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작업실
박웅현 《여덟 단어》 '고전'과 '견'

리수2
2026.06.1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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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이겨낸 것, 그리고 제대로 본다는 것
앞선 글들에서는 《여덟 단어》의 '자존'과 '본질'을 이야기했는데요. 오늘은 세 번째와 네 번째 단어, '고전'과 '견(見)'을 한 자리에서 묶어보려 합니다.
고전, 시간이라는 시련을 견뎌낸 것들
고전(古典)은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을 뜻합니다. 작가의 질문은 이거예요. 모든 것이 시간 앞에 풍화되어 사라지는데, 어떻게 어떤 작품들은 그토록 오래 살아남는 걸까.
그 답을 작가는 '본질'에서 찾습니다. 위대한 문학과 미술, 음악은 나에게만, 우리나라에서만 좋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느끼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건드렸기에 살아남았다는 거죠. 한 달이면 시드는 유행보다, 시간의 시련을 견딘 것이 훨씬 본질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이 장은 김홍도와 베토벤, 뭉크와 정선을 넘나드는 작품 소개가 많아 다소 나열처럼 읽히기도 했어요. 다만 한 문장만은 오래 남았습니다.
'클래식을 당신 밖에 살게 하지 마라. 그것은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즐길 대상이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라도 깊이 보고 듣는 것. 그 태도가 사실은 다음 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견, 똑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읽어내는 힘
개인적으로는 네 번째 단어 '견(見)'이 훨씬 깊게 와닿았어요.
작가는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을 예로 듭니다. 누구나 보는 평범한 간장게장에서 시인은 전혀 다른 무언가를 읽어냈죠. 똑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길어 올리는 그 힘은, 결국 시인의 '눈'에서 시작됩니다.
흥미로운 건, 전 세계 어디에도 '창의력 학과'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것이라고 해요. 창의력은 규격화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것을 기를 수 있는 단 하나의 교실이 있다면, 바로 '현장'입니다.
흘려 보느냐, 깊이 새기느냐
핵심은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무언가 들어 있다고 다 창의적으로 피어나지는 않아요. 정확한 자리에 깊이 새겨져 있어야 비로소 꺼내 쓸 수 있습니다.
흘려보낸 것들은 잡히지 않는다. 깊이 새겨진 것들만 잡을 수 있다.
같은 간장게장을 누군가는 그저 흘려보았고, 시인은 깊이 새겨보았던 것. 그 차이가 곧 견(見)의 차이입니다. 작가는 발견을 이렇게 정의해요. 모두가 보는 것을 보되,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일.
시간을 들여 천천히 보면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천천히 바라보면, 사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해요.
책에는 여든의 나이에 한글을 배운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를 쓰니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이제 들국화 냄새도 맡고 돌멩이도 들춰보게 됐다고 답했다고 해요. 전에는 보이지 않던 꽃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애정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으니까요.
단, 너무 많이 보려 하지 말 것
그런데 작가는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보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너무 많이 보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요. 넘치는 정보 속에서 욕심껏 더 보는 일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호학심사(好學深思).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
많이 보려 하기보다 본 것을 충분히 소화하는 것. 결국 '고전'과 '견'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넓게 아는 일보다,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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