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후기
[라이프집에세이] 더 이상 비즈니스 호텔이 될 수는 없는

라이프집
2023.12.28 16:29
조회수 1981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 writer. 정우성(@thepark_woosung)
<경향신문> 2006년 공채 45기로 입사해 <레이디경향>에서 근무했다. 이후 <지큐>로 이직해 8년 동안 96권의 잡지를 만들었으며 <에스콰이어>에서 19권의 잡지를 더 만들었다. 현재는 취향 공동체를 표방하는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로 바쁘고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 『단정한 실패』 , 『산책하듯 가볍게』를 썼다.

©정우성
아이는 한 달만에 4cm가 컸다.
혼자서 넉넉했다가, 둘이서 딱 좋았던 집이었다.
곧 셋이라서 좀 부족한 듯한 시간이 올 것 같다.
그때 이 작은 아이는 나를 ‘아빠’, 아내를 ‘엄마’라 부르겠지.
우리는 방이 한 칸 정도 더 있는 집에 살게 될까.
벌써부터 씩씩한 이 아이가 맘껏 뛰어도 눈치 볼 일 없는
마당이나 발코니도 가질 수 있을까.
무심하고도 촘촘한 시간의 흐름 위에,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되었다.
⊹
더 이상 비즈니스 호텔이 될 수는 없는
2023년 11월 8일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집 새벽 침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수상하고 다채롭다. 이어폰을 끼고 원고를 쓰거나 영상을 만드는 거실에서도 두 사람의 숨소리가 색색. 신생아가 뒤척이면서 내는 이불 소리가 바스락. 그 사이로 가끔 가볍게 코 고는 소리가 잠을 권한다. 이 집은 그만큼 고요하고 나는 더이상 혼자 살지 않는다. 침실에는 이제 막 생후 한 달을 넘긴 아기와 아내가 가까스로 잠들어 있다.
‘2박 5일짜리 출장에서 돌아온 날 새벽, 내가 사는 집은 비즈니스 호텔 같았다’라는 문장을 언젠가의 <지큐>에 쓴 적이 있다. 자동차 담당 에디터로서 1년에 8~9회의 해외 출장을 소화하던 시기였다. 밤새 마감을 마치고 트렁크에 짐을 때려 넣다 잠들어 게이트에서 걸려 온 담당자의 전화를 받고서야 깼던 아침도 있었다. 택시에선 ‘공항까지 무조건 빠르게 가주세요’ 말하곤 다시 잠들고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다시 잠들던 날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와보니 생각과는 다른 도시였던 적도 몇 번 있었다. 히드로인 줄 알았는데 내려보니 맨체스터였다거나. 그때 살던 신사동 원룸에는 온기가 머물 틈이 별로 없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몇 년은 서울이 거대한 파티장 같았다. 친구들은 저녁마다 권역별로 놀고 있었다. 가로수길과 한남동, 경리단과 합정을 종횡으로 누비던 밤마다 술과 안주와 웃음이 무슨 벚꽃처럼 흐드러졌다. 그땐 그대로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과 인연들. 참 많이 웃고 서로 기대며 향긋하게 관통해 온 시간들. 낮의 피로를 그대로 쌓아둔 채, 몸과 흥을 믿고 끝까지 밀어부치던 일과 일탈과 여가의 나날들.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드물게 함께였고 대부분 혼자였다. 빠르게 씻고 간편하게 먹고 단정하게 잠들었다. 밤에는 너덧 시간 정도 자고 아침에는 출근했다. 냉장고에는 우유와 사과주스 정도만 들어 있었다. 그때 몇 개월 정도 같이 살았던 고양이 이름은 ‘빙하’였다. 눈처럼 녹아 사라지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이름이었다.
그 방에서는 2년 정도 살았다. 빙하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몇 개월을 씩씩하게 싸웠지만 끝내 헤어졌다. 그렇게 자주 출장을 다니는 사람. 더 잦은 야근을 하는 사람. 자주 밤을 새워 일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고양이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비즈니스 호텔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것도 오로지 내 욕심 같았다. 그때 벚꽃처럼 흐드러지던 사람들과도 우수수 멀어졌다. 시간은 무심하고도 촘촘한 거름망 같아서, 곁에는 좋은 사람들만이 귀하게 남았다. 회사를 다니던 사람에서 내 회사를 키우는 입장이 되었다.


©정우성
그러는 동안 두 번의 이사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새벽은 모니터 앞에서 보내지만, 이 집에서 우리는 마침내 가족이 되었다. 해 질 녘 옥상에 올라가면 저쪽으로 노을과 한강이 찬란한 배경도 갖게 됐다. 서재로 쓰던 방에는 이제 아이 물건이 가득하고, 내가 작업하던 책상은 사이즈를 1/3 정도로 줄여 거실로 내왔다. 거실 테이블이 있던 위치에는 아이 침대와 기저귀 갈이대, 역류 방지 쿠션이 자리를 잡았다. 아이보다 먼저 가족이 된 건 예의 바르고 사람 좋아하는 우리 고양이 타샤였다. 새벽 2시 반 경, 색색거리던 숨소리 사이로 조금 더 다채롭게 ‘뿌에엥-’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무렵에는 분유를 탈 준비를 한다.
11월 8일. 2023년생 아이의 생일 이후 우리는 바깥 식사를 줄였다. 부엌에서 차려 식탁에서 먹는다. 냉장고에는 양가 부모님께서 챙겨주신 밑반찬과 국과 과일이 가득하다. 오후 7시 이후에는 (웬만하면) 누구에게도 전화가 오지 않고 TV는 종일 켜지 않는다. 술은 언제부터 안 마셨지? 대신 명절에 장인어른과 마시는 막걸리와 소주를 몹시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는 한 달만에 4cm가 컸다. 혼자서 넉넉했다가, 둘이서 딱 좋았던 집이었다. 곧 셋이라서 좀 부족한 듯한 시간이 올 것 같다. 그때 이 작은 아이는 나를 ‘아빠’, 아내를 ‘엄마’라 부르겠지. 우리는 방이 한 칸 정도 더 있는 집에 살게 될까. 벌써부터 씩씩한 이 아이가 맘껏 뛰어도 눈치 볼 일 없는 마당이나 발코니도 가질 수 있을까. 무심하고도 촘촘한 시간의 흐름 위에,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되었다. 새벽 4시 10분경, 오늘도 침실에서는 두 사람의 숨소리가 가지런하다. 비즈니스 호텔 같았던 그 방에서는 한순간도 느낀 적 없는 온도. 이제 어떤 미래도 부담스럽지 않다.

©정우성
Credit
Editor Haeseo Kim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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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sweetdew_home
글도 넘 좋아요 :)
2024.01.03 21:5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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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h****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2024.01.03 21: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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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디바
햇살이 좋네요
2024.01.03 18:5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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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미
고양이와 아기 아름다운 뷰까지...너무 멋진 공간이네요!
2024.01.03 15:1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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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81
따뜻함이 가득 느껴져요
2024.01.03 00:2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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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쿠리
공감됩니다
2024.01.01 22:3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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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스윗홈
글 읽는게 이렇게 숙숙 잘 읽히니 더 와닿네요^^
2024.01.01 09:5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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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족제비
너무 따뜻해집니다
2024.01.01 00:5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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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기세
역시나 좋네요. 해서 에디터님이 편집하시는 글은 늘 좋은 거 같아요
2023.12.31 13:5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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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나
가족과 집, 그리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
2023.12.31 13:3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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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파피
잘 읽었습니다.. 집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되네요
2023.12.30 11:3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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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뿌
아기 얼굴 들여다보다보면 어느덧 5년이 훅
2023.12.29 20:5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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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매니아
집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바꿔 주는 글이었습니다
2023.12.29 14:5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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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노는늑대
좋아효~!!
2023.12.29 08:0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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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피
담담하게 글을 읽어주는 느낌이에요ㅎㅎ 맘이 따듯해지는 글이네요!
2023.12.29 07: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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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밍룸룸
아 너무 따뜻한 글이에요.🤎 집의 의미가 바뀌었네요✨️
2023.12.29 04:0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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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니
잘읽고갑니다..!
2023.12.28 21:3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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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샤
글이 따뜻하게 읽혀요:)
2023.12.28 20: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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