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집에세이] 나를 닮은 책상 위에서 꾸는 꿈

2023.07.26 10:19조회수 2059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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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단단 (@orotte_moment)

자주 넘어지지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낮에는 마케터로 밤에는 글 쓰는 작가이자 밑미 리추얼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어요. 11년 차 회사원으로 지금은 ‘카카오스타일'에서 CRM 마케터로 일합니다. 에세이 『매일매일 채소롭게』를 썼습니다. 매일 스스로를 기록하고 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단단


이제는 나와 꼭 닮은 서재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상상한다. 
더 멋진 글을 써야지, 
더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어야지, 
매일 감사 일기를 빼먹지 말고 기록해야지. 
꿈꾸던 책상 위에서 새로운 꿈을 꾼다.
 


 


나를 닮은 책상 위에서 꾸는 꿈


나의 첫 재택근무지는 식탁이었다. 결혼 전에 쓰던 책상과 의자를 신혼집으로 가져오긴 했지만 한동안 창고 방에 방치되어 있었다. 다시 쓰려고 보니 20년 세월과 먼지가 쌓여 칙칙해진 색감 때문에 안 그래도 부족한 일할 맛이 더욱 떨어졌다.

집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책상 비스름하게 생긴 건 식탁뿐이었다. 후다닥 아침을 차려 먹고 식탁에 앉아 반나절 일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점심을 먹고 또 반나절을 이어서 일했다. 하루 종일 거실에서 일하고 먹고 쉬다 보니 며칠 지나지 않아 일이 일상을 잠식하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출근과 퇴근을 구별 지어 줄 ‘문'이 필요했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다시 문을 열고 나와 퇴근 후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창고 방을 서재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책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바로 사무용 책상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재택근무가 길어질 줄도 모르고 ‘보기에 너무나도 예쁜' 화이트 오크 화장대 겸 미니 책상을 주문했다. 그것도 무려 68만 원씩이나 되는 고급 원목 가구를, 그것도 무려 주문과 동시에 제작이 시작되어 배송까지 한 달이 걸리는 수제 가구를 덜컥 사버렸다. 청주에서 서울까지 가구 공방 사장님이 직접 트럭에 책상을 싣고 와서 내 눈앞에서 멋지게 설치해 주시던 날, 이 책상에서 글도 쓰고 일도 하고 차도 마시리라, 달콤한 꿈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어쩜 내 책상은 나뭇결 촉감도 이렇게 좋을까, 못 하나 없이 짜 맞춘 원목 가구라 서랍이 빡빡하게 잘 열리지 않는 것조차 마음에 쏙 들었다. 그 완벽한 책상에 앉아 반나절 업무를 마치고 깨달았다. 내가 책상 높이조차 재보지 않고 사진만으로 68만 원짜리 책상 구매를 결정한 헛똑똑이였다는 것을. 화장대 겸용 책상이라 일반적인 책상보다 10센티미터나 높은 이 책상에서는 승모근과 팔꿈치를 한껏 들어 올린 채 어깨 으쓱 자세로 일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책상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구매한 수입 원목 의자는 내 몸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책상과 의자를 합쳐 100만 원 가까이 써버렸는데, 이미 좁디좁은 창고 방은 가구로 가득 차버렸는데, 이를 어쩐담. 결국 비싸고 아름다운 책상을 뒤로하고 노트북을 메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동네 카페는 대체로 엇비슷하게 규모가 작았다. 음료 한 잔만 시키기가 민망해 추가 음료와 디저트까지 시키고도 세 시간이 넘으면 눈치가 보여 자리를 옮기곤 했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싶고 헛웃음이 났다.

결국 다시 책상을 사기로 했다. 이번에는 절대 후회 없는 책상을 사겠노라 굳게 결심을 하고 사무용 가구 브랜드 쇼룸에 가서 앉아보고 길이도 재보며 비교 끝에 흰색 상판의 기본 책상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 책상이 바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12만 원짜리 책상이다.







©단단 



2년 가까이 이 책상에서 참 많은 일을 했다. 회사 일도 하고, 퇴근 후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차도 마시고, 가끔 온라인 강연도 바로 이 책상에서 한다. 깔끔한 흰색 책상은 심지어 무엇을 올려놓아도 예뻐 보인다. 주말에 만든 디저트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사진을 찍으면 스튜디오에서 제품 촬영을 한 것처럼 잘 나온다.

내친김에 창고 같았던 서재 방을 꾸며보기로 했다. 레이스 커튼을 달고 테이블 조명을 설치했다. 낮에는 햇살이 커튼의 레이스 무늬 그대로 내려와 반짝였고 밤에는 테이블 조명의 은은한 조도가 집중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방 한구석에 있던 낮은 책장을 비우고 좋아하는 차로 가득 채웠다.

서재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춘 이후로는 잠깐씩 카페에서 책 읽는 것도 안 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조용하고 편안한 내 책상에서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어서다.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작가이자 밑미 리추얼 메이커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책상 덕분이었다. 책상을 들이기 전에는 작업 공간을 찾아다니는 데 쓰던 시간을 이제는 하고 싶은 일과 공부에 쓸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생각났다. 나만의 서재와 책상을 갖는 것은 어린 시절 내가 두 손 모아 바라던 꿈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우리 집은 방이 세 개였다. 딱히 부족함 없는 평범한 가정 형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님이 사용하는 침실을 제외하면 방은 두 개가 남는데 우리 자매는 세 명이었다는 것이다. 방 두 개를 공부방과 침대방으로 나누어 쓰던 시절도 있었고, 차례대로 돌아가며 수험생에게 독방을 내어주고 나머지 두 명이 한 방을 쓰던 때도 있었다.

나에게 나만의 서재, 나만의 책상은 로또 1등 같은 꿈이었다. 불 꺼진 거실에서, 잠깐 빈 누군가의 방에서, 독서실 책상에서 임시로 주어진 혼자의 시공간을 누렸다. 그때마다 짧은 공상을 펼치며 언젠가 갖게 될 나만의 서재를 상상하곤 했다.

이제는 나와 꼭 닮은 서재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상상한다. 더 멋진 글을 써야지, 더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어야지, 매일 감사 일기를 빼먹지 말고 기록해야지. 꿈꾸던 책상 위에서 새로운 꿈을 꾼다.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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