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휴식을 추구하는 평화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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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가 무엇이냐고<br>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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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디자이너 유인성의 주변은 아름다운 기물로 가득하다. 정갈하고 소박한 형태의 개완과 찻잔, 그 주변에 기품 있게 놓인 물건과 가구, 곳곳의 아트워크는 벽면의 여백마저 그럴싸해 보이게 만든다. 어느덧 작업실 한편을 차지할 만큼 존재감이 커진 그의 차 생활은 2020년, 청담동에 위치한 티하우스 브랜드 ‘티하우스 하다’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작됐다. 이제는 차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오롯이 남겨두느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둘 정도라고. 그의 생활에 깊게 자리한 차 마시는 시간은 검약한 일상을 실천하고 아름다움을 찾는 시선을 수행하는 다도의 본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작업실은 차를 마시기에 완벽한 공간이다.

sett.note/ 유인성

아늑한 찻자리를 마련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차 문화를 즐기는 집스터

주요 장비
개완과 찻잔
본업
노츠 어소시에이츠 대표
부캐
차 애호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인스타그램 계정 @sett.note를 보고 꼭 한번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차 마시기 정말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작업실로 사용하는 곳이에요. 지하 층이지만 햇빛이 드는 선큰 구조로 동네 소음이 어느 정도 차단되고 오전에는 빛도 들어 아늑하죠. 테라스에는 작은 마당이 있어서 단풍나무 세 그루와 다양한 식물이 자라요. 아무래도 햇빛이 적게 들어오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가 한 달 정도 늦는대요. 이를테면 초여름에 피는 산수국은 여름에 활짝 피고,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에도 이곳의 단풍나무는 한창이라서 계절을 한 달 정도 더 길게 누릴 수 있어요. 조금 느리지만 다른 시간대가 존재하는 초현실적인 느낌이라고 할까요? 막힌 듯하면서도 열린 풍경을 보며 차를 즐기면 무척 행복하죠.


언제부터 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2년 전 청담동에 위치한 티하우스 하다(Teahouse Hada)의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 프로젝트를 맡으면서요.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이란 브랜드의 방향성을 설계하고 제안하는 일이다 보니 그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탐색하는 리서치 과정이 필요해요. 그때 한•중•일 차 문화와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알아보면서 다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특히 프로젝트가 완료된 날, 팀원들과 함께 하얀 삼베로 감싼 나무 가구에 앉아 차를 마시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정신없이 돌아가던 현장에서 다 함께 차를 대하는 그 짧은 시간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편안해지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차를 시작한 계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전에는 여행하면서 사 오거나 선물받은 차를 간간이 세라믹 티포트에 우려 마시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찻자리도 찾아다니고, 다회를 열기도 할 만큼 즐겨요. 오히려 너무 깊이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만큼 좋아해요.


특별히 다도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나요?

저 역시 차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우선 시간과 여유를 내야 하고, 꽤 복잡해 보이는 다도의 과정도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졌거든요. 특히 전통 다도는 고급 문화라는 이미지도 있잖아요. 그런데 동양에서 말하는 다도는 찻잎을 따는 것에서부터 마시기까지의 전 과정을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예법으로 여겨요. 사소한 행위를 통해 검약과 검소의 미학을 찾고 실천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알아보고 경험해 보니 실제로 다도란 따뜻한 물과 찻잎, 잔 하나만 있으면 될 정도로 간단하더군요. 또 평소 제가 좋아하던 것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더 빠져들게 됐어요.


이곳의 아늑한 분위기, 아름다운 물건들이 놓여 있는 모습, 인성 씨의 차분한 느낌이 차와 아주 잘 어우러져요.

<다반사茶飯事>라는 책을 보면 찻자리를 이루는 것에는 차, 사람, 다기, 그림, 창밖 풍경, 스치는 바람,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그리고 따뜻하고 해묵은 이야기가 있다는 내용이 있어요. 저는 공간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 공간을 쓰고 머무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과 시간에 대해 많이 고민해요. 그런데 이미 오래전부터 다도에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어요. ‘차’라는 작은 요소에서 출발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면서 사색하고 배려하는 삶을 추구한다는 내용을 알게 되니까 제대로 차를 마셔보겠다는 용기가 생긴 거예요.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이 공간의 쓰임이나 모양도 사뭇 달라졌을 것 같아요.

우선 수납장 제일 위칸에 있던 도자기와 오브제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자주 사용하는 다구를 놓았어요. 그리고 테라스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널찍한 평상형 소파,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큰 테이블과 의자를 뒀어요. 그때그때 다양한 시선으로 골라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요. 특히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는 호사를 함께 나누고 싶어 다회를 열기 시작했는데,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한 덕분에 야외 찻자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죠.


다회는 어떻게 열게 되었나요?

다도에 관심이 많고 티하우스 일도 하다 보니 차 관련 클래스와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됐어요. 그중 ‘청춘 다회'를 운영하는 분들과 인연이 되어 이곳에서 다회를 열었어요. 다양한 세대와 직업을 가진 이들이 해 질 녘에 만나 준비한 차를 나눠 마시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친분에서 연대로 느슨하게 이어지는 과정이 단순한 소셜링 이상으로 일상의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루틴으로 차를 즐기는지 궁금해요.

평일에는 바쁘다 보니 좀 힘에 부치는 날은 가는 밀랍 초를 하나 켜놓고 혼자 조용히 차를 내려 마셔요. 주말에는 느즈막이 일어나 우롱차나 홍차로 잠을 깨우고요. 특히 테라스 문을 활짝 열고 계절에 어울리는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으면 번잡한 마음이 가라앉고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을 느끼거든요. 출출해지는 오후에는 차에 다식을 곁들여요. 다식으로는 화과자가 잘 어울리지만 아무래도 가격대가 있고 매번 구입하기 어려워서 보통은 부드럽게 삶거나 조린 밤, 견과류, 말린 과일 내지는 산미가 적은 제철 과일을 먹어요. 손님이 오면 작은 양갱이나 별사탕을 차와 함께 내곤 하는데, 이렇게 슴슴한 단맛이 함께하면 더 기분 좋은 찻자리가 만들어져요.

특별히 선호하는 차는 뭐예요?

청차와 백차요. 청차 중에서는 화사한 호박색에 찻잔에 남는 잔향이 좋은 달콤 쌉싸름한 목책철관음차를 즐겨 마셔요. 청차는 산화 과정에서 찻잎의 성질이 변하고 가공 기술에 따라 맛과 향이 다 달라요. 또 찻잎의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어서 흥미롭거든요. 백차는 새순 옆에서 자라는 은백색의 어린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서 열처리하지 않고 가공한 차를 말해요. 은침이라고도 하는데, 맛과 향이 강하지 않지만 은은하고 미묘한 맛이 있어서 좋아해요.


국내 차도 즐기나요?

그럼요. 국내에서 재배하고 말리는 지역의 꽃차를 수소문해서 마셔보는 것도 너무 좋죠. 아끼는 정수경 작가의 넓은 유리그릇이나 유태근 작가의 찻사발에 뜨거운 물을 붓고 목련차나 매화차를 몇 송이 띄우면 움츠려 있던 꽃잎이 점점 피어나면서 공간에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지거든요. 마치 회복을 위한 나만의 의식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즐겨요. 또 손님이 있을 때는 꽃이 활짝 피어나는 모습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해요. 한번은 유치원생들에게 꽃차를 대접했더니 무척 좋아했어요. 아직 아이들이라 그런지 맛은 좋아하지 않았지만요.(웃음)

최근 부쩍 차 문화가 활발해지긴 했지만 커피에 비해서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잖아요. 차에 관한 콘텐츠와 정보는 주로 어떻게 얻나요?

한국의 차 역사는 고려 시대부터 시작됐지만 중국과 일본에 비해 비교적 짧은 편이긴 해요. 그래서인지 차 문화나 콘텐츠 역시 중국, 일본이 더욱 활성화되어 있는 듯해요. 차에 관한 정보는 보통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으로 찾아보는데,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식품의 화학적 측면을 분석한 정보 위주의 책을 주로 봐요. 그리고 아카이빙과 마케팅이 잘되어 있는 일본 티 브랜드 사쿠라이 티 숍(@sakurai_tea_shop), 히가시야 티 숍(@higashiya_higashiya)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도 자주 보고요. 차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다면 차가 주요 소재나 복선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통해서도 차와 가까워질 수 있어요. <일일시호일> <경주>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같은 영화요.


참여했던 차에 관한 오프라인 클래스나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홍차 전문가로 잘 알려진 문기영 선생님의 티 클래스에 두 달 동안 참여했어요. 동서양 차를 모두 다루는 수업이었는데, 이론 수업과 함께 수많은 티 브랜드 차를 시음하면서 좋은 차 고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직접 다녀온 장소에 대한 자료를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차 산지, 다양한 다구 이야기, 도기 전시 등 자연스럽게 차와 연관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즐거웠죠. 또 아름지기에서 기획하는 차 관련 행사에도 여러 번 참여했어요. 고려 시대 차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반을 경험하기도 했고,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어둠 속에서 마신 차가 기억에 남아요. 하동의 찻잎을 따러 가는 새벽을 표현한 찻자리였어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많네요.

찾아보면 생각보다 프로그램이 굉장히 다양해요. 내년에는 야생 차밭에서 채엽과 제다를 체험하고 야외에서 차를 마시는 여행 프로그램인 ‘다함께 차차차’에 참여하고 싶어요. 서촌의 보안여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인데 인스타그램 @teatea_chachacha에 정보가 나와 있어요. 이렇게 차에 관한 프로그램이 좀 더 많아지고 잘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좋아하고 자주 찾는 찻집은 어디인가요?

청담동 티하우스 하다, 한남동 산수화티하우스에 자주 가요. 또 안국과 종로에 있는 크고 작은 찻집을 차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찾아다니는 것도 재미있어요.

차에 관한 관심사랄까, 요즘 특별히 주목하는 부분이 있나요?

원래 중국과 일본 차를 주로 마셨는데 최근에는 한국의 다도 문화가 궁금해졌어요. 특히 지방 곳곳에 있는 오래된 다원과 다인들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있어요. 최근 코엑스에서 열린 카페 쇼를 다녀왔는데 곳곳에 차 브랜드가 보이더라고요. 그중 지리산 악양의 ‘무애산방’ 부스가 인상적이었어요. 직접 기르고 그 지역 이름을 따서 지은 ‘악양청’을 마시는데, 그 혼잡한 곳에서도 잠시나마 느긋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차가 지닌 본연의 힘이구나 싶더라고요. 우리의 차를 지켜온 작은 다원을 하나씩 찾아보고 도움이 될 만한 브랜딩이나 디자인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직업병의 발현이네요.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그럴 거예요. 취미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 나도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 마련이죠. 저는 한국의 공예는 알면 알수록 소박하면서도 호방한 미학과 넉넉한 비례 등 아름다운 요소가 참 많다는 것을 느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제가 느낀 한국의 미와 정서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휴대용 다기 세트와 차 바구니를 만들고 싶어요. 담양의 대나무 장인과 함께요.


최근 차 문화가 부쩍 활발해졌는데, 오늘날 국내 차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어르신들의 문화로 여겨지던 차가 새로운 세대에 의해 조금씩 다르게 회자되는 분위기가 좋아 보여요. 다만 단순한 유행으로 빠르게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죠. 브랜딩 쪽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어떤 분야에 대한 관심이 천편일률적인 기획으로 이어지고 트렌드로 과열되었다 사라지는 것을 많이 봤어요. 많은 것이 그렇지만 차 문화 역시 오랫동안 본질을 고민하고 좋은 안목을 가진 사람이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정말 참신하고 즐거운 차 문화가 형성될 거라고 봐요.


얘기를 듣다 보니 아름다운 다구와 함께 아늑한 찻자리를 방 한편에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선 가장 편안한 상태로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정해 보세요. 거기에 작은 트레이와 한두 명 즐길 수 있는 기본 다기 세트를 준비하면 돼요. 정말 흥미로운 게 뭐냐 하면, 찻자리는 작게 보면 내 앞에 놓인 차 도구와 귀여운 차총(차우)이 놓인 작은 영역이라고 하지만 조금 더 시야를 넓혀서 가구, 벽에 걸린 그림, 내가 키우는 식물이나 분재 등 공간의 범위를 확장해 나갈 수 있어요. 찻잔 주변으로 아끼는 것들을 하나씩 놓아두면서 나만의 고유한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거죠. 저는 얼마 전에 아끼며 보관만 하던 노기쁨 작가와 사이토 유나 작가의 그림을 벽에 걸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비로소 가장 좋아하는 것과 한잔의 차가 연결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Tips

국내에서 꼭 가봐야 할 보석같은 다석

1.
무애산방 ⛰ 경남 하동군 악양면 주암길 36-7 무애산방

좋은 차를 직접 생산하고 선보이는 지리산 인근의 찻집, 중국의 보이차처럼 고급스러운 맛과 향을 가진 발효차로 유명하며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직접 구입하여 마셔볼 수 있다.

2.
매월당 고려단차 🍵 전북 남원시 금지면 매촌길 47-34

소박한 일상의 차 문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남원의 매월당은 산 속에서 자생하는 야생 찻잎을 따서 장작불로 덖어내어 고려시대의 단차를 지키기 위해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찻집이다. 초가집 지붕의 단아한 찻집과 마당에서 찻잎을 말리는 모습은 너무 소중한 풍경이다.

3.
한밭제다 🫖 경남 하동군 화개면 부춘길 22

하동 다원 10경 중 한 곳으로 아름다운 다원을 감상하고 차를 마시고 구입할 수 있는 숍이 갖춰져 있다. 하동 여행에서 들리기 좋은 곳으로 이 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유자병차는 생김새가 귀엽고 맛있는 유자를 말려서 찻잎으로 속을 채운 차 이다.

4.
교동다원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65-5

1999년 부터 전주 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교동다원은 오랜시간의 정성과 시간이 느껴지는 곳이다. 고즈넉하고 편안한 한옥에서 마시는 차는 언제나 좋은데 전주 여행에서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이다.

Editor
Yoo Dami
|
Photographer
Park HyunSung(Poles studio)
|
Date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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