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후기

언젠가 내게 말을 걸어올 물건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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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집

2024.10.30 10:27

조회수 6898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writer. 정멜멜 (@meltingframe)

서울에서 동료들과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를 운영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국내/외 브랜드와 매체, 작가와 디자이너들과 함께 관련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


최근 비인간동물과 그들의 반려인, 보호자, 활동가와 후원자를 사진과 대화로 기록하는 프로젝트 '올루 올루' 를 시작했다.




©정멜멜



⊹

언젠가 나의 나이 많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면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잔뜩 생길 예정이다.
아껴서, 잘해주고 싶어서, 사랑해서 사준 물건들이
나에게 상실감을 안길 수도 있다.
어떤 계절에, 빛이 들어오는 오후면 늘 앉아있곤 하던
의자 위 담요는 한순간에 거친 파동을 일으켜
나를 힘들게 할 것이란 걸 예감하고 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이사를 결정하지 않는 한
그가 떠나고 난 나의 집은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추억이 담긴 그릇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함께 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도 안다.

⊹



언젠가 내게 말을 걸어올 물건을 산다



거리를 걷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서울시 전체 전철역 중 혼잡도가 5위 안에 든다는, 유동 인구가 유난히 많은 역 근처였다. 못 듣고 지나칠 수 있었던 그 미약한 음성을 함께 걷던 지인이 들었고, 전선 뭉치 사이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벌써 16년 전의 이야기다.

갑자기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고양이를 데리고 오게 된 나는 시급하게 필요한 물품부터 검색했다. 모래와 사료. 고양이는 모래를 펼쳐주면 알아서 화장실로 쓴다고? 그런 광경을 본 적도 없고 태어나서 모래를 사본 적 역시 한 번도 없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급하게 마련한 박스에 모래를 부어주니 들어가 오줌을 누는 고양이를 보면서 예감했다. 단 한 번도 사지 않았던 것들, 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것들을 구매하며 앞으로 살게 될 것이란걸.


©정멜멜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를 위해 때가 되면 꼭 사야 하는 사료나 영양제, 간식을 제외하고도 여전히 많은 것들을 구매한다. 혹은 구매했던 것을 눈물을 흘리며 빼앗기기도 한다. 혼자 덮어야지, 하고 큰맘 먹고 산 프리미엄 마이크로 화이버 솜 차렵이불을 빼앗기는 데 이틀 정도 걸렸다. 부드러운 것을 찾아내는 센서라도 있는 걸까. 선물 받은 핀란드의 울 블랑켓은 거의 펼쳐놓자마자 내 것임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하거나 하는 난폭한 방식이 아니라 그저 그 위에 우아하게 하지만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버림으로써 백기를 들게 만든다.

고양이의 생애 단계별로 새롭게 구매하게 되는 것들도 계속 생긴다. 스스로 그루밍을 하지 않기 시작했을 때는 심란한 마음으로 죽은 털을 완벽히 제거해 준다는 실리콘 돌기 브러시를 구입했고, 집에서 매일 피하 수액을 놓기 시작한 이후로는 정기적으로 주사기와 나비침, 알코올 솜과 소독용 에탄올이 구입한다. 이런 게 필요하구나... 16년 전, 처음 모래를 구입하는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직업상 타인의 공간에 방문할 일이 많고, 습관적으로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즐거운 일이다. 푹신한 방석, 만듦새가 뛰어난 밥그릇, 사용감이 느껴지는 스크래쳐, 매일 몸에 채워줄 하네스, 발톱 자국이 잔뜩 난 소파나 슬리퍼, 낡아 실밥이 터져 나왔지만 너무 좋아해 버리지 못하는 인형... 가장 친밀한 존재가 좋아하는, 혹은 그 존재를 위해 인간이 대신 고른 물건들의 면면을 바라보게 된다. 보통은 반려동물이 자주 지나다니거나 좋아하는 곳, 혹은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 있는 그 물건들은 몇 시간의 대화만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반려인의 취향이 반영된 물건도 있지만 누가 봐도 아예 배반해 버리는 물건들을 볼 때 오히려 사랑을 느낀다. 극단적인 시크함과 모던함을 추구하는 사람의 집에서 탄성 와이어에 화려한 깃털과 방울이 달린, 무채색의 공간에서 무시무시한 컬러와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티저 토이를 여러 개 발견하면 어쩔 수 없이 슬며시 웃음이 나는 것이다. 심지어 취향뿐 아니라 성향을 배반하기도 한다. 자신의 물건은 딱 필요한 것만 구비하는 듯 보이는 미니멀리스트의 집에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장난감이 가득한 반려동물 장난감 바구니를 보았을 때, 크지 않은 방에 거대한 캣타워를 두고 고양이 집에 잠시 얹혀사는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 마음을 너무나 이해하고, 어이없고 웃기다. 그리고 그렇게 깨닫는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기꺼이 나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라는걸.

언젠가 나의 나이 많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면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잔뜩 생길 예정이다. 아껴서, 잘해주고 싶어서, 사랑해서 사준 물건들이 나에게 상실감을 안기게 될 수도 있다. 어떤 계절에, 빛이 들어오는 오후면 늘 앉아 있곤 하던 의자 위 담요는 한순간에 거친 파동을 일으켜 나를 힘들게 할 것이란 걸 예감하고 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이사를 결정하지 않는 한 그가 떠나고 난 나의 집은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추억이 담긴 그릇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함께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도 안다.

나는 낯선 고양이를 만나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으며 그 안에서 생활을, 규칙을, 애착을 다시 정립하거나 무너뜨렸고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경이로웠던 경험과 시간을 그가 남기고 간 작은 빗 하나를 보며 떠올릴 것이다. 알고 있지만, 피할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함을 알고 있지만 가능한 늦게 찾아오기를.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바란다.


©정멜멜


⊹⊹

정멜멜 작가님이 공유해주신 ‘집에서의 창의적인 활동’은
반려동물의 건강과 취향, 습관 등을 고려한 물건을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아지트에 쌓여가는 앙증맞거나 거대한 물건들,
그 물건 하나하나에 녹아든 인간의 고민과 반려동물과의 교감.
‘우리 생에서 사랑과 공존을 위한 행동보다 창의적인 영역이 또 있을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품게 만드는 에세이였네요.

집스터 여러분의 집에는 어떤 ‘사랑의 흔적’이 펼쳐져 있나요?
반려동물의 무릎 관절을 고려한 매트? 이사할 때 선물로 받은 식물들? 무수한 아기용품?
‘지금’을 함께하는 존재가 내 삶에 있음을 알리는
사랑스러운 집의 조각들을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219

964

댓글 등록 시 3미닛 적립 (1일 10건까지)

댓글

gnn****

사랑과 공존을 위한 창의성, 그 중요성에 대한 글이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에요!

2024.11.01 15:3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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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hine

고양이 모습이 너무 편안해 보이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2024.11.01 15:2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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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48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오죠~^^ 그렇기에 작은것도 소중히 ♡♡

2024.11.01 15: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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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1

실제로 말을 걸어오는일이 생긴다면 어떤물건이 제일 안놀랍고 재밌을까 생각해보는시간이였어요

2024.11.01 14: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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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2

사진도 글도 예뻐요

2024.11.01 14:2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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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림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2024.11.01 14:0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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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43538

따뜻해지는 글 잘 보고 갑니다!

2024.11.01 13:4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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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윗홈0

햇살처럼 따뜻하네요!

2024.11.01 09: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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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라냥

저희집에도 반려묘의 추억이 남겨져 있어요.. 떠난지 2년이 넘어도 오래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지라 쉽사리 손을 댈 수가 없나봅니다.. 언젠가는 잘 정리해서 한 번씩 꺼내볼 수 있게 되겠죠?

2024.11.01 07:4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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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79

마음이 따뜻해지고 내공간을 다시 뒤돌아보게끔 한 좋은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11.01 05:3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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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에요

2024.11.01 01: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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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에

참 따뜻하게 만드네요

2024.10.31 23:5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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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타

따뜻해지는 글이군요

2024.10.31 23:5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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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지

말을 걸어줄 물건들이 추억을함께 하겠지요.

2024.10.31 23: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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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0

함께 산다는 게 그런 거인 듯인 해요

2024.10.31 23:5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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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82

시간과 공간을 나눈다는 건 사랑

2024.10.31 23: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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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에잇

물건이 머물고 항상 앉아서 밖을 보던 자리

2024.10.3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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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81

물그릇 방석 등 물건이 머문 자리

2024.10.31 23:5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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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80

우와 고양이도 넘 귀엽고 감각 대박이네요

2024.10.31 23:5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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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77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어요

2024.10.31 23:4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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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77

공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어요

2024.10.31 23:4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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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0

반려동물을 위한 물건들과 함께하는 공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어요~^^

2024.10.31 23:4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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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75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4.10.31 23:4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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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74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4.10.31 23:4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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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72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4.10.31 23: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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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70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4.10.31 23:4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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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tine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4.10.31 23: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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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69

저의 집에서의 사랑의 흔적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네용

2024.10.31 23: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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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68

저의 집에서의 사랑의 흔적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네용

2024.10.31 23: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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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67

정멜멜 작가님의 반려동물의 사랑이 느껴져용! 저의 집에서의 사랑의 흔적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네용

2024.10.31 23:3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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