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집을 이사했는데, 수집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아카이브 룸이 인상적이네요.
전에 살던 집이 좁아서 도저히 짐을 놓을 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이사할 때 책장높이를 계산해 짜 넣었어요. 영화 전단지를 모아둔 바인딩북 높이에 딱 맞도록요.
수집품을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겠어요.
지금 잘 정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정리 못한 영화 전단지들이 한가득이에요. 그래서 틈틈이 연도별로 분류해서 계속 바인딩을 하고 있죠.
서울 올림픽 관련 수집품도 흥미롭네요. 아카이브 북 〈88Seoul〉을 통해 그간 모아온 서울 올림픽 굿즈를 소개하셨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 올림픽이 열렸는데 그냥 좋더라고요. 마스코트 호돌이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디자인이나 로고 같은 거에 유독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서울 올림픽 관련 물건들을 죄다 수집했죠. 용돈을 모아 조그만 뱃지도 사고, 길거리에 붙어 있는 포스터도 뜯어오고, 올림픽 기간에는 그야말로 온통 서울 올림픽 천지였거든요. 이후에도 올림픽 굿즈가 보이면 일단 샀어요.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또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얻기도 하고요. 지금도 여전히 수집을 이어가는 중이에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수집가 기질을 타고 나셨군요.
초등학교 때 남들처럼 우표 수집을 시작했어요. 영화를 워낙 좋아했으니 <스크린> <키노> 같은 영화 잡지들도 모았고, 1990년대 통신사에서 발행한 잡지들도 지금까지 전부 보관하고 있어요. 창간호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창간호 잡지만 따로 모으기도 했죠. 이번에 이사하면서 발견한 건데,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랑 끄적거린 낙서나 신문 스크랩 조각도 버리지 않고 상자에 모아뒀더라고요. 결국 수집의 기본은 보관인 것 같아요.
수집품의 대상 중 영화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어릴 적부터 올림픽도 그랬지만 그냥 극장 앞만 지나가도 되게 설레고 좋았던 기억이 나요. 특히 영화 포스터를 좋아했죠. 제가 살던 원주에 아카데미 극장이 있어요. 거기서 몰래 영화 포스터를 뜯어오곤 했죠. 고 3 때 극장 밖에 있는 포스터를 하나 뜯다가 그만 극장 직원한테 걸렸어요. 목덜미를 잡힌 채 극장 2층 영사실 옆에 있는 창고로 끌려갔죠, 꼼짝없이 죽도록 맞겠구나 싶었는데, 불이 켜지더니 그간 극장에서 상영한 영화 포스터들이 책장에 빼곡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극장 직원은 저보고 갖고 싶은 포스터를 모두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새벽까지 포스터를 일일이 확인해가며 챙겼어요. 버스가 끊겨서 직원이 택시비까지 줬죠. 그 때 가져온 포스터들이 제게는 정말 소중한 수집품이 됐어요. 그 분은 제게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같은 존재인 셈이죠. 제 SNS 아이디에 ‘토토’를 넣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원주 아카데미 극장에 각별한 기억이 생겼겠군요.
원주 아카데미 극장은 1963년에 개관했는데 2006년에 원주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기면서 문을 닫았어요.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2016년에 극장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어요. ‘아카데미로의 초대’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저도 토크에 참여하고 그 때 아카데미 극장에서 가져온 영화 포스터로 전시도 열었어요. 조금씩 극장에 활기가 생기고 극장 보존 활동을 하는 시민들의 노력에 화답을 하듯 원주시에서 극장을 매입했어요. 이제 보존이 되겠구나 안심 했는데, 시장이 바뀌고 난 후 보존 계획을 뒤집고 불쑥 철거 발표를 한 거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극장 보존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원주 아카데미 극장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단관 극장이기도 하니까요.
영화 전단지의 경우 거의 전문 아카이브 수준으로 수집을 했습니다.
제가 동묘에 가는 걸 좋아해요. 옛날 서울 올림픽 수집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빈티지 숍에 들어가게 됐어요. 알고 보니 그 분이 대단한 영화광이었어요. 서라벌대학교 연극영화과 1회 졸업생이셨는데, 1950년대부터 본인이 본 영화 전단지를 한가득 모아 놓으셨죠. 심지어 파일로 정리도 굉장히 잘 해놓으셨어요. 그래서 동묘에 갈 때마다 그 파일을 구경했죠. 할아버지랑 얘기도 나누고 그분의 옛 영화관 에피소드도 들으면서 사이가 가까워졌어요. 어느 날 그 전단지 파일을 팔면 안되겠냐고 슬쩍 물어봤어요. 할아버지는 본인에게 좋은 추억이 있는 물건이라 절대로 팔 수 없다고 했죠. 그래서 갈 때마다 그냥 구경만 했는데 몇 년 후에 할아버지가 제게 그 파일을 덥석 주셨어요. 이를 잘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것 같다면서요.
그 파일은 가장 애착이 가는 수집품이 됐겠군요.
그런 셈이죠. 사실 그 이전에 제가 모은 영화 전단지들은 1980년대 이후 것들이니까요. 파일에서 가장 오래된 전단지로 비비안 리가 나오는 <애수>가 있어요. 마릴린 먼로가 나온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도 정말 오래된 작품이고요. 당시에는 모두 흑백 영화니까 흑백 사진에 컬러를 입힌 거예요. 포토샵도 없던 시절이니 다 일일이 색칠을 한 거죠. 지금 봐도 색감이 참 예뻐요. 또 재밌는 게 당시에는 인쇄술이 떨어져서 핀이 안 맞는 게 많아요. 아이러니하게 미적으로는 더 아름답죠. 또 당시의 한글 폰트를 보는 재미도 남다르고요.
<영화 선전 도감> 같은 아카이브 북도 매년 꾸준히 만들고 있습니다.
수집의 핵심은 정리이기도 해요. 한국영상자료원과 일을 종종 하는데, 그곳에는 전문 아키비스트가 있어요. 수집하고 정리하고 그걸 활용하는 직업인데, 아키비스트가 하는 일이 단순히 모으고 정리만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걸 잘 활용해서 현재의 사람들과 나누는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어요. 저도 단순히 수집해서 혼자 보고 즐기는 게 아니라 이걸 잘 체계화하고 분류하고 정리해서 아카이브 북을 내는 게 사람들과 나누는 방법이라 생각해요. 어떤 사명감을 갖고 하는 건 아니고 그 자체가 재밌잖아요. 본업이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이지만 또 제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아카이브 북 출판도 하고 있어요.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대학교 때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의 꿈을 계속 갖고 준비했어요. <박하사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시월애>처럼 좋아하던 영화 포스터가 한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죠. 모두 ‘꽃피는 봄이오면’라는 스튜디오에서 디자인을 했는데, 운 좋게도 그곳에 입사를 하게 됐고 5년간 일을 했어요. 이후에 독립을 해서 세운 회사가 프로파간다고요. 2003년부터 포스터 디자인을 했으니 올해로 딱 20년이 됐네요.
독립을 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아무래도 기존 회사에서는 상업 영화 위주로 포스터를 작업했어요. 저는 독립영화나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예술 영화의 포스터도 작업해보고 싶었죠. 처음 독립하고 맡은 한국 영화는 <비몽>이라는 작품이었어요. 오다기리 조와 이나영이 출연한 영화였는데 <필름 2.0> 잡지에서 그 해의 영화 포스터 베스트 5에 선정되기도 했죠. 또 2009년에 작업한 <워낭소리> 포스터가 맥스무비 시상식의 포스터 디자인 부문에 뽑히면서 프로파간다가 좀 더 알려지게 됐어요.
프로파간다만의 차별화된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아요.
인물이 작게 나오고 여백이 많은 스타일의 포스터를 좋아해요. 영향을 많이 받는 포스터가 <그랑 블루>인데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포스터에요. 그간 수집했던 영화 포스터의 타이포그라피들도 많은 영향을 주었죠. 고등학생 때 <미녀와 야수>를 좋아해서 로고 타이틀을 제 나름대로 만들어 교과서에 끄적인 적이 있었어요. 실사 영화가 개봉했을 때 제가 포스터 디자인을 맡았는데, 무의식중에 제가 작업한 로고 타이틀이 고등학생 때 끄적인 거랑 똑같아서 놀랐어요.
포스터 디자인을 위해 영화를 감상할 때 신경쓰는 요소가 있나요?
완성된 영화를 보고 포스터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 영화들은 대개 시나리오만 보고 아이디어를 구상해야 할 때가 많아요. 영화가 완성되기 전부터 작업을 시작하니 어느 장면이 어울릴지 감안해서 구상하는 편이죠. 사실 아이디어 구상이 제일 힘들어요. 사람들은 영화사에서 제공하는 사진으로 디자인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거든요. 포스터 사진도 기획을 거쳐 촬영을 하죠. 가령 배우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헤어 스타일로 어떤 포즈를 해야 좋을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해요.
요즘은 영화 포스터뿐 아니라 굿즈 제작에도 신경을 쓰는 것 같더라고요.
수집한 영화 카드만 모아서 아카이브 북을 낸 적이 있어요. 영화 카드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나오다가 사라졌거든요. 그러다가 <탑건> 재개봉 때 영화 카드를 이전 느낌으로 제작해봤어요. 영화 카드에 추억을 갖고 있는 분들이 극장에 많이 찾아와줘서 반가웠죠. 반응이 괜찮아서 이후에 <백투더퓨처> 재개봉할 때도 영화 카드를 제작했습니다.
프로파간다에서는 영화 굿즈를 판매하는 시네마 스토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외 여행을 가면 벼룩시장을 즐겨 찾고 영화 포스터 상점이 있으면 꼭 들러봐요. 특히 도쿄 진보초 쪽에 고서점과 영화 전문 서점이 많아요. 그런 곳에서 숨은 보물들을 구해오는 편이죠. 막상 우리나라에는 그런 영화 전문 상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만들어봤어요. 프로파간다 시네마 스토어의 방침이라고 할까요. 가능하면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영화 굿즈들을 선보이는 걸 원칙으로 해요. 저희가 자체적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해서 제작한 한정판 영화 포스터도 판매하고요. 해외 직수입한 포스터나 엽서, 잡지, LP 등을 패키지로 구성하기도 해요.
한 달에 한 번 오픈하는 콘셉트가 독특합니다.
사무실 한쪽에 마련한 공간이니 매일 운영할 수는 없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만 열어요. 그런데 매달 같은 물건만 있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매번 다른 주제로 특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가령 3월 마지막 주에는 고정적으로 장국영 특집을 하는데, 처음 기획했을 때는 1층 바깥 골목까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왕가위 감독 특집도 있고, 영화 <탑건> 재개봉 때는 톰 크루즈 특집을 하고, <기생충>이 아카데미 수상한 다음 달에는 봉준호 감독 특집도 하고 그런 식으로 뭔가 이슈에 맞춰 어울리는 주제를 정하죠.
수집가이기도 하니 때로는 팔고 싶지 않은 굿즈도 있겠어요.
시네마 스토어를 준비하면서 디스플레이를 해놓고 막상 팔기 싫은 아이템들이 있긴 하죠. (웃음) 일단 제가 공들인 레이아웃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런 희귀 아이템들은 전시용으로 분류해요. 스토어 한쪽에 제가 수집한 것들을 전시해놓은 섹션을 마련해 뒀어요.
앞으로 프로파간다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개인적인 꿈은 극장을 만드는 거에요. 프로파간다 시네마테크. 그곳에는 저희가 만든 별도의 포스터를 걸어두는 거죠. 다른 상영관에서 만날 수 없는 오로지 그 극장만을 위한 포스터 말이에요. 사람들은 그 포스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오는 거죠. 그러고 보니 원주 아카데미 극장에서 시도해보고 싶기도 하네요.
P.S. 인터뷰 촬영을 할 때 그는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했다. 서가 한쪽에 놓인 어릴 적 사진과 동일한 포즈로 촬영해보면 어떻겠냐고. <스크린> 1990년 3월호를 들고 있는 천진난만한 시네마 키드의 열정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