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집에세이] Welcome aboard!

2023.04.26 10:56조회수 1482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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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황의정 (@doodaamee) 
빈티지 샵 엣코너(at corner)의 주인장이었다가 지금은 제주에 내려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파앤이스트(FAR&EAST)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동쪽의 작은 마을에서 남편과 강아지 넷,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에세이 『여행하듯 랄랄라』 , 『각자 원하는 달콤한 꿈을 꾸고 내일 또 만나자』를 썼습니다.



🔔본 글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날의 풍경을 기록하는 그림에서 출발한 에세이입니다.


© 황의정 




“집으로 돌아와 가급적 많은 것들을 노트에 적어둔다. 
원래 짧은 메모는 핸드폰에 저장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종이 위에 손으로 적는다. 
늙은 개에 대해서라면 조금이라도 
더 분명하고 자상하게 기록해 두고 싶어서다.”
 
 


⊹  


Welcome aboard!


© 황의정 




10년 전 우리와 함께 제주로 내려온 개는 이제 15살이 되었다. 그 시절의 푸르렀던 젊음은 온데간데없이 호호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제주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개와 함께 뛰놀던 지난 사진들을 들춰보면 마치 꿈이라도 꾸고 일어난 듯 믿어지지 않지만 늙은 개는 소파에 누워 선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모두 사실이라고. 우리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잖아, 엄마.’

제주는 생각보다 큰 섬이다. 섬 한가운데 한라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동쪽에서 서쪽을 가려면 해안 도로를 이용하거나 한라산의 등허리를 지나야 해 실제 거리감은 훨씬 멀게 느껴진다. 동네에는 최근 들어 한 시간에 한 번꼴로 다니는 공항버스가 생겼지만 시골 마을의 대중교통은 여전히 불편하다. 차가 없는 삶은 무원고립과 다름없다. 나는 이런 제주에서 운전하기를 미루고 뚜벅이로 살아왔다. 집에는 6인승 트럭이 있었지만 썩 맘에 들지 않았고 남편은 젊은 시절 자동차 여행으로 유럽대륙을 몇 번이나 횡단한 베스트 드라이버여서 굳이 나까지 운전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 덕에 더 많은 것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긴 했지만 조수석에 앉아 다리를 쭉 펴고 차창 밖으로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며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커피를 마시며 세월 좋게 보낸 시간이 10년이라니. 핑계는 참 길기도 했다.

자동차는 우리의 주요 이동 수단이었지만 개들의 이용 빈도도 높았다. 다른 볼일은 몰라도 숲길로 산책을 갈 때나 바닷가로 수영하러 갈 때 우린 가능한 개들을 뒷자리에 태우고 다녔다. 트럭의 뒷자리에 풀쩍풀쩍 뛰어오르던 큰 개가 어느 날 차에 올라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개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엉덩이를 살짝 받쳐 올려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곧잘 올라탔다. 차에 오르는 것은 조금 굼떠졌지만 뒷자리에서 앞자리의 엔진룸 위까지 발을 쭉 뻗어 얹고 몸을 곧추세워 활기차게 전방을 살폈다. 개는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그래도 무언가 보조 장치가 필요하다 싶어 차에 오르는 강아지용 계단을 만든 건 그즈음이었다. 트럭은 차체가 높아서 웬만한 애견용 발판은 맞질 않았다. 접이식 나무계단을 사서 좀 더 안정적으로 밟고 올라설 수 있도록 우리 차에 맞게 고쳤다. 이런저런 실험 끝에 차에 딱 맞는 계단이 완성되었다. 계단을 짐칸에 싣고 다니다가 개가 내리고 탈 때 문 앞에 바짝 당겨 놓아주었다. 문을 열면 계단이 놓아지기를 기다렸다가 착착 밟고 내려오는 모습과 타닥탁 한 칸씩 밟고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아빠가 만들어 준 계단을 오르내리며 늙은 개는 한참 동안 트럭을 타고 신나게 산책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산책을 나선 어느 날이었다. 늘 운전석 앞까지 고개를 빼고 서 있던 개가 뒷자리 시트에 등을 기대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다른 개들 때문에 비좁아 그런가 싶어 혼자 태워 보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 이젠 뒷자리에서 앞쪽으로 다리를 걸쳐 서는 게 힘에 부치는구나.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숲길 산책을 그만두고 동네 길을 걷기 시작했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이었고 정보탐색에도 좋은 코스여서 개는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었다. 동네 할망들은 혀를 끌끌 찼다. 왜 늙은 개를 집 밖에 데리고 다니냐며 ‘으이그, 늙은 개!’ 하고 지팡이를 흔들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늙은 개와 나는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걸어야 한다. 누죽걸사!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다른 차가 필요해지자 나는 급하게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차의 종류나 색깔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차종은 볼 것도 없이 세상에서 제일 낮은 차다. 한동안 중고차 사이트를 뒤지며 머리가 아프도록 알아보다가 육지에서 괜찮은 차를 찾아 제주로 가져왔다. 장롱 속 깊숙이 넣어 두었던 면허증을 꺼냈다. 오랜 조수석 생활은 이제 안녕이다. 수줍게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동네를 돌며 운전 연습을 하는데 뒤에 앉은 늙은 개가 또 내게 말을 건다. ‘잘하네! 진작 하지 그랬어.’

트럭에 타지 못해 이제는 동네 산책으로 만족해야 하는 찰나에 급하게 구입한 낮은 차는 새롭고 안락한 세상을 열어 주었다. 예전처럼 숲길로 산책을 갈수도 있고 어디든 편하게 다닐 수 있으니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나는 장롱 속 면허증을 꺼내 ‘개’ 택시 드라이버가 되었다. 운전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 속에 생각의 조각들이 흩어진다. 늙은 개의 컨디션의 변화, 오늘의 산책, 지금의 우리에 대해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와 가급적 많은 것들을 노트에 적어둔다. 원래 짧은 메모는 핸드폰에 저장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종이 위에 손으로 적는다. 늙은 개에 대해서라면 조금이라도 더 분명하고 자상하게 기록해 두고 싶어서다.


© 황의정 



사실 개가 이렇게 늙을 거라는 상상을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은 없었다. 이젠 개가 우릴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어서 걱정과 조바심은 매일 밤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밀물처럼 빠져나간다. 나는 매분 매 나노초 늙은 개를 걱정한다. 먼 미래보다는 바로 앞만 보아야 하는 날들이 계속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시간을 묵묵히 지나왔을까, 무단히 타인의 시간에 경외감을 가져본다. 영원 같은 순간이 지나고 당연하던 모든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은 나이. 뒷자리 시트에 기대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고 있는 나의 늙은 개처럼 언젠가 우리에게도 저렇게 나풀거리는 날들이 오겠지.

어쨌거나 오늘도 나의 개 택시에 선뜻 탑승해 주는 승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레이디스 앤 잰틀맨. 이제 출발합니다. 백미러로 뒤에 앉은 늙은 개를 한번 본다. 몽글몽글 차는 숲길로 나아간다.


꼭 껴안고서 - 꼭 껴안고서- 웃어볼까. 
꼭 껴안고서 - 꼭 껴안고서- 놀아볼까. 
내 품에 그으들을 꼭 껴안고오 -
BGM) 강산에 2008 물수건 『꼭 껴안고』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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