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휴식을 추구하는 평화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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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마시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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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편안한 신발을 추구하는 브랜드, 그라더스(grds)를 운영하는 박유진 디렉터. 그는 일과를 마친 후 세상의 단 하나뿐인 술집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칵테일을 제조하는 홈바.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레시피를 머릿속에 그려 본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의 맛으로 구현해 내는 일. 박유진 디렉터에게 칵테일이란 하나의 리추얼(ritual)이다. 단지 술을 마시는 행위를 넘어, 한 잔의 칵테일을 통해 어질어진 마음을 정돈하는 의식 말이다. 이는 동네를 조용히 거닐며 산책하는 일과도 닮아 있으니. 그에게 걸음과 칵테일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라더스(grds)/ 박유진

직접 만드는 한 잔의 칵테일로 오늘 하루를 충만케 한다

본업
브랜드 디렉터
특징
걷고 마시고 생각하기


우선 이 동네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어요. 이곳 광명시 하안동 일대에 자리를 잡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벌써 이곳에 온 지 7년이 되었네요. 2016년 결혼하면서 어느 곳에 독립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마침 근처에 살고 계신 장모님 덕분에 이 동네를 알게 됐죠. 


복도식 고층 아파트가 참 고즈넉한걸요.

사실 오래된 아파트라 고칠 게 많았어요. 입주하기 전에 집을 전체적으로 수리했죠. 저와 아내, 그리고 반려견 오아가 함께 살기에 적절한 공간으로요. 특히 주방의 싱크를 창가 쪽으로 옮기면서 주방뿐만 아니라 집 전체의 느낌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저 자신을 재점검하는 곳이죠. 아무래도 회사를 직접 운영하다 보니까 신경 쓸 일이 많거든요. 현재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11명 정도예요. 직원들 모두와 일일이 소통하려고 하지만 쉽지만은 않아요. 제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데 익숙한 타입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조금 독립적인 성격이랄까요. 그래서 집에 오면 온전히 제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해요.


그렇다면 집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예능이나 소셜 미디어를 보는 시간 보다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는 거죠.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지는 인풋(input)이 중요하다고 생각 하거든요. 업무 때문에 불가피하게 경영, 경제 서적을 많이 접해야 하지만, 집에서는 제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책들을 읽으려고 해요. 애정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디깅하기도 하고요. 어쩌면 집이 사실상 저를 완전히 편안하게 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저를 계발하는 공간에 가까운 거죠. 주방에 놓인 이 식탁이 어떨 때는 책상으로 탈바꿈하듯이요.




당신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직접 집에서 만든 칵테일이 눈에 띄어요. 아마도 이 식탁에서 만들고 찍은 사진일 듯해요. 어떤 계기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나요. 

사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저 술을 마시는 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과도 같았죠. 연남동에서 일할 때 회사 근처 간판 없는 바를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위스키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수집까지 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그냥 술을 마신다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소중한 시간처럼 대하게 되었어요. 위스키는 특히 오래 두고 마실 수 있잖아요. 와인 같은 경우는 한 번 개봉하면 단시간 안에 다 마셔야 하지만, 위스키는 파라필름(parafilm)을 활용하면 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죠.


그럼, 이 홈바는 결국 위스키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칵테일로 그 관심이 이동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칵테일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 같은 경우 위스키는 비교적 오히려 혼자 마시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마시는 편인 것 같아요. 오랫동안 위스키를 수집하면서 거의 모든 종류를 시도해 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칵테일은 가히 조합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정해진 레시피가 있더라도 제가 순간의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죠.




당신에게 칵테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겐 하나의 리추얼인 것 같아요. 퇴근 후 동네에서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해요. 그리고 일정 시간을 할애해 칵테일을 만들죠. 그러니까 술 그 자체를 마시는 행위를 너머 내 자신을 위한 긍정적인 인풋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시각적인 효과도 있죠. 잔에 담긴 칵테일 한 잔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도 제게는 크니까요.


하나의 리추얼이라면 칵테일을 마실 때 당신만의 룰이 있을까요.

가령 칵테일을 마실 때 단 번에 마시지 않는 것 같아요. 차갑게 칠링한 칵테일마저도 천천히 음미하고요. 식어서 향이 다 날아가더라도 천천히 마시는 거죠. 만약 남으면 그냥 버리기도 해요. 그러니까 끝까지 안 먹는 게 제 개인적인 철칙이에요. 왜냐하면 칵테일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오롯이 내가 생각한 대로 레시피를 만들었을 때, 제가 소박하게나마 무언가를 창조했다는 성취감이 더 중요하니까요.





당신이 주로 만드는 칵테일에도 종류가 있을까요.

칵테일이 크게 클래식, 모던, 컨템포러리로 분류가 되는데요. 저는 비교적 컨템포러리에 가까운 것 같아요. 클래식은 실패하지 않는 레시피인 대신에 제가 무언가 번형 해 볼 여지가 크지 않죠. 컨템포러리 같은 경우는, 막걸이나 오디를 넣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안동 소주나 동치미 국물을 활용해 볼까 구상 중이에요. (웃음) 여섯 가지 재료를 섞어볼까도 상상하고요. 사실 재료를 두세 가지만 활용하는 것이 제일 실패 확률이 낮아요. 


칵테일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은 ‘무지성’이라면 어떻게 홈바에 접근해 보면 좋을까요.

사실 바에서 많이 먹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자기 취향 없이 시작하는 것보다는 바에서 많이 경험해 보고 자신의 취향을 먼저 만들어 보기를 권해요. 저도 정말 많은 바에서 다양한 술을 소비해 보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느 쪽으로 빌드업해야 할지 그림을 그려보게 되었거든요. 


본격적인 재료 구비는 어떤 방향으로 해볼 수 있을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베이스를 기준으로 접근해 보기를 권장해요. 가령, 위스키를 좋아한다면 위스키 베이스로 준비하는 거죠. 위스키는 베이스의 칵테일은 대부분 단편인 것 같아요. 일종의 소독약 맛이 난다고들 말하는 아일라(Islay) 위스키 계열도 있고요. 여기에는 오히려 라임을 넣으면 산뜻해져요. 진(Gin)을 선호할 수도 있죠. 씁쓸한 맛을 좋아한다면 마티니나 베르무스(Vermouth)도 가능하죠. 그러니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재료 구비의 방향이 달라져요.




홈바를 갖추기에 필수적인 재료가 있다면요.

사실 칵테일 셰이커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제가 사용한 스큐르 드라이버 스티어 정도면 충분하거든요. 가령, 마티니를 마시던, 맨하튼을 마시던 모두 제조가 가능하죠. 사실 리큐르를 위스키와 함께 일대일로 섞기만 해도 칵테일이 완성돼요. 요컨대 개인적으로 진 베이스는 실패하지 않는 것 같아요. 대게 진토닉을 좋아하더라고요. 오히려 하이볼이 사람들의 취향을 많이 타죠.


리큐르가 생소할 이들을 위해 간단히 알려주신다면요.

쉽게 말하면 리큐르는 허브로 만든 술이에요. 흔히 알려진 예거 마이스터도 리큐르의 일종이죠. 그런데 허브로 만들었어도 가령 40도가 넘으며 따로 분류되죠. 가령 진은 리큐르가 아니에요. 비단 도수 때문만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다르니까요. 


 오늘 만든 칵테일은 어떤 레시피인지 궁금해요.

‘라스트 워드(Last word)’라는 이름의 칵테일이에요. 원래는 마라스키노(Maraschino) 리큐르가 베이스에요. 저는 진과 그린 샤르트뢰즈(Chartreuse)를 배합했죠. 샤르트리즈 같은 경우 프랑스 수도원에 기원을 둔 리큐르에요. 옐로우도 있지만 그린이 더 농도가 짙다고 할까요. 그리고 거기에 압생트를 뿌렸어요. 보통 올드 패션드에 많이 첨가하는 대신 시럽과 라임즙을 넣고 즉흥적으로 바질 잎을 올렸죠.




책장마저도 술이 가득한 게 인상적이에요.

사실 잘 정리된 건 아니에요. (웃음) 엄격히 나눈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카테고리를 따라 진열했어요. 우선 한쪽은 리큐르에요. 여기 보이는 미도리가 유명하잖아요. 색이 참 예쁘지 않나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했죠. 곁에 모아둔 비터스(bitters)는 칵테일을 빌드업하는 중요한 재료예요. 한편 다른 한 켠은 데킬라(Tequila), 버번(Bourbon) 위스키, 아일라 위스키들이 늘어져 있죠. 


리큐르도 보관을 염두해 골라야 겠군요.

만약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베르무스는 쉽지 않을 거예요. 빠르게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술들은 집보다는 우선 바에서 즐기는 걸 추천해요. 기본적으로 냉장 보관해야 하는 술은 진을 빼고는 거의 유통기한이 짧거든요. 그래서 시작 단계에서는 위스키나 진 베이스를 추천하죠. 특히 위스키는 최소한의 재료만 가지고도 칵테일 제조가 가능하니까요. 위스키를 베이스로 하는 대표적인 칵테일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도 사실 물, 설탕, 위스키 세 개의 조합이거든요. 덧붙여 앙고스트라 비터스(Angostura bitters)도 필수는 아니지만 초심자들에게 권장할 만하고요.



당신이 운영하는 브랜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라더스(grds)가 라틴어로 걸음이라는 뜻이잖아요. 어떠한 과정에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궁금해요.

브랜드를 처음 만들 때 아주 소자본으로 시작했어요. 거의 브랜딩만 가능한 예산 정도로요. 특히 이름에 대해 고민했어요. 당시 많은 브랜드들의 네이밍이 역동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해 비해 조금 더 정적인 느낌을 바랐던 것 같아요. 걸음은 곧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잖아요. 그것을 직관적으로 표현해 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당신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두 가지, 걸음과 술은 서로 어떤 관계일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둘다 휴식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한 편으로는 전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둘 사이의 모종의 연관성은 없을까요.

칵테일은 비유하자면 곧 조깅과 걸음의 차이의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무작정 뛰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생각하는 것 말예요. 칵테일을 만드는 목적 자체가 취하기 위함이 아니고 저에겐 일종의 리추얼이니까요. 그것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생각이 정리가 되고 리프레시가 되는 느낌이에요. 사실 저는 업무와 일상 사이에서 사고의 전환이 쉽게 안 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칵테일을 만들고 온전히 나를 위한 휴식을 취하면 다른 일을 하게 될 동력이 자연스럽게 생기죠. 그 점에서 칵테일도 곧 삶의 한걸음과도 같지 않을까요.

Tips

그라더스(grds) 박유진 디렉터의 홈바를 준비하는 초보 바텐더 위한 조언

1. 무작정 시도하기 보다는 다양한 바에서 여러 칵테일을 접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먼저 찾아볼 것. 

2. 자신의 좋아하는 베이스의 술을 토대로 재료를 구비해볼 것. 처분 기간이 짧은 냉장 보관 리큐르보다는 가장 실패 확률이 적은 진을 추천.

3. 칵테일 셰이커가 필수는 아니다. 스큐르 드라이버 스티어만 있어도 충분히 풍미를 낼 수 있다.

Editor
Chung Jinwook
|
Photographer
Hoon Shin
|
Date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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