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고민에 대한 인테리어적 해결법

2024.02.28 10:32조회수 1860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writer. Dora Kim (@dorajy) 
세상 만물에 호기심을 느낍니다. 수학과에 입학해 돈 잘 벌고 안정적인 은행원이 될 뻔했으나, 이놈의 호기심 때문에 서양화를 전공하게 되며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예술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사진을 비롯해 촬영 전반의 거의 모든 일을 하며,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상업 영상의 연출, 촬영, 편집을 합니다. 

작년엔 사진집 Explore를 발간하며 '291포토그랩스’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예술업이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호기심 영역의 끝판왕인 철학을 추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Dora Kim


‘평생 살 집’을 정하는 마음과 
‘평생 함께 살 반려자’를 정하는 마음은 어쩌면 똑같을지 모른다. 
나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찾고 
그곳을 나만의 방식으로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 
온갖 세상의 풍파에서 내 몸을 보호해 주고 사랑하는 가족과 
평생의 추억을 쌓을 공간을 만들어 나가길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평생 그 집을, 그 사람을 사랑하며 살 수 있다. 


     


연애 고민에 대한 인테리어적 해결법


“30대가 되고 나니 20대 때와는 달리 연애가 쉽지 않습니다. 어릴 땐 순수한 사랑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호감의 감정에서 사랑으로 넘어가지를 않네요. 언젠가 끝날 인연에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까요?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싶어요.”

인스타그램 둘러보기를 무한정 스크롤 하던 내 엄지손가락을 멈추게 한 어느 삼십 대 여성의 글이다. 결혼 8년 차인 나에게 표면적으로 무용한 이 글은 철학적 고민을 하기엔 꽤 유용한 글이었다. 무슨 고민이든 남 일처럼 한 발 떨어져 생각할 때 답을 얻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반대로 아무리 냉철한 사람이라 해도 막상 본인이 그 고민에 빠져있을 당시에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리하기 힘든 법이지 않나. 마치 알고리즘의 결계 속에서는 나만의 취향을 찾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지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로 어느 삼십 대 초반 여성의 연애 고민에 대한 해답 찾기는 결혼 8년 차 여성이면서 수학 전공자인 나야말로 적임자일 것이다. 자, 우선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녀의 고민을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순수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맹목적인 사랑과는 어떻게 다른가. 순도 높은 명료한 사랑과 불순한 사랑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아니 순수함이라는 수식어의 뉘앙스는 차치하고 사랑은 무엇인가. 호감(like)과 사랑(love)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열정적인 사랑의 반의어는 계산적인 사랑인가 평온한 사랑인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초 장기적 사랑이 열정적이라면 혹시 그것은 애증이나 망상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이 질문들이 나로 하여금 ‘나의 인테리어 연대기’를 반추하게 만들었다. 아, 이런 뜬금없는 전개는 처음이라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따라와 주기를 바란다.

부모님은 내가 ‘반듯하게’ 살길 바라셨겠지만 나는 내 인생도 이 글처럼 의식의 흐름 대로 ‘약 빤 듯이’ 살아왔다. 수학을 전공한 나는 흘러 흘러 포토그래퍼로 밥벌이를 하다가 또 흘러 흘러 친언니의 매장 인테리어 컨셉 디자인을 맡게 된다. 그게 나의 첫 인테리어 경험이었다. 그 후로 흘러 흘러 약 13년간 5개의 집, 4개의 매장, 2개의 사무실과 카페 하나를 만들었으니 ‘인테리어 연대기’라는 타이틀을 붙일 만하지 않나? 인테리어가 직업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흘러 흘러 현재 내 직업은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내년엔 뭘 하고 있으려나?

나는 무슨 이유로, 특별한 보수도 없이 ‘인테리어’라는 일에 그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걸까? 시작은 ‘호감’ 때문이었다. 해외의 인테리어 잡지나 핀터레스트에서 본 창의적인 공간들에 대한 호감이 나도 내 손으로 직접 그런 멋진 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 열망은 분명 순도 100%의 열망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엔 열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누군가에게 ‘트렌드를 잘 읽는 사람’ 혹은 ‘주변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불순한 의도도 분명히 있었다.

©Dora Kim


그러다 조금 더 순도 높은 마음가짐으로 공간을 만들 기회가 생겼다. 그곳은 우리 부부의 첫 신혼집이었다. 이 시점이 호감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단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부부가 진정으로 오래 살고 싶은 집을 만드는 일에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나에 대한 평가 같은 ‘불순한’ 의도가 끼어들 틈이 없었으니까. 전과 다르게 유행과 상관없는 타임리스한 디자인에 집중했고, 절충 없이 100퍼센트의 열정과 노력으로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5년 만에 그곳을 나왔다. 동네에 재개발 광풍이 불었고 우리는 고민 끝에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허물어지는 건물들과 바뀌어가는 이웃들, 공사장의 소음으로부터 떠났다. 각별한 대상과의 이별은 우리에게 약간의 비통함과 큰 허무함을 남겼고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변화 같은 것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의 뇌와 신경에 변화의 두려움이 각인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고, 우리에게는 하나의 명제가 만들어졌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 사랑하자.’

그리하여 몇 달간 발품을 팔아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동네를 찾았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고, 평생을 그곳에서 지내기로 정했다. 그렇게 이 집과 ‘순도 높고 맹목적이며 장기적인 사랑’이 시작되었다.

‘순도 높고 맹목적이며 장기적인 사랑…?’ 

나의 인테리어 연대기가 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어느 삼십 대 여성의 연애 고민’과 스르륵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삼십 대가 되어서 사랑을 하기 어려워졌다고 했지만 사실 이 시대는 세대와 상관없이 호감 과잉 / 사랑 부족의 시대인 것 같다.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해 온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을 하는 수고로움 대신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소비하고, 결혼 정보 회사에 자신의 조건들을 당당하게 전시하며 불특정 다수에게 호감을 사려 한다. 호감을 갖기 위해서는 이유, 조건, 보장된 대가가 꼭 따라붙어야 하며, 그래야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외되는 건 우리 자신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유행에 맞춰 구입한 가성비 아이템과 이미테이션 가구로 가득 채운 집이 유행이 지남과 동시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집값을 높이기 위해, 남들보다 취향이 좋아 보이기 위해, sns에 나를 전시하기 위해. 이 같은 조건에 미치지 못하면 집을 사랑할 이유가 사라지고 마는 것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위한 조건이 있다면 그 사랑이 오래갈 수 있을 리 없다.

‘평생 살 집’을 정하는 마음과 ‘평생 함께 살 반려자’를 정하는 마음은 어쩌면 똑같을지 모른다. 나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찾고 그곳을 나만의 방식으로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 온갖 세상의 풍파에서 내 몸을 보호해 주고 사랑하는 가족과 평생의 추억을 쌓을 공간을 만들어 나가길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평생 그 집을, 그 사람을 사랑하며 살 수 있다.


©Dora Kim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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