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위 요즘 브이로그를 보면 대체로 단정하고 깨끗하고, 일상의 하이라이트만을 모아 예쁘게 연결한 모종의 ‘문법’ 같은 게 있는데, 두리 씨의 비디오 저널 ’journal vidéo’는 자연스럽고도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자연스러운 게 좋더라고요. 집에서의 제 모습이나 지저분해보이는 집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이미지요. 너무 거칠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전 마음에 들어요.
장난스럽다가도 신비로운 음악이 특히 한 몫을 한다고 느꼈어요. 저는 자기 전에 침대에서 봤는데 영화 <수면의 과학>이 떠오르더라고요.
올가넬이라는 작고 귀여운 악기로 만든 음악이에요. 다양한 질감의 소리를 만들 수 있어서 제가 무척 좋아하는 악기거든요. 평소에 녹음해둔 대화나 고양이 소리 등을 섞어 만들었어요. 매일 영상을 찍고 만들다보면, 늘 같은 집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비슷한 움직임을 하는 제 모습을 마주하거든요. 참 지루하고 지겨운 장면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생각이 들 때 음악을 더 신경써서 만들곤 하죠. 영상의 분위기를 가장 확실하게 바꿀 수 있거든요. 요즘은 친구가 만들어준 악기로 띵가띵가 가지고 놀면서 소리를 버무려 영상에 올리기도 해요. 때로는 영상보다 음악을 만들 때 더 즐거워요.
‘journal vidéo’의 규칙이 ‘매일 그날 찍은 영상을 그날 편집해서 올린다’잖아요. 매일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지금은 일을 하지 않고 쉬는 상태이다보니 하루를 잘 보낼만한 루틴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기처럼 하루를 매일 기록하는 싶은데, 저는 손글씨로 일기를 쓰는 게 잘 안되더라구요. 오히려 영상이 훨씬 쉽게 느껴져요. 또 지난 어느 날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아요. 솔직히 어제 일, 지난 주 일도 가물가물 하지 않나요?
1일 1홈 비디오를 민들기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언제부턴가 계속 스스로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10년 전 처음 영상 일을 시작했을 때 저는 이 일이 정말 재미있고 신났단 말이에요. 지금까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때 당시에 느꼈던 재미를 잃어버린 것 같은 안타까움과 다시 무언가에 즐겁게 몰입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던 와중이었어요.
결국 그 재미를 다시 느꼈나요?
첫 영상을 만들었을 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가장 기분 좋았던 날로 기억해요. 어느 너무 무료하고 심심한 날이었는데, 집에서 혼자 마냥 늘어져 있는 내 자신이 싫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문득 이런 모습이라도 찍어서 뭐라도 만들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별 생각 없이 찍기 시작했어요. 영상을 편집하고 직접 만든 음악을 입혀 하나의 비디오로 만들고 보니까, 화면 속에서 보이는 무기력하게 늘어져있던 시간이 의미 없게 그냥 흘려보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좋더라고요. 편집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시간도 의미있고요.
영상을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을 얼마나 들여요?
요즘은 한 두 시간 정도? 영상 하나 만드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려요. 그 첫날은 너무 몰입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 다섯 시간이 넘게 지나있었어요. 하지만 매일 만든다는 걸 고려하면 시간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제가 여유가 많은 때라 이렇게 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바빠질 수도 있고, 시간이 없는 날도 있잖아요. 적어도 일 년 정도는 지속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죠. 어느 날엔 비교적 짧고 간단하게 만든다거나, 여력이 없어서 만들지 못하는 날은 다음 날에 합쳐 만들기도 해요.
솔직히 귀찮을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네. 정말 그래요(웃음). 자유롭고 순전히 재미로 시작한건데 불구하고, 매일 하나의 영상을 만들겠다는 제가 세운 이 기준 때문에 힘들기도 해요. 일 할 때 스스로를 몰아부치던 습관이나 강박이 여기서도 드러날 땐 의아하고요. 이 영상을 만든는 시간 만큼은 아무런 압박이나 의무, 기대 같은 것을 버리고 싶었거든요. 여전히 쉽지 않아요.
곧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프랑스에 갈 예정이잖아요. 짐과 가구를 정리하는 과정과 모습이 모두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기분이 들어요?
우선 가구를 하나씩 정리할때는 자유로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런데 영상을 통해서 드는 특별한 기분은 없어요. 그날 찍은 하루를 그날 바로 들여다보고 편집하기 때문에 영상을 만들면서 감상에 빠지거나 어떤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거든요. 그런데 분명 나중에 의미가 생길 거라고 믿어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막 찍어둬서 오히려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글, 사진, 영상 등 여러 기록 매체가 있죠. 영상 매체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영상이 가장 현실에 가까운 기록을 가능하게 한다고 봐요. 소리가 함께 기록되다보니 훨씬 생동감 있죠.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거나 추억을 상기할 때는 소위 정지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영상은 그 이미지를 연속성 있게 시간으로 담고 있잖아요. 저는 불과 몇 년 전에 살았던 집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데, 종종 당시에 찍은 영상을 보면 그 집의 분위기랄지, 당시 나의 감정까지 확 떠올라요. 이번 집도 영상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이 비디오 저널을 만들기 시작한 후로 생활에서의 변화도 있나요?
5년 전에도 1년간 ‘매일의 영상’ 이라는 이름으로 15초짜리 영상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생명체를 찍는다는 게 포인트였어요. 주변 친구들부터 스쳐지나가는 익명의 사람들과 동물, 식물 등 크고 작은 생명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기였거든요. 이번에는 좀 달라요. 제 스스로에게 관심을 두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한 거예요. 일상의 변화는 딱히 없지만 영상을 통해 제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고,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습관이나 버릇을 발견할 때 정말 놀라워요.
사용하는 장비는 어떤 건지 궁금해요.
아이폰 SE와 6년 전에 산 캠코더를 주로 써요. 이 캠코더는 여행 갈 때 종종 들고갔었는데, 줌 기능이 좋아서 생각지 못하게 재미있는 장면을 찍을 수 있어서 좋아요. 사실 저는 장비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긴 한데, 최근에는 ‘블랙 매직 포켓 시네마’를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상 편집을 할 때 신경 쓰는 점은 뭔가요? 일이 아닌 영상으로 부담 없이 순수하게 재미로 만들겠다는 거 말고.
일을 하면서 갖게 된 익숙한 방식들을 피하려고 했어요. 뮤직비디오나 광고 같은 상업 영상이야말로 가장 예쁜 장면만 고르고 골라 편집하잖아요. 완벽한 앵글을 찾으려고 하는 습관도 마찬가지예요. 제 비디오 저널에서는 대충, 무심하게, 때로는 이상한 모습도 담으려고 해요. 솔직히 정말 대충 만드는 편이에요(웃음).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러움을 찾고 싶은 마음도 있고, 영상 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지? 싶은 걸 원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자연스러움을 찾는 작업이 나중에 일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겠네요.
너무 바라고 있어요. 대개 상업 영상은 기획과 계획, 완벽한 연출 속에서 만드는 반면 이건 편집 연출이에요. 편집할 때 기획부터 시작하는건데요. 사실은 의도나 계획 없이 찍을 수도 있고, 때로는 의도가 있더라도 편집 과정에서 새롭게 쓰일 수 있어요. 실제로 찍을 때는 쓸모 없어보이고 의미 없는 컷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나중에 음악을 만들어 얹으면 문득 촬영하던 그때의 순간이 생경하게 느껴지고 영상에는 또다른 분위기가 생겨나요. 그럴 때 특히 배우는 것 같고, 새롭게 알아가는 순간이라고 여겨요.
오래 일했던 대중 매체 영역과 다른 결이네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 개인적인 내용과 사적이고 분위기의 솔직한 다큐멘터리를 생각하는데, 지금 만드는 비디오 저널이 일종의 초석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일종의 실험이기도 한데, 하루를 담은 영상이 한동안 쌓이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가 만들어져 있겠다 싶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