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로 세상을 채우는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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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온 이토록 아름다운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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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정서가 있다. 낭만이라고 하는 것. 낯선 도시에서 발견한 오브제에서 운명적인 감정을 느끼고, 손때 묻은 물건에서 매력을 느끼며, 쓸모가 없더라도 아름다우면 그 자체가 용도라고 여기는 마음이다. 연희동에서 빈티지 오브제 숍 빅슬립을 운영하는 김민정도 이쪽 부류다. 이름 없는 물건, 출처가 불분명한 물건, 사용한 흔적이 남은 물건에서 풍기는 오묘하고 낯설면서도 친근한 기운을 예찬하는 사람. 그의 집에 가득한 오만 가지 물건은 다 어디에서 구했나 싶을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당근마켓부터 이베이, 동묘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앤티크 마켓까지 서치하고 발품 팔아 모은 김민정의 수많은 물건은 애정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김민정

출처가 불분명하고 용도를 다한 것이라도 형태가 아름답다면 경계 없이 수집하는 탐미주의자 수집가

본업
빅슬립 대표
특징
장르 불문 수집광
이베이, 당근마켓

집에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해요. 본인이 운영하는 빈티지 오브제 숍 빅슬립의 프라이빗 공간이라고 해도 되겠어요.

사실 집과 가게의 경계가 없어요. 물건이 워낙 많다 보니 집에 둘 데가 없어서 가게에 가져다 놓은 것도 많고요. 거리가 가까워서 종종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집에 있는 것을 가져가곤 해요.


이런 물건은 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했어요?

어릴 적 친구가 써준 옛날 편지를 보면, 친구가 바라본 저는 항상 뭔가 모으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맥도날드 인형부터 각종 캐릭터, 잡지와 책, 사진, 음반, 그리고 향수병처럼 형태가 아름다운 물건도 모았고요. 경계 없이 모았어요. 길에 마음에 드는 가구가 버려져 있으면 비 오는 날에도 그걸 들고 오고요.


비 맞으면서요?

어느 날 저녁,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길가에 너무 아름다운 커다란 자개 거울이 버려져 있는 거예요. 지금 가져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가져갈까 봐 불안하더라고요. 빼앗기고 싶지 않았죠. 오래된 가구라 나무가 거칠어서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양손에 끼우고, 비가 엄청 내리는데 한 10분 동안 그 비를 다 맞으면서 거울을 들고 왔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마음에 드는 것은 불시에 눈앞에 나타나요. 마치 운명 같달까. 이게 왜 여기 있나 싶은 놀라움과 새로운 물건을 만났을 때의 감정이 저를 즐겁게 하죠. 문득 제 눈에 들어와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데려온 물건은 더욱 각별한 느낌이 들어요.


문득 눈에 들어오는 물건은 주로 어떤 특징이 있나요?

용도를 떠나서 형태가 아름다우면 그 자체로 눈길이 가요. 예컨대 오래돼서 고장 난 램프는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더라도 공간 한편에 놓였을 때 그 자체만으로 분위기가 달라지잖아요. 향수병 역시 원래는 향수를 담는 용도지만 특유의 관능적인 형태와 색감, 그리고 유리 질감과 아담한 크기 등이 하나의 매력적인 오브제처럼 보이게 만들어요.

집 안에 있는 물건 중에는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의 빈티지 오브제보다는 이름 없는, 출처 모를 물건이 많네요.

사실 브랜드 제품이나 소위 ‘디자인 피스’라고 하는 것들은 그 물건에 대한 히스토리가 잘 정리되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아르텍 테이블의 경우 몇 년도에 어디서 만들었고, 누가 디자인했고, 디자인이 어떻게 변천했는지 알 수 있어요. 또 경제적인 여유만 있다면 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고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출처 불분명한 물건은 어떻게 검색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에요. 그래서인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딱 발견했을 때 어딘가 운명적인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본인에게 운명적인 물건인 만큼 컬렉션처럼 테마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최근에는 인형을 좀 모으는데요, 꼬질꼬질한 게 너무 귀엽지 않나요? 언제나처럼 휴대폰으로 이베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발견한 아이들이에요. 보자마자 “너무 귀여워!”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어요. 털이 뭉쳐진 모습 하며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표정까지. 어떤 주인을 만나고 어떤 세월을 겪었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상하고 귀여운 것은 사지 않을 수 없죠. 독일, 일본 등에서 구한 것들이에요.


집 안 곳곳에 버섯 모양 오브제도 참 많아요.

생긴 모습도 귀엽고 폭신한 촉감도 좋아서 버섯 모양 아이템을 모았어요. 버섯이 그려진 빈티지 프린트와 공예품도 많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본 밴드 램프(Lamp) 공연을 보러 인도네시아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현지 친구가 인사동 거리 같은 앤티크 마켓을 추천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딱히 제가 좋아할 만한 물건은 없어서 무심하게 지나가다가 어느 가게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저 커다란 핑크색 무라노 머시룸 램프가 눈에 딱 띄는 거예요. 주인 할아버지한테 꺼내 달라고 했더니 어떻게 찾았느냐며 놀라더라고요. 운 좋게도 현지 친구 덕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했어요.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고요.


그걸 손에 넣고 무척 행복했을 것 같아요.

램프 공연을 보러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우연히 제가 좋아하는 무라노의 머시룸 램프를 만난 게 꼭 운명 같았어요. 그렇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하면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니?’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신나고 신기해요.

그런 물건과 운명의 만남은 주로 어디서 이뤄지는지 궁금해요.

길을 걷다가 발견하기도 하고, 이베이당근마켓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이뤄져요. 특히 시간이 날 때마다 당근마켓이나 이베이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거든요. 또 오랜 시간 거래해왔던 셀러들에게 리스트를 받기도 해요. 오히려 무언가를 사려고 해외에 가 본 적이 없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해요. 애초에 어떤 목적으로 여행을 간 적은 없어요.


당근마켓 헤비 유저일 것 같아요?

맞아요. 저 당근마켓 예찬론자예요. 이상하고 재미있는 물건이 정말 많이 올라오잖아요. 물건을 올리는 각자의 사연도 재미있고, 물건과의 인연이 끝났을지 몰라도,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죠. 또 식물도 당근에서 많이 구하는 편이에요. 숍에서 판매하는 식물은 너무 잘 정돈되어 있어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데, 당근마켓에 올라온 식물들을 보면 오랜 시간 누군가의 배란다나 앞마당에서 제멋대로 자유분방하게 자란 모양이라 오히려 근사해요. 저는 이런 부분에 매력을 많이 느껴요. 이게 이렇게 자란다고? 놀라워하면서요!


물건 애호가들은 저마다 당근마켓 사용법이 있던데.

그들에겐 3D가 있죠. 당근마켓, 동묘, 다이소. 저는 다른 지역에 가면 당근마켓 앱의 동네 설정을 바꿔서 그곳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내놨는지 꼭 구경해요. 생활감이 묻어 있는 물건을 좋아하는데, 인천 송도 같은 신도시는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많다 보니 묵은 살림이 별로 없더라고요. 확실히 연희동, 한남동으로 동네를 설정해 두면 좋은 가격에 특별한 물건이 나온 경우를 많이 봐요. 또 연령대별로 문자의 말투나 거래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이런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당근마켓 덕분에 골목골목 거침없이 다니면서 운전 실력도 많이 늘었어요.(웃음)


이쯤이면 당근마켓에서 협업하자고 연락이 올 것 같은데요?

내심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당근마켓과 함께 할 만한 이벤트도 혼자서 생각해 봤거든요. 작가나 공간에 관해 일하는 사람을 여러 명 모아서 각자 자신의 방을 꾸미게 하는 거예요. 단, 당근마켓에서 구한 물건으로만. 전 정말 재미있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각자 어떤 공간을 만들지, 어떤 물건을 찾아낼지 너무 궁금해요.


키워드 알람 설정해 놓은 거 있어요?

음, 폐업? 폐업한 가게에서 종종 그 가게만을 위해 만들었던 기물을 판매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렇게 어딘가 다르고, 기성품이 아닌 특별한 물건을 사고 싶기 때문이에요.


빅슬립을 열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어요?

음악 레이블에서 8년 정도 음반 기획과 디자인을 했어요. 음악을 늘 좋아했어요.


그래서 CD와 카세트가 이렇게 많군요.

어렸을 때는 라디오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2003년에는 새벽 3시에 진행하는 <롤러코스터의 Listen Up>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자주 들었거든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듣다가 잠드는 날도 있었는데 매일 그 방송을 녹음해 뒀어요. 거의 보물이죠. 그런데 어느 날 방송을 종료한다고 해서 라디오 홈페이지에 올라온 선곡표를 첫 방송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전부 메모장에 옮겨 적었어요. 그때는 여기서 나오는 음악은 다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하듯 적었던 기억이 나요. 녹음한 테이프와 함께 보면 돼요. 가끔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 챙겨서 운전하면서 들어요. 오래된 차를 타는데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거든요.


아련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데, 한편으론 라디오 방송까지 녹음해 두는 걸 보면 정말 지독한 물질주의자군요.

네. 잘 보면 ‘윤선생 영어교실’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어요.(웃음)


음악 쪽 커리어를 제쳐두고 빅슬립을 열기까지 그 과정도 궁금해요.

어느 순간 제 물건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가족과 함께 살 때였는데, 제가 물건이 워낙 많아서 신발장, 부엌 서랍 등 작더라도 빈 공간만 있으면 박스에 물건을 담아 넣어두었거든요. 나중에는 찾기 힘들 정도로 집 안 곳곳에 흩어지게 됐어요. 모두 제가 무척 아끼는 물건이고 애정의 눈길을 받아야 하는 예쁜 것들인데, 이렇게 상자 속에 갇혀 있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효창공원 근처에 저렴한 공간을 구해 작업실을 만들었어요. 그곳에 물건을 가져다 놨는데 친구들이 보고는 팔아보라 하더라고요. 그러다 오프라인 아트마켓에 파도식물 친구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 사업자등록을 하고 웹사이트도 만들고, 그렇게 천천히 시작되었어요.


빅슬립에 가보면 정말 유니크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민정 씨가 그렇게 느끼는 다른 공간이 있는지 궁금해요.

부산 전포동을 기반으로 시작한 편집숍이자 패션 브랜드 발란사, 서촌에 있는 아늑한 카페 시노라, 성수동의 대표 문구점 포인트 오브 뷰 등이 떠오르네요. 발란사는 그곳이 추구하는 유머러스함이 엿보여서 재미있어요. 시노라는 공간 분위기, 사장님의 취향과 센스가 탁월하게 어우러지는 곳이에요. 포인트 오브 뷰에서는 너무나도 정갈하고 섬세하게 신경 쓴 모습에서 감동받았어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개성과 바이브가 그대로 녹아 있는 곳을 보면 참 좋아요. ‘이곳 정말 찐이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곳이요.


빅슬립도, 김민정 씨 집도 그래요. 본인이 마련한 유니버스요. 마지막으로 아끼는 음반 하나만 골라주세요.

아까도 언급했던 일본 밴드 램프의 <8월의 시정 八月の詩情>이라는 앨범이요. 램프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음악 레이블에서 일할 때 참여한 프로젝트라 더욱 의미 있어요. 제가 또 8월에 태어났거든요.(웃음) 만약 제가 결혼식을 한다면 행진할 때 이 노래를 틀 거예요.


Tips

김민정이 일상의 스위치가 필요할 때 꺼내 보는 물건

1.
직접 녹음한 라디오 프로그램 <롤러코스터의 Listen Up> 카세트테이프와 선곡표 📻
2.
2005년 발행 <바자> 매거진의 별책 부록 <서울의 공간> 📚
3.
일본 밴드 램프의 앨범 <8월의 시정 八月の詩情> 💿
Editor
Yoo Dami
|
Photographer
Lee Charyoung
|
Date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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