자 동네 사람들 불러 밥 먹이는 게릴라성 이벤트를 종종하는데요. 무척 재미있어요.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고요. 때로 ‘나는 페이스북 친구인데 왜 초대를 안해주냐’는 볼멘 SNS 메세지를 받아요. 이 곳을 카페 정도라 여기고 ‘놀러가도 되냐’고 묻는 일면식 없는 이들도 있고요.
그럴 땐 어떻게 대응하세요?
혜자 일면식은 없지만 공간이 궁금한 이들을 위해 ‘오픈하우스’ 행사를 열기 시작했어요. 이때 약간의 허들을 만들기 위해 소정의 입장료를 책정하죠. 이 때에 오지 않으시고, 메세지만 보내는 분들께는 그냥 까칠하게 대합니다. (웃음) 이런 거절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커뮤니티도 저도 혼란스러워져요. 거절 열심히 하려고 해요. 불편하지만 필요한 일이니까요.
혜자 씨의 책이 곧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떤 책인가요?
혜자 2021년 10월 1일 부터 2022년 9월 30일까지 1년 동안의 식생활 기록이에요. 커뮤니티 모임 외엔 뭔가를 꾸준히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진정 꾸준하고 싶은 일이 뭘까 생각하다 ‘일기’를 떠올렸죠. 동시에 내가 매일 하는 ‘밥 먹는 행위’를 기록하면 되겠다 싶었고요. 365일 일기를 썼다는 게 자랑할 만 하고, 일기를 쓰며 내가 지닌 식문화에 대해서 더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도 정확하게 알았죠. 쓰다보니 내가 자주 만든 음식, 만들며 뿌듯해했던 음식이 뭔지 보였어요. ‘나 정말 계란이랑 김치 좋아하는구나’ ‘나는 양념을 잘 하지 않는구나’ ‘역시 가장 괜찮은 밥상이란 제철 식재료로 만든 것이구나’ ‘반찬이 많을 필요가 없구나’ 같은 거요. 제 책에 이걸 깨달아 가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나 자신을 콘텐츠화 한다는 건 어쩌면 스스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인가봐요.
혜자 그렇더라고요. 사실 이번 책도 주변에서 권해 만들게 됐는데요. 하다보니 내가 이걸 정말 잘하더라고요. 저는 출판 기획일을 하면서 많은 작가를 데뷔시켰어요. 글재주와 콘텐츠가 있는 타인을 찾아 책을 내도록 인도하는 역할만 했지, 그걸 워크숍으로 발전시킬 생각은 안했던 거죠. 행동하면 알게 돼요. 내가 뭘 잘하는지, 재미있게 잘하는지.
성준 저 역시 글쓰기를 하며 비로소 깨닫게 돼요. 광고를 할 때엔 어떤 말을 해도 광고, 마케팅으로 흘러갔고 저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건 제 직업이었더라고요. 직업을 떠나고 나니 모든 말이 ‘글쓰기’로 흐르던데요. 인생에 대한 아무 얘기, 꿈에 대한 아무 얘길 해도 글쓰기와 연관이 돼요. 지금이 더 좋아요.

(이 때 발간을 앞둔 혜자씨의 책 가제본이 집에 배송됐다.) 이렇게 책을 손에 쥐면 마음이 울렁이지 않나요?
혜자 저는 이걸 업으로 해서 그런지 감흥이 아주 크진 않아요.
성준 여기 이 사진들 좀 보세요! 이거 다 윤혜자가 찍은 거예요.
혜자 제 이름으로 펴낸 책은 처음이라 걱정도 많았어요. 교정을 보면서 ‘이런 걸 내도 되나’ 싶기도 하고요. 출판사가 손해만 안났으면 좋겠어요.
성준 혜자씨, 잘 나왔어. 좋은 책이야. 걱정 마.
마지막으로, 지금 두 사람이 가장 열중하고 있는 일에 관해 듣고 싶어요.
성준 우리가 지금 3개월째 금주중이거든요. 정비를 좀 하자는 의미였어요. 새 책도 쓰고, 몸도 마음도 정리가 필요한 듯 해서요. 술을 자주 마시다보면 마치 할 일이 없어서, 일상이라 마시는 것 같잖아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아침을 즐기기 힘들기도 하고요.
혜자 저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고민 중이에요. 팬데믹도 지나갔고, 커뮤니티 콘텐츠는 어떻게 확장해야 하는지, 집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요. 어떻게 하면 이 공간과 결이 맞는 사람들이 더 행복한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을까요? 계속 고민해봐야 할 문제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