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뚜루마뚜루 집밥 즐기기

2022.11.29 17:05조회수 1052

마스터 소개 – 미깡

웹기획자 출신의 웹툰 작가,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원작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의 작가이자, 만화 <거짓말들>, <하면 좋습니까?>와 에세이 <해장 음식: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을 썼다. <술도녀> 속 꾸미, 정뚱, 리우와 동갑인 99학번으로,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것을 통해 세상과 공감하고 나아가 평범하지만 때론 특별한 일상 속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오늘 뭐 드셨어요?

굳이 통계를 인용하지 않아도 간편식품 시장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는 것을 모두 체감할 것이다. 마트에 가면 즉석밥과 즉석국, 레토르트 음식이 차지하는 매대가 전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밀키트만 파는 무인 매장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휴대폰마다 ‘번민의 배달앱’ 최소 한 개씩은 깔려 있을 확률이 높고 말이다. 시작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였고, 지금은 물가 상승 요인까지 더해졌다. 물가가 오르니 자연히 식당 메뉴의 가격도 올라서 이제는 외식 한 끼 하려면 큰맘을 먹어야 한다. 동네 ‘강화통통생고기’에서 삼겹살과 뚝배기 달걀찜 먹는 걸 최고의 외식으로 치는 딸이 “강통 가자”는 말을 벌써 세 번이나 했는데, 나는 냉동실에 확보해 둔 삼겹살 두 팩을 믿고 최대한 버티는 중이다. 한 번 더 얘기하면 그때 이걸 꺼내서 프라이팬에 구워 먹일 셈이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아아, 밥하기 귀찮은데 나가서 먹을까?” 하고 호기롭게 외식하러 나가기도 했는데, 요즘은 바짝 몸을 웅크리고 있다. 점심 한 끼에 만 원이 훌쩍 넘는 메뉴가 많고, 인근에서 가장 저렴했던 7천 원짜리 찌개가 갑자기 9천 원이 됐다. 식당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 편의점이나 분식집으로 향하는 사람, 아예 집에서 도시락을 싸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니, 요즘 같은 때 식당 하시는 분들도 정말 힘드시겠다. 허나 어쩔 수 없이 집밥의 시대는 도래하였다. 여러분은 어제 오늘 뭐 드셨나요? 집밥, 드셨나요? 



집밥을 이루는 세 가지 조건

관련 제품 뿐 아니라 집밥에 대한 레시피북, 에세이, TV 프로그램 등 콘텐츠도 쏟아지고 있는 지금, 집밥이 도대체 뭔지 한 번 짚고 넘어가 보자. 집+밥. 말 그대로 ‘집에서 먹는 밥’이다. (집밥의 조건 ①) 원래 밥은 집에서 먹는 것이라 그냥 ‘밥’이라고 하면 되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집밥’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가정 내 직접조리 비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식 비중이 커지면서 “밥 먹었다”가 반드시 집에서 먹었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집에서 먹는 밥에 이름을 따로 붙이게 된 것. 그런데 코로나19 이후로 다시금 전세가 역전하면서 집밥이 각광을 받게 된 요즈음이다. 

흥미로운 건 집에서 먹는다고 다 ‘집밥’은 아니라는 점이다. 치킨을 배달시켜서 먹거나 순댓국을 포장해와서 먹으면 아무리 집에서 먹었어도 ‘집밥’이라 하지 않는다. 집밥이란 집에서 내가 만들거나 가족이 만든 음식을 일컫는다. 영어로는 homemade. 직접 만든다(made)는 사실이 중요하다. (집밥의 조건 ②) 

그런데 집에서 직접 만들기만 하면 이 영예로운 ‘집밥’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박완서의 장편소설 『나목』의 한 장면을 보자. 주인공 경이는 어느 날 비좁은 단칸방에서 부부와 다섯 아이들이 일으키는 소란하지만 다정한 소음에 잠에서 깨어난다. 전날 그녀는 (박수근 화백이 모델인) 화가의 집에 불쑥 찾아 들었다. 화가의 아내는 경이가 무단외박을 한 걸 알면서도 자상하게 챙겨준다. 따뜻한 콩나물국과 향긋한 김이 놓인 아침상. 매일 무거운 침묵 속에서 시척지근한 김칫국만 먹어 온 경이였기에 “가정에 초대된 고아만큼이나” 신기하고 눈부신 밥상이었다. 스무 살 경이가 칙칙하고 희뿌연 고택을 벗어나 처음으로 밝고 따뜻하고 환한 밥상을 받았기에 나도 함께 벅차오른 장면이었다.

이들 모녀의 김칫국. 전쟁통에 사랑하는 아들들을 잃고 ‘죽지 못해 사는’ 경이의 엄마가 매일 밥상에 올린 김칫국을 ‘집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집에서 만들었고 집에서 먹고 있지만, 그저 살기 위해 억지로 입에 밀어 넣는 에너지원일 뿐. ‘남의 집’ 밥상이지만 따뜻했던 그날의 아침상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집밥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러니까 집밥이란 집에서 만들어서 집에서 먹는 음식인데, 사랑과 정성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훗날 우리가 그 음식들을 추억하고 원할 것이라는 어렴풋한 예감이 내포되어야 한다. (집밥의 조건 ③)



휘뚜루마뚜루 집밥 차리기 노하우

사랑과 정성? 추억으로 남을 요리? 말은 좋지만 집밥을 계속 만들어 먹는 일은 사실 지루하고 고된 노동에 다름아니다. 뭘 먹을지 메뉴를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장을 봐오고, 재료를 다듬고, 남은 재료는 정리하고, 요리하고, 먹고 나서는 치우고 설거지까지 하는 게 집밥의 모든 프로세스. 세 끼 모두 이런 식으로 해 먹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가능한 집이 있다면 누군가가 희생, 적어도 고생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집밥을 즐길까? 매 끼니를 다채롭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부터 벗어보자. 기본적으로 메뉴 구성은 간단할수록 좋다. 한식을 예로 들면 기본 구성으로 밥, 김치, 국, 그리고 반찬은 1~2개. 가짓수가 적더라도 식탁에서 딱 한 접시만 힘을 주면 된다. 김치와 국과 반찬 1개가 냉장고에서 그대로 나왔다면 딱 1개만 따끈따끈하게 또는 상큼하게 막 만들어내는 식이다. 화려한 요리가 아니어도 좋다. 냉장고에 상추가 많으면 참기름 향 고소하게 겉절이를 후딱 무친다. 들기름에 두부를 뜨겁게 부쳐낸다. 달걀과 새우젓만으로 맑은 국을 끓인다.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찬을 하나만 올려도 식탁에는 활기와 온기가 돈다. 

양식은 한식보다 더 쉽다. 면을 삶는 동안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자투리 채소나 고기를 손질해 휘뚜루마뚜루 볶아내면 파스타 한 그릇 뚝딱이다. 올리브 오일, 토마토소스, 엔쵸비 등 기본 소스를 갖춰놓으면 언제든 다채롭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때 냉동실을 잘 활용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불 앞에서 요리하는 과정은 놀이 같고 재미라도 있지만 그 전에 밑재료 손질하는 일은 퍽 귀찮다. 재료를 한 번 손질할 때 잔뜩 해서 냉동을 해두면 편하다. 요리하다가 당근이 반 토막 남으면 다음에 쓸 찌개용(반달 모양), 볶음밥용(다지기)으로 다 썰어서 냉동해버리는 식이다. 우리집 냉동실은 대파, 양파, 양배추, 당근, 햄, 어묵, 마늘, 생강, 고구마, 버터 등등 라벨을 붙여둔 봉지로 꽉 차 있다. 이게 얼마나 든든한 지! 

이 마성의 냉동 기법은 밑재료뿐 아니라 요리에도 해당된다. 밥과 국은 물론이고 부침개 반죽, 동그랑땡 반죽, 불고기, 수프, 카레, 볶음밥 등등... 한 번 요리할 때 많이 해서 소분하여 냉동하고 며칠 뒤 꺼내 먹는다. 냉장고의 저장 반찬과 함께 로테이션하면 끼니마다 드는 조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대체로 단순하게, 가끔은 재미있고 멋스럽게

매일 먹는 집밥은 최대한 간편하고 단순하게. 하지만 가끔은 특별하게 먹고도 싶다. 외식도 대폭 줄였으니까! 그럴 땐 다른 나라의 집밥을 만들어 먹어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요리 말고, 화려한 미식 말고, 그냥 그곳 현지인들이 실제로 자주 먹는 집밥 말이다. 세계 3대 미식의 국가로 꼽히는 튀르키에(터키). 십여 년 전 갔을 때 나도 그 유명한 튀르키에 피데, 쿰피르를 먹었고 케밥은 종류별로 다 먹어보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은 튀르키에 음식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현지인 가정에 초대받았을 때 먹었던, 메인 요리 옆에 자그마한 접시에 담겨 있던 샐러드를 꼽게 된다. 잘게 썬 오이, 토마토, 양파에 오일과 레몬즙, 허브를 버무린 것뿐인데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우리가 김치를 먹듯이 그 나라에서 매일 먹는 샐러드라고 했다. 또 독일의 유명한 요리를 꼽자면 학센? 소세지? 감자를 사랑하는 나라 독일에서는 감자전을 자주 먹는다. 한국 감자전과의 차이는 베이컨이 들어간다는 점! 된장국을 끓일 때 조선된장 대신 미소를 쓰고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넣으면? 일본 가정에서 자주 먹는 돈지루가 된다. 이런 식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조리법만 살짝 바꿔도 이국의 맛을 낼 수 있다. 아직은 자유롭지 못한 해외여행 대신 식탁에서 여행 기분을 내보는 것이다. 

 

앞서 ‘직접 만드는’ 것이어야 집밥의 조건을 갖추는 거라고 했지만, 우리가 꼭 어디서 ‘집밥’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100퍼센트 모든 걸 직접 요리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특별한 날이거나 기분 내고 싶을 때, 새로움이 필요할 때, 손님이 올 때, 또는 정말 너무 피곤할 땐 배달 음식이나 포장 음식, 밀키트를 적극 활용하는 융통성도 발휘해 보자. 

손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혼자 또는 둘이서 홈파티를 준비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음식의 절대적인 양도 양이지만 여러 사람의 입맛과 취향을 고루 충족시켜주기 위한 메뉴 안배가 가장 골치 아픈 일이다. 슬슬 연말 모임이 많아질 때인데, 혼자 너무 다 잘 해내려고 끙끙대지 말고 과감하게 포틀럭(potluck) 파티를 선언하자. 손님들이 각자 음식을 하나씩 가지고 오는 것이다. 주최자는 요리 부담을 덜고, 참석자는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또한 파티 참석자 모두 여러 음식을 골고루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차려놓고 보니 스테이크 옆에 김밥이 있고 그 옆에 물회가 있으면 뭐 어떤가? 파티란 게 원래 조금은 엉뚱해야 맛이잖아요?

 

집에서 먹는 밥, 집밥. 집에서 만들었다면 그 자체가 정성이니 메뉴가 단출하거나 반복돼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사 먹자. 가끔은 새로운 시도도 해보자. 그저 생존을 위해 꾸역꾸역 입에 넣으면 너무 서글프니까, 조미김 한 봉을 먹더라도 예쁜 접시에 담아 환한 기분으로 먹자. 즐겁게 먹자. 오늘도 수고한 우리, 스스로를 잘 대접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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