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후기

나에게 도착하는, 나를 돌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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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집

2024.07.31 10:33

조회수 6345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writer. 최예슬 (@sukla.yeseul, @grapefruit.space)

2006년에 요가 수련을 시작한 이후 몸과 마음을 돌보는 삶 속에 차근차근 들어와 몸, 마음, 글을 성실하게 읽고 쓰며 지내고 있습니다.


서울 합정동에서 대안 공간 ‘그레이프프루트 스페이스‘를 운영하며 요가와 명상을 안내합니다. 에세이 『불안의 쓸모』, 『유연하게 흔들리는 중입니다』를 썼습니다.

 


 



©최예슬

 

 

⊹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만을 외치던 나를
지금의 집에 앉히고는 당장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조용해지니까 드디어 들리는 숨소리처럼
내가 여기에 살아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적막한 시간이 이어졌다.
요가원에 가야만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요가 수련을 하고, 틈틈이 명상도 하고,
읽다가 좋아서 모서리를 접었던 페이지를 펼쳐 옮겨 적고,
식물가게에서 오래 들여다보던 식물들을 하나씩
집으로 데려와 매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

 

 

나에게 도착하는, 나를 돌보는 집

 

 

오늘도 집으로 돌아왔다. 매번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는 것, 언제나 집으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을 살아오는 내내 집으로 돌아왔던 내가 몰랐을 리가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진짜’ 알아버린 날이 있었다.

 

그날 이전의 나는 자주 과거와 미래를 생각했다. 그 일은 왜 일어났을까, 그는 왜 떠났을까 아쉬운 마음을 끌어안기도 했고, 지금의 나는 별 볼 일 없지만 언젠가 나중에는 멋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내가 사는 지금의 집은 대단할 것 없지만 좋은 시절이 오면 아름다운 집에 살게 되면 좋겠다고, 미래를 향한 마음들을 차마 말로도 하지 못하고 입속에서만 데굴데굴 굴려 가면서 지내기도 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임시’였다. 진짜 마음에 드는 물건은 언젠가 나중에 사기로 하고, 나쁘지 않은 적당한 물건들을 샀다. 테이블도 의자도, 책장과 컵과 알람 시계까지도 언제 사라져도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무난한 것들로 고르고, 식물과 함께 살지도 않았으며 귀갓길에 꽃을 사서 오는 날도 없었다. 지친 몸을 청결하게 씻고 안전하게 잠을 자는 장소면 충분하다고 여기면서 보낸 날들 동안에는 집으로부터의 탈출만을 틈틈이 감행하며 지냈다. 혼자 사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삶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 그지없지만 말이다.

 

변화는 불쑥 찾아온 계절 같았다. 맥락이 없는 것 같은데 가만히 살펴보면 자연스러운 흐름 안. 요가 수련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명상을 접하게 되었고, 처음 배우게 된 명상은 모든 순간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연습이었다. 이미 ‘지금, 여기’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작은 의심조차도 없었는데, 어느 날 명상을 하고 눈을 떠서 가만히 공간을 돌아보다가 주저앉아 한참 동안 조용히 펑펑 울고 말았다. 내가 사는 집이라는 공간이 꼭 내 삶 같아서. 지나간 과거를 모두 끌어안은 채 무거워진 몸으로 뒷걸음질하고, 지금 마음이 이끌리는 것들은 대부분 상황이 좋아지면 할 수 있는 일들로 분류하고 미루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부터 조바심에 버둥거리며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만을 외치던 나를 지금의 집에 앉히고는 당장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조용해지니까 드디어 들리는 숨소리처럼 내가 여기에 살아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적막한 시간이 이어졌다. 요가원에 가야만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요가 수련을 하고, 틈틈이 명상도 하고, 읽다가 좋아서 모서리를 접었던 페이지를 펼쳐 옮겨 적고, 식물가게에서 오래 들여다보던 식물들을 하나씩 집으로 데려와 매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은 것들은 대부분 집 밖에 있다고 여기며 바깥을 헤매던 날들 동안 놓쳤던 것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수많은 경험들은 소화되지 못한 채 얹혀 있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빈껍데기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고 가는 것들과 그 잔상을 제대로 알아보는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최예슬


집에서 ‘지금’의 나를 돌본다. 더 멋있는 사람이기보다 더 내가 되는 여정이기를 바라고, 더 아름다운 집이 아니라 현재의 집 모습 그대로에 감사하면서 지내기를 소망한다. 들여놓을 것들을 고심해서 정하기도 하고, 나를 키우듯 식물을 정성스레 살피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와 양치를 한 후 미지근한 물을 투명한 컵에 담아 한 잔 가득 마신다. 그런 다음에는 바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래야만 장면 전환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일정이 느지막한 오후에 있는 날에도 옷부터 갈아입고 명상 방석이나 요가 매트로 온다. 짧게는 이십 분, 길게는 한두 시간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요가나 명상을 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보통 온갖 생각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꺼내어 생각하려고 하거나,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행위를 어서 멈추고 할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조급함에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그런 나에게 지금, 여기도 충분한 자리라고, 멀리 갈 필요가 없다고, 여기에서 숨 쉬는 것 그것만 정성스럽게 해도 많은 것들이 나아질 거라고 달래며 가만가만 감정의 등을 어루만진다. 그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면 내 안에서 생겨난 수많은 생각 전부에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음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집중한다면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고, 급한 마음은 내가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면 그날 하루 동안 이곳저곳에서 읽은 책의 페이지들을 다시 보면서 노트에 옮겨 적는다. 적어두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금세 기억에서 사라지는지 여러 번 목격했다. 오래 기억하려고 마음먹어도 그때뿐, 처음에는 조금 더 깊은 내면에 새겨두고 싶어서 필사를 했다면, 이제는 필사라는 행위 자체로 목적이 바뀌었다. 기억은, 얼마간 내 힘으로 더 오래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으나 결국은 내 마음껏 하염없이 붙잡거나 순식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억보다 힘이 센 것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행위 속의 고요. 고요 속에서 소화되는 장면들이다. 소화는 새로운 것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을 때는 일어날 수가 없다. 어떤 음식을 먹고 잠시 공백을 가질 때 일어나는 것이 소화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필사를 하는 행위는 그날 내게 찾아온 풍경을 가만히 되새김질하는 경험 소화의 시간이다.

 

경험이 소화되지 않은 자리에서는 수많은 감정들의 짓궂은 장난에 기운이 빠지고, 초대하지도 않은 불안한 마음을 제일 번듯한 자리에 앉히게 된다. 기쁜 일에 대해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봐 걱정되고, 아픈 마음으로 가득해지는 일은 내게 나쁜 자석이 있어서 계속 그런 일들만 끌어당길까 봐 겁이 난다. 수많은 오르내림을 섣불리 분석하려고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숨을 고르는 시간, 언제나 다녀가고 있기 때문에 자주 잊곤 하는 숨을 정성스럽게 들여다보고 두 손과 두 발, 그들의 무한한 노력에 감사하며 만져보는 시간, 몸의 앞뒤 옆을 차근차근 감각하면서 덧대어진 긴장의 두터움을 한 겹 정도 덜어내는 시간이 삶에 중심을 잡아준다. 수면의 거친 파도를 등지고 수심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잠잠한 공백을 만드는 동안 삶은 뉘앙스를 바꾼다. 한 사람의,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담백하게 정돈된 분위기는 경험이 이해된 자리를 자주 마주한 사람에게 자연스레 주어지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집에서 소화의 경험을 한다. 탈출하고 싶지 않은 나의 집에서 나는 매번 나에게 도착한다.

 



©최예슬

 

 

⊹⊹

 

 

시끄러운 마음을 허심하고 고요하게 만든 수련의 힘이었습니다!

그 힘으로 작가님에게 찾아온 삶의 변화가 너무 근사하지 않나요?


어디 멀리 찾아가지 않고도 명상, 요가, 필사 등
집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셨지요.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어둠의 수렁으로 빠지는 것을 막으니, 
집이 무엇이든 행할 수 있는 날 위한 도화지가 되어가는 듯 보입니다.

우리도 오늘부터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집스터 여러분은 집을 ‘어떤 수련원’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215

688

댓글 등록 시 3미닛 적립 (1일 10건까지)

댓글

삐순

❤️❤️

2024.08.0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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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순

저도 실천해봐야겠어요

2024.08.0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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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순

정말 좋은,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네요!

2024.08.0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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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0546

집중한다면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고, 급한 마음은 내가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이 문장이 너무 와닿았어요. 항상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정작 생각만 하면서 바쁘다고 생각하는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24.08.0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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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비

마침 칭구가 너무 귀여운 요가매트를 선물로 주었어요 ㅎㅎㅎㅎ 저도 집에서 해볼래용

2024.08.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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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88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2024.08.0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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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16

운동과 함께하는 삶 멋잇네요

2024.08.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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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윗홈0

제가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이에요~

2024.08.0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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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림4

멋있어요!!!

2024.08.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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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점짱구

멋잇어요

2024.08.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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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점짱구

집이최고

2024.08.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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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점짱구

좋아요

2024.08.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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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호어머니

정신수양은 집이죠

2024.08.0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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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haho

쉼음 좋죠

2024.08.0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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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뿌

nowherian

2024.08.0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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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드려요!

수련자는 멋있어요

2024.08.0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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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37558

집은 최고의 쉼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과 딱 맞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계신 것 같아요 멋져요

2024.08.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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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떼루

저도 언젠가는 갖고 싶은 저만의 방을 머릿속에 그리곤 합니다. 여러권의 책을 올려두어도 부족함이 없는 큰 책상, 창을 열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등. 이제는 미루지 않을래요. 지금에 집중해서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바로 바꿔야 겠어요~ :)

2024.08.06 16:5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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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5

저도 요가를 너무 좋아하는데 나를 돌보는 방법도 배워야겠네요🥹

2024.08.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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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드리

나를 돌봄 :) 배우고싶네요

2024.08.0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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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씨

나하나 돌보는 것이 쉽지 않아요 ㅎㅎ

2024.08.0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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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게 정말 쉽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것 같아요

2024.08.06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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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저도 미래를 위한 연습처럼 현재를 대하는 경향이 있으면서 명상을 해야지 해야지 하고 미뤄뒀는데, 집에서도 충분히 명상할 수 있다는 점에 자극받고 갑니다. 집이 따뜻한 느낌이에요!!

2024.08.06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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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두유

멋져요 편안한 느낌이 좋아요

2024.08.0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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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챠0508

집에서 나를 위한 공간, 쉼을 위한 공간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용🍀

2024.08.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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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24

집!! 징에서 나오는 순간 계속 가고싶은 곳

2024.08.0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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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슝0

집이 주는 의미를 느낄수있었어요

2024.08.0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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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나에게 도착한다는 말이 와닿네요 오늘도 나에게 달려가는 중

2024.08.0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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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쌤

저도 저만의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과 모임을 가져보고 싶어요

2024.08.0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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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타

꼭 저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요!

2024.08.0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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