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 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 writer. 김혜원 (@cerulean_woonee)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까지가 우리 동네라고 생각하는 산책왕.
매일 일기를 쓰고 일기로 인생을 배웁니다. 10년 차 에디터이자 에세이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주간지 <대학내일>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현재는 트렌드 당일 배송 미디어 ‘캐릿’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에세이 『나를 리뷰하는 법』, 『작은 기쁨 채집 생활』, 『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 『주말의 캠핑』 등을 썼습니다.
재택 생활자의 봄맞이 루틴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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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초봄엔 프리지아를 사다 꽂아두고,
조팝나무꽃이 피면 가지째 구해다 놓는다.
매일 아침 하던 방한 체조 대신, 꽃병의 물을 갈고
테이블에 떨어진 꽃잎을 치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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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이 시작되면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처음엔 집에 오래 머무르는 게 답답했는데. 재택근무 4년 차가 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듯 집 생활이 익숙하다. 별일이 없으면 일도 집에서 하고 밥도 집에서 먹고 운동도 집에서 하고 술도 커피도 집에서 마신다. 예전엔 주로 밖에서 하던 일들이다.
그러나 추운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겨울 재택근무는 쉽지 않다. 평소에 씩씩하게 잘 해내던 일도 추우면 왠지 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가 챌린지다. 온수 매트 밖으로 몸을 꺼내는데 이렇게 큰 용기가 필요할 일인가. 겨울엔 침대맡에 두툼한 양말을 두고 잔다. 누가 보면 산타를 기다리는 줄 알겠으나 물론 아니고, 맨발이 방바닥에 닿으면 도로 이불로 들어가고 싶기 때문에 양말이 꼭 필요하다. 양말을 신고 부엌으로 나가서 주전자에 물을 올린다. 물이 끓는 동안 운동 매트를 펼치고 ‘방한 체조’를 시작한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팔 벌려 뛰기 삼십 회, 버피 삼십 회, 스쿼트 오십 회. 이렇게 몸의 온도를 강제로 높여야 업무 가능한 상태가 된다. 따끈한 차로 손을 녹이며 생각한다. “아, 봄 언제 와. (약간의 욕) ”
인디가수 계피가 부른 ‘Ever Ever’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창문을 닫아도 계절은 오고” 정말이다. 말했듯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고 그래서 겨울엔 좀처럼 창문을 열지 않는데. 환기를 게을리하는 우리 집에도 꼬박꼬박 봄이 찾아온다. 집 안에서도 ‘계절감’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게 매번 신기하다.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건 식물들이다. 화분에 물을 주다가 새잎이 난 것을 발견하고 달력을 보면 삼월 초. 개구리가 깨어나고 싹이 튼다는 경칩 즈음이다. 3월이지만 아직 칼바람이 부는 터라 봄이라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햇볕이 미세하게 바뀐 걸 얘들은 진작 눈치채고 있었나 보다. 아마 나만큼이나 봄을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 겨우내 그저 버티기 모드였던 식물들이 왠지 모르게 들떠 보이면 봄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집안에서의 나는 볕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는 고양이처럼 군다. 집안에 봄이 들면 일단 작업 공간부터 옮긴다.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 있는 편이 더 유리하므로 작은 방에서 은둔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봄이다 싶을 때 거실로 나온다. 거실은 우리 집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공간이다. 커다란 6인용 테이블이 놓여 있다. 여러 권의 책과 노트를 동시에 늘어놓고 작업하는 습관이 있어서 테이블이 이 정도는 되어야 일할 때 불편함이 없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 타자기, 책, 일기장, 펜 기타 등등을 잔뜩 늘어놓고 글을 쓰고 있는데 창문 밖에서 황금색 봄볕이 쏟아져 들어올 때. 괜히 기분이 좋다. 내가 식물이었다면 이런 순간에 새싹이 돋지 않았을까. 싹을 틔우는 대신 나는 꽃을 산다. 초봄엔 프리지아를 사다 꽂아두고, 조팝나무꽃이 피면 가지째 구해다 놓는다. 매일 아침 하던 방한 체조 대신, 꽃병의 물을 갈고 테이블에 떨어진 꽃잎을 치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작업 환경이 아름다워진 덕분인가. 같은 일을 해도 봄에는 좀 덜 괴로운 느낌이다. 결국 모든 것은 기분의 문제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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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사실 거실보다 볕이 잘 드는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북한산이 보이는 우리 집 복도. 나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고, 남몰래 이 공간을 마당이라고 부른다. 잠옷 차림으로 마당에 나가서 노을을 보았다는 이야기나, 새벽에 갑자기 눈이 내려 마당에서 눈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당을 가진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을 부러워했었는데. 복도 덕분에 마당 있는 삶을 반쯤은 누릴 수 있게 됐다.
날이 따뜻해지면 복도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낸다. 흡연자들이 담배 타임을 가지듯, 나는 복도에서 무언가를 마시며 일과 일 사이에 쉼표를 찍는다. 평일엔 직장인으로 주말은 작가로 이중생활을 하다 보니 일이 몰릴 때는 일주일 내내 집안에 갇혀 키보드를 두드려야 한다. 일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숨쉬기가 어려울 때, 복도 타임의 도움을 받는다.
복도에 나가기 전 마실 것을 준비하는 시간은 일과 중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번엔 어떤 컵을 데리고 나갈까. 고르는 순간부터 벌써 즐겁다. 컵 안에 담기는 음료는 날씨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선택한다.
봄이 되면 투명한 유리컵에 아이스커피를 가득 담아 마셔야지. 또각또각 얼음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북한산에 봄이 오는 것을 구경해야지. 몇 주째 설레고 있는데. 아직도 오지 않았다. 마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나의 마감처럼.
토요일 아침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일요일 자정이 넘어서야 초고를 완성했다. 복도에 스무 번쯤 나갔다 온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담배 한 갑에 20개비가 들어 있던가?) 남은 건 커피, 차, 술이 말라붙은 컵들. 설거지하면서 경건하게 봄을 기다려야지. 이참에 얼음도 잔뜩 얼려둬야겠다.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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