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커리어로 발전시킨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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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병에 취약한 기록광이 오디오에 빠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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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로도 알려진 금정연 작가는 책은 물론 영화, 택시, 담배 등 그의 생활 영역 안에 있는 것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가 턴테이블을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매닉스 2집 을 구입하면서 2021년 9월부터 블로그에 오디오 일기 ‘레코드 디스코드’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한 음악 애호가가 오디오파일audiophile 세계로 발을 들이는 이야기, 사 모은 음반, 새로 들인 음향 장비와 오디오용품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은 경험담이다. 그렇게 이어가는 이 기록의 중심에는 취미에 대한 남다른 통찰이 있다.

금정연

오디오 세계에 입문한 후 달라진 일상을 꾸준히 기록하다 보니, 취미의 본질이 바로 ‘장비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본업
작가
특징
기록광
김밥레코즈, 알라딘, 아마존

2021년 여름 문보영 시인에게 턴테이블을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오디오파일 세계에 진입했다고요.

네. 평소에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들었던지라 LP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턴테이블이 생겨서 처음으로 평소 좋아하는 뮤지션인 매닉스의 앨범을 LP로 사서 들어봤어요. 스피커가 일체형으로 구성된 작은 턴테이블이다 보니 음색이 썩 좋지는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하나하나 장비를 구입하기 시작했어요. 아직 입문자이고 오디오파일이라 하기엔 사실 ‘막귀’예요.


그 입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하고 고군분투하는 시기잖아요.

그 전에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용했거든요.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할 수 있는 턴테이블이 있다기에 사봤죠. 그런데 LP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듣는다는 게 좀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진공관 앰프를 사야겠다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무척 궁금했는데, 잘된 거죠. ‘차이파이’라고 중국 제품 중에도 저렴하고 괜찮은 앰프가 꽤 있더라고요. 스피커도 같이 사서 한동안 들었는데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여름에는 진공관 앰프를 켜면 너무 더운 거예요. 그래서 앰프를 하나 더 사고, 스피커도 좀 더 큰 걸로 들어보고 싶어서 톨보이 스피커를 샀어요. 궁금증이 계속 생기니까 이것저것 하나씩 사서 들어보는 중이에요.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었나요?

음악은 거의 항상 들어요. 특히 어렸을 때는 음악 듣는 게 너무 좋아서 동교동에 있는 음악감상실도 자주 가서 하루 종일 앉아 있고, 용돈 아껴서 CD를 사곤 했어요. 20-30대를 지나면서는 어릴 적과 같은 열정보다는 습관적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흘려듣는 식이었어요. 다만 스트리밍으로 들었죠. 제가 직접 선곡해서 들을 때도 있지만 추천 알고리즘 리스트를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았죠. 그런데 이제는 LP를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마치 복습하듯 듣고 있어요.


금정연만의 음악 루틴이 있나요?

일하기 전에 커피 마시면서 30분 정도 음악을 들어요. 멍 때리듯 앉아서 음악을 듣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리프레시되는 느낌도 들고요. 또 매일 15개 정도의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어떤 앨범이 새로 들어왔나 살펴봐요. 김밥레코즈, 메타복스, 알라딘, 스마트스토어인 라보앤드, 레코드스톡 같은 음반 쇼핑몰인데, 레코드 가게마다 신규 리스트가 제각각이라 일일이 들어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어요. ‘보기만 해야지’ 하다가도 ‘어, 이런 게 있네?’ 하면서 장바구니 버튼을 또… 그런데 배송비를 아껴야 하니까 다른 것도 사게 되고….

주로 어떤 앨범을 구매하나요? 

요즘은 힙합과 재즈요. 원래는 1990년대 미국 모던 록, 브릿팝을 많이 들었는데 오디오를 구비하고 나서는 여태껏 듣지 않았던 음악을 들어보기로 했거든요. 이렇게 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후 음악을 재발견한다는 느낌이 자주 들어요.


‘재발견한 음악’에 관해 더 얘기해 주세요.

요즘은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잖아요. 저도 차 안에서는 항상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듣는데,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추천 음악 리스트를 그대로 듣고 있으면 그야말로 배경음악처럼 끝없이 흘러나와요. 반면 턴테이블로 음악을 들으면 신경 쓸 게 많죠. LP는 한 면이 길지 않아서 자주 뒤집거나 바꿔줘야 하니까 음악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음악이라도 새로운 소리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듣다 보면 점점 더 좋아지는 음악’이 생기고요.


그 말씀에 공감해요. 직접 사서 듣는 앨범은 왠지 모르게 더 좋더라고요.

어릴 적에는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가 없어서 궁금한 앨범이 있으면 차곡차곡 모은 용돈으로 CD를 사서 듣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CD 한 장 값이 버스 20번 타는 금액이랑 비슷해서, 앨범 한 장 사려고 걸어 다니고 그랬거든요. 그렇게 산 앨범은 마르고 닳도록 들어야 해요.(웃음) 반복해서 듣고, 가사 보면서 듣고. 그러면 처음 들었을 때는 그리 끌리지 않았던 음악도 좋아지곤 했어요. 요즘도 커버가 예뻐서, 또는 설명이 매력적으로 적혀 있어서 궁금증이 생기는 음반이 있으면 스트리밍으로 들어보지 않은 채 그냥 사요.


턴테이블로 음악을 들을 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에겐 시각적 만족감이 가장 커요. 커다란 판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보기 좋고요. 귀기울여 들어보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말고 바늘 긁히는 소리도 조금씩 새어 나오는데, 시각과 청각이 일치하는 게 인상적이에요. 마치 음악이 현존한다는 느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어요. 소리라는 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공간을 채우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책만 있던 이곳에 오디오 존이 생기면서 음악 장비 주변에 포스터도 붙여놓고, 조명도 바꿔 달고 그랬어요. 그 전에는 10년 동안 한 번도 꾸미지 않았거든요.

불편을 감수하고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소위 ‘불편을 견디는 자세가 진리’라고 여기는 걸까요?

오디오파일도 크게 두 가지 진영이 있어요. 이른바 올드 오디오파일은 LP가 음악의 본질이라고 주장해요. 다른 한쪽에서는 그건 소리의 본질이 아니라 그저 열화되고 왜곡된 소리라고 반박해요. 고용량 디지털 파일의 음악이 정말 좋은 소리를 내는 음악이라는 거죠. 전자는 ‘하이파이 매니아’, ‘두근두근 오디오’ 같은 꽤 오래된 네이버 카페 기반의 커뮤니티 쪽 기조예요. 연륜 있는 오디오파일들이 활동하고 아주 비싸고 근사한 장비를 늘어놓고 자랑하는 모습도 자주 보이죠. 후자는 디시인사이드의 ‘스피커 마이너 갤러리’ 같은 부류의 집단이에요. 이들은 녹음된 소스를 최대한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들려주는 것이 앰프의 역할이라고 강조해요. 말투도 꽤 거친 편이죠. 그 중간쯤 되는 ‘DVD 프라임’에서 꽤나 균형 잡힌 양질의 정보가 올라와요.


워낙 마니아들의 세계라 그런지 오디오에 관한 미신 같은 게 있다고 들었어요.

브랜드는 물론이고 코드 꽂는 방법, 케이블의 선제 등 모든 요소가 음질을 좌우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앰프마다 고유한 특색이 있고, 앰프와 스피커를 어떤 선으로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소리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제 생각으로는 선제나 전기에 따라서 소리가 변한다는 건 허황된 이야기 같아요. 실제로 변한다고 해도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차이일 거예요. 어쨌든 오디오도 음식처럼 음식 자체보다는 브랜드, 가격, 장소, 분위기 등 부수적인 요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봐요. 소리나 장비를 평가하는 기준도 각자 다르겠죠. 본인이 원하는 음색과 소리를 직접 찾아 오디오를 세팅하는 행위가 중요한 사람이 있고, 음악 제작자가 의도한 것과 똑같은 소리를 재생하는 장비야말로 좋은 성능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포장을 뜯지 않은 음반은 특별히 소장하는 것인가요?

소장하려고 그런 건 아니고요. 사실 사놓고 듣지 않는 음반이 꽤 있어요. 책도 그렇고요. ‘최고의 음반 한 장’, ‘결정적인 열 권의 책’, 이렇게 꼽는 게 아니고, 제가 산 수많은 물건이 모여 있는 모습에서 보여지는 게 있어요. 저의 어떤 마음, 어떤 선택이 모여서 일종의 맥락을 형성한다는 느낌이요. 여기 있는 책 중에는 제가 안 읽은 책도 많고 아마 평생 안 읽을 책도 많을 텐데, 그렇다고 꼭 읽을 책 300권을 추리기는 싫거든요. 그렇게 되면 소장과 수집의 의미 또한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수집이라는 건 맥락과 흐름을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포스타입Postype’ 블로그에 사고 들은 음반과 음악에 대한 일기를 쓰고 계시죠. 그중 ‘장비병이 취미의 본질’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어쨌든 돈을 쓰며 살잖아요. 가능하면 잘 쓰고 싶고, 합리적으로 쓰려고 하죠. 그래서 마음 놓고 돈을 쓸 수 있는 분야가 필요해요. 누군가에게는 그게 옷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전자 기기일 수 있죠.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때는 성장하는 기분도 느끼는 거죠. 취미가 발전하는 것이고, 각자 좋아하는 분야의 장비를 사면 뭐라도 남으니까 돈을 허투루 쓴 게 아니라고 합리화도 할 수 있어요. 결국 취미라는 건 돈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수단 혹은 핑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캠핑을 실제로 가는 것이 아닌, 캠핑 장비를 하나하나 갖추는 즐거움도 크잖아요. 저는 여기에 공감해요. 이런 의미에서 장비병이 취미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장비병을 잘 다스리는 법이 있을까요?

혹자는 ‘한 방에 가라’는 말을 해요. 예를 들어 스피커를 산다고 해요. 일단 적당한 제품으로 사서 듣다 보면 언젠가 부족함을 느끼고 결국에는 더 비싸고 좋은 것을 다시 사게 되니, 처음부터 가장 좋은 것을 사는 게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처음에는 자신의 현재 상황과 조건 안에서 ‘한번 해볼 수 있겠는데’ 싶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해요. 그렇게 발을 들여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것을 지향할지 알게 되거든요. 이런 과정에서 그 분야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자부심도 생기잖아요. 아무 경험 없이 그저 좋은 장비로 시작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죠.


단행본에 대한 욕심도 내비치셨는데 어떻게 되었나요?

내기로 했어요.(웃음) 수억 원 들여 오디오를 취미로 하는 분들에 비하면 한참 애송이인데요, 오디오를 대하는 상반된 세계관과 집단, 오디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느낀 것을 중심으로 쓴 에세이예요. 계속해서 LP를 살 수 있는 수단과 핑계가 생겼어요. 2023년 12월까지 쓰기로 했습니다.


여기 수많은 책 중에 음악에 관한 책도 당연히 있을 텐데 몇 권 추천해 주세요.

하닙 압두라킵의 <죽이기 전까진 죽지 않아>를 추천해요. 하닙 압두라킵은 미국 시인이고 음악에 관한 글을 많이 썼어요. 이 책도 음악 에세이예요.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부터 켄드릭 라마, 위켄드 같은 동시대 흑인 음악 신에 대한 글도 많고 무척 재밌어요.

Tips

금정연의 책꽂이에서 꼽은 🎶📕음악책

1.
죽이기 전까진 죽지 않아

(하닙 압두라킵 지음, 최민우 옮김 / 카라칼 / 2022년 10월)

2.
음악의 사물들 : 악보, 자동 악기, 음반

(신예슬 지음 / 작업실유령 / 2019년 8월)

3.
사일런스: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존 케이지 지음, 나현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7월)

4.
모던 팝 스토리 -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모던 팝을 이끈 결정적 순간들

(밥 스탠리 지음, 배순탁·엄성수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12월)

5.
Hi-Fi 오디오·라이프·디자인

(기디언 슈워츠 지음, 이현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2월)

Editor
Yoo Dami
|
Photographer
Studio Shinhoon
|
Date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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