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희동 주민이 된지 얼마나 되었나요? 자주 가는 곳은 어디인지도 궁금해요.
이 집엔 작년 12월 1일에 입주했어요. 반년 정도 지났네요. 제가 주로 서대문구, 마포구, 종로구 일대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이 동네를 골랐습니다. 사람들은 ‘연희동’ 하면 사러가마트 쪽을 자주 떠올리던데 저는 좀 더 안쪽을 선택했어요. 여기가 조용하고, 밥집도 많고, 산책하고 싶을 때 홍제천도 가깝거든요. 집에 사다 놓은 커피가 떨어질 때면 보틀라운지로 자주 갑니다.
집에 음악감상실을 마련할 계획으로 설렜겠어요.
맞아요. 그 전엔 2년 정도 본가에서 지냈거든요. 다시 자취를 하게 되면 나만의 사운드룸을 꼭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제대로된 사운드룸이라기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래도 제가 아끼는 공간이에요.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일어나자마자 손에 잡히는 앨범을 틀고, 커피를 마십니다. 그 외에는 고정적인 루틴이라고 할게 딱히 없네요. 학원 고등부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보니 스케줄이 다소 유동적이에요. 오늘은 오후 4시까지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일하지 않는 시간은 영화, 음악, 책으로 채우고요. 말하고 보니 너무 흔한 답변 같아 민망하네요. (웃음) 영화는 무조건 영화관에서 본다는 저만의 규칙이 있어서 출근 전에 영화 한 편 볼 때는 연희동 라이카 시네마로 갑니다. 상영 시간이 운 좋게 잘 맞거나, 주말에는 서울아트시네마나 한국영상자료원으로 가고요.
고등부 수학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10대 시절부터 수학을 잘했겠죠? (웃음)
아무래도 그렇죠. 저는 약대를 졸업했는데 재학 당시 수학 과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거든요. 가르치는 일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보상도 확실히 주어지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일반 직장인보다 늦은 편인 것도 좋았어요. 장점이 많아요. 이를테면 평일 낮 시간에 사람 없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볼 수 있다는 점들이요.

음악과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창작을 직업으로 꿈꿨을 것 같은데요.
늘 예술, 문화 그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맞아요. 예를 들어 사진 같은 경우 카메라 들면 다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지요. 그렇게 시작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겠고요. 그런데 주위에 진짜 사진가로 살아가는 친구 혹은 지인들의 헌신을 옆에서 보니까 제가 그 정도로 재능이 있는지, 또 그 일을 그만큼 사랑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진뿐 아니라 음악이든 영화든 뭔가를 만드는 사람은 좀 더 진심으로 임해야 하는 것 같아요.
창작자가 될 자격에 대해 스스로를 너무 의심한 건 아니고요?
그랬을 수도 있죠. 원하는 것들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제 진정성을 계속 의심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반드시 창작자가 되어야만 어떤 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직업으로 삼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점도 분명 있고요. 사활을 걸지 않아도 된다면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좋아할 수 있으니까요. 취미라고 해서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영화의 경우는 일 같을 때도 있어요. 어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모조리 감상할 때나 러닝 타임 6시간짜리의 영화를 볼 때는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결국 일과 취미의 차이는 그것을 대하는 진지함의 차이라기보다 스트레스가 발생하느냐 아니냐가 결정하는 것 같아요. 너무 단순한 분류일지 몰라도 조금이라도 고생한다고 느껴지면 그건 제겐 일이거든요. 음악의 경우는 바이닐 컬렉터를 자처하면서 일과 취미 사이의 절충점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바이닐을 모으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대단한 이유는 아닌데요, 2016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엔 신촌에서 자취를 하고, 창천동 펠트 커피가 오픈할 때부터 방앗간처럼 드나들었어요. 거기서 제가 좋아하는 밴드 더 스미스의 음악을 바이닐로 곧잘 틀어줬거든요. 그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 스미스의 프런트맨 모리세이가 쓴 가사에서 동질감을 자주 느끼곤 했어요. 제가 평소에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은 편인데 스미스의 음악을 잘 들어보면 무척 솔직하고 인간적인 내용이 많거든요. 언니네 이발관의 가사들도 그런 맥락에서 굉장히 좋아해요. 바이닐은 지금까지 500장 가까이 모았는데, 본가에 많이 남겨두고 왔어요. 잠깐만요. 판 좀 뒤집고 올게요.
바이닐의 매력 중의 하나는 자동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이기도 하겠죠?
친구들을 초대해서 보드게임을 자주 하는데, 그때 음악을 틀면서 왔다 갔다 해야 할 땐 귀찮기도 해요. 그래도 하나의 의식으로 여기고 있어요. 앨범 슬리브에서 꺼내서 턴테이블에 올리고, 한 사이드를 다 들으면 뒤집어서 듣는 행위를 통해 음악에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고 느껴요.

바이닐은 주로 어디서 구매하나요?
사는 곳이 특별하진 않아요. 아마 바이닐 모으시는 분들이면 다 알 텐데요. 디스코그스(discogs.com)나 일본 야후 옥션 등 온라인에서 구매할 때도 있고, 국내 오프라인 숍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김밥레코즈나 도프레코드는 주기적으로 찾고요. 정션, 모자이크, 클리크레코드도 자주 갑니다. 무엇보다 걷다가 레코드숍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는 편이에요.
디깅하는 날이 딱 정해져있지는 않고요?
네. 레코드숍을 발견하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보이면 들어가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에⋯. (웃음) 굳이 정해둔 날이 있다면 매년 가는 서울레코드페어 정도가 되겠네요. 작년에도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30장 넘게 구매했었죠⋯.
커버만 보고 고르기도 하나요? 책은 그런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누군가는 그런 게 ‘콜렉팅의 맛’이라고도 하던데요. 전혀 모르는 음반을 사 와서 들었는데 무척 마음에 들면 더 반가우니까 그렇게 즐기는 방법도 종종 괜찮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새로운 음악을 찾을 땐 디지털 스트리밍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2023년에 굳이 LP를 찾는 건 결국 낭만이잖아요. 어떤 앨범의 물성을 느끼고 싶을 만큼 좋아하고 또 오래오래 두고 싶다는 뜻이니까요. 그렇게 하나하나 고른 것들이 대단하진 않더라도 제 컬렉션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에서는 바이닐 한 장에 보통 4~5만 원대인데 제비뽑기 한 번으로 날리기엔 아깝기도 하고요.
오명학의 바이닐 컬렉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심도 있나요?
아주 나중에는요. 한 10년 정도는 더 모아서 작은 킷사
(파르페, 드립 커피, 샌드위치, 카레라이스 등을 주메뉴로 하는 일본식 카페 킷사텐(喫茶店)을 줄여 이르는 말로, 1960~1980년대 성행했다.) 같은 걸 차리고 싶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자주 바뀌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킷사만은 저의 느슨한 청사진 안에 있거든요.
근사하네요. 이름은 ‘명학킷사' 어때요?
괜찮은데요? 지금 집 근처에 열 수 있다면 더욱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