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오는 입구에 여백서원을 둘러보는 지도가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네요.
네, 입구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고 여기 본관을 지나 정원 안쪽에는 갤러리와 시정이 있습니다. 언덕을 더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는데 꼭 올라가보시길 추천해요. 길 건너 연못 넘어에는 외국인 학자들이 와서 머물다 갈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가, 좀 더 올라간 곳에는 괴테 마을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전부 둘러보려면 꽤 시간이 필요해요.
여백서원이 만들어진 배경이 궁금합니다.
2005년부터 시작된 긴 얘기인데요, 저는 원래 글 쓰는 사람인데 다른 데 쫓기며 글을 쓰지 못하니까 생활에 균형이 흔들리고 마음도 좋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공부에 소홀하거나 학생 가르치거는 데 소홀히 할 수 없으니 그저 글쓰기를 위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바램을 종종 말한 적이 있는데 누가 그걸 귀담아 듣고 저쪽 마을에 오래된 집을 하나 구해줬어요. 다 허물어진 집이었는데, 친구와 250만 원씩 주고 살 수 있었어요. 고치느라 수리비는 좀 들었지만 너무 좋아서 밤 12시에도 2시간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와서 글을 조금 쓰고 돌아가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집을 내줘야하는 상황이 오면 어쩌나 걱정되더라고요. 250만 원씩 내고 샀지만 문서 한 장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근처 땅을 조그맣게 하나 사서 집과 바꾸기로 했죠. 땅을 알아보다가 이곳을 소개받고 그날 덜컥 계약을 했어요. 땅이 얼마나 험한지도,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한거예요. 그리고 10년 동안 빚을 갚았습니다. 학교 옆에 있던 조그만 아파트의 전세금을 빼서 한옥을 짓고, 이 넓은 땅을 혼자 쓸 수 없으니 함께 써야겠다 싶어서 2015년에 여백서원을 열었죠.

왜 ‘서원'인가요?
정말 좋은 것들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문화 중에서 버린 게 너무 많아요. 그중 서원도 하나입니다. 서원은 우리 사회, 교육과 철학,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여백서원도 그런 곳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정원이 유독 아름답던데, 심지어 직접 손수 관리하신다면서요.
전부 제 손으로 심었습니다. 책 보다 머리 아프면 나가서 일 좀 하고, 지치면 들어와서 좀 쉬었다 다시 책을 보고 그런 식이죠. 학교 교정에 공사를 한다고 베일 위기 처한 나무들이 있을 때마다 이곳에 옮겨 심어서 ‘구출'한 나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무 고아원이라고 해요. 누구든지 원하는 나무를 골라 입양할 수 있습니다. 그냥 ‘찜’ 하면 되는거예요. 이렇게 어딘가에 내 나무가 있다는 게, 특히 여백서원에 내 나무가 있다는 건 좀 기분 좋은 일이 되지 않겠어요? 가끔 와서 내 나무가 얼마나 컸나 보고 주변에 잡초라도 있으면 뽑아주고, 나무 밑에 거름도 좀 놔주고. 그런 작은 마음을 쓰는 곳이요.
정원에는 주로 어떤 나무와 꽃이 있나요?
산책로 초입에는 세종대왕이 좋아했다고 전해지는 앵두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주변에는 돌에 서원을 뜻하는 글자를 새겨 두었어요.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할 때 여주의 강에서 예쁜 돌이 엄청 나왔거든요. 다 부숴서 건축 자재로 쓴다길래 아까워서 제가 챙겨온 돌입니다. 여기 글자들은 대학의 기본 이념입니다. 성의가 있고, 마음이 바르고, 몸을 깨끗이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네가지 이념입니다. 5월에는 푸른 꽃이 만개하는데, 푸른 꽃은 독일 정원을 연상케 하죠. 모든 나무마다 사연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께 모두 설명해드려요. 또 시정(詩庭)이라고 해서 길가 군데 군데 시가 적힌 돌이 있습니다. 차분하게 읽으며 산책하기 좋습니다.

이 모든 공간을 직접 관리하고 꾸려나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제가 평생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힘들지 않으세요? 라는 말 같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고 일도 대충 하지 않았고, 공부도 쉽게 하지 않아서 철이 없을 때는 제가 고생하며 살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거고요. 어느날 생각해 보니까 감사해 할 게 훨씬 더 많더라고요.
어떤 것에 감사하게 되던가요?
책 한 권 읽는 것은 엄청난 사람을 만나고 인생 하나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언어를 하나 알면 세계가 열리는 일이고요. 그렇게 책을 읽으며 좋은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났어요. 예를 들어 서로 카프카를 읽었다, 괴테를 읽었다, 첼란을 읽었다, 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건 바로 친구가 되는 겁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맞은 인연, 그들에게 받은 은혜에 너무도 감사해요. 저는 정말 그런 분들이 제 인생의 지분이라라는 생각을 해요. 끝도 없습니다. 그러니 학자라면 공부해야죠.
‘학자’라는 라는 말에서 어딘가 은밀한 위용 같은 게 느껴져요.
저는 강연 하나 들으러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비행기 타고 가요. 그런 곳에 가서 강연을 듣는 경험은 그저 강연이 전부가 아니에요. 각자 한 주제로 평생 공부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기가 막힌 대화들이 가능하거든요.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소문난 맛집 찾아 가는 일도 즐겁지만, 이렇게 정신의 맛집은 대단합니다.
여백서원도 그런 지성과 통찰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겠네요.
저쪽에 외국에서 온 학자나 작가들이 지낼 수 있는 1인용 한옥이 있어요. 정말 예쁜데요. 별다른 의무 없이 두 달 동안 와서 지내다 갈 수 있는 해외 교류 프로그램이에요. 그림 그리는 화가는 여기 갤러리에서 전시도 하고 가요. 사람들이 숨 돌리고 가고,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기운을 얻어갈 수 있는 장소나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저를 포함해서 저의 제자들이, 또 제 아이들이 해외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매우 감사했었어요. 특히 저는 받은 게 너무 많아요. 이제 받기만 하는 때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또 한편으로는 이런 배려가 부족한 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서로 격려하고 박수 치고 이러고 살아야 되잖아요?

여백서원에서 선생님이 가장 애정하는 공간은 어딘가요?
어린이 도서관이요. 차 두 대 들어가는 크기의 차고를 고쳐 만든 공간이에요. 지붕을 들어올려서 아이들이 좋아하게끔 다락도 만들어 놓고 비밀스러운 방도 만들었죠. 사서는 6학년, 부사서로는 3학년 어린이가 돕고 있어요. 여기 동네 애들은 자전거 타고 와서 놀다 가요. 이 도서관을 아지트 삼고 정원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 하고, 종이 비행기 날리며 놀아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요.
최근에는 괴테 마을을 만들고 계신다면서요.
두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만들어요. 첫째, 뜻을 가지면 사람이 얼마나 클 수 있는가. 둘째,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가. 괴테는 정말 ‘큰 사람’이에요. 그가 남긴 문학의 업적은 지극히 일면이고, 자연과학자로도 어마어마한 연구를 했어요, 제무국 장관이었고, 그림도 2500점이나 남겼죠. 그런 사람은 본인 스스로를 어떻게 키웠는지 궁금하잖아요. 최근 완공된 첫번째 집의 포인트가 바로 이것입니다.
실제로 바이마르에 있는 괴테 하우스와 닮은 모습이네요.
네. 실제 괴테의 집을 모티브로 지었어요. 1층에는 도서관과 카페가, 2층에는 전시관이 있어요. 청소년부터 어른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주제는 극복이에요. 극복이란 단어는 ‘극기복례’를 줄인 말로 어려움을 이겨서 바르게 산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따라서 도서 큐레이션도 세계문학전집 중 자신을 이기고 넘어서는 방법, 바르게 서는 방법이 담긴 책을 위주로 구성했어요. 그리고 2층 전시장에서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으로 비로소 스스로를 확 뛰어넘는 이야기가 펼쳐질 거예요.

지금은 괴테 전집을 번역하고 계신다고요.
괴테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시작했어요. 괴테가 파우스트만으로 알려지기엔 아쉽고, 괴테의 문학을 혼자 읽기에 참 아깝다는 생각이거든요. 여럿이 모여 함께 만들면 빠르게 끝나겠지만 사람들을 조직하고 함께 일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혼자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괴테 연구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그의 문학에 빠져들게 한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특별한 일이 있었다기 보다는 일종의 종착역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날 갑자기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가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죠. 에베레스트 같은 산은 동네 뒷산부터 올라가고 점점 체력과 노하우를 쌓아서 비로소 가 닿는 곳이죠. 괴테의 세계 역시 무척 거대하고 장엄한 영역이에요. 파우스트만 해도 그가 60년 동안 썼죠. 2111자로 구성한 아주 정교한 시입니다. 죽기 전까지 고칠 정도로였습니다. 그 후에 독일 사람들은 괴테가 단어 하나 하나 고친 흔적까지 지키고 남기려고 애를 썼어요. 그 도시의 책과 출판사, 도서관 보면 알죠. 괴테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 이유도 주변 환경 덕분이에요. 그래서 독일 한 번 갔다오면 울고 싶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