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을 창조하는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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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럽고 맛있게 집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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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서울은 도파민을 마구 뿜어내는 도시다. 카페인, 알코올, 캡사이신의 효과는 빠른만큼 제대로 느낄 새 없이 사라지고, 요즘의 취향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쫓아가기엔 숨이 턱턱 가빠온다. 삼삼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서세희는 이 정신없는 도시에서 자신의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다정한 시선을 보낸다. 서세희의 눈길이 가닿는 서울의 한 동네는 유행에 생과 사를 달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생기넘치게 복작대고 있다. 서세희의 말을 듣다보면 그가 짓는 집도 이처럼 싱그럽고 편안하게, 삼삼하게 도시의 풍경을 완성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서세희/

집 짓는 미술가인 집스터

본업
삼삼 건축사사무소 소장
주요 장비
연필, 샤프, 종이, 오토캐드, 손
주특기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제철재료들로 만든 ‘이름 없는 요리’
골목길 탐험가



후암동에 산 지는 3년 정도 되었다고 했죠.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시간이 나면 동네 골목길을 자주 걸어 다녀요. 해방촌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아기나 할머니, 교복 입은 학생들, 산책 나온 강아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주민들이 있다는 걸 볼 수 있지요. 후암동만의 자연스러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 마트 앞에 마을버스가 다니는 ‘후암동 종점’ 정류장이 있는데 그 주변을 참 좋아해요. 작은 원형 교차로처럼 마을버스가 한 바퀴 돌아서 나가는 길인데요. 그 주변 공터에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아 이야기를 나누세요. 얼마 전엔 그 자리에 천막도 설치되었어요. 지하철역처럼 다들 어딘가를 향해서만 막 걷는 게 아니라, 동네 시장 어귀나 계단 등에 앉아서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동네에 좀 더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아요. 



얘기를 듣고 나니 편안한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는 커다란 산책로처럼 느껴지네요. 이곳에서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했던 조건은 무엇이었나요?
집을 고를 때는 하나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식물을 키우기에 적합한가?’. 채광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식물 중심의 거주 공간이군요! 그리고 ‘삼삼 건축사사무소'의 작업 공간이기도 하고요. 이름은 왜 ‘33(삼삼)’인가요?

맛을 표현할 때 ‘삼삼하다'라고 하지요. 약간 싱거운 것 같으면서도 맛있다는 표현이잖아요. 저도 그런 맛을 내는 집을 짓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싫증을 잘 느끼는 편인데, 집은 그러면 안 되니까요.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무언가를 강조하지 않는 편안하고 삼삼한 공간을 짓고 싶다는 뜻이에요.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도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뭔가를 계속 만들면서 노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당시에 TV에서 건축가가 집을 좋게 고쳐주거나 어린이 도서관을 지어주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봤어요. 뭔가를 만들고 혼자만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걸 눈으로 보고 나니 전공도 건축을 선택하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맞아요. 2021년에 서울시의 공공미술 시민 아이디어 구현 공모에 당선이 됐던 <모래-시간>이란 원형의 장소입니다. 문화비축기지에 무엇을 세우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이 당시의 숙제였는데, 그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많아서 행사가 열릴 때면 부모님과 함께 오는 어린이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놀이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네나 미끄럼틀처럼 확실히 지시된 행동을 하는 것 말고 그냥 열려있는 곳이었으면 했어요.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꼭 놀이터에서만 놀았던 것이 아니라 골목, 공사장 어디서든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서 놀잖아요. 공간에는 단순한 조건만 주고, 아이들끼리 뭔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곳이길 바랐어요. 모래와 자갈, 흙, 풀, 콘크리트 등의 다양한 물성을 탐구하고 설치물의 그림자까지 활용하면서요.




놀이터를 보니 ‘삼삼한 건축'은 열려있고 유연한 공간을 만든다는 뜻도 되겠어요. 기존에 다니던 건축사사무소를 나와 독립을 하게 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제가 원하는 건축의 언어를 쓰고 싶다고 늘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회사에 있다 보면 충족하기 어려운 욕심이지요. 주거 공간에 제가 제시하고 싶은 생활의 형태가 있고, 그걸 직접 실현해 보고 싶습니다.


카페나 레스토랑 등 상업 공간이 아닌 집을 짓는 데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집은 특히 예민한 작업이라 건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옷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매일을 설계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마당처럼 외부와 연결된 공간부터 시작해서 문고리 같은 작은 가구, 그 안에 사용할 재료까지 모든 것을 신경써야 하고요. 섬세하게 생각하고, 찾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무척 매력적입니다.




살고 싶은 집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묻나요?

미래의 집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물어요. 그 집안에서 사는 모습은 어떻게 상상이 되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의 일과와 현재의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도 묻죠. 또 그 집에서 부재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 미래의 집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는지 등등을 물어요. 기능과 취향이 모두 반영되어야 하니까 평범한 대화도 많이 하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서 편안함을 느끼는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아파트에서 살았던 분들이 많기 때문에 주택에서의 삶의 모습이 상상이 잘 안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상상을 구체화하는 것도 제 일인 것 같아요. 




일하는 과정 중 가장 괴로운 게 뭐예요?

어쩔 수 없이 관공서와 일을 해야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건축 허가를 위해 도면 검수를 받는데, 그때를 수월하게 넘기기 위해서 또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해요. 심의용 도서를 엄청나게 꾸려서 심의 위원들에게 여러차례 보내야하기도 하고요. 


살짝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요령 같은 게 생겼을까요?

막상 부딪히면 다 하게 되어 있어요. 해야 한다면 다 해낼 수 있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과정도 이야기해주세요.

일의 시작과 끝을 좋아해요. 머릿속에 폭발하듯이 아이디어가 떠다니는 것부터 여러 요구 사항과 법의 규제를 고려해 정리하는 것도요. 그렇게 구체화된 생각을 도면으로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즐겁거든요. 종이 위 그림이 진짜 3차원으로 구현되었을 때도 짜릿해요. 완성 후에 살펴볼 때면 건물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매번 확인해요. 실외든 실내든 빛에 따라 24시간 365일 계속 바뀌지요. 


집에서 혼자 일하는 건 어때요? 집중이 쉽게 흐트러지진 않나요?

일단 저를 믿지 않아요. 가만히 놔둔다고 일을 할 제가 아닙니다.(웃음) 제가 어떻게 해야 움직이는 인간인지 수년간 관찰했어요. 알게 된 건 이런 것들이에요. ‘내기를 하면 열심히 한다’거나 ‘약간 불편한 상황에서 오히려 뭔가 발휘해서 한다’, 그리고 ‘일단 연필을 잡으면 시작하게 되어 있다’ ⋯. 특히 회피하는 것보다 연필처럼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일이 진행이 되면 그 만족감이 훨씬 커요.




집에서 일할 때 또 다른 혼자만의 규칙이 있나요?

특별한 규칙을 만들기보다는 루틴을 지키는 편입니다.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은 일정하게 하고, 아무리 바빠도 명상을 해요. 12시 전에는 자고, 6시 전에는 일어나는데 그러면 아침에는 머리가 무척 맑고 판단력이 좋아져요. 그래서 중요한 건 다 아침에 정해요. 시안을 두고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잘 모르겠다면 그다음 날 아침에 개운하게 결정합니다.




최근에는 움집을 만들고 있다고요.

제가 후암동에 공간을 하나 얻었어요. 공유 공간으로 쓰고, 나중에는 친구와 전시도 하려고요. 인간이 최초로 만든 집을 움집이라고 하잖아요. 땅을 파서 지푸라기로 덮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살았던 것이지요. 사람들에게 그런 가치를 주고 싶었어요. 이 건물은 2층에 위치하고 있지만 어쨌든 고요하고, 가라앉을 수 있고, 자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곧 전시를 열게 되면 초대할게요!

Tips

서세희 건축가가 평안함을 얻는 스폿 5

  1. 남산 야외식물원
  2. 아침시간 소쇄원
  3. 소월길 밀영
  4. 곰발커피
  5. 제주도 방주 교회
  6. 순천 선암사
Editor
Park Gemma
|
Photographer
Park Hyun Sung
|
Date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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