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 writer. 안수향 (@2nd_summer)
글과 사진, 가장 좋아하는 것 두 가지로 일을 합니다.
『서툴지만 푸른 빛』과 『오래된 미래』, 『아무튼, 서핑』을 썼고 몇 번의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경주에서 작은 요리책 서점을 운영하며 고양이와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서툴지만 푸른 빛』과 『오래된 미래』, 『아무튼, 서핑』을 썼고 몇 번의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경주에서 작은 요리책 서점을 운영하며 고양이와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차를 자주 마시게 된 것도 예쁜 그릇에 밥을 담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잘 지은 밥과 시간을 대접하는 것.
그래서 내가 나를 존중할 기회를 주는 것 말이다.
나는 이게 바로 요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대충 때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잘 먹인 덕분에
어쩌면 나는 비관과 자책보다 좀 더 긍정과 희망 편에 서서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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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 거다. 내가 주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 하루는 달고나를 만들어 먹다가 국자를 태워 먹어서 혼났고 어느 하루는 고로케를 만든다고 싱크대가 온통 빵가루로 소복하게 뒤덮여서 혼이 났다. 참고로 그 후로도 우리 집 주방은 오래오래 물기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마 자주 배가 고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녁을 먹고 또 저녁을 먹는 일도 잦았다. (애정결핍 증상 중 하나라는 걸 오랜 뒤에 알게 되었다.)
저녁밥을 먹는 동안에는 왠지 그 어떤 불안이나 허무한 행복도 나를 어쩔 수 없단 기분이 들어 안심이었다. 대충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모으고 열을 가해 변화를 주고 또 그 과정의 총체가 하나의 요리가 되는 장면, 그리고 따스한 뭔가를 내 몸 안에 채우고 있다는 안도만이 작은 식탁 위에 놓여 있다. 그래서 난 요리가 그렇게 좋았는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은 따뜻한 저녁이, 어린 시절 그 장면 안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동생과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보낸 무수한 토요일 저녁을 보내며 결국 어른이 됐다. 나는 이제 밥 말고도 글과 사진을 지어 먹고 산다.
작가로 살겠다는 결심은 많은 내용을 함의한다. 일단 배고픔을 견뎌야 한다. 수입이 없을 때는 월세 내고 나면 라면 먹을 돈도 없을 때가 있다. 수입이 생겨도 혹시 몰라 아껴 써야 하고. 가끔 카페에 가더라도 웬만하면 식사로 때울 수 있는 곳을 선호하게 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집과 친해져야 한다. 작년엔 거의 6개월 정도 집에 틀어박혀서 『아무튼, 서핑』을 썼다. 집에서 대부분 끼니를 해결해야 하니 자연스레 할 줄 아는 요리도 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아마 내가 집순이가 아니었다면 진즉 다시 회사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작가 수입으로만 먹고 산 것이 대략 7년 전부터. 따로 작업실이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무엇보다 집이 작업실이 될 수 있으면 가장 좋은 답안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집에서 세 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냈고 사진전도 여럿 준비했다. 가끔 산책이 너무 고프면 일부터 집에서 먼 시장이나 슈퍼마켓에 다녀오기도 한다. 제철을 맞은 식재료는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보이거든 얼른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장 본 것들을 잘 정리하고 다듬어 그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거다. 해야 할 일이 조금 남아있지만 내일 마저 하기로 하자. 그리고 식사를 다 하면 차를 내려 마셔야겠단 생각을 한다. 어느덧 물과 기름이 보글보글 끓는 따뜻한 주방과 나의 집 안에서, 나는 여전히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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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향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테이블웨어나 티웨어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거다. 한때 도자기 공방에 다니며 조물조물 만든 것들도 썩 마음에 들어서 자주 쓴다. 거의 혼자 해 먹는 밥에 뭐 그리 유난인가 싶다가도 예쁜 그릇에 지은 밥과 음식을 담고 예쁜 커트러리를 들고 식사하다 보면, 내가 나를 대접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오늘도 어김없이 식사를 하고 나니 따뜻한 차가 당긴다. 설거짓거리를 미뤄 두고 차 도구를 주섬주섬 꺼낸다. 오늘은 꽃과 꿀향 그득한 대만 금훤이 좋겠어. 개완이 좋을까, 아니면 유리 숙우(우린 차를 모아 담는 그릇)에 바로 물을 붓고 찻잎을 구경할까 고민하다가 숙우에 찻잎을 담고 뜨거운 물을 쪼르륵 붓기로 한다. 진하게 마시는 걸 좋아해서 찻잎을 1인분보다 좀 더 담는다거나, 일부러 잔을 두 개 놓고 혼자 다 마시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도 오직 집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차를 자주 마시게 된 것도 예쁜 그릇에 밥을 담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잘 지은 밥과 시간을 대접하는 것. 그래서 내가 나를 존중할 기회를 주는 것 말이다. 나는 이게 바로 요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대충 때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잘 먹인 덕분에 어쩌면 나는 비관과 자책보다 좀 더 긍정과 희망 편에 서서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배는 고프지만, 집에서 참 즐거운 7년을 보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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