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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여름 - 열네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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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골드

2023.04.29 13:10

조회수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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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은 열네번째 이야기입니다. 
=====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오래도록 눈이 내린 탓에 
먹을 것 하나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마을의 성인 고양이들은 이번 겨울을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인간 마을로 하나둘 발을 옮겼다
.
일반 고양이들은 나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정을 떠나는 것은 사실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
내가 나서서 식량을 보급 해오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해 봤지만
장로님은 마을의 규칙이 우선이라며
일단 여행부터 다녀오라고 단칼에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셨다
.
.
.
지금...꼭 떠나야 하는 거지?

내가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그녀는 나를 힘겹게 붙잡았다
아직 어린 나이의 그녀인데 차마 가지 말라는 이야기도 못하고
꾹꾹 참고 있었을 것이다

금방 다녀올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애써 웃음 지어 보이는 내 얼굴을 보자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다 괜찮을 거라고 머리를 한 참 쓰다듬은 뒤 바로 길을 나섰다 
돌아보면 떠나지 못할  것 같아서 
앞만 보고 빠르게 마을을 빠져나갔다
.
.
.
그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내가 떠난 지 이틀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마을 어귀에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는데 어린 고양이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그녀에게 사고가 생긴 것 같다고 전해 주었다
.
자신의 모습도 어느 정도 사람처럼 변했다고 멋대로 판단한 그녀가
식량을 구해 오겠다며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무작정 떠났다가 일을 당한 것 같았다
(그건 핑계고 아마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이겠지)
.
어린 고양이들의 안내를 받아 그녀가 쓰러져 있다는 아파트 단지에 서둘러 돌아왔을 때
그녀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야 정신 들어?? 나 알아보겠어?!!

그녀를 흔들어 깨워보았지만 그녀는 의식이 없었다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마을의 규칙이고 뭐고 나는 그녀를 떠났으면 안됐을 텐데...
쓰러진 그녀 옆에 누워 후회의 눈물을 왈콱 왈콱 쏟을 뿐이었다
.
.
뭐 하는겨 어여 일어나 보더라고

어느샌가 장로님이 와계셨다
고양이 소식통은 어디까지 뻗혀있는 것일까

이게 다 장로님 때문이에요...내가 식량을 구해왔더라면... 
그렇게 떠나지 않았더라면...!!!


절망에 빠진 나는 울고불고 장로님 탓을 했다
사실 스스로에게 하는 원망이었다

뭔소릴 하는겨 괜찮다니까. 호들갑 떨지 말고 차분히좀 있어봐봐. 아유 얜 또 뭔 츄르를 얼마나 먹은겨 진짜

녜?????츄.....츄르????????

그렇다
그녀는 인간 마을에 오자마자 
인간들이 귀엽다고 준 츄르를 과하게 먹은 것이다
난생처음 맛보는 츄르에 취해 
양 조절을 하지 못하고
필름이 끊길 정도로 먹어치운 그녀는 그만 
이렇게 길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다시 바라본 그녀의 배는 새근새근 위아래로 잘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미친...

참 손이 많이 가는 그녀였다
.
.
민망함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내 굽은 등을 장로님이 말없이 두들겨 주었다 
고생이 많다며...

일기예보 보니께 눈은 이제 그칠거 같으니 너무 걱정 말더라고
원정갔던 고양이들도 다 무사히 복귀중이라 하니까 식량걱정도 말고
자넨 그저 여행이나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면 되는겨


머쓱하게 일어난 나는 장로님께 그녀를 잘부탁한다고
몇번이나 인사드리고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장로님은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누워있던 그녀를 들쳐 업었다

나중에 너희 마지막 여행은 이쪽으로 오면 되겠구먼 이것도 다 추억인디

하고 짓궂게 농담하며 마을로 돌아가셨다
난 창피한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하염없이 내릴 것만 같있던 눈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제 다 기억났나 보네?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카메라..아니 타임미러를 내렸을 때
내 앞에 선 그녀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
순간, 나의 이번 여름은 계속 반짝 거리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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