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후기

언젠가 내게 말을 걸어올 물건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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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집

2024.10.30 10:27

조회수 6902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writer. 정멜멜 (@meltingframe)

서울에서 동료들과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를 운영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국내/외 브랜드와 매체, 작가와 디자이너들과 함께 관련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


최근 비인간동물과 그들의 반려인, 보호자, 활동가와 후원자를 사진과 대화로 기록하는 프로젝트 '올루 올루' 를 시작했다.




©정멜멜



⊹

언젠가 나의 나이 많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면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잔뜩 생길 예정이다.
아껴서, 잘해주고 싶어서, 사랑해서 사준 물건들이
나에게 상실감을 안길 수도 있다.
어떤 계절에, 빛이 들어오는 오후면 늘 앉아있곤 하던
의자 위 담요는 한순간에 거친 파동을 일으켜
나를 힘들게 할 것이란 걸 예감하고 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이사를 결정하지 않는 한
그가 떠나고 난 나의 집은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추억이 담긴 그릇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함께 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도 안다.

⊹



언젠가 내게 말을 걸어올 물건을 산다



거리를 걷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서울시 전체 전철역 중 혼잡도가 5위 안에 든다는, 유동 인구가 유난히 많은 역 근처였다. 못 듣고 지나칠 수 있었던 그 미약한 음성을 함께 걷던 지인이 들었고, 전선 뭉치 사이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벌써 16년 전의 이야기다.

갑자기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고양이를 데리고 오게 된 나는 시급하게 필요한 물품부터 검색했다. 모래와 사료. 고양이는 모래를 펼쳐주면 알아서 화장실로 쓴다고? 그런 광경을 본 적도 없고 태어나서 모래를 사본 적 역시 한 번도 없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급하게 마련한 박스에 모래를 부어주니 들어가 오줌을 누는 고양이를 보면서 예감했다. 단 한 번도 사지 않았던 것들, 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것들을 구매하며 앞으로 살게 될 것이란걸.


©정멜멜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를 위해 때가 되면 꼭 사야 하는 사료나 영양제, 간식을 제외하고도 여전히 많은 것들을 구매한다. 혹은 구매했던 것을 눈물을 흘리며 빼앗기기도 한다. 혼자 덮어야지, 하고 큰맘 먹고 산 프리미엄 마이크로 화이버 솜 차렵이불을 빼앗기는 데 이틀 정도 걸렸다. 부드러운 것을 찾아내는 센서라도 있는 걸까. 선물 받은 핀란드의 울 블랑켓은 거의 펼쳐놓자마자 내 것임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하거나 하는 난폭한 방식이 아니라 그저 그 위에 우아하게 하지만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버림으로써 백기를 들게 만든다.

고양이의 생애 단계별로 새롭게 구매하게 되는 것들도 계속 생긴다. 스스로 그루밍을 하지 않기 시작했을 때는 심란한 마음으로 죽은 털을 완벽히 제거해 준다는 실리콘 돌기 브러시를 구입했고, 집에서 매일 피하 수액을 놓기 시작한 이후로는 정기적으로 주사기와 나비침, 알코올 솜과 소독용 에탄올이 구입한다. 이런 게 필요하구나... 16년 전, 처음 모래를 구입하는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직업상 타인의 공간에 방문할 일이 많고, 습관적으로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즐거운 일이다. 푹신한 방석, 만듦새가 뛰어난 밥그릇, 사용감이 느껴지는 스크래쳐, 매일 몸에 채워줄 하네스, 발톱 자국이 잔뜩 난 소파나 슬리퍼, 낡아 실밥이 터져 나왔지만 너무 좋아해 버리지 못하는 인형... 가장 친밀한 존재가 좋아하는, 혹은 그 존재를 위해 인간이 대신 고른 물건들의 면면을 바라보게 된다. 보통은 반려동물이 자주 지나다니거나 좋아하는 곳, 혹은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 있는 그 물건들은 몇 시간의 대화만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반려인의 취향이 반영된 물건도 있지만 누가 봐도 아예 배반해 버리는 물건들을 볼 때 오히려 사랑을 느낀다. 극단적인 시크함과 모던함을 추구하는 사람의 집에서 탄성 와이어에 화려한 깃털과 방울이 달린, 무채색의 공간에서 무시무시한 컬러와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티저 토이를 여러 개 발견하면 어쩔 수 없이 슬며시 웃음이 나는 것이다. 심지어 취향뿐 아니라 성향을 배반하기도 한다. 자신의 물건은 딱 필요한 것만 구비하는 듯 보이는 미니멀리스트의 집에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장난감이 가득한 반려동물 장난감 바구니를 보았을 때, 크지 않은 방에 거대한 캣타워를 두고 고양이 집에 잠시 얹혀사는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 마음을 너무나 이해하고, 어이없고 웃기다. 그리고 그렇게 깨닫는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기꺼이 나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라는걸.

언젠가 나의 나이 많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면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잔뜩 생길 예정이다. 아껴서, 잘해주고 싶어서, 사랑해서 사준 물건들이 나에게 상실감을 안기게 될 수도 있다. 어떤 계절에, 빛이 들어오는 오후면 늘 앉아 있곤 하던 의자 위 담요는 한순간에 거친 파동을 일으켜 나를 힘들게 할 것이란 걸 예감하고 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이사를 결정하지 않는 한 그가 떠나고 난 나의 집은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추억이 담긴 그릇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함께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도 안다.

나는 낯선 고양이를 만나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으며 그 안에서 생활을, 규칙을, 애착을 다시 정립하거나 무너뜨렸고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경이로웠던 경험과 시간을 그가 남기고 간 작은 빗 하나를 보며 떠올릴 것이다. 알고 있지만, 피할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함을 알고 있지만 가능한 늦게 찾아오기를.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바란다.


©정멜멜


⊹⊹

정멜멜 작가님이 공유해주신 ‘집에서의 창의적인 활동’은
반려동물의 건강과 취향, 습관 등을 고려한 물건을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아지트에 쌓여가는 앙증맞거나 거대한 물건들,
그 물건 하나하나에 녹아든 인간의 고민과 반려동물과의 교감.
‘우리 생에서 사랑과 공존을 위한 행동보다 창의적인 영역이 또 있을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품게 만드는 에세이였네요.

집스터 여러분의 집에는 어떤 ‘사랑의 흔적’이 펼쳐져 있나요?
반려동물의 무릎 관절을 고려한 매트? 이사할 때 선물로 받은 식물들? 무수한 아기용품?
‘지금’을 함께하는 존재가 내 삶에 있음을 알리는
사랑스러운 집의 조각들을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219

964

댓글 등록 시 3미닛 적립 (1일 10건까지)

댓글

jolie

말을 걸어올 물건들이라는 생각자체가 얼마나 마음이 가는 것들을 사고 사용한다는 것인지! 정성스러운 말이네요.

2024.11.03 18: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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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이렇게 생각하는게 낭만있어요 ㅠ

2024.11.03 17:0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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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예원)

사랑스러운 울집 화초들~♡

2024.11.03 14: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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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제가 좋아하는 색감의 파랑색 기분좋네요

2024.11.03 13:1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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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810

고양이와 아주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2024.11.0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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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아빠

언젠가 내게 말을 걸어올 물건을 산다 참으로 멋진 말이네요. 글에서 비슷한 경험을 체험해서 공감가네요

2024.11.03 10:0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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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꾸바

사진도 좋고 물건이 나에게 말을 건다는것도 좋고

2024.11.03 09:3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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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들꽃

감성이 좋고 고양이와 분위기가 어울려요

2024.11.0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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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셋

생각하는 시간을 갖어보네요

2024.11.03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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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는도시쥐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떠나보낸 반려동물의 물건을 보면 그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특히, 언시절 가지고 놀던 물건을 볼 때면 울컥하더라고요.

2024.11.03 00:5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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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43538

많은 생각들이 드는 글이네요.

2024.11.03 00: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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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냥

저도 나이 많은 고양이 (15살) 2마리를 모시고 살아요. 아주 아가일때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와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남겨질 것들의 필연적인 슬픔이 아이러니 하게도 존재의 근거와 기억이 된다는게 공감되면서 눈물도 나네요.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데 사람도 동물도 늙어간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네요. 털북숭이들 쓰다듬으며 몇 자 적어봅니다...

2024.11.0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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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아웃2

영감 받아갑니당

2024.11.02 22: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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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선배

강아지를 위한 폭신한 계단이용 훟 사진 갬성 너무 좋네요

2024.11.0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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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eev

사진들이 너무 예뻐요 더 많은 고양이 사진 보고 싶어요

2024.11.0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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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피데이!

감성 좋아용 ㅎㅎ

2024.11.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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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철

고양이와 멋진 분위기가 어울리는 집입니다

2024.11.02 17:5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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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o2

잔잔한 글에서 잃어가는 감정을 되살려봅니다..

2024.11.02 15: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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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yoen1366

사진을 정말 잘 찍으시네요 그리고 색감이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2024.11.02 14:3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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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yeon

사진들이 너무 예뻐요. 잘 보고 갑니다.

2024.11.02 14: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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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츄핑

냥이 자랑 더 해주세요

2024.11.02 11:5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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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주

반려동물이 주는 사랑이란..

2024.11.02 09: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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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9

기븐이 좋아지네요

2024.11.02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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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87297

공감가는 부분이많네요~

2024.11.0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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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11

귀여워용

2024.11.0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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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365415

고양이 귀여워요

2024.11.0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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먐먐묘묘

울 집 고양이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

2024.11.0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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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님

언젠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물건이라는 말이 와닿아요~!!

2024.11.0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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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0

언젠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물건이라... 신기하네요

2024.11.0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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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197470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요ㅠ 따뜻한 글 좋네요

2024.11.0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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